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폐허 정원의 작은 베이커리 5화

밤이 깊어질수록 베이커리의 온도는 올라간다.

에이든은 오븐 앞에서 손가락이 투명해지는 것을 느끼며 다음 빵을 준비한다. 카일은 이미 잠들었고, 마리아는 밖에서 아르카스의 불길을 막으려 애쓰고 있다. 루미엘은 어디론가 사라진 지 오래다. 베이커리의 벽은 밤의 어둠과 함께 더욱 검어지고, 밀가루 냄새는 점점 더 진해진다.

그때였다.

문이 열렸다.

에이든은 고개를 들었다. 손에 밀가루가 묻은 채로. 들어오는 것은 마리아도, 아르카스도 아니었다. 은빛 머리를 한 여자였다. 그 여자는 베이커리 문턱에서 멈췄고, 에이든을 보는 순간 얼굴이 굳었다.

"너... 뭐 하는 거야?"

목소리가 떨렸다. 놀라움과 분노가 뒤섞인 음성. 에이든은 천천히 일어섰다. 손가락이 투명해진 상태에서 움직이면 더 빨리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일어나야 했다.

"난... 여기 있어야 해."

그것이 전부였다. 에이든이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것뿐이었다.

여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건 내 자리야."

목소리가 커졌다. 거의 외침에 가까웠다. "그건 내 자리야!"

베이커리 천장이 울렸다. 오븐의 불이 흔들렸다. 에이든은 한 발 물러섰다. 여자가 다가오려던 그 순간, 검은 그림자가 베이커리 내부에 스며들었다.

루미엘이었다.

루미엘은 여자와 에이든 사이에 나타났다. 움직임은 없었지만, 공기 자체가 차가워졌다. 여자는 발을 멈췄다. 루미엘을 보자 그 얼굴이 또 다른 표정으로 변했다.

"당신은..."

눈물이 흘렀다.

"당신은 여전히 그 사람만 생각해? 나는 어떻게 되는데?"

루미엘은 말하지 않았다. 다만 여자를 바라봤을 뿐이다. 그 시선 속에는 연민도, 사랑도, 분노도 없었다. 오직 깊은 거리만 있었다.

여자는 그 거리를 견디지 못했다. 루미엘에게서 눈을 돌려 에이든을 노려봤다.

"너 때문에 모든 게 달라졌어."

에이든은 뭐라 답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정말 무엇을 빼앗았는지 알 수 없었다. 기억이 자꾸만 흐릿해지고 있었다. 손가락은 계속 투명해지고 있었다.

여자가 베이커리 문으로 향했다. 루미엘은 그녀를 막지 않았다. 움직이지도 않았다. 여자는 계속 말했다.

"정원은 원래 내 것이었어. 루미엘도 내 것이었어. 그런데 넌 와서 모든 걸 빼앗아갔어."

밤이 더 깊어졌다. 정원 쪽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은 차갑고, 슬픈 냄새를 풍겼다. 여자는 정원으로 사라졌다. 검은 담장 너머로, 죽은 나무들 사이로.

베이커리에는 에이든과 루미엘만 남았다.

그리고 오븐에서 구워지고 있는 하얀 빵.

루미엘이 에이든에게 말을 걸었다.

"날 봐."

목소리였다. 실제로 나오는 목소리. 루미엘의 입에서 나오는 말. 에이든은 고개를 들었다.

"날 봐. 난 널 지킬 거야."

그 말 속에는 결연함이 있었다. 그리고 보호하려는 의지. 에이든의 투명해진 손이 순간 따뜻해졌다. 누군가가 자신을 지킨다는 것.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에이든은 한 번 더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루미엘의 그 약속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에이든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왜 나였어?"

에이든이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정원을 위해서라면, 난 필요 없었잖아. 누구든 상관없었잖아."

루미엘의 은색 눈이 흔들렸다. 처음으로, 그 차가운 눈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난 너를 지킨 게 아니야."

그가 말했다. 목소리가 더 작아졌다.

"난... 너를 믿었어.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넌 거야."

에이든은 루미엘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손을 봤다. 투명해진 손. 점점 사라지고 있는 손.

"그럼 난 정말 사라지는 거네요."

에이든이 중얼거렸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응."

루미엘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 전에... 내가 약속을 지켜야 해."

"약속이요?"

"카일과 마리아를 지키겠다고 했잖아."

에이든이 말했다. 루미엘을 바라봤다.

"내가 사라지면, 그들을 누가 지켜줄 거예요? 카일은 아직 어려. 마리아는... 혼자가 될 거고."

루미엘은 에이든의 눈을 마주했다.

"내가 지킬 거야. 정원이 새로워진 후, 내가 그들을 지킬 거야."

"정원이 새로워지면 당신도 사라지지 않나요?"

에이든이 물었다.

"아니야. 정원이 슬픔에서 벗어나면, 난 더 이상 정원의 감옥이 아니게 돼. 난... 선택할 수 있게 돼. 남을 수도, 떠날 수도."

루미엘의 목소리가 더 명확해졌다.

"그리고 난 남기로 했어. 그들을 지키기 위해."

에이든은 루미엘의 말을 들으며 가슴이 철렁했다. 자신이 사라지는 것만큼이나 무거운 약속이 거기에 있었다.

"정말이에요?"

"응.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야."

루미엘이 창문을 다시 봤다. 불이 베이커리 근처까지 번지고 있었다. 아르카스의 검은 불길이 정원의 담장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

---

베이커리 밖으로 나간 에이든은 정원의 어둠 속에서 마리아를 찾았다. 그녀는 화염 속에서 벗어나 정원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얼굴에는 그을음이 묻어 있었고, 팔에는 화상을 입었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에이든을 찾고 있었다.

"에이든! 여기 있어!"

에이든이 손을 들었다. 하지만 손이 투명해서 그녀가 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마리아는 어둠을 헤치며 에이든 쪽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멈춰 섰다. 에이든의 손을 보고.

"당신... 손이..."

"알아요."

에이든이 말했다. 마리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건 안 돼. 우리가 당신을 구해야 해. 이대로는..."

"마리아, 들어요."

에이든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손이 투명했지만, 감정은 전달되었다. 마리아는 에이든을 느꼈다. 아주 약하고, 점점 사라지고 있는 손을.

"카일이를 잘 봐줄 거죠?"

마리아가 대답하지 못했다. 에이든이 계속했다.

"루미엘이 약속했어요. 내가 사라진 후에도 당신들을 지켜주겠대요."

"그게... 무슨 말이야?"

마리아가 물었다. 에이든은 정원 깊숙한 곳을 가리켰다.

"정원이 처음엔 다른 모습이었어요, 맞죠?"

마리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십 년 전엔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어. 모든 게 초록이었고, 꽃이 피어 있었고, 사람들이 웃으며 모였던 곳이야."

에이든이 마리아의 말을 듣고 그 장면을 상상했다.

"정원의 주인이 누군가를 사랑했어. 그런데 그 사람을 잃었어. 그 슬픔이 정원을 집어삼켰어."

마리아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 여자... 세라라고 하던데. 그 여자도 정원의 일부였던 것 같아. 정원이 슬픔으로 잠식되면서, 함께 왜곡되었어. 그리고 루미엘은... 그 슬픔을 지키려고 했어."

에이든은 마리아의 말을 들으며 깨달았다. 정원은 단순한 마법의 장소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사랑과 슬픔이 만들어낸 감옥이었다.

"정원이 새로워지려면, 누군가가 그 슬픔을 모두 받아야 해요."

에이든이 말했다.

"그게... 당신이라는 거야?"

마리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네."

에이든이 대답했다.

"그럼 난 정말 사라지는 거네요."

에이든이 중얼거렸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안 돼! 더 이상..."

마리아가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있었다. 절망이 있었다.

에이든은 마리아를 안았다. 투명한 팔로. 그녀는 에이든을 느낄 수 없었지만, 에이든의 의도는 분명했다. 그 의도만으로도 마리아는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 아들도 당신이 필요해. 카일이..."

"루미엘이 지켜줄 거예요. 그리고 당신도 있잖아요."

에이든이 말했다.

"당신이 카일을 지켜주고, 루미엘이 당신을 지켜줄 거예요. 그럼 괜찮아요."

마리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오직 울음만 흘러나왔다.

---

베이커리로 돌아간 에이든은 오븐을 열었다. 하얀 빵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하얀 빵이 아니었다. 그 위에는 은색 빛이 흐르고 있었다. 정원의 마법이 빵에 깊게 스며들어 있었다.

"이건... 뭐지?"

에이든이 중얼거렸다. 손을 빵에 갖다 댔다. 순간,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정원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초록이 우거진 정원. 웃음이 넘치는 정원. 그리고 한 여인의 얼굴. 하지만 그 얼굴은 희미했다. 에이든의 기억이 사라지면서 함께 사라져가고 있었다.

베이커리의 문이 열렸다. 루미엘이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은색 빛을 일으키며.

"그 빵이... 뭐예요?"

에이든이 물었다.

"정원의 마지막 빵이야."

루미엘이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있었다. 그리고 결단이 있었다.

"마지막이라고요?"

"세라가 정원에 불을 붙이고 있어. 마을은 이미 반쯤 타고 있어. 아르카스와 손을 잡은 그녀는 정원을 완전히 파괴하려고 해."

루미엘은 창문을 통해 마을의 불을 가리켰다. 불은 점점 커지고 있었고, 정원 쪽으로 번지고 있었다.

"그 여자는... 왜 그러는 거예요?"

에이든이 물었다. 루미엘은 한 번 에이든을 바라봤다.

"정원이 변했으니까. 자신도 함께 변했으니까. 그리고..."

루미엘이 말을 멈췄다.

"그리고?"

"그리고 넌 왜 여기 있으니까."

루미엘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세라는 날 사랑했어. 하지만 정원이 슬픔으로 잠식되면서, 그 사랑도 왜곡됐어. 그리고 넌... 그 왜곡된 사랑의 대상이 됐어. 그녀의 증오의 대상이."

에이든은 루미엘의 말을 들으며 가슴이 철렁했다.

"그럼 내가 여기서 사라지면... 그 여자는?"

"그녀도 정원의 일부를 되찾을 거야. 정원이 새로워지면서, 그녀가 잃어버린 것도 되돌아올 거야. 하지만 그건... 그것도 또 다른 슬픔일 거야."

루미엘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마치 자신이 세라가 받을 슬픔을 함께 짊어지려는 것처럼.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루미엘은 에이든을 바라봤다.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로 그를 바라봤다.

"이 빵을 먹어야 해."

"이 빵을?"

"이 빵 안에는 정원의 모든 기억이 들어 있어. 정원이 처음 만들어진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것. 정원의 주인의 슬픔, 사랑, 그리고 포기. 그리고 너의 모든 기억도. 너의 과거, 너의 실패, 너의 두려움. 모든 것이."

에이든의 손이 떨렸다.

"내가 이걸 먹으면?"

"넌 정원 안에 남아있을 거야."

루미엘이 말했다.

"육체는 소멸하지만, 넌 정원의 일부가 돼. 정원의 기억으로, 정원의 마법으로. 그리고 정원이 새로워질 때, 넌 그 새로운 정원의 초석이 될 거야."

에이든은 루미엘의 말을 천천히 받아들였다.

"그럼 나는... 죽는 건가요?"

"아니야. 너는 변하는 거야.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거야."

루미엘이 한 발 가까워졌다.

"그리고 난 그 변화 속에 남을 거야. 너를 지키면서."

에이든은 루미엘의 눈을 마주했다. 은색 눈. 그 안에는 진정한 슬픔이 있었다.

"정말이에요?"

"응. 그게 내 선택이야."

루미엘이 대답했다.

"정원을 위한 게 아니라, 너를 위한 선택이야."

에이든은 빵을 들었다. 은색 빛이 손 위에서 춤을 춤었다. 그 빛은 따뜻했다. 그리고 슬펐다.

"시간이 없어."

루미엘이 창문을 다시 봤다. 불이 베이커리 근처까지 번지고 있었다. 아르카스의 검은 불길이 정원의 담장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에이든은 빵을 입에 가져갔다.

은색 빛이 입 안으로 흘러들었다.

그 순간, 모든 기억이 한 번에 터져 나왔다.

제빵사였던 자신의 손으로 누군가를 상처 입혔던 그날. 그 사람의 울음소리. 자신이 만든 빵을 먹으며 웃던 루미엘의 모습. 정원이 처음 초록이었던 시절, 그곳에서 누군가를 사랑했던 한 여인의 얼굴. 그 모든 것이 에이든의 의식 속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두 사라졌다.

베이커리가 밝아졌다.

정원이 울음을 터뜨렸다.

정원의 어둠이 깨지면서, 새로운 빛이 피어났다. 초록색 빛. 생명의 빛. 죽은 나무들이 가지를 뻗기 시작했다. 검은 담장이 무너졌다.

마을에서 비명이 멈췄다. 불이 꺼졌다. 아르카스의 검은 불이 흩어졌다.

그리고 은빛 머리의 여자는 무릎을 꿇었다.

정원의 한가운데서.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며.

하지만 그것은 행복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 깊은 슬픔이었다. 루미엘이 다시는 자신을 보지 않을 것이라는 슬픔. 정원이 새로워졌지만, 그 안에 자신의 자리는 없다는 슬픔. 그리고 에이든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슬픔이 세라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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