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과거의 직면」
수술실의 형광등이 꺼졌다.
심박음이 멈췄다. 모니터의 초록 파형이 일직선으로 떨어지는 순간, 세상이 반으로 갈렸다. 현실과 그 너머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고, 이준호의 의식은 어둠 속으로 침몰했다.
그곳에는 시간이 없었다.
이준호는 수술복을 입은 채 자신의 손을 봤다. 20년 전의 손이었다. 덜 주름진, 덜 피로한. 그런데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역행 공간의 바닥은 회색이었다. 수술실의 타일처럼 차갑고, 혈흔처럼 붉게 물든 곳곳이 있었다. 공기 자체가 소독약 냄새로 가득했다.
"0.3밀리미터."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면서 아닌 것 같았다. 젊은 이준호가 앞에 서 있었다. 레지던트 시절의 자신. 수술실에서 메스를 들고 있는 모습. 혈관 앞에서 손이 흔들린다. 메스가 정확하지 않은 각도로 내려간다. 혈관 벽에 가해진다. 0.3밀리미터의 손 떨림. 그것이 전부였다.
박민준이 나타났다. 20년 전 그 모습 그대로. 28세의 얼굴, 창백한 입술, 감긴 눈. 하지만 눈이 떠졌다. 검은 눈동자가 이준호를 응시했다.
"떨림을 느꼈어요. 그 순간을 기억하세요?"
"기억한다."
이준호의 목소리는 쉬었다. 20년 동안 말하지 않았던 진실이 입 밖으로 나오려 했다.
"그 다음은?"
"기록을 조작했다."
말이 나왔다. 가슴을 가르는 듯한 통증과 함께. 박민준의 유령이 한 발 다가섰다. 그 손가락이 이준호의 가슴을 가리켰다. 손가락이 가슴을 뚫고 들어가는 듯한 통증이 몸 전체를 관통했다.
"혈관 손상이 아닌 기저 질환으로 기록했어요. 상급의가 그걸 알았어요. 하지만 당신이 천재였으니까 덮어줬어요. 그리고 당신은 그 거짓을 살았어요. 20년을 그 거짓으로 살았어요."
"그렇다."
박민준이 손을 내밀었다. 그 손가락이 이준호의 가슴을 가리켰다.
"당신의 거짓이 저를 죽게 했나요? 아니면 당신의 거짓이 저를 두 번 죽게 했나요?"
역행 공간이 흔들렸다. 수술실의 모니터 음이 울렸다. 심박음이 떨어지는 소리. 그 음이 반복되고 반복되었다. 혈액의 냄새가 역행 공간을 가득 채웠다. 이준호는 박민준의 죽음을 다시 목격했다. 20년 전 수술실에서 일어났던 그 순간이 눈앞에서 재현됐다.
메스가 혈관을 그었다. 혈액이 흘렀다. 상급의는 입을 다물었다. 기록지에 펜이 움직였다. 거짓이 문서가 되었다. 박민준의 눈이 감겼다. 더 이상 뜨지 않았다.
이준호는 그 장면을 피할 수 없었다. 역행 공간에서 자신이 저질렀던 모든 것을 직접 목격해야 했다.
"당신은 이것을 보고도 모르셨나요?"
박민준의 목소리가 울렸다.
"저는 죽었어요. 당신의 손으로. 당신의 거짓으로. 그리고 당신은 살았어요. 20년을 살았어요. 저는 28살에서 멈췄는데."
이준호는 무릎을 꿇었다. 역행 공간의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20년을 버티던 척추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서는 안 돼요."
박민준의 목소리에 분노가 없었다. 그것이 더 무서웠다.
"죄책감도 안 돼요. 당신은 지금 당신을 용서하려고 하는 거 아닌가요? 당신의 고통으로 저를 구원하려고?"
"아니다."
이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20년 동안 흘리지 않았던 눈물. 그 눈물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역행 공간이 다시 흔들렸다.
"나는 이제 당신의 죽음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내 실수로 죽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기록했고, 당신의 아내는 그것을 알았고, 그 원한이 저주가 됐습니다. 모든 것이 내 탓입니다. 그것을 인정합니다."
이준호는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모았다. 그것은 죄책감의 몸짓이 아니었다. 자신의 과오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몸짓이었다.
"나는 당신을 살리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제 책임입니다. 저는 그 책임을 이제 받아들입니다. 당신의 죽음을 인정합니다. 당신의 원한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박민준의 손이 이준호의 얼굴에 닿았다. 그 손은 차갑지 않았다. 따뜻했다. 생명이 있는 손처럼.
"당신은 이제 거짓을 버렸어요. 당신이 스스로를 용서했어요. 그렇다면 깨어나세요. 당신의 거짓은 죽었습니다."
역행 공간의 회색이 흰색으로 변했다. 수술실의 형광등이 다시 켜지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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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의 눈이 떠졌다.
천장의 형광등이 보였다. 심박음이 울렸다. 의료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교수님!"
강하은이 손을 잡았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있었다.
"교수님, 돌아왔어요."
이준호는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수술실이 아니라 중환자실이었다.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자신의 손목을 봤다.
타이머가 없었다.
손목에는 흉터가 남아 있었다. 역행 메스가 소모한 생명력의 자국. 그 흉터를 따라 손가락을 그었다. 정말로 없어진 건가? 의심이 밀려왔다. 손목을 다시 들어 빛에 비춰봤다. 타이머는 여전히 없었다. 다시 한 번, 또 한 번. 손목을 돌려가며 확인했다. 파란 빛도, 숫자도 없었다.
진짜 풀렸다.
이준호는 천천히 주변을 봤다. 모니터들. 주변의 침대 위 환자들. 47명의 환자들 중 43명이 의식을 회복하고 있었다. 나머지 4명도 생체 신호는 모두 정상이었다. 30일 타이머는 모두 사라졌다.
호흡이 얕았다. 심박음이 약했다. 피부가 창백했다. 역행 메스가 소모한 생명력 30시간의 대가였다. 이준호는 자신의 몸이 '사망의 경계'에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살아 있었다.
"살았다."
이준호의 목소리는 갈라졌다.
"다들 살았다."
강하은이 그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유은미가 한 발 물러섰다. 그녀의 표정은 복잡했다. 민준호는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47개의 초록 파형이 일정한 리듬으로 위아래를 반복했다.
"교수님, 당신은..."
유은미가 말을 시작했다.
"저는 20년 전 박민준을 죽였습니다."
이준호가 먼저 말했다. 목소리는 명확했다. 더 이상 회피도, 부정도, 감정 없는 분석도 없었다.
"의료 과실이었습니다. 혈관 손상을 기저 질환으로 기록하고, 그 거짓을 살았습니다. 그것이 저주의 원인입니다."
침묵이 흘렀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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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의 기자회견장은 조용했다.
이준호가 단상에 섰다. 마이크 앞에 선 자신의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교수님, 47명 환자 사망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의료 과실이 아닙니다. 저 개인의 문제입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준호는 깊게 숨을 쉬었다.
"20년 전, 제가 심근경색 환자 박민준을 수술했습니다. 저는 수술 중 혈관을 손상시켰습니다. 그것은 제 실수였습니다. 저는 그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기록을 조작했습니다. 박민준 님은 그 결과로 사망하셨습니다."
카메라 플래시가 더 빠르게 터졌다.
"저는 이제 그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합니다. 박민준 님의 유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회견장의 뒤쪽 문이 열렸다. 박수연이 들어섰다. 휠체어를 밀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박민준의 아버지. 20년 동안 아들의 죽음 앞에서 침묵해 온 그 남자.
이준호는 단상에서 내려왔다. 박수연 앞에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박수연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이준호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역행 메스의 대가로 인한 쇠약함이 아니라, 감정의 떨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고통스러웠다. 20년 동안 품어온 원한과 용서 사이에서 갈등하는 표정.
"제 오빠를..."
박수연이 말을 시작했다가 멈췄다. 그녀는 한 번, 또 한 번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용서가 아니라 확인이 있었다. 이 남자가 정말로 자신의 오빠를 죽인 사람인지. 그리고 지금 진심으로 사죄하는 사람인지.
"이제... 이제 끝났어요."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다.
"아니요."
이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이제 시작입니다. 제가 제대로 하겠습니다."
박민준의 아버지가 이준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손은 매우 무거웠다. 20년 동안 삼켜온 침묵의 무게. 아들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남자의 손가락이 이준호의 어깨를 누르고 있었다.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 이준호는 셀 수 없었다. 카메라의 플래시가 멈춘 지 오래였다. 기자들도 숨을 죽이고 있었다.
마침내 박민준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제 아들을 기억해주세요."
목소리는 매우 낮았다.
"죽은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살아 있던 사람으로서."
이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흘렀다.
"기억하겠습니다. 평생 기억하겠습니다."
박민준의 아버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손을 거둬들였다. 그 손이 거둬들려질 때, 무언가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용서인지, 단순한 종료인지는 여전히 불명확했다. 박수연도 이준호의 손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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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윤리위원회 사무실은 2층 위쪽이었다.
유은미는 자신의 책상 앞에서 문서 더미를 정리하고 있었다. 이준호의 20년 의료 기록. 47명 환자의 사망 기록. 박민준 사건의 원본 자료. 그리고 이제 막 수집된 증인 진술서들.
민준호의 증언. 강하은의 기록. 상급의 김태호의 진술. 20년 전 수술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가 문서가 되어 책상 위에 쌓여 있었다.
"들어오세요."
이준호가 노크했을 때 유은미는 이미 그를 알고 있었다.
"교수님."
유은미가 일어섰다. 그녀의 얼굴은 복잡했다. 의료윤리위원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인간적 공감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조사 결과를 어떻게 처리할 예정입니까?"
이준호가 물었다. 앉지 않았다. 서서 그녀를 마주했다.
"저는 이미 진술했습니다. 20년 전 의료 과실, 기록 조작, 책임 회피. 모든 것이 제 책임입니다."
"교수님..."
"처벌해주세요."
이준호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의료면허 취소, 형사 고소, 무엇이든. 하지만 제발 한 가지만 부탁드립니다."
유은미가 말했다.
"뭔가요?"
"47명의 환자들은 제 환자들입니다. 제가 살린 환자들입니다. 이들의 회복 치료까지는 제가 담당하게 해주세요. 그 후에는 어떤 처벌도 받겠습니다."
유은미는 한참을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는 법적 책임과 인간적 연민이 얽혀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의료 시스템의 허점에 대한 분노. 20년 동안 아무도 묻지 않았던 질문들에 대한 자책.
"의료윤리위원회의 최종 결정은 3일 후입니다."
그녀가 말했다.
"공식 기록으로는 당신이 의료 과실을 저질렀고, 그것을 은폐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또한 그 과실을 인정했고, 그 책임을 받아들였습니다. 나머지는..."
유은미는 창밖을 봤다. 병원 밖의 도시가 보였다. 수천 개의 생명이 움직이는 그곳.
"나머지는 사회와 법원이 결정할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준호가 고개를 숙였다.
"제 거짓이 깨지는 동안 당신의 진실 추적이 없었다면, 저는 계속 도망쳤을 것입니다."
유은미가 이준호를 봤다.
"당신은 지금 어떤 심정입니까?"
이준호는 생각했다. 20년 만에 누군가 그렇게 물었다. 감정을 물었다. 의료 기록이 아닌 인간의 마음을.
"자유롭습니다."
그가 말했다.
"두렵지만, 자유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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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후, 의료윤리위원회의 최종 결정이 내려졌다.
조건부 복직. 이준호는 감시 하에서 수술을 재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형사 고소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고, 민사 소송도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 오후, 검찰의 소환장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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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에 새로운 환자가 들어왔다. 뇌동맥류 환자. 아나스타시아라는 외국 국적의 여성. 45세. 수술 난이도는 극상.
"메스."
강하은이 메스를 건넸다. 일반적인 의료용 메스.
이준호는 메스를 들었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 떨림 없음이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다.
"뇌동맥류 수술 시작합니다."
5시간 18분.
수술이 끝났을 때 모니터는 정상을 가리켰다. 심박음이 규칙적이었다. 뇌파가 안정적이었다.
"환자는 살 것입니다."
이준호가 선언했다.
그 말을 할 때마다 그는 생각했다. 이 말을 20년 동안 할 수 없었던 자신을. 대신 "30일 후 사망하겠지"라고 내뱉었던 자신을.
"교수님."
민준호가 말했다. 그는 이제 이준호의 제자가 아니라, 동료 의사로 서 있었다.
"환자분의 회복 프로토콜을 어떻게 진행할까요?"
이준호가 그를 봤다. 민준호는 더 이상 두려움 어린 눈으로 보지 않았다. 신뢰와 존경이 섞여 있었다.
"정석대로 진행합니다."
이준호가 답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의사입니다. 마술사가 아닙니다."
강하은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이준호가 처음으로 그녀를 웃게 한 농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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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이준호는 멈춰 섰다.
47명의 환자들을 확인하기 위해. 그들의 심박음을 들으면서 자신의 거짓이 정말로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복도를 지나가며 그는 생각했다. 박민준이 마지막으로 한 말을.
"당신의 거짓은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진정으로 살아야 한다고. 의사로서. 인간으로서. 그리고 박민준의 죽음을 살인이 아닌 책임으로 받아들인 자로서.
중환자실의 문이 열렸다.
47명의 환자들이 모니터 위에 떴다. 심박음의 파형이 규칙적으로 상하로 움직였다. 이전처럼 30일 후 급락하는 그래프는 없었다. 단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리듬만 있었다.
이준호는 각 침대를 차례로 확인했다. 김철수. 이영미. 박정훈. 최민지. 그들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눈동자가 움직였다. 의식이 돌아오고 있었다.
"교수님."
간호사가 다가왔다.
"47명 중 43명이 의식 회복 중입니다. 4명은 아직 깊은 수면 상태이지만 생체 신호는 모두 정상입니다. 다만 박정훈 환자는 폐렴 초기 증상을 보이고 있어서 항생제 투여를 시작했습니다. 최소진 환자는 신장 수치가 약간 상승했으나 혈액투석으로 모니터링 중입니다."
이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환자가 완벽하게 회복되는 것은 아니었다. 저주는 풀렸지만, 의료 현실은 여전히 가혹했다.
"교수님, 괜찮으세요?"
강하은이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은 피곤했지만 눈빛은 맑았다. 이틀을 꼬박 깨어서 환자들을 모니터링했을 것이다.
"다들 살았습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정말로 살았어요."
강하은이 그의 팔을 잡았다.
"네. 교수님 덕분입니다."
"아니요."
이준호가 고개를 저었다.
"이제부터입니다. 이제부터 제가 그들을 살려야 합니다."
병실 한 구석에서 모니터 화면이 깜박였다. 환자 김철수가 눈을 떴다. 빛을 피하며 눈을 다시 감았다가, 천천히 떠올렸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어... 어디?"
강하은이 다가갔다.
"환자분, 수술이 성공했습니다. 이제 회복 중이세요."
"수술? 언제?"
"어제 오후입니다."
김철수의 얼굴에 안도감이 떠올랐다. 그는 살았다. 30일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살아 있었다.
이준호는 그 장면을 바라봤다. 20년 동안 본 적 없는 광경이었다. 환자가 깨어나서 자신의 생명을 확인하는 모습. 죽음이 아닌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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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후, 의료윤리위원회는 이준호의 조건부 복직을 공식 발표했다. 감시 하에서의 수술 재개. 하지만 형사 고소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이준호는 자신의 방에서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5일 동안 그는 47명 환자들의 회복 과정을 지켜봤다. 박정훈의 폐렴은 항생제 투여로 호전되었다. 최소진의 신장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머지 4명도 의식을 회복했다. 모두 살았다.
그러나 그 5일은 침묵의 시간이기도 했다. 의료윤리위원회의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형사 수사도 병렬로 진행되고 있었다. 검찰은 20년 전 기록 조작의 증거를 수집했다. 상급의 김태호의 증언. 간호 기록. 그리고 이준호 자신의 자백.
이제 남은 것은 법정이었다.
이준호는 자신의 손목을 봤다. 흉터만 남아 있었다. 역행 메스를 3회 사용했을 때의 기록. 생명력 30시간을 소모했을 때의 증거. 그리고 '사망의 경계'에서 돌아온 자의 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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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에 새로운 환자가 들어왔다. 위암 환자. 72세의 노인. 수술 난이도는 중상.
"메스."
강하은이 메스를 건넸다. 일반적인 의료용 메스.
이준호는 메스를 들었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책임감이 손을 안정시켰다.
"위암 수술 시작합니다."
4시간 42분.
수술이 끝났을 때 모니터는 정상을 가리켰다. 심박음이 규칙적이었다. 환자의 생체 신호는 모두 정상이었다.
"환자는 살 것입니다."
이준호가 선언했다.
메스를 내려놓으며, 그는 자신의 손을 봤다. 더 이상 그 손에서 파란 빛이 나지 않았다. 창백한 피부가 여전했지만, 그것도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이제 이 손이 생명을 빼앗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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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 이준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검찰청에서의 전화였다. 내일 오전 10시 소환. 의료 과실 및 기록 조작 혐의에 대한 조사.
이준호는 전화를 끊고 자신의 손목을 만져봤다.
타이머는 없었다. 흉터만 남아 있었다. 역행 메스를 사용했을 때 생긴 상처. 생명력 30시간을 소모한 흔적.
그 흉터는 이제 죄책감이 아니라 기억이었다.
박민준을 기억하는 방식. 자신의 과오를 기억하는 방식. 그리고 이제부터 살아가야 할 방식.
의사로서. 인간으로서. 그리고 박민준의 죽음을 살인이 아닌 책임으로 받아들인 자로서.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박수연이었다.
"교수님, 저... 저희 아버지가 형사 고소를 취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준호는 말을 잃었다.
"아버지가 말씀하셨어요. 교수님이 오빠를 기억하겠다고 하셨잖아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나머지는 교수님이 평생 짊어질 거라고."
박수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검찰은 독자 기소를 추진할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고소를 취하해도 의료 기록 조작은 공소시효가 남아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이준호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교수님, 한 가지만 더 부탁드립니다."
"뭔가요?"
"제 오빠가 살아 있었다면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요? 그런 생각을 가끔 해요. 그런데 이제는 교수님이 그 생각을 해줄 거라는 게 조금... 위로가 돼요."
이준호는 눈물을 흘렸다.
"기억하겠습니다. 평생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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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검찰 소환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형사 고소가 취하되더라도, 의료 기록 조작은 공소시효 내의 범죄였다. 그리고 검찰은 이미 독자 기소를 검토하고 있었다.
이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손목의 흉터. 역행 메스가 새긴 자국.
그 흉터는 이제 죄책감이 아니라 기억이었다. 박민준을 기억하는 방식. 그리고 이제부터 살아가야 할 책임.
내일 검찰청에 가면, 그는 다시 모든 것을 진술할 것이다. 20년 전의 과실. 기록 조작. 그리고 자신의 거짓.
하지만 이제 그는 두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가장 큰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역행 공간에서 박민준의 눈을 마주했을 때. 그리고 자신의 거짓을 온전히 인정했을 때.
나머지는 법이 할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모든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의료면허 취소든, 형사 처벌이든.
중요한 것은 이제 그가 거짓으로 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