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역행 메스

모니터의 불규칙한 신호음이 수술실 전체를 갈라놨다. 김철수의 심박이 급락했다. 의료진들이 움직였고, 강하은 수간호사가 "준비됐습니다, 교수님"이라고 외쳤다. 이준호는 메스를 들었다.

그 메스가 아니었다.

손가락 사이에 있던 것은 역행 메스였다. 손잡이에 새겨진 '역(逆)'자가 형광등 아래에서 검게 빛났다. 이준호는 메스의 끝을 환자의 흉터 위에 갖다댔다.

파란 빛이 터졌다.

아니, 빛이 아니라 깊이였다. 메스의 끝에서 뿜어져 나온 파란색이 공간을 파고들며, 마치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감각이 이준호를 덮쳤다. 눈이 흔들렸다. 의식이 녹아내렸다.

현실에서 그의 몸이 떨어졌다.

수술대 옆 바닥에 쓰러진 이준호의 몸을 보고 강하은이 "비상! 비상!"을 외쳤다. 의료진들이 달려왔다. 하지만 이준호는 이미 거기에 없었다.

역행 공간 안에 있었다.

수술실이었다. 같은 수술실. 같은 조명. 같은 냄새. 하지만 시간이 다르다. 모니터가 초록색 파동을 그리고 있었다. 환자는 안정적이었다. 이준호의 손은 환자의 관상동맥 위에 있었다. 메스가 들려 있었다.

역행 공간에서 그는 20분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다르게 하자."

중얼거렸다. 음성이 공중에 떠서 아무것도 흡수하지 않는다.

손가락이 움직여야 했다.

움직이지 않았다.

같은 동작을 했다. 같은 각도로 메스를 움직였다. 같은 혈관을 절개했다. 의식은 관찰자였다. 신체는 기억된 패턴을 따랐다. 손이 자신의 지배 밖에서 움직였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손가락이 움직이는 궤적이 흔들렸다. 메스의 끝이 파란 빛으로 왜곡되며, 누군가 다른 손이 이준호의 손 위에서 조종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손가락이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꺾였다. 메스가 환자의 심장을 향해 각도를 틀었다.

"아니야!"

외쳤다. 하지만 손은 멈추지 않았다. 손이 더 정직했다. 의료 기술의 극한은 의식을 초월한다.

환자의 심장이 수술대 위에서 떨고 있었다. 그의 손이 떨렸다.

환자의 얼굴을 봤다.

김철수의 이마와 콧등이 보였다. 그 위로 다른 얼굴이 서서히 겹쳤다.

더 젊은 얼굴. 28세의 얼굴.

박민준이었다.

눈썹이 먼저 변했다. 그 다음 눈. 코. 입. 필름이 천천히 겹쳐지듯, 한 명의 환자가 다른 환자로 변해갔다. 손 위를 봤다. 손가락 사이에 누군가 다른 손이 있었다. 더 젊은 손. 더 차가운 손.

박민준의 손.

뒤로 물러났다. 메스를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역행 공간에서 메스는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중력이 없었다. 모든 것이 정지했다. 오직 그와 환자의 얼굴만 움직였다.

박민준의 눈이 떴다.

"너 왜 내 얼굴을 보고 있어?"

목에서 나오는 음성이 아니라, 뇌 안에서 울려 퍼지는 음성이었다. 환각이 아니었다. 저주였다.

손가락이 경련했다. 숨이 목에 걸렸다. 메스가 손에서 미끄러지려 했다. 몸이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역행 공간에서는 움직임이 제한되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목 안이 타들어갔다.

역행 공간이 흔들렸다. 모든 것이 흰색으로 변했다.

현실로 돌아왔다.

천장이 보였다. 형광등이 깜박거렸다. 의료진들의 얼굴이 그 위에 겹쳤다. 누군가 산소 마스크를 씌웠다. 누군가 맥박을 재고 있었다. 강하은의 목소리가 가장 명확했다.

"교수님, 괜찮으세요?"

입이 움직였다.

"환자는?"

"환자분은 안정적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갑자기... 어디 아프신가요?"

일어나려고 했다. 의료진들이 누르고 있었다. 손목을 봤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안 보였다. 하지만 느꼈다. 피부 아래, 맥박 위에서 무언가 흐르고 있었다.

카운트다운이었다.

생명력: 29시간 40분.

시간이 흘렀다. 29시간 39분. 29시간 38분.

"교수님?"

강하은이 다시 물었다. 손목을 들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일어났다. 의료진들이 물러났다. 차트를 확인했다. 김철수의 모든 수치가 정상이었다. 심박. 혈압. 산소 포화도. 모두 정상이었다.

그런데 환자는 여전히 죽어 있었다.

역행 공간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이 현실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손가락이 다르게 움직였고, 메스의 각도가 틀렸고, 심장이 떨렸다. 하지만 현실의 차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마치 그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30일 후 이 환자는 죽을 것이다. 같은 시점에서. 같은 방식으로.

손목을 들었다. 29시간 15분.

"교수님, 뭔가 이상했어요."

강하은이 다시 말했다. 그녀의 눈이 이준호를 따라갔다.

"마치 당신이... 어딘가 다른 곳에 있었던 것 같은데."

대답하지 않았다. 손목의 카운트다운을 느꼈다. 생명력은 돌아오지 않는다. 가는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중환자실로 내려갔다. 김철수의 침대 옆에 섰다. 환자는 깊은 수면 상태에 있었다. 심박 모니터가 규칙적인 초록 파동을 그렸다. 정상이었다. 모든 수치가 정상이었다.

30일 후 이 모니터는 급락할 것이다. 수직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환자는 죽을 것이다.

손목을 들었다. 28시간 31분.

생명력이 흘러간다. 자신의 시간이 흘러간다. 역행 메스를 사용할 때마다 30시간씩 깎인다. 그리고 총 90시간이 소모되면 죽는다. 세 번이다. 세 번만 역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세 번의 기회.

세 번의 환자.

세 번의 실패.

얼굴이 굳었다. 손이 떨렸다. 의료진들이 그를 봤다. 하지만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죽음의 신'에게 다가올 용기가 없었다.

병원 로비로 나갔다. 오후 햇빛이 대형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외부인들이 지나갔다. 환자들, 보호자들, 의료진들. 모두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었다.

그 중에 누군가가 있었다.

여자가 이준호를 봤다. 얼굴이 창백했다. 눈이 붉었다. 20년간 울었을 것 같은 눈이었다.

박수연이었다.

몸이 경직됐다.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가 아니었다. 혼잣말이었다. 하지만 그 입모양을 읽을 수 있었다.

"당신이... 우리 남편을 죽였어."

손가락이 떨렸다. 목이 졸렸다. 그녀의 눈빛이 이준호의 가슴을 뚫고 들어왔다. 호흡이 얕아졌다. 손가락 끝이 차가워졌다. 죄책감이 신체를 타고 흘렀다.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손이 들렸다. 마치 이준호의 팔을 잡으려는 듯했다. 손가락이 공중에서 멈췄다. 닿을 뻔했다. 그 순간 병원 보안 직원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보호자님, 이곳은 환자 이동 통로입니다."

보안 직원이 박수연을 옆으로 이동시켰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이준호를 따라갔다.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 침묵이 깊어졌다. 눈빛만으로 20년의 한을 전달했다. 그리고 목소리가 나왔다.

"죽여야 해. 너도 같은 고통을 느꼈으면 좋겠어."

목소리가 공기를 떨렸다. 명확하게 들었다. 이준호는 시선을 돌렸다. 로비의 반대편으로 걸었다. 박수연의 목소리가 뒤에서 울려 퍼졌다.

저주의 원점이 그곳에 있었다. 20년 전 박민준의 죽음. 그 죽음을 인정하지 않은 자신. 박수연의 원한. 그 원한이 실체화된 저주.

계단을 올랐다. 심장외과 병동으로 돌아갔다. 교수실에 들어갔다. 책장을 열었다. 동양 고전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 사이에 20년 전 편지가 있었다.

"당신의 죄를 되돌릴 수 없지만, 당신의 진실을 마주하게 할 것이다."

읽었다. 그 문장이 이제 다르게 보였다. 처음에는 '환자를 살릴 수 있다'고 읽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진실을 마주한다. 죄를 되돌린다는 게 아니라, 자신의 거짓을 보게 한다는 뜻이다.

손목의 카운트다운이 계속됐다. 27시간 43분.

역행은 환자를 살리지 못했다. 하지만 무언가를 드러냈다. 박민준의 얼굴. 과거의 유령. 그리고 자신의 손이 반복하는 같은 실수.

의자에 앉았다. 손가락을 펼쳤다. 메스를 들었던 손가락들. 환자의 심장을 만졌던 손가락들. 20년 전 박민준의 심장을 놓쳤던 손가락들.

그 손가락이 이번에는 다르게 움직일까?

아니면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민준호가 교수실 문을 두드렸다.

"교수님, 혹시... 시간 있으세요?"

목소리에 불안감이 담겨 있었다. 그 레지던트는 분명히 뭔가를 봤다. 메스를 봤다. 파란 빛을 봤다. 그리고 이제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했다.

손목을 들었다. 27시간 38분.

"들어와."

민준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얼굴은 창백했고, 눈빛에는 의료진으로서의 이성과 제자로서의 혼란이 뒤섞여 있었다. 손에는 환자 기록지를 들고 있었다.

"교수님, 제가 뭔가 이상한 걸 봤어요."

기록지를 펼쳤다. 그것은 김철수의 차트였다. 수술 시간, 마취 기록, 심박 수치.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었다.

"수술 중에 환자의 상태 기록이 있는데, 지금 다시 보니까..." 손가락이 차트의 특정 지점을 가리켰다. "같은 시점으로 돌아가 있어요. 마치 시간이 되감긴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교수님이 수술실에서 쓰러졌을 때, 제가 봤거든요. 손에 들고 있던 그 메스. 그건... 일반적인 수술 기구가 아닙니다."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목소리가 떨렸다.

"교수님, 우리 환자들이 모두 30일 후에 돌아가잖아요. 강 수간호사도 알고 있어요. 의료 기록을 보면 명확해요. 근데 오늘 뭔가 다른 일이 일어났습니다. 혹시..."

말을 멈췄다. 눈이 이준호의 손목을 바라봤다. 손목에 보이지 않는 카운트다운이 흐르고 있었다. 26시간 52분.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낮았다.

"생명력. 30시간씩."

손목을 들었다. 26시간 47분.

"최대 3회다."

민준호의 얼굴에서 모든 색이 빠졌다.

"교수님... 혹시 이미..."

"첫 번째 역행을 했다."

책장으로 걸어갔다. 동양 고전들 사이에서 역행 메스를 꺼냈다. 은색 메스는 평범해 보였다. 하지만 손에 들면 무게가 다르게 느껴졌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있는 무게.

"역행 공간에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메스를 들었다. 손잡이의 '역(逆)'자가 보였다.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환자를 살릴 수 없다는 뜻인가요?"

민준호의 목소리가 약했다.

"아직 모른다. 두 번의 기회가 남아 있다."

메스를 다시 책장에 넣었다.

"그리고 너는 여기서 나가야 한다."

"저는 도와야 합니다."

민준호가 반박했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교수님, 제가 당신의 제자인 이유는 환자를 살리는 방법을 배우기 위함입니다. 지금 당신이 환자를 살리려고 하신다면, 저는 당신을 도와야 합니다."

민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차가움만 있었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흐르고 있었다. 두려움. 죄책감. 그리고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

"20년 전 내가 수술한 환자가 있었다. 박민준. 심장 판막 수술이었다."

책장을 바라봤다. 그 사이에 20년 전 편지가 있었다.

"수술은 실패했다. 환자는 죽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침묵이 흘렀다.

"그 환자의 아내가 나를 저주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 저주가 현실이 되었다. 내가 수술하는 모든 환자가 30일 후에 죽는다."

민준호가 침을 삼켰다.

"저주?"

"내가 인정하지 않은 죄. 그것이 저주가 되었다."

의자에 앉았다. 손목은 계속 카운트다운을 세고 있었다. 26시간 21분.

"역행 메스는 과거를 바꾸려는 시도다. 하지만 역행 공간에서도 내 손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의식은 관찰자일 뿐이고, 신체는 기억된 패턴을 따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의 문제라는 뜻인가요?"

민준호가 물었다.

"그렇다. 내가 인정하지 않은 죄. 그것이 내 손을 지배한다."

민준호가 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른다. 그래서 계속 역행할 것이다. 남은 두 번의 기회 동안."

"제가 옆에 있겠습니다."

민준호가 말했다.

"역행할 때 당신의 신체 상태를 모니터링하겠습니다."

민준호를 바라봤다. 그 젊은 의사의 얼굴에는 결연함이 있었다.

"강하은에게는 말하지 마."

"왜요?"

"그녀는 나를 구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구해져서는 안 된다."

"교수님..."

"가."

손을 들었다. 그 손가락들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민준호가 교수실을 나갔다. 문이 닫혔다. 혼자 남았다.

손목의 카운트다운이 계속됐다. 26시간 14분.

남은 두 번의 기회.

남은 두 번의 환자.

메스를 다시 꺼냈다. 은색 표면이 오후 햇빛에 반짝였다. 손잡이에 새겨진 '역(逆)'자가 보였다.

그 순간, 교수실의 온도가 떨어졌다. 창문은 닫혀 있었다. 에어컨도 켜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공기가 차가워졌다.

그리고 그 차가움 속에서, 누군가의 심장 박동음이 들렸다.

쿵. 쿵. 쿵.

규칙적이지만 약한 박동. 20년 전 손 속에서 멈춘 심장의 박동.

박민준의 심장.

손이 떨렸다. 메스를 떨어뜨렸다. 그것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파란 빛을 냈다.

파란 빛이 교수실 전체를 비추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이 차가워졌다. 가슴이 철렁했다. 호흡이 막혔다.

그 빛 속에서, 환자의 얼굴이 보였다.

박민준의 얼굴.

눈이 떴다. 입이 열렸다.

"너 왜..."

박민준의 입술이 움직였다. 음성이 아니라 맥박으로 들렸다. 심장 박동이 언어가 되어 이준호의 뇌를 울렸다.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가락이 통과했다. 유령을 잡을 수 없었다.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중환자실 의료진의 이름이 떠 있었다.

"교수님, 김철수 환자 응급입니다!"

목소리가 절박했다.

"심박이 불규칙해지고 있어요. 정확히 30일 전 같은 시점입니다. 지금 바로 와야 합니다!"

메스를 집어 들었다. 손목의 카운트다운은 25시간 5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두 번의 기회가 남아 있었다.

환자는 다시 죽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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