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미엘의 정체
비명이 마을을 가르고 있었다.
에이든이 베이커리의 돌계단을 내려올 때, 그 소리는 이미 세 번 울렸다. 새벽의 회색 하늘 아래, 마을 광장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였다. 무언가 부서지는 음향. 누군가를 잃는 소리.
광장 입구에 도착했을 때, 에이든은 멈춰 섰다. 투명해진 손가락들이 흔들렸다. 손등의 핏줄이 보이지 않았다. 피부가 유리처럼 변해 있었다. 만지면 부스러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리아가 에이든의 팔을 잡았다.
"안 돼. 들어가면 안 돼."
마리아의 얼굴이 창백했다. 어젯밤의 화상 자국이 목까지 번져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도 살짝 투명해 보였다.
"토마스가?"
"응. 새벽에... 주점에서."
광장 중앙에 누워 있는 형체를 에이든은 이미 봤다. 흰 천으로 덮인 것. 토마스의 손가락이 그 천 아래로 삐져나와 있었다. 평온한 표정이었다. 마치 잠든 것처럼.
하지만 토마스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토마스가 뭐라고 했어?"
"정원을 지켜줄 수 없어서 미안해. 그렇게만 말했어. 계속 그 말만."
마리아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그녀는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새벽에 주점 문을 두드렸어. 손가락이 거의 투명해진 상태였어. 마치 자신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 아는 것처럼... 자살이었어. 독약이었어. 하지만 죽기 전에 편지를 남겼어."
에이든의 가슴이 철렁했다. 토마스가 편지를 남겼다는 것은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편지는?"
"가지고 있어. 나중에 보여줄게. 지금은... 지금은 안 돼."
에이든이 무릎을 꿇었다. 광장의 돌 위에. 투명한 손가락이 찬 돌에 닿았을 때, 감각이 없었다. 손가락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느끼지 못하는 느낌. 그것이 더 무서웠다. 마치 자신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데, 자신만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정원으로 가야 해."
"에이든—"
"루미엘이 기다리고 있어."
에이든은 일어섰다. 투명한 손가락들이 흔들렸다. 마리아가 그의 손목을 잡으려 했지만, 손가락이 미끄러져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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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커리로 돌아갈 때, 정원은 다르게 보였다.
풀이 더 높이 자라 있었다. 죽은 나무들이 더 검게 변해 있었다. 공기 속의 밀가루 냄새가 사라지고, 대신 흙내음이 짙어져 있었다. 뭔가 썩는 냄새.
베이커리 문은 열려 있었다.
루미엘이 안에 있었다.
처음으로, 루미엘의 형태가 명확했다. 그것은 인간의 모습이면서 그렇지 않았다. 몸이 어두운 흙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팔은 가느다란 덩굴처럼 흔들렸다. 얼굴은 거의 인간에 가까웠지만, 눈이 없었다. 대신 두 개의 움푹한 자리가 있었고, 그 안에 별빛 같은 것이 떠 있었다.
"왔구나."
루미엘의 목소리가 베이커리 전체를 울렸다. 마치 정원 자체가 말하는 것처럼.
에이든은 한 발을 내디뎠다. 발끝이 베이커리의 돌바닥에 닿았을 때, 그것도 투명해 보였다. 자신의 몸 아래로 바닥이 보인다. 어느 날부터인가, 에이든은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뭐예요?"
루미엘이 움직였다. 흙으로 된 몸이 천천히 에이든 쪽으로 기울었다. 덩굴 같은 팔이 공중을 헤맸다. 별빛 같은 눈동자가 에이든의 얼굴을 훑었다.
"너는 여기 왔어야 하는 사람이야."
"내가 왜... 여기에?"
루미엘이 에이든의 투명한 손을 집었다. 흙 같은 손가락이 에이든의 손 위에 올려졌다. 그 접촉 속에서 에이든은 무언가를 느꼈다. 차가움. 그리고 오래된 슬픔.
"내가 누군지 알고 싶어?"
에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미엘이 베이커리 벽을 가리켰다. 그곳에 그림이 있었다. 에이든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마치 벽 자체가 새로 나타난 것처럼.
벽의 그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 하나가 그려졌다. 그 다음 또 다른 선. 그리고 또 다른 선. 마치 누군가의 손이 공중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천천히, 조심스럽게. 두 사람의 형태가 드러났다. 한 남성과 한 여성. 손을 맞잡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있었다.
그림 아래에 글씨가 새겨졌다.
'잊지 마, 우리가 있었다는 것을.'
"저 남자가..." 루미엘이 말했다. 목소리가 흔들렸다. "이 정원을 만들었어."
루미엘의 손이 떨렸다. 흙 입자가 떨어져 나갔다. 별빛 같은 눈동자가 더 밝아졌다. 그것은 눈물처럼 보였다.
"정원 속에서 그 여자와 함께 살았어. 그들은 세상 어디보다 이곳을 사랑했어. 매일 손을 맞잡고 정원을 걸었어. 나무 아래에서 웃었어. 밤하늘을 봤어."
에이든이 그림을 자세히 봤다. 남자의 얼굴이 희미했다. 마치 지워지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그의 눈은 명확했다. 그 눈에는 깊은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 여자가 사라졌어."
루미엘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어느 날 갑자기. 병이었어. 남자는 그 여자를 잃을 수 없었어. 그래서 울었어. 정원 한가운데서. 밤새 울었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며."
벽의 그림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한 사람만 남았다. 무릎을 꿇은 남자. 그의 몸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눈물처럼 보이는 것들. 하지만 그것은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슬픔 자체였다. 구체적인 형태를 가진 슬픔.
"그 슬픔이 형태를 가지게 됐어."
루미엘이 자신의 흙으로 된 손을 들었다.
"나 말이야. 정원의 주인이 만든 존재. 그의 슬픔이 구체화된 형태."
에이든이 루미엘을 봤다. 별빛 같은 눈동자를 봤다. 그 안에는 수십 년의 외로움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 다른 것도 있었다. 그것은 마치... 보호하려는 마음처럼 보였다.
"넌 왜 여기 왔어?"
"모르겠어요. 그냥... 끌렸어요."
루미엘이 에이든의 투명한 손가락을 다시 봤다. 손등을 통해 보이는 뼈의 그림자.
"넌 기억을 잃고 있구나. 그 사람처럼."
에이든이 자신의 손을 들었다. 손가락 네 개가 완전히 투명했다. 엄지손가락만 아직 살이 있었다. 며칠이면 그것도 사라질 것 같았다.
"내가 사라지고 있어요?"
"응. 매번 빵을 구울 때마다. 너는 정원의 빵을 구우면서 자신을 내려놓고 있어. 너는 기억을 포기하고 있어. 그 사람처럼."
루미엘이 베이커리의 오븐을 가리켰다. 오븐의 문이 검게 열려 있었다. 그 안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불은 없었다. 대신 어둠이 소용돌이쳤다.
"정원은 계속 배고파해. 정원의 빵을 먹는 사람들의 슬픔이 줄어들 때마다, 정원은 더 굶주려.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해. 누군가의 기억이 필요해."
에이든이 오븐을 봤다. 어둠 속에서 뭔가 형태가 보였다. 손가락. 발가락. 얼굴. 에이든의 얼굴이었다.
루미엘이 에이든에게 더 가까워졌다. 흙으로 된 얼굴이 에이든의 얼굴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
"처음엔 싫었어. 새로운 누군가가 와서 빵을 구우면서 사라지는 것을. 넌 그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에이든의 가슴이 철렁했다. 루미엘의 말이 이상했다.
"그런데 넌 계속 왔어. 밤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넌 자발적으로 빵을 구웠어. 누군가를 위해. 그 사람처럼."
루미엘이 에이든의 투명한 손을 집었다. 흙 같은 손가락이 에이든의 손 위에 올려졌다. 그 순간, 에이든은 루미엘의 기억을 봤다.
정원 한가운데서 울고 있는 남자. 그의 슬픔이 흙이 되고, 흙이 형태를 가지고, 형태가 의식을 가지는 순간. 루미엘이 처음 눈을 뜬 순간. 그리고 그 남자를 바라보는 루미엘의 눈. 그것은 슬픔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그래서 난 이해했어. 넌 그 사람처럼 누군가를 사랑하려고 여기 온 거구나. 그래서 난 널 지키기로 했어."
베이커리의 온도가 변했다. 차가워졌다. 벽이 떨렸다. 오븐의 어둠이 더 짙어졌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 에이든."
루미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넌 계속 빵을 구우면 결국 완전히 사라져. 그 사람처럼. 그 사람은 이제 이 정원에만 있어. 기억 속에만. 넌 정말로 그렇게 되고 싶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어?"
에이든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해보려고 했다. 제빵사였던가? 실패한 사람이었던가? 아니면 처음부터 아무도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에이든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베이커리의 오븐에서 갑자기 엄청난 열이 방출됐다. 마치 정원 자체가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벽이 흔들렸다. 바닥이 갈라졌다. 루미엘의 흙으로 된 몸이 부서지는 입자처럼 흩어졌다. 어둠 속에서 빵의 향기가 터져 나왔다.
밀가루. 버터. 그리고 누군가의 눈물.
에이든은 자신의 투명해진 손가락을 봤다. 손가락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한 가지만 알고 싶었다.
정원은 정말로 자신을 필요로 한 것일까? 아니면 단지 자신을 먹고 싶어 할 뿐일까?
오븐의 어둠이 더 짙어졌다.
루미엘의 몸이 완전히 흩어졌을 때, 에이든은 혼자 남겨졌다.
베이커리의 벽이 갈라지면서 밖의 정원이 보였다. 밤하늘 아래 죽은 나무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나무가 아니라 손가락처럼 보였다. 정원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에이든은 천천히 손가락을 펼쳤다. 엄지손가락 반만 남았다. 나머지는 공기처럼 투명했다. 손가락 끝에서 빵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밀가루처럼 하얀 먼지가 바닥에 소리 없이 쌓였다.
오븐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손이 아니었다. 눈이었다. 수없이 많은 눈들이 어둠 속에서 떠올랐다. 마리아의 눈. 카일의 눈. 토마스의 눈. 그리고 자신의 눈. 자신의 얼굴. 자신의 손. 자신의 모든 것이 오븐 속에서 떠다니고 있었다.
에이든이 이해했다.
정원의 빵은 거짓이 아니었다. 정원이 누군가의 슬픔으로 만들어진 것도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원이 원한 것은 슬픔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원이 원한 것은 자신처럼 무언가를 잃은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정원 안에 가두는 것이었다.
루미엘의 말이 맞았다. 에이든은 계속 빵을 구우면 사라진다. 하지만 사라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지 않았다. 에이든은 정원이 될 것이었다. 정원의 일부가 될 것이었다. 루미엘처럼. 토마스처럼. 그리고 정원이 만나온 모든 사람들처럼.
베이커리의 문이 열렸다.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럿이었다. 마리아. 카일. 그리고 마을의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빵 부스러기가 남아 있었다.
"에이든!"
마리아가 베이커리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화상 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눈빛은 맑았다. 마치 정원의 빵을 먹고 난 후처럼.
"토마스가... 토마스가 죽었어."
마리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으로 나를 찾아왔어. 뭔가를 주려고. 편지를 남겼어. 그는... 뭔가를 알고 있었어."
마리아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손으로 쓴 글씨였다. 흔들리는 손으로 쓴 것처럼 보였다. 마치 죽음의 순간까지 무언가를 전하려고 애쓴 흔적이 있었다.
에이든이 종이를 받으려 했다. 하지만 손가락이 투명해서 제대로 잡을 수 없었다. 마리아가 종이를 펼쳤다.
"읽어봐. 크게."
마리아의 목소리가 절박했다.
에이든이 글씨를 따라 읽었다.
'에이든에게. 정원은 거짓이다. 루미엘도 거짓이다. 정원의 주인은 죽지 않았다. 그 사람은 아직 살아 있다. 그 사람은...'
글씨가 여기서 끝났다. 뒷장이 없었다. 마치 토마스가 마지막 진실을 쓰기 직전에 손이 멈춘 것처럼.
"토마스가 왜 이렇게만..."
에이든이 말하다가 멈췄다.
오븐에서 다시 울음 같은 소리가 났다. 마치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베이커리의 벽이 흔들렸다. 바닥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우리 나가!"
마리아가 에이든을 끌어당겼다.
카일도 서둘러 움직였다. 하지만 베이커리의 문이 서서히 닫혀오고 있었다. 마치 나무가 자라서 문을 막는 것처럼.
"에이든! 빨리!"
마리아가 다시 에이든의 팔을 잡았다. 하지만 에이든의 몸은 이미 베이커리의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발이 흙으로 변하고 있었다. 다리가 풀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무감각함이 서서히 몸을 잠식했다. 마치 자신이 돌이 되어가는 것처럼. 아니, 흙이 되어가는 것처럼.
"안 돼!"
카일이 에이든의 팔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에이든의 팔은 이미 공기처럼 가벼웠다. 손가락이 완전히 투명해졌다.
"마리아... 카일... 빨리 나가요."
에이든의 목소리가 이제 정원의 바람 같았다.
"정원이... 더 많은 사람을 원해요. 내가 나가려고 하면 정원이 울 거예요. 그럼 더 많은 사람들이 들을 거고... 더 많은 사람들이 올 거고..."
문이 더 빠르게 닫혔다. 마리아와 카일은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문이 움직이지 않았다. 밖에서 마을 주민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다가오는 발걸음들. 베이커리 문을 두드리는 손. 누군가의 목소리.
"문이 안 열려!"
"안에서 뭔가 하고 있어!"
"빵 냄새가..."
마리아가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문은 나무처럼 딱딱했다.
"에이든!"
오븐의 어둠 속에서 다시 눈들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마리아의 눈. 카일의 눈. 그리고 마을의 모든 사람들의 눈이었다.
정원이 말했다. 루미엘의 목소리가 아니라, 정원 자체의 목소리로.
"넌 틀렸어, 에이든. 정원은 거짓이 아니야. 정원은 진실이야. 정원은 너를 원하고 있어. 그리고 정원은 절대로 너를 놓지 않을 거야."
에이든의 몸이 마지막으로 흔들렸다. 손가락의 엄지도 이제 투명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자신이 누구였는지도, 왜 여기 있었는지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흐릿해졌다. 기억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오븐의 어둠 속에서, 에이든은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깨달았다.
토마스의 글씨. '그 사람은...'
그 사람은 정말로 누구였을까?
오븐의 어둠 속에서, 에이든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에이든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것은 루미엘의 얼굴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것은 정원의 주인의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