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후의 기술
포연이 제철소 주변을 감싼 지 한 시간.
오타니 도시오는 제철소 정문에서 내려와 손가락으로 건물을 가리켰다. 특고경찰 대원들이 네 방향 입구를 동시에 봉쇄했다. 기관총 거치대를 설치하는 소리가 들렸다. 박준열은 창문 틈으로 그것을 지켜보며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끝이군요."
박준열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의 얼굴은 마치 오래전부터 이 장면을 예상하고 있었던 사람의 표정이었다. 옆에 선 한소영이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뒷문이 있습니다."
"오타니는 그것도 알고 있을 겁니다."
박준열은 돌아서서 준호를 바라봤다. 준호는 제철소의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손에는 임민정의 피묻은 손수건이 여전히 들려 있었다. 그것은 마치 조선 전체의 무게를 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준호. 내가 마지막 제안을 하나 하겠습니다."
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당신의 모든 수명을 사용하는 겁니다."
침묵이 제철소를 채웠다. 한소영이 박준열을 바라봤다. 임재혁은 문 너머에서 오타니의 지시를 받는 특고경찰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었다.
"무슨 뜻입니까?"
박준열이 천천히 앉아 준호의 눈높이에 맞췄다.
"당신은 미래에서 본 것 중에 통신 기술이 있습니다. 전국의 지하 산업 네트워크를 하나로 연결하는 신호탑 시스템. 당신이 지금까지 현실화한 기술 중 가장 복잡하고 가장 큰 규모의 것입니다."
"네. 하지만 그것은 최소 열 달은 걸립니다."
"아닙니다. 당신이 모든 수명을 한 번에 소비하면, 하루면 됩니다. 아니, 몇 시간이면 충분할 겁니다."
준호의 손이 떨렸다. 임민정의 손수건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렇게 되면 저는..."
"죽습니다. 당신은 죽고, 조선 지하 산업 네트워크 전체가 살아날 것입니다."
박준열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물로 가득 차 있었다.
"당신이 지금까지 원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조선의 미래를 빨리 앞당기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것이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당신의 죽음으로, 우리 모두가 산다. 이것이 영웅주의를 초월한 진정한 선택입니다."
준호는 박준열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 위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깊었다. 박준열은 다시 일어서서 벽장에서 낡은 사진첩을 꺼냈다. 젊은 시절의 자신의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눈이 살아 있던 시절. 그리고 그 다음 사진부터 시작된 죽은 눈. 수십 명의 동료를 잃으며 변해간 표정의 기록.
"한 명의 영웅이 백 명을 살리면, 백 명의 죽음도 책임져야 합니다. 당신은 지금 그 책임 앞에 서 있습니다. 당신의 선택은?"
준호는 천천히 일어섰다. 창문 밖의 포연 속에서 오타니의 형체가 보였다. 기관총을 들고 있는 병사들이 제철소를 향해 한 발씩 옮겨가고 있었다. 준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임민정의 손수건을 집어 들었던 손이 떨렸다. 그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문질렀다. 눈가에 뜨거운 감각이 전해졌다.
노동자들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한소영의 손가락 없는 손. 임재혁의 회색으로 변한 얼굴. 그리고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임민정의 목소리. 자신이 기술자가 된 이유가 무엇인가. 조선을 빠르게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었나. 하지만 그 변화가 얼마나 많은 죽음을 불러왔는가. 그 죽음들이 정말 필요했던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이상주의 때문에 만들어진 것인가. 손가락 없는 한소영의 손. 아내를 잃은 임재혁의 눈. 그리고 자신의 손에 묻은 임민정의 피.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의 결과였다. 하지만 지금 이 선택은 어떤가.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구원인가. 아니면 더 큰 죽음을 초래하는 것인가.
준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피 맛이 났다. 몸 전체가 떨렸다.
30초가 지났다. 1분이 지났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한소영이 준호의 손목을 잡았다. 손가락이 없는 그녀의 손이 준호의 팔을 감싸 안았다.
"기술은 여성을 구원하지 않습니다. 기술을 다루는 사람이 여성을 구원합니다. 당신이 기술을 다루되, 우리를 보며 다루십시오."
임재혁이 옆에 섰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회색이었지만, 그의 손은 준호의 어깨에 얹혀 있었다.
"노동자들을 보십시오. 당신이 죽은 후에도 그들은 살아갈 것입니다. 그들의 손에 당신의 기술을 전해 주십시오."
박준열은 문을 열었다. 서유진이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하겠습니다."
준호가 고개를 저었다.
"기록하지 마세요. 당신은 살아남아야 합니다. 당신의 글이 조선을 구할 것입니다."
서유진의 눈이 감겼다 떨어졌다. 기자로서 이것을 기록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준호의 죽음을 기록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그것은 내일 아침, 조선이 깨어났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카메라를 내렸다.
"공장 노동자들이 당신의 이름을 모릅니다. 당신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은 경영진뿐입니다. 당신이 죽은 후에도 그들은 당신의 이름을 모를 것입니다."
"네. 그것이 옳습니다."
준호가 대답했다.
"나는 조선의 미래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미래는 한 명의 기술자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드는 것이군요."
박준열이 준호를 제철소 깊숙한 곳으로 인도했다.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그곳은 일제 감시망에서 벗어난 최후의 공간이었다. 오타니의 포연이 제철소 벽을 때리기 시작했다. 먼지가 천장에서 떨어졌다.
준호는 지하실의 중앙에 섰다. 그곳에는 미완성의 신호탑 통신 시스템 설계도가 놓여 있었다. 설계도 위에는 수백 개의 신호탑 위치, 전선의 경로, 신호 주파수 대역이 세밀하게 표기되어 있었다. 열 달이 필요했던 기술. 하지만 준호의 모든 수명을 소비하면 몇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시간 역행 기억의 세계로 진입했다.
미래가 흐르기 시작했다. 설계도의 각 부분이 현실화되는 과정이 보였다. 먼저 신호탑의 기초 공사. 수백 개의 철근이 땅에 박혀 들어가고, 콘크리트가 굳어가고, 철탑이 하나둘 세워진다. 다음은 전선 연결. 각 신호탑을 연결하는 동선이 산맥을 넘고, 강을 건너고, 도시를 관통한다. 신호 송출 테스트. 경성의 중앙 송신소에서 신호가 발사되고, 각 신호탑을 거쳐 전국으로 퍼져 나간다. 신호가 인천에 도착하는 데 0.3초, 대구에 도착하는 데 0.5초, 평양에 도착하는 데 0.7초. 모든 신호탑이 동시에 응답한다. 조선 전역이 하나의 신경계로 통합되는 순간.
그 미래에서 준호는 자신을 본다. 아니, 자신은 이미 그 미래에 죽어 있다. 죽은 자의 눈으로 현재를 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미 죽은 미래를 현실에서 겪고 있군요."
준호의 입에서 그 말이 흘러나왔다.
그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손이 아니었다. 그것은 빛이었다. 빛이 설계도 위를 흐르고, 금속을 녹이고, 전선을 연결했다. 시간이 비틀렸다. 현재와 미래가 겹쳐졌다. 준호의 신체가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먼저 손끝부터. 손가락이 하나둘 사라졌다. 각 손가락이 사라질 때마다 그 자리에 기억이 남았다. 유년 시절 어머니 손을 잡던 감각. 처음 기술을 배우며 도면을 그렸던 손가락의 감촉. 임민정을 처음 만났을 때 악수했던 손의 온기. 모든 기억이 손가락과 함께 사라져 갔다. 그 다음 팔. 팔이 빛으로 변하면서 설계도 위를 누비고 다녔다. 팔이 사라지자 그 안에 담겨 있던 모든 경험이 흘러나왔다. 기술을 만들고, 사람을 만나고, 조선의 미래를 그렸던 모든 순간들. 준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통증이 아니었다. 자신이 사라져 간다는 감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 채워지고 있었다. 조선 전역의 신호탑에서 울려 퍼지는 신호음. 그것이 자신의 신체를 대신하고 있었다. 준호는 자신이 죽는 것이 아니라, 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에서 신호로. 개인에서 네트워크로. 그 변화는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해방적이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준호의 눈이었다. 그 눈이 조선 전역을 바라보고 있었다.
박준열은 지하실 입구에서 그것을 지켜봤다. 한소영, 임재혁이 그의 옆에 섰다. 오타니의 포연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제철소의 벽이 흔들렸다. 천장에서 먼지가 소나기처럼 떨어졌다.
"기술이 완성되고 있습니다."
박준열이 중얼거렸다.
그 순간, 조선 전역의 지하 산업 네트워크에서 신호음이 울려 퍼졌다. 경성의 비밀 공장, 인천의 항구, 대구의 제철소, 전주의 화학 공장. 수십 개의 지하 공장이 하나의 신호로 연결되었다. 마치 조선 전체가 한 번에 깨어나는 것 같았다.
박준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지하실로 들어오는 오타니의 발소리가 들렸다. 기관총을 든 병사들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포기하시오!"
오타니의 목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준호는 이미 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의 형체가 지하실의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내 이름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것입니다."
준호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전국의 신호탑에서 울려 퍼지는 신호음 자체였다.
"하지만 이 기술은 조선의 모든 노동자들의 손에 전달될 것입니다."
준호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가 있던 자리에는 오직 설계도만 남았다. 그것도 더 이상 종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빛이 새겨진 공기였다. 박준열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손에는 뜨거운 감각이 전해졌지만, 손상된 것은 없었다.
오타니가 지하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눈은 준호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박준열과 그의 사람들이 서 있을 뿐이었다.
"이준호는?"
오타니가 물었다.
박준열이 설계도를 보였다.
"기술이 남았습니다. 사람은 필요 없습니다."
오타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손이 권총에 올려졌다. 하지만 그 순간, 지하실의 모든 신호탑이 동시에 울렸다. 그 울음소리는 경성에서 평양까지, 전국의 지하 산업 네트워크 전체를 연결하는 신호였다.
조선이 깨어났다.
오타니의 무선기가 울렸다. 경성 사령부에서 긴급 신호가 들어오고 있었다. 보고는 혼란스러웠다. 인천 항구에서 신호탑이 작동을 시작했다. 대구의 제철소 지하에서 화염이 솟아올랐다. 전주의 화학 공장 네트워크가 점등되었다. 각 지역의 특고경찰 분소에서는 통신이 두절되었다고 보고했다.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업 시설들이 작동을 시작했다는 보고. 하지만 그것은 사고가 아니었다. 모든 움직임이 정확하게 조율되어 있었다. 일제의 감시망에서 벗어난 조선의 지하 산업 네트워크 전체가 한 순간에 하나의 신경계로 통합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타니는 무선기를 내려놨다. 20년간의 특고경찰 경력 속에서, 그가 상정한 모든 저항 시나리오는 이것이 아니었다. 영웅 한 명을 잡으면 조직이 무너지는 구조. 지도자 한 명을 제거하면 다음 지도자를 찾는 구조. 하지만 이것은 그 어떤 구조도 아니었다. 이것은 마치 조선 전체가 하나의 신경계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20년의 통제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 무너짐 속에서 오타니는 자신의 무기를 내려놓기로 결정했다. 조직화된 저항 앞에서 개별적인 저항은 무의미했다. 그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박준열이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빛이 새겨진 설계도가 들려 있었다. 그의 눈은 오타니를 직시했다. 20년 전 독립운동 시절, 박준열은 총에 쏠려 가는 동료들을 보았다. 그 죽음들이 조직화되지 못한 저항의 결과였다면, 오늘의 신호음은 그 죽음들의 응답이었다.
"당신은 한 사람을 찾으려 했습니다."
박준열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당신이 이해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조선은 이미 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타니의 병사들이 총을 들었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지하실 위층에서, 제철소의 모든 곳에서 곡괭이와 망치를 든 노동자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준호의 얼굴이 없었다. 대신 그곳에는 결연한 표정만 있었다.
임재혁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그의 가슴에는 아내를 잃은 슬픔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슬픔은 더 이상 고독하지 않았다. 주변의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그 슬픔을 함께 짊어지고 있었다. 임재혁의 입이 열렸다.
"임민정은 혼자가 아닙니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 조선의 모든 죽은 자들과 함께 있습니다."
한소영이 지하실의 한쪽에서 나타났다. 그녀의 손가락 없는 손이 보였다. 그것은 상해 임시정부 고문실에서 잃은 손가락이었다. 그 손으로 그녀는 기술을 다루었고, 여성 노동자들을 조직했고, 조선의 미래를 함께 만들었다.
"기술이 아닌 사람이 조선을 구원합니다."
한소영이 말했다. 그녀의 눈은 준호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기술을 다루는 모든 사람이 조선입니다."
지하실의 벽에 그림자들이 드리워졌다. 경성에서 온 기술자들, 영지의 노동자들, 상해 임시정부의 첩보원들, 그리고 이름 없는 수백의 조선인들이 하나의 신호로 연결되었다. 그들의 손에는 각각 준호의 기술 설계도의 복본이 들려 있었다. 한 사람의 천재가 아닌, 천 명의 손이 그 기술을 나누어 가지고 있었다.
오타니의 병사들이 총을 내렸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한 명의 기술자를 체포하려던 그들의 작전은 이미 실패했다. 아니, 실패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상정한 모든 전제가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오타니는 무선기를 집어 들었다. 총독부에 보고할 말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무선기에서 나오는 것은 오직 신호음뿐이었다. 전국의 신호탑에서 울려 퍼지는 신호음이 모든 통신 주파수를 점령해 버렸다.
조선의 지하 산업 네트워크는 더 이상 지하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서유진이 지하실 입구에 나타났다. 그녀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그녀는 이 장면을 기록하려 했다. 그것을 내일 신문에 실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박준열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기록하지 마십시오, 서기자."
박준열이 말했다.
"당신은 살아남아야 합니다."
서유진은 카메라를 들었던 손을 내렸다. 셔터 버튼에서 손가락이 떨어졌다. 기자로서 이 역사적 장면을 기록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순간을 기록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그것은 내일 아침 신문에 실을 진정한 이야기였다. 조선이 깨어났다는 사실. 그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기자로서의 책임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카메라를 내렸다. 준호가 있던 자리를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기자로서의 책임감과 한 인간으로서의 감사, 그리고 그를 기억하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었다. 그 다음 그녀는 돌아서서 지하실을 나갔다. 계단을 올라가며 그녀는 내일의 기사를 구상했다. 신호탑이 켜진 밤. 조선 전역의 지하 공장들이 동시에 작동한 그 순간. 그리고 그 순간을 만든 이름 없는 기술자. 그것이 세상에 알려야 할 진정한 이야기였다.
지하실에 남은 것은 박준열, 한소영, 임재혁, 그리고 오타니뿐이었다.
오타니가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의 병사들도 따라올라갔다.
박준열이 설계도를 다시 들었다. 그것은 이제 종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빛이었고, 신호였고, 조선의 미래였다. 그의 손에서 그것이 빛나고 있었다.
"이제 시작입니다."
박준열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처음으로 희망의 색깔이 묻어났다.
"준호가 보여준 미래는, 한 명이 만드는 미래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드는 미래입니다."
임재혁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아내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여전히 있었지만, 그것과 함께 결연함도 있었다. 그 죽음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이제 그의 손에 달려 있었다.
"우리는 그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임재혁이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안전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그것이 준호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입니다."
한소영이 설계도를 들었다. 그녀의 손가락 없는 손이 그 빛나는 종이를 잡았다. 아무런 통증도 없었다. 오직 따뜻함만 있었다. 그것은 준호의 손에서 전해진 따뜻함이었다.
"우리는 기술을 배우고, 우리는 여성을 조직하고, 우리는 모든 노동자에게 이것을 가르칠 것입니다."
한소영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불굴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기술은 여성을 구원하지 않습니다. 기술을 다루는 우리가 조선을 구원합니다."
박준열이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지하실 벽 너머로 향했다. 거기 있는 수백의 노동자들, 수천의 조선인들, 그리고 아직 이 신호음을 듣지 못한 조선의 모든 사람들을 향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박준열이 말했다.
"우리는 조선입니다."
지하실 위층에서 제철소 전체에 울려 퍼지는 신호음이 계속 울렸다. 경성에서, 인천에서, 대구에서, 전주에서, 그리고 조선의 모든 지하 공장에서 그 신호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신호음은 이제 저항의 신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조선이 깨어났다는 신호였다.
그것은 조선이 하나가 되었다는 신호였다.
그것은 조선의 미래가 시작되었다는 신호였다.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의 밤은 더 이상 어둡지 않았다. 신호탑의 불빛이 모든 곳을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빛 아래에서, 익명의 노동자들은 설계도를 나누어 가지고,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준호라는 이름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남긴 기술은 조선의 모든 손에 전달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진정한 산업화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