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아르크의 심장부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높낮이가 계속 변하는 신호음. 그것은 재난 알림이 아니었다. 준호는 알았다. 성좌들의 비명이었다. 세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고, 그 음파는 아르크 전체를 흔들었다. 노동자 존의 벽이 갈라졌다. 엘리트 존의 조명이 깜박였다. 격리 구역의 천장에서 먼지가 떨어졌다.

준호는 손을 폈다. 검은 금이 손가락을 타고 내려왔다. 어제는 손목까지였는데, 이제는 팔뚝 중간을 넘어섰다. 시간이 빨라지고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박서현이 옆에서 물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대신 결연함이 있었다. 준호가 처음 본 표정이었다.

"아르크를 올린다."

"혼자?"

"혼자가 아니야."

준호는 뒤를 돌았다. 노동자 존 광장에는 수백 명이 모여 있었다. 어제의 저항군이 아니었다. 노동자, 격리 구역 주민, 엘리트 존을 탈출한 일부 관료들. 그들이 손을 맞잡고 있었다. 김은지가 그들 사이에 서 있었다. 엘리트 존의 옷을 벗고 노동자의 회색 복장을 입은 채로.

그녀의 눈이 준호와 만났다. 그 안에는 죄책감이 아직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것이었다. 지금은 다른 감정이 그것을 덮고 있었다. 선택. 현재형의 선택이었다.

"넌 나를 위해 죽을 필요 없어."

김은지가 앞으로 한 걸음 나갔다. 목소리가 떨렸다.

"넌 모두를 위해 살아야 해. 그것이 우리가 원했던 거야. 처음부터."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을 들었다. 죽음의 권능이 흘러나왔다. 노동자 존의 바닥이 울렸다. 아래층의 구조물이 반응했다. 지표면을 향한 상승이 시작되었다.

아르크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엘리트 존에서는 비명이 났다.

이민철이 통제실 모니터 앞에 서 있었다. 수치들이 급격히 변하고 있었다. 지표면까지의 거리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아르크는 지하 도시였다. 그것이 올라올 수 없었다. 올라오면 안 되었다.

"차단하라!"

이민철의 명령이 떨어졌다. 하지만 응답이 없었다. 기술진들의 콘솔에서는 불이 나가고 있었다. 시스템이 먹통이었다.

"황금의 수호자님이 계신데 뭐 하는 거야!"

이민철은 소리쳤다. 하지만 성좌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다른 음성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낮고 끈기 있는 목소리였다. 심연의 속삭임이었다.

—질서가 무너진다. 좋다. 모두 죽어라.—

엘리트 존의 조명이 한 번에 꺼졌다. 비상등이 켜졌다. 붉은 불빛이 통제실을 물들였다. 이민철의 얼굴도 붉게 물들었다. 그의 손이 떨렸다.

"이건... 이건 계획이 아니었어."

그는 혼잣말을 했다. 자신을 설득하려는 듯이. 하지만 누구도 그를 설득해주지 않았다. 성좌는 대답하지 않았고, 관료들은 이미 도망쳤고, 시스템은 완전히 마비되었다.

이민철은 창문으로 바깥을 봤다. 아르크의 중앙부가 빛나고 있었다. 흰색 빛이었다. 그것은 격리 구역의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죽은 자들의 기록이 만들어낸 빛이었다. 그 빛이 닿는 곳마다 엘리트 존의 벽이 갈라졌다.

그때 황금의 수호자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이제 끝이다. 준호, 너는 계약을 위반했다.—

"계약을 위반한 건 당신이다."

준호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그것은 녹음이 아니었다. 실시간이었다. 준호가 어디선가 말하고 있었다.

"당신은 내게 박서현을 살리라고 했고, 나는 그렇게 했다. 당신은 내게 종말의 시인을 감시하라고 했고, 나는 그렇게 했다. 하지만 당신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사람들을 살리지 않았다."

"그것은 계획이었다. 그들은 죽어야 했다."

황금의 수호자가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는 분노가 있었지만, 흔들림도 함께 있었다.

"계획을 바꾼다. 내 계획이다."

준호가 말했다.

아르크가 더 빠르게 올라갔다.

노동자 존에서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박서현이 손을 들고 있었다. 그녀 주변의 사람들이 따라했다. 하나 둘 셋. 수백 명의 손이 들려졌다. 격리 구역에서 올라온 주민들, 노동자, 그리고 몇몇 엘리트 존의 일원들까지. 그들은 손을 맞잡았다. 사슬을 만들었다.

김은지가 박서현 옆에 섰다.

"이게 뭐야?"

"준호의 권능을 나눠 받는 거야. 혼자가 아니라 함께."

박서현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마치 이 모든 것을 이미 예상했던 것처럼.

"그럼 준호는?"

"준호는 우리가 견딜 수 없는 부분을 견디는 거야. 그래서 우리가 여기 있는 거고."

손의 사슬이 떨리기 시작했다. 죽음의 권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수백 명이 그 권능을 분산시켜 받았다. 한 사람의 죽음이 모두의 변화가 되었다. 아르크의 구조가 재편되고 있었다. 격리 구역의 벽이 무너지고 있었다. 노동자 존의 바닥이 올라가고 있었다. 엘리트 존의 상층부가 내려오고 있었다.

계층 구조가 평탄해지고 있었다.

검은 금이 흰색으로 변했다. 죽음의 권능이 변화의 권능으로 재편되고 있었다. 그것은 수백 명의 손이 만들어낸 집단의식, 공동의 의지였다.

김은지의 손이 떨렸다. 박서현의 손이 그것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수백 명의 손들이 그 주변을 둘러쌌다. 하나의 사슬 안에서.

"버티자. 조금만 더."

박서현이 말했다. 그 말은 김은지에게만 하는 게 아니었다. 모두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준호에게도 닿고 있을 것이었다.

준호의 손가락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검은 금이 손가락 끝에서 손목까지 올라왔다. 그것은 단순한 색깔 변화가 아니었다.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다.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었다. 손가락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준호는 걸어가고 있었다. 격리 구역의 깊숙한 곳으로. 그곳에는 제단이 있었다. 죽은 자들의 기록으로 만들어진 제단이었다. 박서현이 말한 그곳이었다.

제단 앞에서 준호는 멈췄다.

그곳에는 이미 누군가 있었다. 종말의 시인이었다. 그 성좌는 투명한 형태로 나타났다. 현세에 직접 개입할 수 없는 성좌가 아르크의 깊숙이 오직 준호에게만 보이도록 나타난 것이었다.

"넌 내 계획을 망쳤어."

종말의 시인이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분노가 없었다. 오직 흥미만 있었다.

"그것도 극의 일부야. 넌 정말 훌륭한 배우야. 하지만 이제..."

성좌가 말을 멈췄다. 준호를 바라봤다. 투명한 눈동자가 움직였다.

"...이제 넌 배우가 아니라 극작가가 되었어. 이 세상의 다음 장을 써. 네 죽음으로."

종말의 시인이 사라졌다. 투명한 몸이 흩어졌다. 마치 먼지처럼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좌 자체가 소멸하는 것이었다. 그 소멸의 빛이 제단 위로 쏟아져 내렸다. 제단이 더 밝아졌다. 종말의 시인의 죽음이 새로운 권능의 기초가 되고 있었다.

준호는 무릎을 꿇었다.

죽음의 권능이 최고조에 다다랐다. 손가락을 넘어 팔 전체가 마비되었다. 그 다음은 가슴이었다. 호흡이 얕아졌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한 번은 빠르고, 한 번은 느렸다. 그 리듬이 점점 흐트러지고 있었다.

준호는 죽고 있었다.

그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3년 전, 아포칼립스의 그날 준호는 이미 죽었다. 방사능에 노출되어 천천히 죽어갔다. 그때 성좌의 계약이 그를 붙잡았다. 죽음의 경계에 머물러 3년을 견뎌냈다.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던 그 상태. 이제 그 죽음이 완성되려 했다.

하지만 제단 위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박서현과 김은지가 이어준 사슬이 닿고 있었다. 수백 명의 손이 만들어낸 변화의 흐름이 준호를 감싸 안고 있었다. 죽음이 변화로 전환되고 있었다. 검은 금이 흰색으로 변했다.

준호는 죽음으로 살아났다.

아르크의 상승이 가속되었다.

엘리트 존은 완전히 붕괴되고 있었다. 이민철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통제실의 모니터는 모두 꺼졌다. 그의 손이 떨렸다. 이번엔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절망 때문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지위, 권력, 안전. 그리고 이제 생명까지 잃으려 하고 있었다. 아르크가 지표면에 도달하면 방사능에 노출될 것이었다. 엘리트 존의 사람들은 그것을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은 지하에서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사람들이었다.

이민철은 손을 들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려는 듯이.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황금의 수호자도 오지 않았다. 그 성좌는 이미 사라졌다. 아르크가 올라가면서 현세와의 연결이 끊어졌기 때문이었다. 심연의 속삭임도 마찬가지였다. 성좌들의 영향력은 약해지고 있었고, 그들의 계약도 함께 무너지고 있었다. 준호가 죽음의 권능으로 성좌의 계약을 끊었기 때문이었다.

이민철은 혼자였다. 붕괴되는 엘리트 존 속에서. 그가 지켜온 질서는 무너졌고, 그를 지켜줄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왜 성좌는 자신을 버렸는지. 천장에서 떨어지는 잔해가 그를 덮었다. 이민철의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노동자 존의 광장에서는 움직임이 있었다. 김은지가 손을 놓았다. 박서현이 그녀를 붙잡았다.

"가야 해. 준호한테."

"준호는?"

"격리 구역이야. 제단이 있는 곳이야."

박서현이 수백 명을 돌아봤다. 그들의 손은 여전히 맞잡혀 있었다. 사슬이 여전히 연결되어 있었다.

"여기서 버텨.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한 여성이 앞으로 나섰다. 격리 구역에서 올라온 사람이었다.

"우리가 버티겠습니다. 가세요."

박서현과 김은지가 달렸다. 격리 구역으로. 준호가 있는 곳으로.

준호는 제단 위에 누워 있었다.

검은 금이 목까지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흰색 빛이 그것을 감싸 안고 있었다. 죽음이 변화로 전환되는 과정이 일어나고 있었다.

박서현이 먼저 도착했다. 그녀는 준호의 손을 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마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박서현은 놓지 않았다.

"넌 혼자가 아니야. 우리가 함께할 거야. 끝까지."

그 말이 준호에게 닿았다. 준호는 고개를 돌렸다. 박서현의 얼굴이 보였다. 그 얼굴에는 두려움이 아직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덮고 있는 것이 있었다. 결연함이었다. 그리고 사랑이었다. 그것은 복수의 감정이 아니었다. 미래의 감정이었다.

김은지가 들어왔다. 그녀는 제단 옆에 무릎을 꿇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괜찮아."

준호가 말했다.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넌 나를 버린 게 아니야. 넌 나를 살렸어."

그 말이 사실이었다. 아포칼립스 당시 김은지가 몰래 생존 물자를 남겨뒀다. 그것이 준호가 3년을 견디게 해줬다. 그 3년이 없었다면 준호는 성좌를 만날 수 없었다. 죽음의 권능을 얻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달라졌을 것이었다. 김은지의 작은 선택이 모든 것을 바꿨다.

김은지는 울지 않았다. 대신 준호의 다른 손을 잡았다. 박서현과 함께.

"우리가 함께할 거야. 넌 혼자가 아니야."

둘이 같은 말을 했다. 마치 약속인 것처럼.

제단이 더 밝아졌다. 죽음의 기록들이 흰색 빛으로 변했다. 그 빛이 준호를 감싸 안았다. 검은 금이 완전히 사라졌다. 흰색 빛이 박서현과 김은지의 손을 통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변화였다. 죽음의 권능이 생명의 권능으로 재탄생하고 있었다.

아르크가 지표면을 뚫고 올라갔다.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준호는 눈을 감았다. 3년 만에 받는 햇빛이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죽음의 경계에서 돌아오는 햇빛이었다.

박서현과 김은지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준호의 몸은 가벼웠지만, 그들의 손이 있었다. 그 손이 준호를 현세에 붙잡고 있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아르크의 중심부에는 수천 명이 모여 있었다. 노동자 존의 주민들, 격리 구역의 주민들, 그리고 엘리트 존에서 탈출한 일부 사람들까지. 그들은 모두 함께 서 있었다. 계층 구조는 이미 무너져 있었다. 격리 구역의 경계는 사라졌다. 엘리트 존은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준호가 앞으로 나갔다. 박서현과 김은지가 그 뒤를 따랐다.

사람들이 길을 내줬다. 그들은 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경외심이 없었다. 대신 감사가 있었다. 그리고 희망이 있었다.

아르크의 지표면이 보였다. 방사능 오염 지역이었다. 회색의 콘크리트 위에는 아무것도 자라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갈라진 틈에서 초록색이 보였다. 식물이 피어나고 있었다. 방사능 속에서도 생명이 자라나고 있었다.

준호는 손을 펼쳤다. 검은 금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 대신 흰색 빛이 남아 있었고, 그것도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해가 지는 것처럼.

"빚은 갚혔다."

준호가 중얼거렸다. 아무도 듣지 못할 정도의 목소리로.

"성좌의 계약은 끝났다. 그들의 빚도 함께."

그것이 사실이었다. 준호가 죽음의 권능으로 아르크를 올렸을 때, 성좌들과의 계약이 완성되었다. 황금의 수호자는 준호를 통해 아르크를 움직였고, 그 대가로 자신의 영향력을 잃었다. 심연의 속삭임도 마찬가지였다. 종말의 시인은 준호의 죽음으로 극을 완성했고, 그 순간 자신의 존재도 함께 소멸했다.

성좌들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준호가 박서현과 김은지의 손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더 이상 나 혼자가 아니다."

아르크는 지표면 위에 완전히 올라왔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 위에 섰다. 방사능은 여전했지만, 그 속에서 초록색이 자라나고 있었다.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고 있었다.

준호는 앞을 바라봤다. 지평선 너머로. 그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또 다른 도시가 있을까. 다른 성좌가 있을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제 그는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박서현이 손을 더 세게 잡았다. 김은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함께 앞으로 걸어갔다. 새로운 세상을 향해. 새로운 이야기를 향해.

아르크의 뒤에서는 또 다른 아르크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 아니었다. 그것은 또 다른 순환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를 것이었다. 준호가 성좌의 계약을 깼기 때문이었다. 그 아르크에 있는 또 다른 준호도 이제 성좌의 빚에 묶이지 않을 것이었다. 성좌들의 영향력이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준호의 죽음과 부활이 그들의 권능을 크게 손상시켰다.

새로운 순환은 더 이상 같은 순환이 아니었다. 그것은 변화된 순환이었다. 준호의 선택이 만들어낸 변화가 다음 아르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었다. 성좌의 지배 아래서 벗어나는 또 다른 준호가 나타날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준호도 혼자가 아닐 것이었다.

이 준호는 그것을 보지 않았다. 그는 오직 앞만 바라봤다. 박서현과 김은지의 손을 잡은 채로.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지나가며.

성좌들은 사라졌다. 그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아직 남아 있었다. 아르크의 기초 깊숙이. 죽음의 기록으로 만들어진 제단 위에. 그곳에서는 여전히 흰색 빛이 타오르고 있었다.

새로운 세상의 기초가 되는 빛으로. 그리고 다음 순환을 깨뜨릴 또 다른 빛으로.

이전화목차마지막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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