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실의 폭로
밤 자정을 넘긴 새벽 1시 47분, 준호는 거울을 봤다.
거실 천장의 형광등이 차갑게 깜빡였다. 손가락도, 눈썹도 투명했다. 거울 속 얼굴을 찾으려 했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낯선 것도 아니고, 무서운 것도 아니었다. 단지 없었다. 피부 위에 무언가가 완전히 벗겨져 나간 느낌. 마치 벗겨진 풍선처럼.
손으로 얼굴을 만져보면 손가락이 관통했다.
아버지가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소파 등받이에 기대앉은 채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의 눈은 지난 며칠간 본 것과 달랐다. 분노 아래 절망이 깔려 있었다.
"지하에 뭔가 있지?"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넌 뭘 하고 있어, 준호?"
준호는 입을 열었다. 거짓말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눈을 보는 순간 무언가가 꺾였다.
"모르겠어요."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일어났다. 소파에서 천천히, 결연한 움직임으로. 손에는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옛 사진첩 속 한 장이었다. 여섯 살 준호가 아버지의 어깨에 타고 있었다. 준호의 얼굴은 밝았다.
"이건 넌데—"
아버지가 사진을 들었다 놨다.
"이건 너고, 이건 나고, 이건 너희 엄마다. 근데 지난주에 넌 거울을 봤을 때 자기 얼굴을 못 알아봤지? 넌 생각했어. '이 사람이 누구지?'라고."
아버지의 손가락이 사진 속 세 사람을 하나씩 가리켰다. 손이 떨렸다.
"빚이 언제부턴가 줄었어. 조금씩, 조금씩. 매달 밤 11시에 넌 밖에 나가고, 자정쯤에 들어와. 그럼 다음날 은행에서 연락이 와. '이번 달 이자금 빠져나갔습니다'라고."
아버지가 한 발 나아갔다.
"넌 너 자신을 팔았어. 뭔가를 잃고 있어. 그게 뭐야, 준호? 말해."
준호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러나 투명한 목구멍에서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지하 30층 아래에 뭔가 있지? 그곳에서 넌 뭘 하는 거야?"
아버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그것은 분노가 아니라 공포였다. 준호는 깨달았다. 아버지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자신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계약했어요."
준호가 말했다.
"누구와?"
"모르겠어요. 그냥 계약했어요. 아버지 빚을 대신 갚으려고."
아버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준호는 모든 것을 말했다. 계약서의 조항들. 매달 밤 11시부터 자정까지 지하 30층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 거기서 타인의 빚을 신체로 흡수한다는 것. 그리고 돌아올 때마다 1년의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 여섯 번 내려갔으니 6년이 사라졌다는 것. 어머니의 얼굴도, 목소리도, 그녀와 함께한 모든 것도.
"36번째 계약 후에는..."
준호가 말을 멈췄다.
"뭐야? 36번째 후에는?"
"돌아올 수 없어요. 완전히 사라져요. 기억이 아니라 자신이."
아버지가 뒷걸음질쳤다. 소파 등받이에 손을 짚었다. 주름진 손가락이 천천히 경련했다.
"내가... 내가 너한테 이렇게까지 하게 했어?"
아버지의 목소리가 깨졌다.
"내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어?"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투명한 목이 울렸다. 그러나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투명한 얼굴에서는 눈물도 투명했고, 따라서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준호를 안았다. 팔이 투명한 아들의 몸을 관통했다. 아버지의 눈물만이 현실이었다. 그것이 준호의 투명한 어깨에 떨어졌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아버지가 반복했다.
그 반복 속에서 준호는 생각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 왜 자신에게 안기고 있는지. 왜 울고 있는지. 기억 속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단지 피부의 온기만 있었다. 그것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준호의 어깨에서 손을 떼었다. 창백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봤다. 결정이 내려진 눈이었다.
"미안해. 내가 이렇게 만들었어. 이제 내가 할 일이 있어."
아버지가 부엌으로 걸어갔다.
준호는 따라갔다. 투명한 발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부엌의 약장을 열었다. 손떨림이 심했다. 수십 개의 약 병들이 떨어졌다. 바닥에 흩어진 약들이 부서졌다.
아버지는 손에 약 한 병을 집었다. 수면제였다. 한 달 전 병원에서 처방받은 것이었다. 약병의 뚜껑을 열었다.
"내가 죽으면 빚이 사라질 거야."
아버지가 중얼거렸다.
"빚이 사라지면 넌 계약을 끝낼 수 있을 거고. 그 귀신은 채무자가 없으면 거래를 할 수 없을 거고."
아버지의 손이 떨렸다. 약병에서 약 한 알이 손바닥에 떨어졌다.
"그럼 넌... 살 수 있을 거야."
아버지는 빚의 생태계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빌린 돈이 이자를 낳고, 이자가 다시 빚을 낳고, 그 빚이 아들을 집어삼키는 구조를. 그리고 그 구조에서 빠져나갈 유일한 방법이 자신의 죽음이라는 것을. 아들의 투명한 몸으로 기억이 사라지는 것처럼, 자신의 죽음으로 빚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손가락이 약을 입으로 가져갔다.
"아버지, 아버지가 누구예요?"
준호가 묻던 순간, 뭔가가 깨졌다.
아버지의 손이 떨어졌다. 약병이 바닥에 떨어졌다. 알약들이 부엌 타일 위에 흩어졌다.
아버지는 움직이지 않았다. 단지 서 있었다.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면서.
"넌... 넌 나를 모르니?"
아버지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이미 알고 있던 것의 확인.
준호는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봤다. 투명한 눈으로. 그 얼굴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알고 싶었지만, 기억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현재의 감각만 있었다. 낯선 사람의 눈물. 낯선 사람의 절망.
그 순간, 준호의 투명한 가슴에 무언가가 느껴졌다. 손가락이 아니었다. 더 깊은 무언가가 누르고 있었다.
귀신이 현실에 개입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손가락이 약을 삼키는 바로 그 순간, 준호의 기억이 동시에 소멸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통해 준호의 빚을 흡수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절망을 통해. 이것도 계약의 일부였다. 이것도 거래였다.
준호의 투명한 가슴이 무너졌다. 안에서 뭔가가 빠져나갔다. 죄책감. 자책. 사랑. 그리움. 모든 것이 투명한 몸을 통과하여 사라졌다.
"미안해... 미안해..."
아버지가 다시 반복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준호의 귀가 투명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아버지가 현관으로 나갔다. 준호는 따라갔다. 문이 열렸을 때, 경찰 두 명이 서 있었다.
"이영환 씨입니까?"
한 명이 물었다.
"네, 근데..."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자살 시도. 지금 이 집에서 뭔가 있었나요?"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뒤를 가리켰다. 부엌 바닥의 약들.
경찰들이 들어왔다. 한 명은 아버지를 소파로 안내했고, 다른 한 명은 무전기를 들었다.
"본부, 이곳은 약 과다복용 시도 가능성. 구급차 출동 요청."
무전기에서 정적만 나왔다. 그리고 갑자기 음성이 터져나왔다.
"응답 불가. 현재 본부 시스템 장애 중. 현장에서 직접 판단하세요."
경찰이 무전기를 내려놨다. 뭔가 이상했다. 그의 표정이 변했다.
"선배, 뭔가..."
"알아. 나도 느껴."
다른 경찰이 아버지에게 다시 물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자살 시도예요? 누가 신고했어요?"
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했어요."
경찰들이 시선을 교환했다.
"왜요?"
"내 아들이... 내 아들이..."
아버지가 준호를 가리켰다. 그러나 준호는 거기 있지 않았다. 준호는 이미 투명했다. 아버지의 손가락이 허공을 가리키고 있었다.
경찰들이 아버지를 바라봤다. 정신 상태 이상의 표정으로.
"119 출동 ETA 5분."
무전기가 다시 울렸다.
한 경찰이 창밖을 봤다. 건설 현장 방향이었다. 그린힐 타워. 야간 조명이 지금도 밝게 켜져 있었다. 33층까지 올라와 있었다. 34층의 골조가 서서히 세워지고 있었다.
"이상하네요."
경찰이 중얼거렸다.
"저 건물 근처에서 지난 6개월간 신고가 자주 들어왔어요."
다른 경찰이 휴대폰을 들었다. 신고 기록을 확인했다. 손가락이 화면을 스크롤했다. 멈췄다.
"선배. 이거..."
"뭐가?"
"패턴이 있어요. 모두 밤 11시에서 자정 사이에 신고돼요."
경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신고자는 항상 다르고, 정신 상태가 항상 이상하고, 그리고..."
"그리고?"
"항상 아이 한 명씩 실종돼요."
경찰들의 눈이 마주쳤다. 창밖을 향한 시선이 교차했다. 그린힐 타워. 밤의 어둠 속에서도 건설 조명이 밝게 켜져 있었다. 33층까지 올라와 있었다. 34층의 골조가 서서히 세워지고 있었다.
무전기가 다시 울렸다. 그러나 이번엔 음성이 아니라 잡음이었다. 길고 끔찍한 잡음. 마치 누군가가 주파수를 강제로 방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경찰들이 무전기를 들었다 놨다.
밤 11시 59분이었다.
준호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빨려가는 것이었다. 현관 바닥이 열렸다. 그 아래에는 계단이 있었다. 아니, 계단이 아니라 어둠이었다. 지하 30층을 넘어가는 어둠.
아버지가 준호를 잡으려 했다. 투명한 손은 아무것도 잡을 수 없었다.
"준호!"
아버지가 절규했다.
"준호!"
경찰들이 아버지를 붙잡았다. 아버지는 저항했다. 현관 바닥의 열린 틈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곳은 이미 닫혀 있었다. 다시 일반적인 목재 바닥이 되어 있었다.
준호는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자신이 구한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 자신이 잃은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 그리고 이제 둘 다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
밤 12시 00분.
계약이 시작되었다.
그 순간, 아버지의 얼굴이 준호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마지막 조각이 검게 지워졌다. 아버지의 목소리, 아버지의 눈, 아버지의 손. 모두 사라졌다. 투명한 준호의 몸을 통과하며, 영원히.
지하의 어둠 속에서 준호는 깨달았다.
자신이 구한 것은 아버지의 생명이 아니었다. 자신이 잃은 것도 기억이 아니었다.
자신이 거래한 것은 모든 사랑이었다. 모든 연결이었다. 모든 이유였다.
그리고 그 거래는 이제 돌이킬 수 없었다.
경찰은 여전히 아버지를 붙잡고 있었다. 다른 경찰이 무전기를 다시 들었다.
"본부, 본부?"
정적. 길고 끔찍한 정적.
"응답해."
여전히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았다. 경찰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옆의 경찰을 봤다. 그들의 눈빛이 교환되었다. 뭔가 체계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신호.
"119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약 과다복용의 흔적이 그의 입 주변에 남아 있었다. 그의 손이 떨렸다. 그러나 떨림은 독극물 때문이 아니었다.
"아저씨, 당신 이름이 뭐세요?"
경찰이 물었다.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닫았다. 자신의 이름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기억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름이 있었던 기억이 없었다. 단지 절망만 남아 있었다.
한 경찰이 창밖을 봤다. 건설 현장 방향이었다. 그린힐 타워. 야간 조명이 지금도 밝게 켜져 있었다. 33층까지 올라와 있었다. 34층의 골조가 서서히 세워지고 있었다. 마치 위쪽으로 뻗어나가는 손가락처럼.
"이상하네요."
경찰이 중얼거렸다.
"저 건물. 지난달에도 여기서 신고가 들어왔어요. 그리고 그 전달에도."
"뭐가?"
"자살 시도. 정신 상태 이상. 다 이 근처에서."
다른 경찰이 휴대폰을 들었다. 신고 기록을 확인했다. 손가락이 화면을 스크롤했다. 멈췄다.
"선배. 이거..."
"뭐가?"
"기록이... 지워지고 있어요."
"뭐?"
"지금 당장. 내 휴대폰에서. 이 신고 건에 대한 모든 정보가."
경찰이 화면을 들었다 놨다. 비어 있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뭐가 하는 짓이야?"
다른 경찰도 휴대폰을 확인했다.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기록이 사라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진술. 아버지의 얼굴. 모두 디지털 세계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119가 도착했다.
요원들이 아버지를 들것에 눕혔다. 아버지는 저항하지 않았다. 저항할 이유를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마치 누군가를 붙잡고 싶지만 붙잡을 수 없는 손처럼.
"아저씨, 이름이 뭐세요?"
119 요원이 물었다.
아버지는 대답하지 못했다.
경찰이 건설 현장 방향을 봤다. 그린힐 타워에서 불빛이 하나씩 꺼지고 있었다. 차례대로. 마치 누군가가 계획적으로 불을 끄고 있는 것처럼.
"선배, 저 건설 현장에 신고를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경찰이 물었다.
다른 경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무전기를 들었다. 다시 시도했다.
"본부?"
정적. 그리고 그 정적 속에서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 멀리서. 매우 멀리서. 지하에서.
"뭐가 하는 짓이야?"
경찰이 중얼거렸다.
건설 현장에서 새벽의 어둠 속으로, 지하 30층을 넘어가는 어둠 속으로, 준호는 계속 내려가고 있었다. 그의 투명한 몸을 통해 기억이 흘러내렸다. 아버지와 함께 본 불꽃축제. 아버지의 웃음소리. 아버지가 자신을 안던 팔. 아버지의 손.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것은 하나. 자신이 왜 이 모든 것을 했는지, 그 이유도 사라졌다는 것.
지하 30층 아래의 어둠 속에서 계약 귀신이 준호의 가슴을 다시 눌렀다.
"아직 29번이 남았다."
귀신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제부터가 진정한 거래다. 아버지까지 포함된 거래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준호는 깨달았다.
자신의 아버지가 현실에서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자신의 기억이 소멸하는 것과 동시에, 아버지의 기억도 소멸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것이 계약의 진정한 조항이었다는 것을.
지상의 아버지는 정신과 병원으로 향했다. 들것 위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그의 입술은 움직였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려 했지만, 이름은 없었다. 단지 무언가가 빠져나간 그 자리에 끝없는 공허만 남아 있었다.
경찰은 그린힐 타워를 봤다. 불빛이 완전히 꺼졌다. 건물은 어둠 속에서 거대한 입처럼 벌어져 있었다.
그리고 건설 현장 아래에서, 지하 30층을 넘어가는 깊이에서, 무언가가 계속 호흡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