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사 카운트다운, 재계약 러브
밤 11시 42분. 회의실의 형광등이 지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제안서는 여전히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다. 글로벌 마케팅 에이전시, 마케팅 이사, 연봉 40% 인상, 한 달 내 입사. 5년 전부터 꿈꿔온 자리였다.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곳.
그런데 오늘 오후, 준호는 정 이사와의 면담에서 돌아오며 다른 소식을 전했다. 해외 지사장 발령 검토. 이 프로젝트 성공이 조건이라고.
두 개의 기회. 동시에 밀려오는 선택지. 지은의 손가락이 제안서를 구겼다.
"지은아."
문이 열렸다. 준호였다.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채로, 넥타이를 풀어헤친 상태로. 5년 전 그가 매일 밤 이렇게 나타났었다.
"뭐 해?"
"데이터 정리 중이에요."
지은은 제안서를 책상 아래로 밀어 넣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준호가 의자에 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 속에 무게감이 있었다.
"정 이사가 만났어. 진급 관련해서."
지은의 손이 마우스에서 떨어졌다.
"응, 들었어. 좋은 거 아닌가?"
"조건이 있어. 이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마무리해야 한대. 그래야 신뢰할 수 있다고. 그리고…"
준호가 말을 멈췄다. 목소리가 낮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해외 지사장 발령도 고려 중이라고."
침묵이 회의실을 채웠다.
"그럼 하세요. 팀장님이 원하는 거니까요."
"지은."
준호가 의자를 굴려 지은에게 가까워졌다. 지은은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키보드가 딸그락거렸다.
"뭐 하는 거야?"
준호가 일어나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종로의 야경이 검은 유리에 반사되고 있었다. 그는 창밖을 봤다. 손가락이 유리를 톡톡 건드렸다.
"리크루터로부터 뭐가 들어왔어?"
지은의 숨이 멎었다.
"뭘…?"
"제안서. 너 손에 들려 있던 제안서. 뭐야?"
준호가 돌아섰다. 그의 눈이 지은을 관통했다.
결국 꺼냈다.
"새 회사 오퍼가 들어왔어요."
준호의 얼굴이 변했다. 놀람, 그다음 뭔가 다른 것. 마치 이미 예상했던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거 좋은 거 아니야? 넌 왜 고민이야?"
"3개월 약속이 있으니까요."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지은 자신도 그 말이 얼마나 차가운지 느껴졌다.
준호가 한 발 다가왔다.
"그 약속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칠 건가?"
"약속은 약속이고, 팀장님은 진급하세요. 우리 프로젝트 성공시키고."
지은이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밀렸다. 그녀는 준호의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컴퓨터를 내렸다.
"더 이상 대화하기 싫어요. 업무만 집중합시다."
"지은아, 잠깐만—"
"팀장님, 시간 늦었어요. 가세요."
지은이 돌아섰다. 준호를 등지고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준호의 발소리가 멎었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그 이후로는 침묵뿐이었다.
지은은 창에 기댔다. 종로의 야경이 흔들렸다. 눈물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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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오후, 카페. 혜린이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었다. 지은 앞에는 식어가는 초콜릿이 놓여 있었다.
"강민준이가 내게 연락했어. '지은 누나가 이상해진다'고."
혜린이 컵을 내려놨다. 그녀의 눈이 지은을 관통했다.
"뭐가 이상해?"
"자기 자리를 포기하는 거 같다고. 자기 선택을 자꾸 미루는 거 같다고."
지은이 스푼으로 초콜릿을 저었다.
"그냥 약속이 있으니까."
"약속? 지은아, 정신 차려. 너 그 남자 때문에 5년을 날렸어. 5년! 그리고 지금 또 3개월을 날리고 싶어?"
"약속이 약속 아니에요?"
"약속이 뭔데, 너 인생을 버려? 준호가 너한테 뭐 한 사람이야?"
혜린의 목소리가 커졌다. 카페의 다른 손님들이 쳐다봤다.
"그냥…"
"뭐 그냥?"
"사랑했던 사람이었어요."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지은의 눈가에 물이 맺혔다. 혜린이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지금도?"
지은이 대답하지 않았다. 혜린은 그 침묵을 읽었다.
"좋아, 지금도 사랑한다고 치자. 그래도 넌 너를 사랑해야 해. 자기 인생을 먼저 살아야 해."
혜린이 지은의 손을 더 꽉 잡았다.
"생각해봐. 새 회사 가서 성공한 다음에 돌아오는 건 어때? 그게 진짜 선택이 아닐까."
지은이 혜린을 봤다.
"그럼 팀장님은?"
"준호는 자기 선택을 했어. 해외 지사장. 그건 그의 길이야. 너는 너의 길을 가야 한다고."
혜린이 커피를 마셨다.
"생각해봐. 지난 5년 동안 넌 뭘 했어? 팀장님 옆에서 기다리기만 했잖아. 자기 커리어는 뒤로 미루고, 자기 선택은 유보하고. 그리고 지금도 또 그러고 싶어?"
지은이 입술을 깨물었다.
"약속을 지키는 게 아니라, 넌 자기를 포기하고 있는 거야. 약속을 깨는 게, 때론 자신을 지키는 거야. 새 회사에서 성공해서 완전한 너로 돌아오는 것. 아니면 안 돌아오는 것. 하지만 어쨌든 완전한 너여야 한다고."
혜린의 눈이 진지했다.
"그리고 만약 준호가 정말 너를 사랑한다면, 그런 너를 더 존경할 거야. 자기 때문에 자신을 버리는 너보다."
지은이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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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회의실. 이사장 신기호가 서 있었다. 감정이 없는 얼굴.
"이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가 우리 회사 전체의 신뢰도를 결정할 것입니다. 시장에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하는가, 그것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이사장은 테이블을 톡톡 쳤다.
"준호 팀장, 지은 과장.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세요. 마지막."
준호와 지은은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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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15분. 준호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은은 데이터 분석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디 가세요?"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나갔다.
지은은 시계를 봤다. 11시 15분. 이상했다. 준호는 항상 자신이 먼저 나갔다. 자신이 떠나는 시간에만 준호가 자리를 떠났다.
지은이 일어났다. 복도로 나갔다.
4층 복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프로젝트 성공하면 해외 지사장 제안도 있을 거야."
정 이사였다. 준호와 함께 서 있었다. 준호의 얼굴은 창백했다.
"그건…"
"너는 우리 회사의 미래야. 이 프로젝트만 성공하면, 모든 게 열린다."
정 이사가 준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 손이 내려오면서, 준호의 눈이 복도 어딘가를 향했다. 손가락이 주머니에서 나왔다가 들어갔다. 반복했다.
"자, 이제 내려가자. 아침 일찍 회의 있잖아."
정 이사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준호는 따라갔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손이 떨렸다.
그리고 그때, 계단 위에서 발소리가 났다.
준호의 눈이 순간적으로 떠졌다. 지은과 만났다. 모든 게 멈췄다.
지은의 발이 얼어붙었다. 준호의 눈 속에는 무언가 부서지는 것 같은 표정이 있었다. 자신을 지우려고 하는 표정이었다. 정 이사는 여전히 준호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었다.
"자, 이제 내려가자. 아침 일찍 회의 있잖아."
정 이사가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준호는 따라갔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계속 지은을 향했다. 그 눈빛 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미안함? 이별?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지은은 그 자리에 남겨졌다. 복도의 형광등 아래서, 혼자. '프로젝트 성공하면 해외 지사장 제안도 있을 거야.' 그 말이 계속 맴돌았다.
해외 지사장. 그것은 진급이 아니었다. 그것은 떠남이었다. 그리고 그 떠남이 프로젝트의 성공에 달려 있다면, 두 사람의 선택은 상충했다. 준호가 성공하려면 지은이 희생해야 했다. 지은이 떠나려면 준호가 실패해야 했다.
지은이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자신의 책상 위에 준호의 노트북이 켜져 있었다. 프로젝트 자료가 떠 있었고, 그 옆에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미안해. 시간이 필요해.'
지은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손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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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30분. 회의실.
준호는 이미 그곳에 있었다.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화면에 띄우고 있었다. 눈 밑의 검은 원이 그가 밤을 새웠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목소리는 딱딱하고 차가웠다.
"좋은 아침입니다."
준호가 말했다.
지은은 자리에 앉았다. 강민준도 들어왔다. 강민준이 지은의 얼굴을 본 순간, 눈썹을 살짝 올렸다. 무언가 물어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지은은 고개를 돌렸다.
"어제 정 이사와 회의를 가졌습니다."
준호가 슬라이드를 넘겼다.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를 재설정했습니다. 단순한 캠페인 성공이 아니라, 회사 전체의 신뢰도 회복입니다."
준호는 자신을 보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많아집니다. 데이터 분석은 더욱 정교해야 하고, 창의적 제안도 더욱 대담해야 합니다. 강민준, 넌 마케팅 기획을 다시 정리해. 마케팅 기획의 기본 가정을 재검토하고, 시장 데이터와 맞춰야 한다."
강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은, 넌…"
이제 준호가 자신을 봤다. 하지만 그 눈은 텅 비어 있었다.
"모든 데이터의 신뢰도를 90%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 이건 협상의 여지가 없어. 이상치 기준을 재정의하고, 데이터 검증 프로세스를 강화해야 한다."
"90% 이상이면…"
지은이 말을 꺼냈다.
"현재 데이터셋에서는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이상치 제거 기준이 너무 엄격해지면, 오히려 데이터의 대표성이 떨어질 수 있어요."
준호의 눈이 움직였다. 처음으로 지은의 말에 반응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지?"
지은이 화면을 봤다.
"데이터 수집 범위를 확대하거나, 검증 방법을 다층화해야 합니다. 아니면 신뢰도 기준 자체를 재논의해야 해요. 90%가 정말 필요한 수치인지, 아니면 85%에서도 충분한지…"
"90%입니다."
준호가 끊었다.
"이사장이 명시했습니다. 회사 전체의 신뢰도를 회복하려면, 우리 데이터의 신뢰도도 그 수준이어야 한다고. 그게 시장에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지은이 입을 다물었다.
"방법은 넌 찾아. 그게 넌 일이야."
준호가 슬라이드를 넘겼다. 강민준이 화면을 봤다. 지은도 봤다. 하지만 둘 다 말을 하지 않았다.
"회의 끝."
준호가 노트북을 닫았다. 강민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지은은 앉아 있었다.
"팀장님."
준호가 문을 열었다가 멈췄다.
"어제 복도에서…"
"업무입니다, 과장님. 그것도 업무였습니다."
준호가 돌아섰다. 그의 얼굴은 닫혀 있었다. 마치 어딘가 깊은 곳에서 모든 감정을 거둬들인 것처럼.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순간, 준호의 목소리에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정 이사가 제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면 해외 지사장 발령을 고려하신다는 겁니다. 해외로 발령받으면, 우리는 더 이상 같은 팀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그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팀장님…"
"당신도 새 회사 제안이 있잖아요. 그걸 받으면 되지 않나요?"
준호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너무나 평온해서 더 상처를 주고 있었다.
"우리 3개월 약속이…"
"약속은 약속입니다. 그 약속이 우리 둘 다의 인생을 망치는 약속이라면, 그건 약속이 아니라 거짓입니다. 당신은 새 회사로 가세요. 저는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고 해외로 나갑니다. 그것이 우리 둘 다에게 가장 현명한 선택입니다."
"그럼 우리는…"
지은이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우리는 프로젝트 팀원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준호가 나갔다. 문이 닫혔다.
지은은 혼자 남겨졌다. 회의실의 형광등이 윙윙거렸다. 슬라이드에는 여전히 프로젝트 목표가 떠 있었다. '회사 전체의 신뢰도 회복.' 그 문구가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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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47분. 카페 테이블.
혜린이 지은의 얼굴을 봤다. 어제의 얼굴과 달랐다. 어제는 눈물로 젖어 있었다. 오늘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
"준호가 뭐라고 했어?"
"프로젝트 팀원이라고."
지은이 커피를 마셨다.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리고 해외로 발령받는다고."
혜린이 한숨을 쉬었다.
"그 남자 진짜…"
지은이 혜린을 봤다. 그 눈에는 뭔가 결정된 것이 있었다.
"팀장님 말이 맞아요."
"뭐?"
"새 회사 제안 받겠어요."
혜린의 눈이 커졌다.
"정말?"
"네. 내일 오전 10시까지 답변하기로 했으니까."
지은이 커피를 내려놨다.
"근데…"
"근데?"
"팀장님이 그렇게 말했을 때, 뭔가 느껴졌어요. 자기 선택을 존중한다는 게 아니라, 자기 선택을 포기하는 거 같았어요. 마치 자신을 지우는 것처럼."
혜린이 말을 기다렸다.
"5년 동안 저는 팀장님을 위해 제 선택을 미뤘어요. 그리고 지금 또 3개월을 미루려고 했어요. 그런데 팀장님도 같은 거예요. 자기 선택을 위해 저를 포기하려고 했어요. 결국 누군가는 자신을 버려야 하는 거였어요."
지은이 눈을 들었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공멸이에요."
혜린이 지은의 손을 잡았다.
"그래. 그래서 넌 가야 해. 새 회사로."
"네."
"그리고 성공해. 완전한 너로서."
"네."
지은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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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22분. 사무실.
지은은 여전히 데이터를 입력하고 있었다. 준호의 명령대로, 신뢰도 90% 이상. 그것을 위해서는 이상치를 재검토해야 했다. 이상치가 뭔지 다시 정의해야 했다.
하지만 지은은 그것을 할 수 없었다. 마우스 커서가 화면 위를 맴돌 뿐이었다.
노트북 화면이 깜빡거렸다. 배터리가 부족했다.
지은이 충전기를 찾으려 자리를 일어났다. 그 순간, 자신의 책상 위에 새로운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당신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준호'
지은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손이 떨렸다. 눈물이 떨어져 글씨가 번져갔다. '선택'이라는 단어가 희미해졌다.
그리고 그때, 지은의 휴대폰이 울렸다.
리크루터 김 과장이었다.
"과장님, 안녕하세요. 저 김 과장입니다. 혹시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 새 회사 쪽에서 입사 날짜를 앞당기고 싶다고 하는데, 내일 오전 10시까지 최종 답변을 받고 싶다고 했거든요. 이게 정말 마지막 기한입니다."
지은이 대답했다. 그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네, 과장님. 내일 오전 10시까지 답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뵐게요."
전화가 끊겼다.
지은은 포스트잇을 들고 있었다. 글씨는 완전히 번져 있었다.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뭐라고 쓰여 있었는지는 알고 있었다.
'당신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선택. 그 단어가 가슴을 조였다.
지은이 포스트잇을 버렸다. 휴지통에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노트북으로 돌아갔다. 새 문서를 열었다. 빈 페이지. 그곳에 지은은 포스트잇을 쓰기 시작했다.
'팀장님께. 저는…'
손이 멈췄다. 뭐라고 써야 할까. 자신의 선택이 뭔지, 아직 자신도 몰랐다.
밤 11시 47분. 사무실은 조용했다. 형광등만 윙윙거리고 있었다.
지은의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팀장님께. 저는 떠나갑니다.'
손이 멈췄다. 문장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지웠다.
'팀장님께. 저는 남겠습니다.'
이 문장도 지웠다.
'팀장님께. 저는…'
손가락이 키보드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한 줄을 입력하고, 지우고, 다시 입력했다. 마치 자신의 결정도 함께 입력하고 지우고 있는 것처럼.
그 순간, 문이 열렸다.
지은이 고개를 들었다. 준호였다. 그는 사무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지 문 너머에서 지은을 봤다. 그 눈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결정이 아니라, 마지막 확인. 마지막 선택의 순간.
준호의 시선이 지은의 책상 위를 스쳤다. 포스트잇이 휴지통에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노트북 화면에는 미완성의 문장이 떠 있었다. '팀장님께. 저는…'
준호의 얼굴이 변했다. 마치 그 미완성의 문장 속에서 뭔가를 읽은 것처럼.
"지은."
준호가 이름을 불렀다. 처음으로, 직함 없이.
"네?"
"내일 오전 10시."
"네."
"그때까지 생각해. 진심으로."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명령이 아니었다. 간청이었다.
"팀장님…"
"우리 둘 다, 진심으로. 약속이 아니라, 선택으로."
준호가 나갔다. 문이 닫혔다.
지은은 다시 화면을 봤다. 미완성의 문장. 그곳에 무언가를 써야 했다. 자신의 선택을.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팀장님께. 저는…'
밤 11시 52분. 사무실의 형광등이 윙윙거렸다.
내일 오전 10시까지, 아직 9시간 58분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