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퇴고본

수술실의 형광등이 유독 밝게 느껴지는 오후 2시 47분. 심근경색으로 실려 온 김철수, 58세 남성의 가슴이 벌어져 있었다. 이준호의 손은 메스를 잡은 지 정확히 3시간 42분이 지났고, 관상동맥 우회로술의 마지막 봉합 단계에 들어섰다.

"혈류 안정적입니다, 교수님."

강하은 수간호사의 목소리가 헬멧 안으로 울려 들어왔다. 모니터에서는 환자의 심박이 규칙적으로 올라왔다. 이준호는 마지막 한 땀을 놨다. 봉합선이 완벽했다. 그의 손은 항상 완벽했다. 20년 전을 제외하고.

"좋습니다. 종료하겠습니다."

의료진들이 박수를 쳤다. 수술실 안에서는 그럴 수 없지만, 벽 너머 대기실의 인턴들이 "완벽하네요"라고 중얼거렸을 것이다. 이준호는 수술복을 벗으며 한 발 물러섰다. 수술복 안 셔츠의 등은 이미 땀에 젖어 있었다. 수술실 온도는 항상 18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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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실의 모니터 앞에서 강하은은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3시 14분.

김철수의 심박이 정상 범위로 돌아온 지 정확히 8분. 혈압 118/76. 산소포화도 98%. 모든 수치가 완벽했다.

그런데 오후 3시 22분, 강하은은 차트에 적힌 글씨를 봤다.

'김철수, 사망 예상 시각: 오후 3시 22분 ± 2분.'

그 아래로 날짜가 하나 더 있었다.

'30일 후, 동일 시각.'

강하은의 손이 떨렸다. 차트가 손에서 떨어질 뻔했다. 그 순간, 모니터의 음파가 변했다.

삐... 삐... 삐...

규칙이 깨졌다. 심박이 급격히 상승했다. 119, 127, 135.

강하은은 즉시 응급 호출을 눌렀다. 의료진들이 달려왔다. 그리고 그 순간, 이준호가 나타났다.

"상태?"

"심박이 갑자기 상승했습니다. 혈압도 올라가고..."

이준호는 환자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단 3초. 그 순간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119에서 85로.

127에서 82로.

135에서 79로.

마치 역행하듯이.

"모니터 오류였나 봅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하지만 강하은은 그의 손을 봤다. 손가락이 환자의 가슴 위에서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느끼고 있는 것처럼.

"교수님, 혹시..."

"강하은, 당신이 본 것은 정확히 기록하세요. 심박 급상승, 원인 미상, 자연 회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준호의 눈이 그녀를 향했다. 경고의 눈빛.

"알겠습니다."

강하은은 고개를 떨어뜨렸지만, 그녀의 눈은 여전히 이준호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그의 주머니를 향했다. 무거운 것이 그곳에 있었다. 손을 뻗어 메스를 촬영하려 했지만, 이준호가 몸을 돌렸다. 차트의 모순을 증명하고 싶은 절박함이 그 눈빛에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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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은 오후 4시 30분에 시작되었다. 최진우 과장이 자료를 펼쳤다. 표 위에는 숫자들이 가득했다. 생존율, 사망률, 합병증 발생률. 모두 이준호의 이름 옆에 붉은색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교수님, 최근 3개월간 환자 사망률이 평균 32%입니다. 심장외과 전체 평균은 8.7%인데..."

최진우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기저 질환입니다."

이준호는 자료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모두 고위험 환자들입니다. 심근경색 3기 이상, 다발성 협착증. 이미 진행된 질환들이죠. 의료 과실이 아닙니다."

민준호 펠로우가 차트 위에서 눈을 떴다. 레지던트 3년차, 아직 가슴에 천진함이 남아 있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교수님, 제가 본 차트에는..."

민준호가 종이를 내밀었다. 그 위에는 두 개의 기록이 나란히 있었다.

"김철수 환자의 회복실 기록입니다. 오후 3시 14분의 심박수는 78입니다. 그런데 같은 환자의 중환자실 입실 기록에는 오후 3시 22분, 심박수 145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민준호의 손가락이 종이 위를 따라갔다.

"8분 사이에 67의 변화가 있었다는 건데, 이동 중 스트레스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그리고 사망 예상 시각이 정확한 시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준호의 눈이 민준호를 향했다. 가는 눈길. 말하지 않는 경고.

"당신이 뭔가 의심하고 있다는 건가?"

민준호의 입이 다물어졌다. 하지만 그는 계속했다.

"이건 뭔가 이상합니다."

"이상하다고?"

이준호가 일어섰다. 그의 그림자가 민준호를 덮었다.

"당신은 아직 의사가 아닙니다. 펠로우는 관찰자입니다.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이 하는 것은 배움이 아니라 의심입니다."

민준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환자의 수치 변화는 의학적으로 설명 가능합니다. 회복실에서 중환자실로 이동할 때의 스트레스, 환경 변화로 인한 교감신경 활성화. 당신이 본 것은 의료 과실이 아니라 정상적인 생리 반응입니다."

"그렇다면 사망 예상 시각은..."

"확률 계산입니다. 심장외과 의사는 환자의 예후를 예측합니다. 당신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이 분야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최진우가 기침을 했다.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이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의심하지 말아라. 그게 너한테 좋다."

민준호는 차트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그의 손가락이 '30일 후'라는 글씨 위를 따라갔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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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실은 오후 5시 47분이 되어 조용했다. 이준호는 책장 앞에 섰다. 의학 서적들이 가득한 책장 뒤쪽, 손가락 한 뼘 정도 들어간 공간에 동양 고전들이 숨겨져 있었다. 명리학, 도교 경전, 고대 의술 기록. 20년 전부터 모아온 것들이었다.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

《귀곡자》의 가죽 표지를 집어 들며 이준호는 한숨을 쉬었다. 책장의 먼지가 자욱했다.

책을 펼치는 순간, 낡은 종이가 떨어져 내렸다. 편지였다. 봉투 자체는 없었고, 접혀 있는 백지만 남아 있었다. 그 아래로 무언가 더 떨어졌다.

메스였다.

이준호는 편지를 집어 들었다. 글씨는 가늘고,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잉크는 오래되어 검게 변해 있었다.

'당신의 손으로 죽인 자를 당신의 손으로 살릴 기회를 준다. 역행의 대가는 30시간의 생명력. 시간이 정지된 역행 공간에서 과거를 수정하라. 그것이 유일한 속죄의 길이다.'

이준호의 손가락이 글씨 위를 따라갔다. 20년을 기다려온 편지. 그것이 명확했다. 역행이란 시간을 되돌리는 것. 그리고 그 대가는 30시간의 생명. 환자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죽는 것.

메스를 집어 들었을 때, 손잡이에 새겨진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逆.

역.

은빛이 아니었다. 손잡이는 검은빛이었고, 글자만 미세한 홈으로 파여 있었다. 하지만 그 홈이 빛을 마주치는 순간, 무언가가 반짝였다. 현실의 빛인지, 다른 무엇인지 이준호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손에 전해지는 무게감이 있었다. 무게감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이상한 감각.

메스를 들고 있는 동안, 그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20년 동안 멈춰 있던 심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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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로 향하는 복도는 백색이었다. 모니터의 불빛이 창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준호는 메스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들어섰다.

김철수는 이미 회복실을 거쳐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가슴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고, 옆에는 심전도 모니터가 규칙적으로 울리고 있었다. 한 줄, 한 줄, 한 줄. 정상적인 박동.

이준호는 모니터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역행이라... 시간을 되돌린다면?"

메스의 무게감이 다시 전해져 왔다. 주머니 안에서. 손을 주머니에 넣으려는 순간, 모니터의 음파가 변했다.

삐... 삐... 삐...

규칙이 깨졌다. 환자의 심박이 불규칙해졌다. 145, 156, 168.

"교수님, 어디 가세요?"

강하은이 뒤에서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이준호의 팔목을 스쳤다. 그 순간, 모니터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한 줄, 한 줄, 한 줄. 다시 규칙적이 되었다. 심박수는 78로.

이준호는 천천히 돌아섰다.

"확인해 봤습니다. 환자는 안정적입니다."

"그런데 방금 심박이..."

"모니터 오류입니다."

이준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움직이고 있었다. 강하은이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이준호를 오래 봤다. 7년 동안. 그의 눈이 움직인 것은 처음이었다.

"교수님, 혹시 환자분이 정말로..."

"강하은."

이준호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강하은은 입을 다물었다. 그 이름을 부르는 것 자체가 경고였다.

"당신이 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이 들은 것도 없습니다. 당신이 의심하는 것도 없습니다. 이해합니까?"

"예."

강하은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여전히 이준호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그의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무언가를 향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 눈빛에 담겨 있었다.

이준호가 중환자실을 나가자, 모니터는 다시 한 번 불규칙해졌다. 삐, 삐, 삐. 정확히 5초 동안. 그 다음,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복도 끝에서 이준호는 발걸음을 멈췄다. 주머니 안의 메스를 만져 봤다. 손잡이의 홈. 역(逆)자. 그것이 맥박처럼 울리고 있었다. 또는 그렇게 느껴졌다.

30일. 정확히 30일.

환자는 죽을 것이다. 다시. 또 다시. 그것이 저주의 법칙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었다. 이번에는 역행이 있었다. 되돌림이 있었다. 다시 시도할 기회가 있었다.

이준호는 주머니 안에서 메스를 꺼내 들었다. 손잡이가 그의 손가락과 맞았다. 완벽하게. 마치 처음부터 그의 것인 양.

복도의 형광등이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그 순간, 병원의 로비 쪽에서 발걸음이 들려왔다. 천천하고 절뚝거리는 발걸음. 이준호는 그 소리를 들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볼 필요가 없었다. 왠지 알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20년 동안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하지만 이제 다를 것이었다.

메스의 무게가 점점 변했다. 무거워지는 것도, 가벼워지는 것도 아닌 이상한 감각. 이준호는 구분할 수 없었다. 다만 손가락이 메스를 놓지 않았다. 절대로 놓을 수 없었다.

복도 끝의 창밖으로 서울의 저녁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해가 지는 시간. 정확히 오후 6시 23분.

정확히 30일 뒤, 김철수는 이 시간 무렵 죽을 것이었다.

그 전에, 이준호는 메스를 사용해야 했다.

복도의 형광등이 다시 깜빡였다. 그 빛 사이로, 무언가 다른 것이 보였다. 환자 기록실의 불빛, 수술실의 적색 표지, 그리고 누군가의 눈빛. 멀리서. 아주 멀리서. 하지만 분명히 자신을 향하고 있는 눈빛.

그 눈빛은 박민준의 것이었다.

이준호의 손가락이 메스의 손잡이를 더 깊숙이 쥐었다.

역행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메스의 손잡이에서 올라오는 진동. 마치 심장의 박동처럼. 아니, 그것이 심장의 박동이었다. 자신의 것인지, 환자의 것인지, 아니면 박민준의 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 박동이.

복도의 벽이 흔들렸다. 아니, 시간이 흔들렸다.

"잠깐."

이준호가 중얼거렸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역행을 사용하려면 환자 곁에 있어야 했다. 손으로 환자를 만져야 했다. 메스를 환자의 심장에 닿게 해야 했다. 적어도 그렇게 느껴졌다. 메스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는 듯했지만, 그의 몸은 아직 준비 상태가 아니었다.

이준호는 메스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진동이 멈췄다. 순간, 병원 전체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형광등의 깜빡임도. 로비 쪽에서 들리던 발걸음도. 모든 것이.

그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준호."

이준호의 몸이 경직되었다. 그 목소리는. 20년을 견뎌낸 목소리. 죽음의 목소리.

천천히 돌아섰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빈 복도. 형광등. 환자 기록이 정렬된 벽면. 그리고 병원의 침묵.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이준호는 분명히 느꼈다. 박민준의 존재. 그의 원념. 20년 동안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것.

"환자 상태를 먼저 확인하겠습니다."

이준호가 자신에게 말했다. 자신의 냉정함을 되찾기 위해. 그는 다시 중환자실로 향했다.

---

중환자실의 모니터들은 여러 환자의 심박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 중 김철수의 모니터는 정상이었다. 한 줄, 한 줄, 한 줄. 규칙적인 리듬.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교수님."

강하은이 그의 옆에 섰다.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었다. 차트에서 본 '30일 후'라는 글씨.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고 싶었다. 동시에 이준호를 지키고 싶었다. 그 두 욕구 사이에서 그녀는 흔들리고 있었다.

"환자 상태?"

"안정적입니다. 혈압도 정상이고, 산소포화도도 97%입니다. 수술 직후 회복 곡선도 양호합니다."

이준호는 모니터를 바라봤다. 30일. 정확히 30일 뒤에 이 선은 곤두박질칠 것이었다. 그것이 저주의 법칙이었다. 하지만 강하은은 그것을 모를 것이었다. 알아서는 안 될 것이었다.

"좋습니다. 4시간마다 활력징후를 체크하고, 심전도는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세요."

"예, 교수님."

이준호가 돌아서려는 순간, 강하은이 다시 말했다.

"교수님, 혹시... 환자분에게 뭔가 특별한 상태가 있으신 건가요?"

"특별한 상태?"

"네. 아까 차트에 뭔가 적으셨던데..."

이준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강하은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

"간호사는 의사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업무입니다. 분석은 의사의 몫입니다."

"죄송합니다."

강하은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여전히 환자의 수액 주입구 근처에 있었다. 작은 움직임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마치 환자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이준호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7년 동안 본 그 손. 그 손이 자신을 구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구할 수 없었다. 누구도 구할 수 없었다. 저주는 개인적인 것이었고, 그의 죄는 오직 그 자신만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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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을 나온 이준호는 다시 복도로 나섰다. 주머니 안의 메스가 여전히 맥박처럼 울리고 있었다. 또는 그렇게 느껴졌다.

30일.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준호는 복도를 따라 걸었다. 형광등의 불빛 아래로. 그리고 그 불빛 사이의 어둠 속으로.

누군가의 눈빛이 여전히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멀리서. 아주 멀리서. 하지만 분명히.

이준호는 그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역행의 대가는 무엇인가.

메스가 대답했다. 주머니 안에서. 손잡이의 홈이 더욱 깊어지는 것처럼. 역(逆)자가 더욱 선명해지는 것처럼.

그것은 시간이었다. 되돌려진 시간만큼의 생명력.

30시간.

환자를 살리기 위해 30시간의 생명을 소모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역행 공간에서 시간이 정지된 가운데, 과거를 수정하는 동안 자신의 생명이 흘러나간다는 뜻이었다.

이준호의 발걸음이 멈췄다. 복도의 중간쯤. 형광등 아래.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이 손이 환자를 살릴 수 있다면, 그 대가로 자신이 죽는 것은 어떤가.

20년 동안 죽어 있던 이 마음이, 이제 다시 뛸 수 있다면.

메스를 다시 꺼냈다. 손잡이의 역(逆)자가 반짝였다.

"해보자."

이준호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복도의 모든 형광등이 동시에 깜빡였다.

---

중환자실로 돌아간 이준호는 김철수의 침대 옆에 섰다. 환자는 여전히 깊은 수면 상태였다. 가슴에서는 새로운 심장이 규칙적으로 뛰고 있었다.

"역행."

이준호가 중얼거렸다.

메스를 들어 올렸다. 손잡이의 역(逆)자가 은색으로 반짝였다.

환자의 가슴 위에 메스를 가져갔다. 붕대 위로. 심장이 뛰는 바로 그 자리로.

"교수님!"

강하은이 외쳤다. 그녀가 달려왔다. 이준호를 막으려고.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메스가 붕대를 스쳤다.

그 순간, 세계가 뒤틀렸다. 신체가 무의식으로 빨려 들어가는 감각. 시간이 거꾸로 감기는 음향 효과. 모니터의 신호음이 역방향으로 울려 퍼졌다. 수술실로. 20년 전의 수술실로. 환자의 심장이 다시 열리는 시간으로. 메스가 역방향으로 움직이는 시간으로. 죽음이 되돌려지는 시간으로.

강하은은 메스의 손잡이를 보았다.

역(逆)자가 검은빛에서 흰빛으로 변했다. 마치 시간 자체가 역행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순간, 이준호의 몸이 변했다.

그의 눈이 감겼다. 의식이 어딘가로 떨어져 나갔다. 30시간의 생명력이 메스를 통해 흘러나갔다. 시간으로. 역행으로. 되돌려진 시간 속으로.

이준호의 몸이 쓰러지려 했다.

강하은이 그를 붙잡았다.

"교수님!"

그의 몸은 점점 가벼워졌다. 마치 모든 힘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그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입술의 색이 빠져나갔다. 마치 생명 자체가 메스를 통해 빨려 나가는 것처럼.

모니터는 여전히 울리고 있었다.

삐... 삐... 삐...

환자의 심박이 정상이었다. 회복되고 있었다. 죽음이 되돌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강하은의 품에 안긴 이준호는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다.

"교수님!"

강하은이 비명을 질렀다.

이준호의 눈이 떠졌다. 하지만 그 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의 몸을 사용하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해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가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준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더 깊고, 더 차갑고, 더 먼 곳에서 울려 오는 목소리였다.

"환자를 살렸다."

강하은의 손이 더욱 떨렸다. 그 목소리는 이준호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군가 다른 것의 목소리였다.

그 순간, 이준호의 몸이 무너졌다. 무릎이 꺾이면서. 마치 모든 힘이 빠져나간 듯이.

강하은이 그를 붙잡았다.

"교수님!"

하지만 이준호는 이미 의식을 잃고 있었다.

그의 무의식 속에서는 수술실이 펼쳐졌다. 메스가 환자의 심장을 수정하고 있었다. 20년 전 실패했던 그 수술. 이번에는 다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메스는 정확하게 움직였다. 시간이 역행하면서, 죽음이 되돌려지면서. 봉합선이 완벽해졌다.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박민준이 다시 살아났다.

그의 눈이 떠졌다. 수술실의 형광등을 바라봤다. 그리고 자신을 수정하고 있는 이준호를 봤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것이 증오의 눈빛이 아니었다.

생명의 눈빛이었다. 죽음에서 벗어난 자의 눈빛. 두 번째 기회를 얻은 자의 눈빛.

이준호는 그 눈빛을 느꼈다. 역행 공간에서. 시간이 정지된 가운데. 메스가 마지막 봉합을 마치는 순간.

그 눈빛이 변했다. 증오에서 생명으로. 죽음에서 구원으로. 그리고 이준호는 깨달았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자신의 생명이 흘러나가고 있다는 것을. 30시간이 지금 이 순간 소모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환자는 살아난다는 것을. 박민준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그것이 속죄였다.

강하은은 그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스승이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알면서. 그리고 그가 가진 메스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처음으로 깨닫고 있었다.

역행.

과거로의 귀환.

그리고 그 대가로 소모되는 생명.

30시간.

강하은의 눈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연민이 있었다.

"교수님..."

그녀가 쓰러진 이준호의 얼굴을 내려다봤을 때, 그의 입가에는 처음으로 눈물이 맺혀 있었다.

모니터는 계속 울리고 있었다.

삐... 삐... 삐...

환자는 살아 있었다.

그리고 이준호는.

이준호는 시간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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