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행 메스를 들었을 때, 손가락이 떨렸다.
파란 빛이 메스의 날을 타고 흘러내렸다. 수술실의 불빛이 일순간 반짝거렸고, 그 틈새로 세상이 뒤틀렸다. 이영미의 흉터 위에 메스의 끝을 갖다댔을 때, 손목의 카운트다운이 울음을 멈추었다.
의식이 빨려 들어갔다.
현실의 수술실은 뒤로 밀려났다. 강하은의 손, 모니터의 불빛, 천장의 조명—모든 것이 검은 층 너머로 사라졌다. 이준호는 무의식 상태에 빠졌고, 강하은이 그의 팔을 받쳐 의자에 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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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행 공간에서 이준호는 깨어났다.
수술실이었다. 같은 조명, 같은 기구, 같은 냄새. 하지만 시간이 정지되어 있었다. 모니터는 멈춘 심박음을 그리고 있었고, 수액줄은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영미가 수술대 위에 누워 있었다. 가슴이 열려 있었다.
이준호의 손이 움직였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메스를 들었다. 정밀하게 움직였다. 이영미의 심장 조직을 따라갔다. 손가락은 정확했다. 무의식적으로 수행하는 수술이었다. 몇십 번을 반복한 손의 기억이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수술대 위의 얼굴이 변했다.
박민준이었다.
이준호의 손이 멈추었다. 메스가 공중에서 떨렸다. 가슴을 열어젖힌 것은 여전히 이영미였는데, 얼굴은 박민준이었다. 20년 전 수술실에서 본 그 얼굴이었다.
"누구를 살리고 있는 거야?"
이준호의 목소리가 역행 공간에 울렸다.
메스를 들어올렸다. 다시 내려찍었다. 손은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완벽한 기술, 완벽한 움직임. 하지만 가슴 안의 얼굴은 계속 변했다. 이영미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박민준이 되었다.
그 순간, 수술실의 어둠이 짙어졌다.
박민준이 서 있었다. 수술실의 모서리에서 천천히 걸어왔다. 흰 수술복을 입고 있었고, 얼굴은 창백했다. 20년 전의 박민준이었다. 28세의 젊은 얼굴. 하지만 눈은 오래된 것이었다.
"당신이 날 죽였어."
박민준의 목소리는 울음이 없었다. 차갑고, 투명하고, 무거웠다.
이준호는 메스를 놨다. 손가락이 떨렸다.
"내 실수가 아니야. 당신의 기저 질환이—"
"거짓이야."
박민준이 한 발 다가왔다.
"당신은 날 죽였어. 그리고 인정하지 않았어. 그게 다야."
이준호는 뒤로 물러섰다. 수술대가 그의 다리에 닿았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내 기술은 완벽했다. 그건 너의 심장이 약했던 거야."
"당신의 실수를 인정했다면, 나는 이렇게 죽지 않았어."
박민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수술대 맞은편에서 가슴이 열려 있는 시체를 사이에 두고.
이준호의 손이 다시 떨렸다.
"내 실수가 아니야!"
외침이 역행 공간을 울렸다. 하지만 박민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서 있었다.
"저주는 당신의 손이 아니야. 당신의 거짓이야. 당신이 인정하지 않는 그것이."
이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손을 들어보려 해도 움직이지 않았다. 수술실이 흔들렸다. 박민준이 희미해지고, 빛이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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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소리가 들렸다.
심박음. 모니터의 신호음. 누군가의 호흡.
이준호는 눈을 떴다.
수술실이었다. 현실의 수술실. 모니터는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영미의 심박음이 규칙적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강하은이 그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눈물이 흘렀다.
"교수님."
그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걱정, 공포, 그리고 깊은 연민.
이준호의 손목을 내려다봤다.
카운트다운이 보였다. 59시간 20분.
이미 30시간이 사라졌다.
손목의 숫자를 바라보던 이준호의 눈이 흔들렸다. 역행 공간에서 본 박민준의 말이 되풀이되었다. "당신의 실수를 인정했다면, 나는 이렇게 죽지 않았어."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정하지 않는 것이 저주였다. 거짓이 저주였다.
강하은이 손목을 더 단단히 잡았다.
"교수님, 저는 당신을 도와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당신이 진실을 말해야 해요. 환자분들이 왜 돌아가시는지, 당신이 뭘 하고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이준호는 입을 열었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나는 20년 전에 실수를 했다."
간신히 나온 목소리. 그것이 진실이었다.
그 순간, 손목의 카운트다운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준호는 강하은의 눈을 봤다. 그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처음으로 선명해 보였다.
"내가 진실을 말하면... 더 빨아간다."
손목을 들어 보였다.
"이미 30시간이 남았어. 한 번의 역행이 더 가능해. 마지막 역행이..."
이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 자신을 위한 역행이 필요해."
수술실의 문이 열렸다.
유은미가 들어섰다. 팔짱을 끼고. 그녀의 눈은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의료인으로서의 눈이었다.
"이준호 교수."
유은미의 톤이 공식적으로 바뀌었다.
"의료 윤리 위원회 최종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심장외과 이준호 교수에 대해 의료 과실 혐의로 조사를 진행하겠습니다. 47명의 환자가 모두 수술 후 정확히 30일 뒤 사망한 것으로 파악되었고, 이는 통계적으로 불가능한 확률입니다."
이준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또한 20년 전 박민준 환자 사건에 대한 재조사도 진행됩니다. 당시 상급자에 의해 은폐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유은미가 한 걸음 다가왔다.
"이 모든 것의 진실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준호는 입을 열지 못했다. 손목의 카운트다운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강하은이 아직도 그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교수님..."
이준호는 눈을 감았다. 역행 공간에서 본 박민준의 얼굴이 떠올랐다. "당신의 실수를 인정했다면, 나는 이렇게 죽지 않았어."
그 말이 맞았다. 인정하지 않는 것이 저주였다. 거짓이 저주였다.
유은미가 기록을 내려놨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교수님. 지금 모든 것을 말씀하셔야 합니다."
강하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교수님이 필요한 건 진실이 아니라... 용서예요."
이준호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손목의 카운트다운이 계속 떨어졌다.
수술실의 모니터에서 이영미의 심박음이 규칙적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정상이었다.
하지만 30일 후, 그 심박음은 멈춘다.
이준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강하은이 손목을 놓지 않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떨렸다.
"교수님, 이건... 이건 뭐예요?"
유은미가 손목 근처를 들여다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준호의 눈빛은 그곳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보이지 않으세요?"
이준호의 목소리가 무너졌다.
"역행 메스는... 물질이 아니에요. 저주받은 자만 볼 수 있어."
유은미가 되물었다. 임상적이고 차분한 목소리.
"교수님, 의료 과실을 인정하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초자연적인 설명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준호는 주머니에서 역행 메스를 꺼냈다. 현실의 수술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준호의 손가락 사이에는 확실히 무언가가 있었다.
강하은이 숨을 삼켰다.
"보여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공중에서 무언가를 따라갔다. 파란 빛의 궤적을 감지하듯이.
"흐릿하게... 파란색이..."
"수간호사님은 저를 오래 도와주셨으니까."
이준호가 메스를 들어 올렸다. 역행 공간으로 가는 입구. 다시 한 번. 마지막.
유은미가 움직였다.
"이준호 교수, 그 물건을 내려놓으세요."
경고의 목소리.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이준호의 눈이 닫혔다. 메스가 가슴에 닿는 순간, 파란 빛이 폭발했다. 현실의 수술실에는 보이지 않는 폭발. 하지만 강하은은 봤다. 이준호의 몸이 경직되고, 의식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모니터의 심박음이 갑자기 뛰어올랐다. 이영미의 심박음이 아니었다. 이준호의 심박음이었다. 빠르고 위험한 박동.
"의료진!"
유은미가 외쳤다.
"이준호 교수의 바이탈을 확인하세요!"
강하은이 이준호의 얼굴을 들었다. 의식이 없었다. 하지만 눈 아래 빠르게 움직이는 안구. 깊은 꿈의 상태. 혹은 깊은 진실의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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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행 공간.
시간이 정지된 그곳에서 이준호는 다시 한 번 수술을 하고 있었다. 메스가 흉부를 가르고 있었다. 손이 움직였다. 자동으로. 20년 전처럼. 정확하게. 냉정하게.
"왜?"
이준호가 자신의 손을 봤다.
"왜 계속 같은 거야?"
손가락이 멈추지 않았다. 심실 중격 결손. 관상동맥 우회로술. 판막 치환. 모든 수술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환자의 흉부가 여러 개의 수술로 동시에 열려 있었다.
그 안에서 여러 개의 심장이 뛰었다.
"멈춰!"
이준호가 외쳤다. 메스가 떨어졌다. 손이 떨렸다.
그 순간, 한 명의 유령이 나타났다.
박민준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모습이었다. 수술 전의 박민준. 살아있던 박민준. 28세의 건강한 얼굴. 하지만 눈은 죽어있었다.
"당신은 여전히 모르고 있네요."
박민준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를 죽인 게 뭔지."
이준호가 물었다.
"뭐... 뭔데?"
"당신의 손가락이 아니에요."
박민준이 한 발 다가왔다. 그의 발이 피 위를 밟고 있었다.
"당신의 거짓이에요. 당신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저는 당신의 거짓 속에 갇혀 있어요."
이준호가 메스를 들었다.
"그럼 어떻게... 어떻게 이 저주를..."
"당신이 죽어야 해요."
박민준이 말했다.
"당신의 거짓을 죽여야 해요."
이준호의 호흡이 멈췄다. 박민준의 말이 가슴팍을 뚫고 들어왔다. 거짓을 죽인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 거짓이 죽어야만, 나도 해방돼요."
박민준이 계속했다.
"그리고 당신도."
이준호의 손이 움직였다. 메스를 들었다. 환자를 향하지 않고, 자신을 향했다.
손가락이 떨렸다. 메스의 끝이 자신의 가슴에 닿았을 때, 비로소 이해했다. 이것이 마지막 역행이라는 것을. 이 안에서 자신의 거짓을 죽이지 못하면, 현실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이게... 마지막 역행?"
"네."
박민준이 답했다.
"당신의 마지막 기회. 당신의 거짓을 직시하고, 그걸 죽이고, 함께 살아나는 거."
이준호는 메스를 들었다. 가슴에 댔다. 손이 떨렸다.
"그럼 난 죽어?"
"당신의 거짓만 죽어요."
박민준의 목소리가 변했다. 처음으로 감정이 실렸다.
"당신은... 당신은 살아나야 해요. 진짜로."
이준호는 눈을 감았다. 20년 동안 피해온 것들이 한 번에 밀려왔다. 박민준의 죽음. 47명의 환자들. 그들의 가족들. 그리고 자신의 거짓. 그 거짓이 얼마나 많은 것을 파괴했는지.
메스가 내려갔다.
통증이 없었다. 대신 무언가가 흘러나왔다. 검은 피. 거짓의 피. 20년 동안 고여 있던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미안해."
이준호가 중얼거렸다.
"박민준. 미안해."
박민준의 얼굴이 밝아졌다. 처음으로 죽음에서 벗어나는 표정이었다.
"이제... 이제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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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수술실.
이준호의 심박음이 급격히 떨어졌다. 120. 100. 80.
"심정지 임박!"
간호사가 외쳤다.
강하은이 이준호의 손을 잡았다. 여전히 역행 메스를 쥐고 있었다. 현실의 손에는 보이지 않지만, 강하은의 손에만 닿아있었다.
"교수님, 돌아와요!"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
유은미는 조용히 기록을 내려놨다. 이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의료 과실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모니터의 심박음이 평탄해지고 있었다. 직선. 죽음의 직선.
그 순간.
파란 빛이 폭발했다.
이준호의 눈이 떠졌다.
심박음이 다시 올라왔다. 120. 140. 160.
그리고 천천히, 안정되었다.
이준호는 숨을 내쉬었다. 생사의 경계에서 돌아온 숨. 무거운 숨.
손목을 봤다.
카운트다운이 사라져 있었다.
손목의 흉터만 남아 있었다. 메스의 자국. 거짓이 죽은 자리.
강하은이 울음을 터뜨렸다.
"교수님!"
그녀의 눈물이 이준호의 손목에 떨어졌다. 흉터를 적셨다. 그 순간, 이준호는 손목에 닿은 온기를 느꼈다. 따뜻한 체온. 살아있는 손의 온기. 카운트다운이 울던 자리에 이제 생명의 따뜻함이 흐르고 있었다.
이준호는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수술실의 천장을 봤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펼쳤다.
역행 메스는 없었다.
"이영미 환자는?"
목소리가 정상이었다. 처음으로 그의 목소리에 책임감이 담겨 있었다.
강하은이 모니터를 봤다.
"정상입니다. 심박음이... 정상이에요."
이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목의 흉터를 다시 한 번 바라봤다. 그곳에는 메스의 자국이 선명했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잃었는지를 증명하는 흉터.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결연했다.
"환자들을 만나야 해요. 그들의 가족들을 만나야 해요. 그리고 진실을 말해야 해요."
유은미가 기록을 들었다.
"그렇다면 조사에 응하시겠다는 뜻입니까?"
이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하겠습니다. 모든 것을 말하겠습니다."
현실의 수술실에서, 의료진들은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의 눈은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있었다.
이영미의 심박음이 계속 울렸다.
30일. 그것이 모든 것을 결정할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유은미의 조사는 더 깊어질 것이었다. 박민준 사건의 재조사. 47명 환자들의 기록. 그리고 이준호가 숨겨온 모든 것들. 민준호의 의문도 커질 것이었다. 그의 선배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왜 모든 환자가 30일 후에 죽었는지. 박수연도 이미 이준호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다. 그 여자가 다시 움직일 날도 멀지 않았다.
30일. 그것은 기다림의 시간이자,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