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내려앉자 오븐이 깨어났다.
에이든은 베이커리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그 광경을 지켜봤다.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는데 오븐 속에서 열기가 피어올랐다. 온도계의 바늘이 천천히 올라갔다. 180도. 190도. 200도. 금속음이 날 정도로 정확했다.
그리고 빵이 나타났다.
크루아상, 통곡물 식빵, 초코칩 쿠키, 시나몬 롤. 종류도 다양했다. 모두 겉은 황금색으로 구워졌고, 김이 피어올랐다. 밀가루와 버터, 그리고 뭔가 더—에이든은 코를 쭉 들이마셨다. 꿀? 아니다. 그보다 더 깊은 향기였다. 마치 누군가의 추억 같은.
창문 너머로 그림자들이 움직였다.
처음엔 한 명, 두 명. 그 다음엔 더 많아졌다. 사람들이 베이커리 문을 조용히 밀고 들어왔다. 밤의 어둠 속에서 그들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움직임은 분명했다. 몸을 숙이고, 한 손을 뻗어 빵을 집었다. 누군가는 한 개씩, 누군가는 여러 개를 들고 나갔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오직 발소리와 옷스치는 음만 들렸다.
가장 먼저 들어온 여자는 나이 지긋해 보였다. 은색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와 있었고, 양손으로 한 덩어리의 통곡물 식빵을 들었다. 마치 아이를 안듯이.
에이든은 본능적으로 일어섰다.
여자를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인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그 손가락들이 빵을 쥐는 방식이, 그 등이 굽어지는 모습이 자꾸만 눈에 걸렸다. 에이든은 베이커리를 빠져나갔다.
정원 밖으로 나가는 길은 가팔랐다. 풀이 무릎까지 차올랐고, 돌멩이들이 길을 막았다. 하지만 여자는 주저 없이 내려갔다. 마을 쪽으로. 에이든은 조용히 뒤를 따랐다.
마을은 작았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집들이 띄엄띄엄 박혀 있었고, 대부분의 창은 어두웠다. 여자가 멈춘 곳은 마을의 끝자락, 언덕 너머였다. 무덤이었다.
여자는 무릎을 꿇었다. 돌 하나 앞에서. 손에 들린 빵을 내려놓고, 그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움직임이 거의 없었지만, 에이든은 그 여자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깨가 작게 떨렸다.
"우리 아들... 다시 봤어."
목소리가 바람에 흩어졌다.
에이든의 손이 떨렸다.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뭔가가 떠올랐다. 얼굴 없는 사람들. 웃음. 밀가루가 묻은 손. '이 빵은 당신을 위해 만들었어요.' 누군가가 자신에게 말하던 말. 아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말하던 말.
내가... 이걸 했나?
기억이 부스러졌다. 마치 손에 들었던 모래가 흩어지듯.
에이든은 여자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그 작고 굽은 등, 흰 머리카락, 빵을 어루만지는 손가락. 모든 것이 낯설었고, 동시에 너무나 익숙했다. 가슴 어딘가에서 뭔가가 울리고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자신 안에 갇혀 있던 울음처럼.
무덤의 글씨를 읽으려 했지만, 어둠이 너무 짙었다. 에이든은 한 발 다가섰다. 여자의 어깨가 더 크게 떨렸다. 그녀는 에이든을 느낀 것 같았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빵을 더 꼭 안았다.
"미안해.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에이든이 말했다.
여자는 여전히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한 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 손이 에이든을 향했다.
"당신이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아."
목소리가 떨렸다.
"그저 당신이 여기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해."
에이든은 그 손을 잡지 못했다. 뭔가가 자신을 멈추고 있었다. 마치 투명한 벽이 둘 사이에 있는 것처럼.
"당신은 누구예요?"
"나는... 어머니야."
여자가 중얼거렸다.
"우리 아들의."
에이든의 가슴이 철렁했다.
"아들?"
"그래. 우리 아들이 있었어. 정말 착한 아이였어. 항상 다른 사람들을 챙기고, 웃음을 나눴어. 하지만..."
여자가 마침내 돌아섰다. 에이든은 그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어둠이 너무 깊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빛만은 보였다. 은색처럼 반짝이는 눈빛.
"그 아이가... 없어졌어."
에이든은 베이커리로 돌아갔다.
거울이 있었다. 낡은 거울. 베이커리 옆 작은 화장실 입구에 걸려 있었다. 에이든은 그 앞에 섰다.
자신의 얼굴이 거기 있었다. 하지만 흐릿했다.
처음 도착했을 때보다 더. 눈동자의 색이 선명하지 않았다. 코의 윤곽이 흐려졌다. 마치 누군가가 지우개로 천천히 지우고 있는 것처럼.
에이든.
그게 자신의 이름인가? 확실하지 않았다. 뭔가 빠져 있었다. 이름 앞에 뭔가. 아니면 뒤에. 기억이 끝없이 미끄러졌다.
베이커리 벽을 봤다.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오래된 것 같았다. 글씨가 거의 벗겨져 나갔지만 읽을 수는 있었다.
'빵은 기억을 되살리고, 기억은 빵이 된다.'
에이든은 그 글귀를 바라봤다. 오래 바라봤다.
자신이 여기 온 이유가 이것이었나? 자신의 기억을 주고, 다른 누군가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무덤 앞의 여자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귀가 아니라 가슴으로.
"우리 아들... 다시 봤어."
그 말이 뭔가를 깨웠다. 에이든은 베이커리의 깊숙한 곳으로 걸어갔다. 오븐 너머로. 검은 문이 있었다.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곳.
손을 뻗었다.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어둠 속에서 형태를 갖춘 것. 천천히 다가왔다. 에이든은 본능적으로 물러섰다. 발이 부르르 떨렸다.
그것이 빛 가장자리에 닿았을 때, 에이든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이것이 정원의 주인이라는 것을. 그리고 수십 년을 이곳에서 기다렸다는 것을.
"누구세요?"
에이든의 목소리가 떨렸다.
루미엘은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 손가락에서 은색 빛이 피어올랐다. 마치 별처럼.
빛이 에이든의 이마에 닿는 순간, 장면들이 쏟아져 내렸다.
누군가의 얼굴. 웃음. 베이커리의 불빛. 그리고 끝없는 어둠. 그 어둠 속에서 누군가를 찾고 있던 자신의 목소리.
"기억하지 마. 넌 아직 준비가 안 됐어."
루미엘의 말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모든 걸 선택해야 돼."
에이든은 무릎을 꿇었다. 이마에서 빛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원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에이든? 거기 있어?"
어린 목소리였다.
베이커리 문이 열렸다. 작은 인물이 들어섰다. 열 살 정도 되는 아이. 검은 머리.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그 아이의 눈 색깔이. 은색이었다.
"오빠... 날 기억해?"
아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 카일이야."
에이든의 몸이 굳었다. 카일. 그 이름. 마치 자신의 뼈 속에 새겨진 것처럼.
"우리는... 형제야."
아이가 손을 뻗었다.
"함께 있었어."
에이든은 그 손을 바라봤다. 작고 가는 손가락. 자신의 손도 은색 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루미엘의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 은색 빛은 사라졌고, 어둠이 다시 베이커리를 감쌌다. 에이든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떨렸다. 이마의 통증이 맥박처럼 울렸다.
"카일?"
입에서 나온 이름이 낯설었다. 동시에 너무나 친숙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자신의 혀 위에 있던 것처럼.
아이는 한 걸음씩 다가왔다. 베이커리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은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기억 못 해?"
카일의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있었다.
"오빠... 얼굴이."
아이는 에이든의 얼굴을 손으로 더듬었다. 작은 손가락이 에이든의 뺨을 지나갔다. 그곳이 뜨거워졌다. 누구의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자꾸 흐릿해져. 자꾸 사라져."
카일이 중얼거렸다.
"오빠가 자꾸 사라져."
에이든은 아이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이 가늘었다. 부서질 것 같았다. 자신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
"넌... 여기서 혼자?"
"루미엘이 날 지켜줬어."
카일이 말했다.
"오빠가 올 때까지. 오빠가 오면 우리가 함께할 수 있다고 했어. 함께 정원을 지킬 수 있다고."
루미엘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베이커리의 검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 형태는 인간도 유령도 아닌 무언가였다. 그림자와 빛이 뒤섞인 것. 마치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로 뭉쳐진 것처럼.
에이든은 천천히 일어섰다. 다리가 안정되지 않았다. 세상이 기울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카일의 손을 놓지 않으면서.
"우리가... 형제야?"
"응."
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오빠는 날 못 봤어. 맨날 일만 했고. 그 날 이후로 더 안 봤어."
"그 날?"
에이든이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자신 안에 있었다. 빠르게 떠올랐다가 더 빠르게 사라졌다. 마치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화재. 불. 울음소리. 누군가를 찾는 자신의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다가 사라지는 것.
베이커리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빠르고 거친 것이었다. 정원 입구에서 횃불의 불빛이 어른거렸다. 누군가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마리아!"
베이커리의 문이 열렸다. 마리아가 들어섰다. 그 뒤로 토마스와 마을 사람들이 따라왔다. 모두 무서워하고 있었다.
"에이든. 여기서 나와야 해."
마리아가 손을 뻗었다. 그 손가락들이 떨리고 있었다.
"아르카스가 정원을 불태우려고 해. 빵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낼 때까지 너를 가두려고 했어. 하지만 우리가 그를 막고—"
베이커리 밖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에이든!"
세라의 목소리였다. 그 뒤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 비명. 어둠이 밀려오는 소리.
"세라가 그들을 막고 있어."
루미엘이 말했다.
"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할 거야. 아르카스의 힘은 정원의 모든 걸 삼킬 수 있거든."
정원의 밤이 깊어졌다. 베이커리의 벽이 흔들렸다.
마리아가 에이든의 팔을 잡으려 했다. 절박한 얼굴이었다.
"제발. 나와. 우리가 너를 지켜줄 테니."
에이든은 마리아를 바라봤다. 그 얼굴에 비친 자신의 모습. 투명하고 희미했다. 이미 반쯤은 이곳에 속해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기억들이 떠올랐다. 불에 휩싸인 집. 아우를 찾던 자신의 절규. 그 불 속에서 누군가를 잃어버린 순간. 그리고 수십 년을 그 죄책감과 함께 살아온 시간. 루미엘이 말했던 것처럼,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왜 이곳에 왔는지. 왜 빵을 구워야 하는지. 카일이 혼자가 아니어야 한다는 것을. 그 아이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난... 여기 남아야 해."
에이든이 말했다.
"왜?"
마리아가 물었다.
"이 아이가 혼자니까. 그리고..."
에이든은 오븐을 바라봤다. 은색 불 속에서 자신의 손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봤다. 밀가루를 치고, 버터를 펼치고, 빵을 구우려는 손.
"내가 여기 와야 했으니까."
에이든은 카일의 손을 놓지 않으면서 오븐 쪽으로 걸어갔다.
"뭐 해? 에이든!"
마리아가 외쳤다. 토마스가 에이든의 팔을 잡으려 했지만, 에이든의 몸은 이미 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손가락이 밀가루를 치고 있었다. 버터를 펼치고 있었다.
오븐의 문이 열렸다. 안에서 금색의 빵이 나타났다. 어제 본 은색 빵과는 다른 색이었다. 이 빵은 따뜻해 보였다. 마치 누군가의 가슴 속에서 나온 것처럼. 루미엘이 속삭였다.
"새로운 기억. 함께 만드는 기억."
에이든의 손가락이 빵을 집었다. 그 순간, 에이든의 눈에서 또 다른 기억이 사라졌다.
자신의 첫 번째 빵을 구웠던 날—사라졌다.
카일이 웃던 얼굴—사라졌다.
어머니가 자신을 안던 따뜻함—사라졌다.
그 모든 것을 잃던 날, 불 속에서 누군가를 찾던 자신의 목소리—사라졌다.
"오빠..."
카일이 손을 뻗었다.
"기억해 줄래?"
에이든은 아이의 손을 다시 잡았다. 은색 빛이 두 손을 감쌌다.
"응. 우리 함께 있자."
마리아의 비명이 들렸다.
"에이든!"
하지만 베이커리의 벽이 은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정원의 마법이 깊어지고 있었다. 루미엘의 형태가 조금 더 명확해졌다. 이제 거의 인간의 모습에 가까웠다.
베이커리 밖에서 아르카스의 목소리가 울렸다.
"정원을 불태워라!"
검은 불이 피어올랐다. 정원을 집어삼킬 준비가 된 불.
베이커리 안에서는 은색 빛이 더 밝아졌다. 에이든과 카일의 손에서. 루미엘의 몸에서. 오븐의 불에서. 기억이 빵이 되고, 빵이 기억이 되는 순간.
검은 불과 은색 빛이 정원의 밤을 가르며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