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기억의 복구

황금빛이 역방향으로 흘렀다.

이준의 손가락에서 나오는 빛이 서연의 몸을 감싸는 순간, 그것은 지우는 불이 아니라 되돌리는 불이었다. 15년간 누적된 황금빛이 한 점으로 응축되었다가 폭발했고, 기억의 도서관이 흔들렸다. 책장들이 무너지고, 벽의 황금 글씨들이 떨어져 내렸다.

서연의 몸이 경직되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비명이 아니었다. 말이었다. 과거의 말이, 현재의 목소리로 흘러나왔다.

"이준아."

15년 전 밤의 음성이 현재를 관통했다. 이준은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게 파고들었다. 황금빛이 그녀의 팔뚝을 타고 흐르고, 그 경로를 따라 기억이 되살아났다.

동쪽 탑의 최상층. 별이 가득한 밤하늘. 창틀에 기대앉은 두 사람. 손을 맞잡고 있는 손. 온기. 떨림. 그리고 절망.

"우리 같이 가자. 이 궁궐을 나가자."

서연의 과거 목소리가 현재의 입술에서 나왔다. 이준의 호흡이 가빠졌다. 가슴이 철렁했다.

"말 준비했어. 말만 타면..."

"서연."

이준이 말했다. 현재의 음성으로.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뭐라고 하고 싶어?"

"미안해."

황금빛이 더 강렬해졌다. 두 개의 시간이 한 점에서 만났다.

기억의 도서관의 벽이 흙빛으로 변했다. 돌로. 그것은 궁궐의 벽이었다. 어둠 속에 발자국들이 들렸다. 복도를 달리는 소리. 그리고 비명.

"황태자를 죽여."

왕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웠던 목소리. 황금빛으로 태워버린 목소리가 다시 살아났다.

"예, 폐하."

이준이 무릎을 꿇었다. 기억 속에서도, 현재에서도. 그의 손이 황금빛으로 타올랐다. 하지만 그 불은 누군가를 지우려는 불이 아니었다. 그것은 명령을 거부하려는 불이었다. 이준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리고 서연도."

왕이 계속 말했다.

"그녀의 기억을 완전히 지워. 그래야 그녀도 살 수 있어."

이준의 손이 떨렸다. 과거에서도, 현재에서도.

"황태자가... 반역자가 아니라면?"

이준이 물었다. 자신도 기억하지 못했던 자신의 목소리로.

"반역자가 아니라고 해도, 그녀는 내 정통성을 증명하는 증거야. 이 궁궐에서는 증거가 살아 있으면 안 돼."

황금빛이 폭발했다. 그 폭발이 이준의 몸을 관통했다. 그는 깨달았다. 지웠던 것들이 돌아올 때마다, 자신이 한 일들을 기억할 때마다, 자신이 그만큼 죽어가는 것이었다.

"이준."

서연이 그의 팔을 잡았다. 황금빛 속에서.

"나를 기억해. 나를 지운 당신의 이유를 기억해."

"내가... 왜?"

이준이 물었다. 기억이 아직 불완전했다.

"왕의 명령이었어."

"그게 아니야."

서연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현재의 목소리로. 그녀의 눈이 열렸다. 황금빛 속에서. 검은 불이 그녀의 눈을 채웠다.

"당신은 왕의 도구가 아니었어. 당신은 피해자였어."

"그게 무슨..."

황금빛이 이준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것은 고통이 아니었다. 그것은 깨달음이었다.

어린 나이에 궁궐로 들어온 것. 왕이 자신을 데려간 것. "너는 내 도구가 될 거야"라는 말. 그리고 황금빛 능력의 각인. 모두가 축복이라고 속였던 것들.

하지만 그 능력이 나타나기 전에, 다른 것이 있었다.

"아버지."

이준이 중얼거렸다.

"아버지가..."

말이 끊겼다. 검은 불이 그곳을 감쌌다. 서연의 검은 불이.

"아직 아니야."

서연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이거야. 당신은 왕의 아들이 아니야."

이준의 몸이 멈췄다.

"당신은 황태자의 친형이야."

황금빛이 완전히 꺼졌다. 기억의 도서관 전체가 어둠에 잠겼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검은 불이 타올랐다. 서연의 불이.

15년 전 밤. 궁궐의 또 다른 방. 왕이 아닌 다른 남자가 이준의 손을 잡고 있다.

"내 아들아. 미안해. 이 궁궐에 태어나줘서."

황태자 서준호. 이준의 오빠. 왕이 지웠던 존재.

"내가 왕이 되면, 너를 데려갈게. 우리 함께 나가자."

그 손이 따뜻했다. 그 목소리가 진짜였다. 그것은 지워질 수 없었던 것. 이준의 가슴 한구석에 살아 있던 것.

"오빠가... 죽었어?"

이준이 물었다. 그 질문이 나오는 순간, 나머지 기억들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

황태자의 죽음. 아니, 살해. 왕의 칼이 황태자의 가슴을 꿰뚫는 순간. 그리고 그 뒤에 이준. 절망한 이준. 능력을 사용하려고 손을 들었던 이준.

"이준. 제발."

황태자의 마지막 말.

"서연을 지워. 그래야 그녀가 살아. 그것이... 형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부탁이야."

황금빛이 이준의 손에 타올랐다.

"미안해. 형이 못 지켜줘서."

이준이 서연을 바라봤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들었다. 왕의 명령이 아니었다. 오빠의 부탁이었다.

황금빛이 서연을 감쌌다.

"오빠를... 못 살렸어."

이준이 현재에서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내가 왕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심문관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거야."

서연이 말했다. 검은 불이 더 강해졌다.

"왕이 너를 궁궐에 데려갔던 이유가 뭔지 알아?"

이준이 고개를 들었다.

"황태자가 왕위를 물려받기 전에, 왕은 황태자의 모든 것을 없애고 싶었어. 증거들을. 그리고 너는 그 증거였어. 황태자의 혈족. 그래서 왕은 너를 자신의 아들로 위장했어."

"그럼 내가..."

"너는 왕의 조카야. 황태자의 친형."

황금빛이 완전히 꺼졌다. 그 대신 검은 불이 기억의 도서관 전체를 밝혔다. 책들이 다시 일어섰다. 황금 글씨들이 공중에 떠다니며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림이었다. 15년 전의 궁궐. 그곳에서 살아 있던 사람들.

황태자 서준호. 그의 쌍둥이 누이 서연. 그리고 그들의 형 이준. 세 명이 함께 있는 그림.

"우리가..."

이준이 중얼거렸다.

"가족이었어?"

"그래. 너는 우리 오빠였어."

서연이 말했다. 검은 불이 그녀의 손을 감쌌다.

"그리고 나는 너를 찾았어. 15년 만에."

기억의 도서관의 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래에서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발자국. 여러 발자국. 궁궐의 호위대가 도서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

민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에서. 그녀가 나타났다. 손에 두터운 책 한 권을 들고. 그것은 이준의 일기장이었다. 노란 표지에 흐릿한 글씨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준"

하지만 그 이름 아래에 다른 글씨가 있었다. 펜으로 지워진 것처럼 보였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이준호"

"뭐야?"

이준이 물었다.

"그게..."

"너의 진짜 이름이야."

민서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준호. 황태자 서준호의 형. 너의 아버지는 전 왕이고, 너의 형은 반역자가 아니라 정당한 왕위 계승자야."

호위대의 발자국이 더 가까워졌다. 기억의 도서관의 문이 흔들렸다. 그 순간, 검은 불이 폭발했다.

서연의 검은 불이 문을 향해 날아갔다. 불에 휩싸인 문이 무너져 내렸다. 그 뒤에 나타난 것은 호위대가 아니었다.

남궁현이었다. 그의 손에는 단검이 들려 있었다. 그의 눈에는 결정의 색이 담겨 있었다.

"기억을 되찾았구나, 이준호."

그가 말했다. 그 이름으로. 처음으로.

"이제 너는 선택해야 한다."

남궁현이 한 발 나아갔다.

"이 기억들을 증거로 남기고, 함께 왕을 무너뜨리거나."

그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아니면 모든 것을 다시 지우거나."

이준의 가슴이 철렁했다. 두 선택지 사이에서 그는 찢어질 것 같았다. 형의 부탁. 오빠가 자신에게 남긴 마지막 말. 그것은 이준을 옭아매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지움이 무엇이었는지 알았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살인이었다. 오빠를 죽인 왕을 위한 살인.

복수욕이 치솟았다. 손가락 끝에서 황금빛이 흔들렸다.

"너는..."

이준이 남궁현을 바라봤다.

"누구야?"

"황태자의 혈족이야. 먼 친척이지만."

남궁현이 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걸 알고 있어. 그리고 지금 나는 너를 제안해. 함께 왕을 무너뜨리자."

이준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의 손에서 황금빛이 타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지우는 불이 아니었다. 그것은 복수의 불이었다.

그 순간, 왕의 목소리가 궁궐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이준아. 돌아와."

그 목소리가 이준의 몸을 멈추게 했다. 그것은 명령이 아니라 간청이었다. 처음으로.

"너는 내 아들이야. 내가 너를 기르지 않았나?"

이준의 손이 떨렸다. 황금빛이 흔들렸다. 15년 동안 각인된 복종 본능이 꿈틀거렸다. 왕이 부르면 돌아가야 한다는 본능.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명령이 아니었다. 간청이었다. 그리고 그 간청 속에서 이준은 마침내 깨달았다.

왕은 이준을 사랑한 적이 없었다. 왕은 이준을 도구로 사랑했다. 그리고 그 도구가 자신을 배반하려고 할 때, 왕은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냈다.

두려움.

"나는 당신의 아들이 아니야."

이준이 말했다. 목소리가 차가웠다. 조건화된 복종이 깨지고, 새로운 정체성이 그 자리를 채웠다.

"나는 이준호야. 서준호의 형이고, 서연의 오빠야. 그리고 당신이 죽인 사람들의 복수자야."

황금빛이 다시 폭발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억의 도서관을 향하지 않았다.

궁궐을 향했다.

황금빛이 왕의 침실 문을 관통했다. 목재가 타올랐다. 화염이 왕실의 문서들을 집어삼켰다. 증거들이 재가 되어 흩어졌다.

그리고 그 황금빛이 닿는 모든 곳에서, 왕실의 거짓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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