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기억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유리가 부서지는 것 같은, 아니면 얼음이 녹는 것 같은 그 소리. 이준호는 눈을 떴을 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경기도 영지의 제철소인가, 경성의 지하 공장인가, 아니면 아직 상해 임시정부의 어둠 속인가. 손가락을 세어보려 했지만 손가락이 열 개인지 확인하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벽을 더듬었다. 콘크리트다. 차갑다. 현재다.

시간이 흘렀다. 정확히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술 도입이 세 번인지 열 번인지 헷갈렸다. 화로 설계도를 완성했을 때 육 개월이 깎였다. 그다음은? 화학 공장의 정제 기술이었다. 아홉 개월. 아니다, 팔 개월이었나. 기억이 자꾸 뒤집혔다. 마치 누군가 그의 뇌에서 기억만 꺼내 테이블 위에 흩어놓고 섞어버린 것처럼.

"선생님."

누군가 어깨를 흔들었다. 이준호는 깜짝 놀라 돌아섰다. 한소영이었다. 손가락이 없는 손으로 그의 팔을 잡고 있었다.

"얼마나 서 있었어요?"

"몰라."

대답이 자동으로 나왔다. 이준호는 자신의 음성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두 개의 목소리가 겹쳐 있는 것처럼. 하나는 현재의 목소리고, 다른 하나는... 미래의 목소리? 아니면 과거?

"거울을 봐요."

한소영이 말했다. 지하 공장의 벽에 붙은 작은 거울이 있었다. 준호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한 발, 한 발. 다리가 부실거렸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낯설었다. 눈 주위가 검게 멍들어 있었다. 광광한 눈빛. 입가에는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언제 피를 토했더라? 기억이 없었다.

준호는 거울에서 눈을 떼려 했지만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그 얼굴은 자신의 얼굴이 아니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얼굴이었다. 미래의 자신? 아니면 이미 죽은 자신?

그 순간, 거울 속 입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나왔다.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시간의 목소리가. 준호는 거울에서 물러났다.

"당신은 지난 열흘 동안 얼마나 많은 기술을 현실화했는지 알고 있어요?"

한소영이 물었다. 준호는 그 질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열흘이라는 시간이 감각되지 않았다. 하루일 수도 있고, 한 달일 수도 있었다.

"이미 여섯 개의 설계도를 완성했어요. 화학 공장, 자동 방직기, 정유 기술, 그리고..."

그리고 무엇인가? 기억이 끊겼다. 마치 영화 필름이 끊어진 것처럼.

"당신은 한 달에 삼십 시간을 초과하면 기억이 파편화된다고 했잖아요."

한소영의 목소리가 평탄했다. 준호는 그 말이 자신의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한 말. 자신이 계산한 수치. 자신이 무시한 경고.

"당신은 한 달에 백 시간을 넘게 사용했어요."

지하 공장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준호는 숨을 쉬기 어려워했다. 공기 중에 화학 물질의 냄새가 가득했다. 그것은 새로운 냄새가 아니었다. 그것은 항상 있던 냄새였는데, 지금 처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박준열은?"

준호가 물었다.

"영지에 있어요. 당신이 보낸 설계도로 제철소 개편을 진행 중입니다."

"임재혁은?"

한소영이 침묵했다.

그 침묵이 모든 것을 말했다. 준호는 그것을 알아챘다. 어떤 부분의 자신은 여전히 현재에 있었고, 그 부분은 그 침묵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했다. 임재혁은 문제가 되었다. 아니면 임재혁이 있던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준호는 공장을 둘러봤다. 기계들이 멈춰 있었다. 이상했다. 기계들이 움직여야 했다. 아니, 기계들이 움직이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공장은 너무 조용했다. 너무 텅 비어 있었다.

공장 곳곳에 뭔가가 떨어져 있었다. 작은 물건들. 신발. 손수건. 그리고 다른 것들. 준호는 그것들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눈이 계속 그곳으로 향했다.

"당신이 이미 시작했으니까요."

한소영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무언가 다른 톤이 섞여 있었다. 걱정? 아니다. 한소영은 걱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현실만 본다.

"조선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준호의 손이 떨렸다. 그것은 현재의 떨림이 아니었다. 미래의 떨림이 현재로 흘러들어온 것이었다. 그의 한 손은 현재에 있고, 다른 손은 미래에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신체를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기술 도입 속도를 높이기 위해 안전 기준을 무시했어요."

한소영이 계속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판사처럼 들렸다.

"밤샘 작업이 일상화되었습니다. 노동 시간이 연장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준호는 손을 들었다. 그러면 모든 기계가 멈출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의지가 그 정도로 강력할 거라고.

기계들이 멈췄다.

하지만 이미 멈춰 있었다. 공장은 이미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누군가는 기계에 손을 잃었고, 누군가는 눈을 잃었어요."

한소영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그리고 임재혁의 아내는..."

준호의 기억에서 한 여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다. 떠올랐다기보다는 미래에서 본 이미지가 현재로 흘러들어왔다. 공장 바닥. 화학 물질의 연기. 그 속에서 기침하는 여자. 작고 가녀린 손. 그 손이 기계에 닿으려 할 때...

"그녀는 질식했어요."

한소영이 말했다.

"통풍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았거든요. 화학 물질의 연기가 쌓였고, 당신의 설계도에 따라 생산 속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환기 시간을 줄였어요."

준호는 그 여자의 얼굴을 보려고 했다. 기억을 더듬어 그녀의 모습을 찾으려고 했다. 임민정. 그 이름이 들렸을 때 떠올라야 할 얼굴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정보로만 존재했다. 서른두 살. 아이가 셋. 공장 노동자.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공장 어딘가에서 들리는 기침 소리가 있었다. 과거의 기침 소리. 그것이 현재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침 소리와 함께 그 여자의 손이 보였다. 화학 물질에 젖은 손. 기계를 잡으려던 손. 그 손이 움직이지 않는 순간.

"멈춰."

준호가 말했다. 그 음성은 완전히 미래의 음성이었다.

"제발."

"멈출 수 없어요."

한소영이 차갑게 말했다.

"당신이 이미 시작했으니까요."

준호는 한소영의 손가락 없는 손을 봤다. 그 손은 기술의 증거였다. 기술이 만들어낸 상처의 증거였다. 그리고 그 상처는 자신의 설계 때문이었다. 자신이 만든 기술 때문이었다.

지하 공장의 어딘가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한 발, 한 발. 느리지만 확실한 발걸음. 그것은 분노의 발걸음이었다. 아니면 슬픔의 발걸음이었다. 아니면 둘 다.

준호는 한소영을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눈빛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동정? 아니다. 그것은 최후의 경고였다.

발걸음이 가까워졌다.

임재혁이 나타났다.

그는 공장 입구에 서 있었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양손이 모두 비어 있었다. 그것이 더 무서웠다. 무언가를 들고 있는 사람보다,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사람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준호는 알고 있었다.

임재혁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공장의 불빛이 그의 얼굴을 역광으로 만들었고, 그 결과 그의 표정은 그림자로만 존재했다. 그림자 속의 눈. 그림자 속의 입. 그림자 속의 분노.

하지만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분노 때문이 아니라, 슬픔 때문에.

임재혁이 한 발 더 나아왔다. 그의 발걸음은 여전히 느렸다. 마치 무거운 것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처럼.

"내 아내가 죽었어."

임재혁이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다. 속삭이듯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음성의 무게는 천 톤이었다.

준호가 입을 열었다. 말을 해야 했다. 무언가를 말해야 했다.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것은 공기뿐이었다. 단어가 없었다. 설명이 없었다. 변명도 없었다.

임재혁이 공장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을 봤다. 신발. 손수건. 그리고 다른 것들. 그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공장 바닥에 무릎을 꿇고, 그 물건들을 만지기 시작했다.

신발을 집어 들었다. 작은 신발이었다. 여성의 신발이었다. 그는 그것을 가슴에 안았다.

"서른두 살이었어."

임재혁이 말했다. 목소리가 끊겼다.

"우리 아이들 셋이 있었어. 맏이가 여덟 살이야. 둘째가 다섯 살. 막내가 세 살이지."

그 숫자들은 현재의 숫자였다. 하지만 동시에 미래의 숫자이기도 했다. 미래에서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고아가 되어 경성의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을까. 아니면 더 어두운 곳으로 팔려가 있을까.

임재혁이 손수건을 집어 들었다. 구겨진 손수건이었다. 그것을 펼쳤다. 그 안에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작고 조심스러운 글씨.

"이건 내 아내가 남긴 글이야."

임재혁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글을 못 읽으니까 아이들에게 읽어달라고 했어. 아직 안 읽었어."

그는 손수건을 들었다. 그 종이 같은 천을 들고, 그것을 보려고 했다. 하지만 글씨는 너무 작았다. 아니면 그의 눈이 너무 흐려져 있었다.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뭘 생각했는지 알아?"

임재혁이 물었다. 준호를 보지 않고.

"조선이 강해져야 한다고. 우리가 기술을 가져야 한다고. 당신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당신의 설계도가 나올 때마다,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아세요?"

그는 공장 바닥에 앉았다. 신발과 손수건을 품에 안고.

"내 아내에게 말했어. '이건 조선의 미래야. 우리 아이들이 사는 조선은 더 나을 거야'라고."

임재혁의 목소리가 끊겼다.

"그리고 내 아내는 그것을 믿고 당신을 따랐어. 당신을 믿고 이 공장에 들어왔어. 그리고..."

그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하지만 준호는 알았다. 그 다음이 무엇인지. 미래에서 본 것처럼.

한소영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움직임은 방어적이었다. 준호와 임재혁 사이에 자신을 배치하려는 의도였다.

"임재혁."

한소영이 말했다.

"당신의 슬픔이 정당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해결 방법은 아닙니다."

"뭐가 해결 방법이야?"

임재혁이 물었다. 여전히 공장 바닥을 보고 있었다.

"기술? 더 많은 기술? 더 빠른 생산? 조선의 미래?"

그는 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웃음이 아니라 울음이었다.

"내 아내는 조선의 미래를 보지 못했어. 죽기 전에 당신한테 한 말을 알아요?"

준호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 아이들이 밥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조선이 강해지는 것보다, 우리 아이들이 밥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어."

임재혁이 손수건을 펼쳤다. 그 안의 글씨를 다시 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손이 너무 떨렸다.

"이건 내 아내가 남긴 글이야. 내 아이들을 위한 글이야."

그는 손수건을 바닥에 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신발을 올려놓았다.

"이제 그것도 사라졌어."

임재혁이 말했다.

"당신의 기술처럼. 당신의 미래처럼. 모두 다 사라졌어."

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미래의 손이 아니었다. 현재의 손이었다. 하지만 그 손 위에는 피의 환상이 떠 있었다. 아니, 피가 아니라 화학 물질이었다. 임민정의 손. 그 손이 기계에 닿으려 할 때의 절망.

서유진이 손수건을 주웠다. 기자의 본능이었다. 모든 것을 수집하고, 모든 것을 기록하고, 모든 것을 보존하려는 본능.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에요?"

임재혁이 서유진을 봤다.

"기자야. 이 모든 것을 기록할 거야. 이 사건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누군가는 알게 될 거야. 당신이 뭘 했는지. 이 기술이 뭘 만들었는지."

서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하겠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당신의 이름을. 당신의 아내의 이름을. 그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기록하겠습니다."

"이름?"

임재혁이 웃음을 흘렸다.

"이름이 뭐가 도움이 돼요? 내 아내가 돌아오나요? 우리 아이들이 엄마를 다시 만나나요?"

그는 공장 벽을 주먹으로 쳤다. 철제 벽이 울려 퍼졌다. 그 울림은 공장 전체를 진동시켰다. 준호가 설계한 모든 기계들이 함께 울려 퍼졌다.

한소영이 임재혁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 없는 손으로.

"당신의 분노는 정당합니다."

한소영이 말했다.

"하지만 당신의 분노가 나타낼 수 있는 것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다릅니다. 당신이 이 사람을 죽이면, 당신의 아내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증언은 남습니다. 당신의 슬픔은 기록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누군가의 아내가 죽는 것을 막을 수도 있습니다."

임재혁이 한소영을 봤다. 그녀의 손가락 없는 손을 봤다.

"당신도 고통을 알고 있군요."

임재혁이 말했다.

"그래요."

한소영이 답했다.

"그래서 나는 이 고통이 반복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기술로도, 분노로도 아닙니다. 조직으로. 증언으로. 기록으로."

임재혁이 천천히 손을 내렸다. 한소영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준호를 봤다.

"당신을 죽이지 않겠어요."

임재혁이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는 준호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임민정이 남긴 글이 적힌 손수건을.

"이 글을 읽어요. 그리고 내 아내의 이름을 기억해요. 임민정. 그리고 이 아이들의 이름도."

그는 신발을 들었다.

"맏이 이름이 임준호야. 당신과 같은 이름이야. 둘째는 임수진. 막내는 임지호야. 이 아이들이 왜 고아가 되었는지 기억해요."

임재혁이 한 발 물러섰다.

"그리고 박준열 선생님을 만나야 해요. 지금 당장."

준호가 입을 열었다.

"박준열 선생님은..."

"알고 있어요."

임재혁이 말했다.

"특고경찰이 잡아갔다는 거. 오타니라는 자가 당신을 찾으려고 지하 전체를 뒤지고 있어요. 박준열 선생님은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수했어요. 당신 대신 잡혀갔어요."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사람은 특고경찰의 고문을 받고 있을 거야. 당신 때문에."

한소영과 서유진이 동시에 움직였다. 한소영은 준호의 팔을 잡았고, 서유진은 노트북을 집어 들었다.

"우리가 가야 해요."

한소영이 말했다.

"박준열을 구해야 해요."

"어떻게?"

준호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다시 현재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음성은 완전히 깨져 있었다.

"당신의 능력을 사용해야 해요."

한소영이 말했다.

"노동자들을 조직해서 경찰서를 습격하거나, 언론에 폭로해서 여론을 조성하거나, 아니면 당신의 기술로 직접 시간을 조작해서..."

"그럼 내가 죽는 거 아니야?"

준호가 물었다.

"그래요."

한소영이 답했다.

"당신의 기억이 완전히 파괴됩니다. 당신은 현재와 미래를 구분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남은 수명을 모두 소비합니다."

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 손을 기계 위에 가져갔다. 기계의 가장자리. 그 기계 안에는 누군가의 손가락이 있을 것이었다. 아니, 있었다. 이미 있었다.

한소영이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손가락 없는 손으로.

"아직입니다."

한소영이 말했다.

"아직 선택할 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공장 위층에서 소리가 들렸다. 부츠 소리. 많은 사람들의 부츠 소리. 특고경찰의 부츠 소리.

"경성 경찰청 특무경찰대!"

외침이 들렸다.

"이 구역을 포위했다! 항복하거나 사살한다!"

한소영의 눈이 흔들렸다. 처음이었다. 한소영의 눈에 두려움이 드러나는 모습. 아니다. 두려움이 아니었다.

절망이었다.

그녀는 준호를 봤다. 그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당신이 뭘 할 거예요?"

서유진이 물었다. 노트북을 들고 있었다. 여전히 기록 중이었다.

"박준열이 죽습니다."

한소영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만약 당신이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그리고 당신의 능력을 다시 사용하지 않으면."

준호는 위층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

"박준열은 지금 어디에?"

준호가 물었다.

"경성 경찰청 지하 제삼감옥."

한소영이 답했다.

"오타니가 직접 심문 중입니다. 당신을 찾기 위해 고문을 하고 있어요."

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그 손이 떨렸다. 미래의 떨림이 아니라, 현재의 공포 때문이었다.

임재혁이 공장 뒤쪽을 가리켰다.

"비상구가 있어요. 나는 저 노동자들을 모으겠어요. 박준열을 구하기 위해. 당신은..."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당신은 선택해야 해요. 당신의 기술을 포기하고 도망칠 거냐, 아니면 모든 것을 소비해서라도 박준열을 구할 거냐."

그의 발걸음이 멀어졌다.

특고경찰의 부츠 소리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한소영이 준호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 없는 손으로. 그 손이 떨리고 있었다.

"당신이 뭘 할 거예요?"

서유진이 다시 물었다.

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미래를 봤기 때문이다. 그 미래에서 자신은 죽어 있었다. 그리고 그 죽음은 자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미래는 여전히 희미했다. 현재와 섞여 있었다. 구분이 되지 않았다.

지하 공장의 기계들이 여전히 멈춰 있었다. 준호가 설계한 기계들이. 아무도 움직이게 하지 않았는데도 멈춰 있었다.

부츠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준호의 손이 기계를 향해 뻗어 있었다. 한소영의 손이 그 손목을 잡고 있었다. 두 손이 만나는 그 지점에서, 현재와 미래가 부딪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준호는 선택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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