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의 직면
역행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 이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떨리지 않았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메스를 잡는 손가락의 각도는 정확했고, 손목의 맥박은 평온했다. 다만 손목에 새겨진 카운트다운만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29시간 50분.
"박준영 환자, 준비 완료했습니다."
강하은의 목소리가 수술실 스피커를 통해 울렸다. 이준호는 눈을 떴다. 중환자실의 형광등 아래서, 그는 역행 메스를 다시 한 번 들었다. 손에서 파란 빛이 흘렀다.
"이번엔..."
입 안의 말이 자꾸 걸렸다. 호흡이 얕아졌다.
"이번엔 진실을 마주한다."
메스가 빛나는 순간, 세상이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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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 깨어났을 때, 이준호는 20년 전의 수술실에 서 있었다. 벽의 시계는 오후 3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확히 박민준이 심정지로 쓰러진 시간이다.
그런데 수술대 위의 환자는 박민준이 아니었다.
자신의 얼굴이었다.
젊은 이준호. 레지던트 시절의 자신이 수술을 하고 있었다. 손은 떨리지 않았다. 메스는 정확했다. 하지만 그 정확함 속에 뭔가가 숨어 있었다.
현재의 이준호는 그것을 관찰했다.
메스가 내려간다. 관상동맥 우회로술의 기본 절개다. 절단면이 열린다. 출혈 조절. 봉합. 재개. 모든 것이 교과서적이었다. 그런데—
0.3mm의 떨림.
젊은 이준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단 한 순간. 메스의 각도가 정확도를 잃었다. 그 0.3mm 때문에 혈관 벽이 예상보다 깊게 손상되었다. 얼마나 깊은지, 젊은 이준호는 자신이 알고 있었다. 현재의 이준호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젊은 이준호는 정지했다.
메스를 놨다. 차트를 들었다. 의료 기록에 적었다. "혈관 손상 미세. 자가 회복 예상. 위험도 낮음."
거짓이었다.
현재의 이준호가 입을 벌렸을 때, 박민준의 유령이 수술대 옆에 나타났다. 28세의 얼굴. 창백한 입술. 그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수술실 전체를 진동시켰다.
"당신은 왜 인정하지 않았어?"
이준호가 대답할 수 없었다.
"0.3mm였다. 당신은 알고 있었어.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파열될 것을 알고 있었어. 그런데 왜 기록하지 않았어?"
박민준이 한 발 다가섰다. 그의 얼굴이 점점 또렷해졌다. 눈 안의 원망이 손으로 잡힐 듯했다.
"30일이 필요했어. 그 0.3mm 손상이 혈전을 만들고, 30일이 걸려 혈관을 완전히 막을 때까지. 당신이 알고도 외면한 그 30일 동안 나는 죽어갔어. 매일 매일, 나 혼자 죽어가고 있었어."
"내가..."
이준호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현재의 이준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젊은 이준호의 목소리였다. 수술실에서 울려 퍼지는 그 목소리는 변명으로 가득했다.
"당신이 뭐라고?"
박민준의 눈이 더 가까워졌다.
"의료진들이 조사했을 때, 당신은 뭐라고 했어? '환자의 기저 질환입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당신은 내 죽음 앞에서 웃고 있었어. 당신의 실수 위에 서서, 당신의 거짓 위에 서서, 당신은 진급했어."
이준호가 무릎을 꿇었다.
"내가 두려웠어. 내 실수를 인정하면 내가 죽을 것 같았어. 의사로서 죽을 것 같았어. 그래서..."
"그래서 나를 죽였어."
박민준의 손이 내려왔다. 이준호의 가슴을 가리켰다.
"당신의 거짓이 저주가 됐어. 당신이 인정하지 않은 그 0.3mm가, 당신이 외면한 그 책임이, 당신이 묻어버린 그 죄가 저주가 됐어. 그리고 당신은 47명을 더 죽였어. 당신의 손으로 수술한 모든 사람이, 당신의 거짓을 마주할 때까지."
수술실이 흔들렸다.
벽이 검어졌다. 형광등이 꺼졌다. 남은 것은 박민준의 얼굴뿐이었는데, 그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다.
먼저 김철수의 얼굴이 되었다. 그 다음 이영미. 그 다음은—
모두 이준호의 얼굴이었다.
47명의 죽은 환자들. 그들의 얼굴이 모두 이준호 자신의 얼굴로 겹쳐졌다. 각각 다른 나이로, 다른 표정으로, 하지만 모두 같은 눈으로 이준호를 바라봤다.
"저주는 당신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구나."
이준호가 중얼거렸다.
"내가... 내 거짓이... 내 책임 회피가..."
모든 얼굴들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
현실로의 복귀는 폭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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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의 눈이 떠졌을 때, 손목의 카운트다운이 마지막 초를 세고 있었다.
29시간 48분... 47분... 46분...
아니다.
초침이 움직이지 않았다.
29시간 47분에서 멈췄다. 그리고 그 숫자가 서서히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연기처럼, 마치 환상처럼.
이준호가 손목을 들었다.
시간 표시가 완전히 사라졌다. 흉터만 남았다. 20년 동안 그를 짓눌렀던 시간이, 30일마다 환자들을 죽였던 그 악마적인 타이머가, 소리 없이 증발해버렸다.
"교수님!"
강하은이 그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깨어나셨어요. 환자분은 정상입니다. 심박음이 안정됐어요."
모니터의 파형을 보자. 규칙적인 산 모양. 정상적인 심박음이었다.
"박준영이?"
이준호가 물었다.
"심장 박동이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혈압도 올라가고 있어요."
중환자실의 다른 침상들도 확인했다. 모니터 위의 숫자들이 모두 초록색이었다. 더 이상 빨간 경고음이 울리지 않았다.
"환자분들의 타이머가 사라졌어요."
유은미 위원장이 차트를 들고 나타났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47명 모두. 30일 타이머가 사라졌습니다. 의료 기록에서 완전히 지워졌어요."
민준호가 다가섰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교수님, 당신은... 뭘 한 거예요?"
이준호가 대답하려 했을 때, 복도에서 비명이 울렸다.
"박준영 환자 심정지! 응급!"
잠깐.
그럴 수 없다. 방금 전 모니터는 정상이었는데—
"박준영 환자는 정상 상태입니다."
강하은이 침착하게 말했다.
"심박음이 안정적입니다. 타이머도 사라졌고요."
그런데 비명은 계속 울렸다.
"심정지 환자 있습니다! 어디 있어요?"
의료진들이 복도로 뛰어나갔다. 이준호도 따라 나갔다.
중환자실 맞은편 방에서, 노인 환자가 침대에서 경련하고 있었다.
"아, 이건..."
이준호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 환자는 박민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옆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박수연이었다.
그녀는 환자의 손을 잡고 있었다.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빠... 아빠, 깨어나요."
박수연이 중얼거렸다.
"우리 박민준이 아빠를 다시 만나고 싶대요. 아빠, 깨어나요."
환자의 심박음이 돌아왔다.
모니터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규칙적인 신호음.
"환자 의식 회복. 생체 신호 정상화."
의료진이 외쳤다.
박수연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원망으로 가득했지만, 그 속에 뭔가 다른 것이 섞여 있었다.
해방의 빛이었다.
"교수님."
그녀가 말했다.
"저희 남편이 말했어요. 당신이 마침내 인정했다고. 그래서 이제... 이제 우리도 놓아줄 수 있다고."
이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박수연이 손을 내밀었다.
"제 아버지 손을 잡아주세요. 아버지는 당신을 보고 싶어 했어요. 당신이 누군지 알고 싶어 했어요. 진짜 의사 말이에요."
이준호가 손을 잡으려 했을 때, 복도의 불이 깜빡였다.
한 순간, 박수연 뒤에 또 다른 그림자가 보였다.
28세의 젊은 남자.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있었다.
박민준이었다.
그는 박수연의 어깨에 손을 올렸고, 그 손은 이준호의 눈으로는 보이지만 세상의 다른 누구의 눈으로도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박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라졌다.
박수연도 천천히 돌아서서 환자—그녀의 아버지—의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
"깨어나요, 아빠."
이준호는 그 모습을 지켜봤다.
강하은과 유은미, 민준호가 그의 옆에 섰다. 그들은 모두 침묵했다.
의료진들이 환자를 옮기기 시작했다. 생명 신호가 정상화되었으니, 이제 회복실로 옮길 차례였다.
박수연이 아버지를 따라가면서 이준호를 한 번 더 돌아봤다.
그녀의 눈에서 원망이 사라지고 있었다.
대신 무언가 다른 것이 들어찼다.
용서였을까, 아니면 단순한 안도였을까.
이준호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순간 자신의 손이 처음으로 떨리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떨리고 있었다.
20년 동안 떨리지 않았던 손이, 지금 이 순간, 마침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떨림이 약함이 아니라 책임감이라는 것을 이준호는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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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가 교수실로 돌아갔을 때, 책장의 동양 고전들이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그는 한 권을 집었다. 손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죄책감에서 책임감으로."
그가 중얼거렸다.
"이제 시작이다."
밖에서 강하은의 목소리가 들렸다.
"교수님, 내일 수술 일정 있으신가요? 새로운 환자가 들어왔어요."
이준호가 대답했다.
"몇 명?"
"세 분입니다."
"일정을 잡자. 이번엔... 이번엔 제대로 해야지."
강하은이 침묵했다. 그리고 나서 물었다.
"이전과 다르게요?"
이준호가 웃음을 흘렸다. 처음으로, 진심으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이제 나는... 의사다."
역행 공간에서 깨어나는 순간, 이준호의 의식은 현실의 수술실로 돌아왔다.
모니터가 울리고 있었다. 규칙적인 신호음. 그것은 죽음의 신호가 아니었다.
생명의 신호였다.
이준호의 눈이 떠졌다. 천장의 수술 조명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의 몸은 수술대 위에 누워 있었다. 아니, 누워 있지 않았다. 일어나 있었다. 손술실의 한 가운데 서 있었다. 역행 메스는 손에 들려 있었고, 파란 빛은 사라졌다.
"교수님!"
강하은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이준호를 잡아 일으켰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생체 신호 정상화. 환자 심박음 회복."
의료진이 외쳤다. 모니터의 그래프가 규칙적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했다. 박준영 환자의 심박음이었다.
이준호는 자신의 손목을 봤다.
타이머가 없었다.
30시간 0분으로 멈춰 있던 카운트다운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옅은 흉터만 남아 있었다. 20년 전부터 새겨져 있던, 저주의 흔적.
"교수님, 괜찮으세요?"
유은미가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의료인으로서의 우려가 가득했다. 이준호는 그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감정이 아니라 전문성이었다. 환자를 구한 의료진을 걱정하는 전문가의 시선.
"환자는?"
이준호가 물었다. 목이 쉬어 있었다.
"정상입니다. 심박음 안정화. 뇌파도 정상 범위. 의식 회복까지 약 20분 정도 남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의료진이 차트를 보며 보고했다.
그것은 20년 동안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환자가 살아있다는 것. 그것도 확실하게, 의학적 근거를 가지고.
이준호의 눈이 박준영을 향했다. 수술대 위의 환자는 여전히 마취 상태에 있었지만, 그의 심장은 자신의 리듬으로 뛰고 있었다. 의료진의 개입 없이, 그저 살아있는 리듬으로.
"타이머를 확인해보세요."
이준호가 강하은에게 말했다.
강하은은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차트 시스템에 접근했다. 환자 정보를 열었다.
"교수님, 타이머가... 없네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모든 환자의 타이머를 확인해보세요."
이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희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너무 큰 말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확인이었다. 진실을 직시하는 의료인의 목소리.
강하은이 시스템을 조작했다. 모든 환자 리스트가 떴다. 47명의 환자. 그들의 옆에 적혀 있던 카운트다운이 모두 사라졌다.
"불가능해요."
유은미가 중얼거렸다.
"어제 저는 이 데이터를 직접 봤어요. 모두 30일 타이머를 가지고 있었고, 정확히 30일 후에 사망했어요."
"지금은 어떻게 되어 있나요?"
이준호가 물었다.
유은미가 화면을 자세히 봤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모든 환자가... 회복 중이에요. 수술 후 경과 시간별로 모두 정상 회복 곡선을 따르고 있어요."
민준호가 화면 앞에 다가왔다.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게 어떻게... 의학적으로 설명이 안 돼요."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이준호가 말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의료인이 되는 첫 번째 단계다."
그의 말은 도그마처럼 들렸지만, 그 안에는 겸손함이 있었다. 자신을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함.
수술실의 문이 열렸다.
박수연이 들어왔다. 그녀의 뒤에는 휠체어에 탄 노인이 있었다. 박준영의 아버지였다. 그는 수술 전 의식이 깨어 있었고, 자신의 아들을 보고 싶어 했다.
박수연이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깊었지만, 그 안에 있던 날카로움이 부드러워졌다.
"교수님."
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아들을 보고 싶어 하세요. 괜찮을까요?"
이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박준영의 침대 옆으로 휠체어를 옮기도록 도왔다. 의료진들은 침묵 속에서 그것을 지켜봤다.
노인은 마취 상태의 아들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나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감정 때문이었다.
"살았네. 우리 박준영이 살았네."
노인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서 눈물이 흘렀다.
박수연은 아버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이준호를 바라봤다.
"제 남편 박민준이가 말했어요. 교수님이 마침내 깨달았다고. 그래서 우리도 이제 놓아줄 수 있다고."
이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저희는 20년을 원망으로 살았어요."
박수연이 계속했다.
"하지만 그것도 죽음과 같다는 걸 알았어요. 교수님이 죽었던 것처럼."
"박수연 씨..."
이준호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다.
"내가 당신의 남편을 죽였다. 그것은 사실이고, 그것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이제... 이제 나는 그것을 인정한다. 내 손이 실수했다. 내 판단이 틀렸다.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던 20년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죽음처럼 묶어놓았다."
이준호의 무릎이 천천히 내려갔다.
"죄송합니다."
그의 이마가 바닥을 향했다. 의료진들이 보고 있었다. 강하은, 유은미, 민준호. 그들은 모두 침묵했다.
박수연이 천천히 이준호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우리도 이제 놓아야 해요. 모두가."
수술실의 조명이 밝았다. 모니터들이 계속 울렸다. 생명의 신호음. 그것은 더 이상 죽음의 카운트다운이 아니었다.
이준호가 일어났다. 그의 손목의 흉터를 봤다. 그것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저주의 흔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책임의 흔적이었다.
"새로운 환자들을 받겠습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이제부터는 제대로 하겠습니다."
유은미가 다가왔다. 그녀의 표정은 의료윤리위원장의 표정이 아니었다. 한 명의 의료인으로서, 또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표정이었다.
"교수님. 이건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보고해야 할까요?"
이준호가 유은미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웃음을 흘렸다. 처음으로, 진심으로.
"진실로. 환자들이 회복되었다는 진실로."
의료진들이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강하은이 차트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모든 환자의 회복 상황을 기록했다. 의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사실은 사실이었다. 47명의 환자가 모두 회복되었다.
그것이 이준호의 새로운 기록이 될 것이었다.
박수연이 아버지의 휠체어를 밀며 수술실을 나갔다. 노인은 계속 아들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이준호는 역행 메스를 들었다. 파란 빛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이제 단순한 메스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20년의 저주, 그리고 그것을 깨뜨린 진실.
"이제 이건 어떻게 하죠?"
민준호가 물었다.
"보관하겠습니다."
이준호가 대답했다.
"언젠가 이것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수술실의 모니터들이 계속 울렸다. 생명의 신호음.
그것은 이제 이준호의 손에서 나오는 신호가 아니었다.
환자들의 심장에서 나오는 신호였다.
밖에서 병원의 복도 소리가 들렸다. 의료진들이 움직이는 소리. 환자들이 회복되는 소리. 가족들이 웃는 소리.
이준호는 수술복을 벗기 시작했다. 그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떨림은 약함이 아니었다.
책임감이었다.
그리고 용서였다.
자신을 향한 용서.
---
교수실로 돌아온 이준호는 책장 앞에 섰다. 동양 고전들이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그는 한 권을 집었다. 손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죄책감에서 책임감으로."
그가 중얼거렸다.
"이제 시작이다."
밖에서 강하은의 목소리가 들렸다.
"교수님, 내일 수술 일정 있으신가요? 새로운 환자가 들어왔어요."
이준호가 대답했다.
"몇 명?"
"세 분입니다."
"일정을 잡자. 이번엔... 이번엔 제대로 해야지."
강하은이 침묵했다. 그리고 나서 물었다.
"이전과 다르게요?"
이준호가 웃음을 흘렸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절망의 눈물이 아니었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이제 나는... 의사다."
강하은이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웃음을 흘렸다.
"네. 교수님이 이제 정말 의사가 되셨네요."
이준호는 책을 덮고 책장에 돌려놓았다. 그의 손목의 흉터가 다시 보였다. 그것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다른 의미였다.
죽음이 아니라 삶의 표시.
저주가 아니라 책임의 표시.
밖의 복도에서 환자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회복 중인 환자들. 살아난 환자들.
이준호는 창밖을 바라봤다. 서울의 밤은 여전히 깊었지만, 그 어딘가에는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새벽은 더 이상 죽음의 새벽이 아니었다.
생명의 새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