# 아르크의 중심부는 이미 전쟁터였다.
성좌의 제단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콘크리트 벽을 녹였고, 노동자 존의 광장은 크레바스처럼 갈라졌다. 준호는 그 균열 위에 서 있었다. 손가락 끝에서부터 시작된 검은 금이 이제 팔 전체를 덮었고, 목을 타고 얼굴까지 올라와 있었다.
죽은 것.
아니, 죽어가는 것.
아니다. 이미 죽은 것이다.
"준호!"
박서현의 목소리가 먼 곳에서 들렸다. 그녀는 광장의 가장자리에서 손을 뻗고 있었다. 김은지는 그 옆에서 얼굴을 흐린 채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수천 명의 생존자들이 뒤에 몰려 있었고, 그들의 눈은 모두 준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내려와. 함께 올라가자."
박서현이 다시 외쳤다.
준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감고 죽음의 권능을 느껴보았다. 세 성좌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서로 다른 주파수에서, 서로 다른 언어로, 하지만 동일한 공포를 담아.
황금의 수호자는 질서를 지키려 했다. 붕괴되는 아르크의 구조를 한 점으로 모아 시간을 역행시키려는 의도였다.
종말의 시인은 극적인 장면을 만들고 있었다. 준호의 죽음을 무대 위의 마지막 막으로 설정하고 있었다.
심연의 속삭임은 모든 것을 끝내고 싶어 했다. 아르크 전체의 소멸을 갈망하고 있었다.
준호는 손을 펼쳤다.
죽음의 권능이 광장을 관통했다. 한 명이 아니라, 수천 명이 아니라, 아르크 전체의 죽음을 조종했다. 누군가는 내일 죽을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1년 뒤 죽을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70년을 더 살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준호는 그 모든 죽음의 시간을 현재로 당겨왔다.
신체가 비명을 질렀다.
검은 금이 목에서 뺨으로 올라왔다. 입술이 까매졌다. 눈의 흰자위가 검어졌다. 팔이 부서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고, 그것은 실제 부서짐이었다. 뼈가 돌로 변했다. 살이 회색으로 바뀌었다. 심장이 뛰지 않았다. 폐에 공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의식은 남아 있었다.
생명이 소모되고 있었다. 수 일의 생명이 한 순간에 타버렸다. 준호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권능의 대가가 작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기... 누가 있어?"
의료진이 나타났다. 아르크의 어딘가에서 나온 의료진이, 준호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손전등으로 눈동자를 비추었다. 그 손전등 불빛이 검은 금을 통과했다.
"이미 죽었네."
의료진이 말했다. 그 목소리는 남성인지 여성인지 알 수 없었다. 마치 아르크 자체에서 울려 나오는 음성처럼.
"3년 전에 죽었어. 격리 구역에서."
준호의 의식이 흔들렸다. 그것이 거짓일 수도, 진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중요하지 않았다.
"종말의 시인의 계약이 그거야. 넌 이미 죽은 자를 7년간 연장하는 거. 빚을 갚는 방식이야. 넌 시간을 빌려온 거고, 지금 그 시간이 다 떨어졌어."
의료진이 준호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 손이 가슴을 통과했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어. 넌 이미 비어있어. 그냥 권능의 형태일 뿐이야."
광장이 정적으로 변했다.
박서현의 입이 벌어졌다. 김은지가 무릎을 꿇었다. 수천 명의 생존자들이 숨을 멈췄다.
"아니야."
박서현이 광장을 뛰어내려왔다. 그녀의 발이 균열을 뛰어넘었고, 돌 위를 굴렀다. 준호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를 붙잡으려 했다.
손이 통과했다.
박서현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울음이 아니라 절망 그 자체였다. 3년을 함께한 사람이, 자신이 구하려던 사람이, 손가락 끝도 닿지 않는다는 현실. 그녀의 손이 준호의 팔을 여러 번 헤쳐 내려갔다. 매번 통과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울기 시작했다. 목에서 나오는 것은 울음이 아니라 신음이었다.
"산다고 했잖아. 넌 산다고..."
준호는 그녀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동정이 없었다. 단지 확인만 있었다. 자신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
박서현이 손을 들어올렸다. 그녀의 눈이 준호와 마주쳤다. 그 눈 안에는 자신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내는 것이 담겨 있었다.
"안녕."
준호가 말했다.
"다시 봐."
"못 봐. 넌..."
박서현이 손을 내렸다.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3년의 기다림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김은지가 광장으로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손은 떨렸다. 그녀는 준호에게 다가가 눈을 직시했다. 그 눈 안에는 죄책감이 아니라 결단이 담겨 있었다.
"난 너를 버리지 않았어."
김은지가 말했다.
"그때 나랑 동료들은 너를 살리려고 했어. 물자를 남겨놨고, 기록을 지웠고, 너를 찾으려고 했어. 그런데 넌 이미 저 아래에서 성좌와 거래를 했어. 우리가 도착했을 때 넌 이미 죽어 있었어."
준호는 반박하지 않았다. 이제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거짓인지 진실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어떤 형태로든.
"모르는 일이었어."
"그래. 모르는 일이었어. 그래서 넌 이 모든 것을 하게 된 거야. 복수도, 살인도, 죽음도. 전부 이미 정해진 거야."
김은지가 손을 펼쳤다. 그 손에는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기록 장치에서 뽑아낸 것 같았다. 그 위에는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준호. 김은지. 박서현. 이민철. 종말의 시인. 황금의 수호자. 심연의 속삭임.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이준호.
"넌 배우였어. 처음부터 끝까지."
김은지가 종이를 태웠다. 불이 종이를 집어삼켰다.
그 순간, 아르크 전체에서 음성이 터져 나왔다.
"좋아. 완벽한 연기야."
종말의 시인이었다.
"이제 극의 마지막 장을 시작해. 넌 죽고, 세상은 다시 시작되고, 모든 빚은 사라질 거야. 그게 우리의 계약이야. 넌 죽어야 하고, 나는 자유로워져야 해."
아르크가 떨렸다.
벽이 균열을 일으켰고, 바닥이 침식되기 시작했다. 수천 명의 생존자들이 준호를 바라봤다. 그들의 얼굴에는 기대가 있었다. 준호가 모든 것을 끝낼 것이라는 기대.
준호는 손을 올렸다.
죽음의 권능을 모았다. 모든 생명의 죽음을. 모든 시간의 종말을. 그리고 세 성좌의 계획을 동시에.
황금의 수호자의 질서 재정렬이 중단되었다. 심연의 속삭임의 멸종 신호가 끊겼다. 종말의 시인의 시나리오가 무너졌다.
세 성좌는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그들의 빚이 소멸하고 있었다. 권능의 거래가 완료되는 순간이었다.
권능이 방출되었다.
아르크가 빛으로 채워졌다.
정적이 왔다.
모든 것이 멈췄다.
그리고 그 정적 속에서, 준호는 깨달았다.
자신이 본 모든 것이 거짓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박서현의 울음도.
김은지의 기록도.
의료진의 진단도.
종말의 시인의 목소리도.
모두가.
천장이 무너졌다. 회색 빛이 내려왔다. 준호는 움직일 수 없음을 깨달았다. 팔이, 다리가, 목이, 눈이 모두 고정되어 있었다. 단지 의식만 남아 있었고, 그 의식이 회색 빛 속에서 천천히 흩어지고 있었다.
"축하해."
음성이 들렸다. 하지만 그것은 종말의 시인의 음성이 아니었다. 그것은 준호 자신의 목소리였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식에서 직접 울려 나오는 음성이었다.
"이제 넌 진짜 배우야. 다음 장은 누가 쓸까?"
준호의 눈이 감겼다.
아니, 감긴 게 아니었다.
준호가 눈을 뜨자, 거기에는 다른 세상이 있었다.
거기에는 아르크가 없었다.
천장도, 벽도, 바닥도 없었다. 대신 흰색이 있었다. 완벽한 흰색. 끝이 없는 흰색. 준호는 그 흰색 속에서 떠 있었다. 몸도 없었다. 팔도, 다리도, 얼굴도 없었다. 단지 의식만 있었다.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느끼는 것도 모두 의식이었다.
그리고 그 흰색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깨어났네."
준호가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움직일 것이 없었다. 의식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여기가 어디야?"
준호가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단지 생각이 전달되었다.
"어디라고 생각해?"
음성이 다시 들렸다. 이번에는 확실했다. 종말의 시인이었다. 하지만 그 음성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흰색 속에서 오는 것이었다. 아니, 흰색 자체가 음성을 내고 있었다.
"이건... 죽음이야?"
"그럴 수도 있지. 또는 시작일 수도 있어."
종말의 시인이 웃었다.
"넌 3년 전에 죽었어. 격리 구역에서 방사능에 잠식되며 죽어갔어. 그때 넌 내게 빚을 졌고, 내가 넌 살려줬어. 아니, 정확히는 죽음을 연장해줬어."
준호의 의식이 흔들렸다. 그것이 거짓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 저항할 힘이 없었다.
"그 3년간 넌 진짜로 살아 있었나? 아니면 내가 만든 시나리오 속에서 연기하고 있었나?"
"뭐가 중요해? 이미 다 끝났잖아."
"끝나지 않았어."
준호가 말했다. 자신이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생각은 전달되고 있었다.
"내가 죽고도 아르크가 계속 무너지고 있어. 박서현이 살아 있어. 김은지가 살아 있어. 수천 명이 살아 있어."
"그들도 죽을 거야. 결국 모두 죽어."
"그렇다면 왜 나를 여기 데려왔어? 왜 죽음을 보여주고 있어?"
흰색이 흔들렸다. 그것은 마치 물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준호는 깨달았다. 이것이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아직도 계획의 일부라는 것을.
"난 죽지 않았어."
준호가 말했다.
"내 몸이 없어졌을 뿐이야. 의식은 여기 있어. 그리고 의식이 있다면..."
흰색이 갈라졌다.
그 갈라진 틈 사이로 아르크가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준호가 알던 아르크가 아니었다. 아르크의 모든 층이 동시에 무너지고 있었다. 엘리트 존도, 노동자 존도, 격리 구역도 모두 붕괴되고 있었다. 그 속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마치 춤을 추듯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떨어진 곳 아래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었다.
초록색이었다.
나무가 있었다. 풀이 있었다. 하늘이 있었다. 태양이 있었다.
"지표면이야?"
준호가 물었다.
"지표면은 3년 전에 죽었어. 방사능으로. 모든 생명이 죽었어. 지금 보는 건 그 죽은 세계의 기억이야."
종말의 시인이 말했다.
"그리고 넌 그 기억 속으로 내려가야 해. 죽은 세계를 살린 배우로서."
준호는 깨달았다. 자신이 완전히 이해했다는 것을.
"이건 거래야. 성좌들의 거래. 넌 내게 아르크를 주고, 나는 너에게 죽음의 권능을 줬어. 그리고 그 거래의 댓가로..."
"넌 죽어야 해. 그리고 죽음으로 모든 것이 새로 시작돼. 죽은 지표면이 살아나고, 죽은 사람들의 기억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성좌들의 빚이 모두 사라져."
종말의 시인이 완성했다.
"그럼 난?"
"넌 그 새로운 세상의 첫 번째 죽음이 되는 거야. 그리고 모든 새로운 시작은 첫 번째 죽음에서 나와. 넌 영원히 그 세상에 남아 있을 거야. 죽은 자로서. 하지만 살아 있는 모든 것의 기초로서."
흰색이 다시 흔들렸다.
준호의 의식 속에서 무언가가 깨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기억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기억들이었다.
박서현이 격리 구역에서 언니를 잃던 날. 그 추운 공간에서 손을 놓지 못하던 절망. 언니의 얼굴이 희미해져가는 것을 지켜보던 무력함. 그것이 준호의 의식에 흘러들어왔다.
김은지가 준호를 버리고 올라가던 날. 아래에서 들려오는 비명을 외면하고 계단을 올라가던 죄책감. 그것도 준호가 느껴야 할 감정이 되었다.
이민철이 준호를 밀어내던 순간. 자신의 생명을 위해 다른 누군가를 선택해야 했던 고통. 그 순간의 선택이 준호 안에 깊이 박혔다.
모든 기억이 준호의 의식과 섞였다.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는 형태로.
"이건 뭐야?"
준호가 저항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가는 것 같았다.
"배우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야. 다른 사람의 감정. 다른 사람의 고통. 다른 사람의 선택. 넌 이제 그들 모두가 돼. 그리고 그들 모두가 되는 순간, 넌 더 이상 이준호가 아니게 돼."
"그럼 뭐가 되는데?"
준호가 마지막으로 저항했다.
"글쎄? 그건 네가 써야 할 다음 장이야."
흰색이 급격히 수축했다.
준호는 떨어지고 있었다. 위로가 아니라 아래로. 그 초록색 세상으로. 죽은 지표면으로. 자신이 3년 전에 버렸던 세상으로.
그리고 떨어지는 와중에, 준호는 깨달았다.
자신이 이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을. 종말의 시인이 자신에게 보여준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고 싶었던 것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그렇다면 이것도 시나리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깨달음도. 이 저항도. 이 모든 것이 이미 계획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잠깐, 박서현은?"
준호가 물었다. 하지만 종말의 시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다른 음성이 들렸다.
"나는 여기 있어."
박서현이었다.
준호는 놀랐다. 박서현이 죽지 않았다면? 박서현이 이 흰색 세상에도 있다면?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뜻인가?
"우리는 모두 여기 있어."
박서현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다.
"격리 구역의 모든 사람들. 아르크의 모든 사람들. 죽은 지표면의 모든 사람들. 우리는 모두 이 흰색 속에 있어."
"그럼 우리가 죽은 건가?"
준호가 물었다. 하지만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아니. 우리가 살아 있는 거야. 처음으로."
박서현의 손이 준호를 잡았다. 손이 없는데 손이 잡혔다. 몸이 없는데 몸이 느껴졌다. 그 순간 준호는 박서현의 기억도 느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저항하지 않았다.
박서현이 3년 동안 준호를 기다린 시간. 그 긴 기다림 속에서 느껴야 했던 모든 감정. 준호가 돌아올 거라는 희망과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절망이 함께 섞여 있던 감정들. 그것이 준호 안에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그 감정 속에는 의심도 있었다. 이것이 정말 준호인지, 아니면 또 다른 시뮬레이션인지에 대한 의심. 하지만 그 의심 너머에는 확신이 있었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확신.
박서현과 준호는 동시에 깨달았다. 종말의 시인이 자신들을 속였다는 것을. 아니, 더 정확히는 자신들이 종말의 시인의 시나리오를 깨뜨렸다는 것을. 의식이 남아 있는 한, 그들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다음 장을 자신들이 쓸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쓸 거야."
박서현이 말했다.
"다음 장을."
흰색이 깨졌다.
아르크가 완전히 무너졌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초록색 세상 위로 떨어졌다. 그들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그들은 웃고 있었다. 마치 처음으로 날아가는 것 같이.
그 순간, 황금의 수호자의 음성이 끝났다. 질서를 지키려던 그 의지가 사라졌다.
심연의 속삭임도 사라졌다. 멸종을 갈망하던 그 욕망이 소멸했다.
종말의 시인도... 웃음을 남기고 사라졌다.
"좋은 극이었어. 정말."
그것이 마지막 말이었다.
준호는 박서현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떨어지고 있었다. 초록색이 가까워졌다. 나무가 보였다. 풀이 보였다. 하늘이 보였다.
지표면에 닿는 순간, 준호는 깨달았다.
자신이 누워 있다는 것을.
회색 콘크리트 위에.
아르크가 아닌 곳에.
그리고 그 위에는 태양이 있었다.
"일어나."
박서현이 손을 내밀었다.
준호가 손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손이 잡혔을 때, 준호는 또 다른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손이 검은 금으로 완전히 변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검은 금이 박서현의 손으로 전염되고 있다는 것을.
"뭐야?"
박서현이 손을 내려다봤다. 검은 금이 그녀의 손목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난 모르겠어."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다시 자신의 것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자신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건..."
준호의 눈이 들렸다.
지평선 너머에서, 또 다른 아르크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르크 안에서, 또 다른 준호가 손을 올리고 있었다. 죽음의 권능을 발동하는 자세로.
"극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아."
준호가 중얼거렸다.
박서현이 놓친 손을 다시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 손은 이미 검은 금으로 변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