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기억의 파편

왕의 침실 복도는 깊은 침묵으로 가득했다.

이준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왕 이세준의 발치에서, 머리를 숙인 채. 서연 조사 실패를 보고하는 중이었다.

"조사 결과를 말하거라."

왕의 목소리는 차갑고 건조했다. 이준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다시 열었다.

"기억 추출을 시도했으나, 대상이 부분적 저항을 보였습니다. 황금빛이 역류했고, 조사를 중단했습니다."

거짓이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왕의 발 위에 놓인 자신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이준은 그것을 왕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주먹을 쥐었다. 손가락 끝에서 황금빛이 희미하게 번쩍였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깊은 곳을 꿰뚫어본 것처럼, 몸이 반응했다.

서연을 다시 지우면 된다. 왕의 명령이면 충분하다. 자신의 능력으로 그녀의 기억을 완전히 태워버리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게 맞다. 그게 옳다.

그런데 왜 입이 거짓말을 했는가?

"부분적 저항?"

왕이 일어나며 물었다. 이준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예. 대상의 체질이 이상합니다. 황금빛 능력에 완전히 노출되지 않는..."

"그 여인을 다시 데려와라. 이번에는 완전히 지워라. 이름도, 얼굴도, 숨을 쉬었던 모든 기억도."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이준은 절을 했다. 왕은 돌아섰다. 침실로 들어가는 왕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준은 깨달았다.

자신이 왜 거짓말을 했는지.

그것은 명령이 아니었다. 어떤 이성적 판단도 아니었다. 무언가가, 자신의 깊은 곳에 묻힌 무언가가, 서연을 지우는 것을 거부했다. 그것은 거의 본능에 가까웠다. 마치 자신의 몸이 자신의 의지를 거역하는 것처럼.

이준은 궁궐을 떠났다.

---

그날 밤, 이준은 악몽을 꿨다.

황금빛이 타올랐다. 심문관실의 벽에서, 손가락에서, 공중에서. 그 빛이 그를 감싸며 타오르고 있었다. 피부가 녹아내렸다. 뼈가 드러났다.

누군가가 부르고 있었다.

"이준아."

긴 머리의 여인이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목소리만 들렸다. 그 목소리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고, 그 목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이준, 제발. 나를 기억해 줘."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더 낮은 목소리. 남자였다.

"당신은 죽었어. 당신은 이미 죽었어."

그 말이 반복되었다. 당신은 죽었어. 당신은. 죽었어.

이준은 눈을 떴다.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가슴에서 황금빛이 피어나고 있었다. 손가락 끝에서. 팔 위에서. 가슴팍 정중앙에서. 그가 손을 내려다봤을 때,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떨림만 있었다.

시간은 새벽 4시였다.

이준은 침대에서 내려와 창문으로 갔다. 궁궐의 동쪽 탑이 보였다. 그 탑 위에 초승달이 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또다시 아팠다. 아파서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자신이 무엇을 기억하고 싶어 하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단지 그 탑이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것만 느낄 수 있었다.

---

아침이 되자, 복도에서 민서를 만났다.

그녀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이준 앞에 나타났다. 하얀 옷을 입은 여인. 이준은 처음에 그녀가 왕비의 시녀인 줄 알았다.

"심문관님. 잠시 시간이 되십니까?"

"누구신가?"

"저는 기억지킴이 조직의 민서라고 합니다. 왕비께서 당신을 만나보고 싶어 하시더군요."

거짓이었다. 이준은 그것을 알았다. 민서의 눈빛이 왕비의 눈빛과 달랐다. 이 여인은 자신의 의지로 여기 있었다.

"기억지킴이가 뭐지?"

민서가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슬픈 미소였다.

"당신도 피해자였군요."

그 말이 이준의 가슴을 스쳤다. 손가락이 떨렸다. 손가락 끝에서 황금빛이 희미하게 번쩍였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깊은 곳을 꿰뚫어본 것처럼, 몸이 반응했다.

"피해자? 나는 왕의 도구일 뿐이다."

"정확히 그래서 피해자입니다."

민서가 그를 회랑으로 인도했다. 궁궐의 외진 복도였다. 사람이 거의 없는 곳. 그곳에서 민서는 이준의 손을 잡았다.

"당신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습니다."

이준이 손을 뺐다. 민서는 그것을 받아줬다.

"지워진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당신이 지웠던 사람들의 기억이, 그들의 무의식 깊은 곳에서 계속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악몽으로. 신체 반응으로."

"그게 무슨..."

"당신의 가슴 통증도 그렇습니다. 당신의 손가락 떨림도. 당신이 지워버린 기억이 당신의 몸으로 돌아오고 있는 겁니다."

이준의 숨이 잠깐 멎었다. 악몽 속 목소리가 떠올랐다. 긴 머리의 여인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 나를 기억해 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목소리를 들었던 적이 있다. 분명히. 그 여인의 손을 잡아본 적이 있다. 그 손의 온기를.

그런데 지금 기억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은 것은 가슴의 통증뿐이었다.

이준은 민서의 말을 거부하려 입을 열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의 몸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가락의 떨림이, 가슴의 통증이 모두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그 여인... 서연은 당신의 첫사랑이었습니다."

민서의 목소리가 계속되었다. 이준은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몸이 경직되었다.

"당신은 그녀와 함께 도망칠 계획을 세웠어요. 15년 전 그 밤, 황태자 암살 사건이 일어났고, 당신은 왕의 명령으로 그녀의 기억을 지워버렸습니다."

"아니다."

이준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다. 그것은 부정의 목소리였다. 거부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당신도 그 기억을 함께 잃었어요. 하지만 당신의 몸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거짓이야."

"가슴의 통증이 거짓입니까? 손가락의 떨림이 거짓입니까?"

이준은 민서에게서 눈을 돌렸다. 회랑의 끝. 그곳에 동쪽 탑으로 가는 복도가 보였다. 그곳으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무언가가 그를 그곳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기억인지, 본능인지, 아니면 자신의 몸이 벌인 반란인지.

"지워진 기억을 완전히 되살리려면, 더 많은 기억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그럴수록 당신은 더 빨리 사라질 것입니다. 그것이 당신의 능력의 저주입니다."

"왜... 왜 나한테 이런 말을..."

"왕비께서 원하십니다. 당신이 깨어나기를. 당신이 자신의 정체를 깨닫기를. 그리고..."

민서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우리도 원합니다. 당신이 당신이 지워버린 모든 기억을 되돌려주기를. 서연을 포함해서."

이준은 회랑의 끝을 바라봤다. 동쪽 탑으로 가는 복도가 어둠 속에 있었다. 그곳으로 가면 안 된다는 생각과 반드시 가야 한다는 생각이 충돌했다. 두 개의 목소리가 자신의 내부에서 싸우고 있었다. 왕의 목소리와 자신의 몸의 목소리가.

"가면 안 됩니다."

민서가 말했다.

"왕이 당신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지금 동쪽 탑으로 가면, 왕은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자신의 기억을 회복하려 한다는 것을."

"그럼 어쩌라는 건가?"

이준의 목소리는 낮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이미 가고 싶어 하고 있었다.

"기다리세요. 우리가 준비하는 동안. 우리 조직이 당신을 보호할 것입니다."

이준은 그 말을 듣고 있었지만, 자신의 발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동쪽 탑으로 가는 복도 쪽으로. 민서가 그를 붙잡으려 했다. 이준은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미안합니다."

그는 그 말을 남기고 달렸다.

회랑을 지나 계단을 올라갔다. 그의 몸이 길을 알고 있었다. 15년 동안 잊었지만,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동쪽 탑. 그 탑의 최상층. 그 방.

하지만 그 방에 도착하기 전에, 누군가가 자신의 앞을 막았다.

남궁현이었다.

그는 검은 갑옷을 입고 있었다. 이준과 마주했을 때, 그의 입 모서리에 냉소가 떠올랐다.

"심문관. 여기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비켜라."

"황태자 암살 사건의 진실을 아는 자는 당신뿐입니다. 그 여인, 서연을 제외하고는."

이준의 눈이 변했다. 남궁현은 그것을 봤다.

"황태자는 반역자가 아니었습니다. 왕이 그를 제거했습니다. 왕위를 지키기 위해."

"뭐?"

"당신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 밤에 무엇이 일어났는지. 당신이 지워버린 기억 속에. 서연은 황태자의 쌍둥이 누이였습니다. 그래서 왕은 그녀도 함께 지우려 했어요."

이준의 손가락에서 황금빛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아주 미세한 불꽃이. 마치 촛불 같은 약한 빛이 손끝에서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분노였다. 자신도 모르던 분노가 몸 깊은 곳에서 솟아올랐다.

"당신이 왕을 위해 지워버린 것이 정말 서연의 기억뿐이었습니까?"

남궁현이 한 발 더 가까워졌다. 그 순간, 이준의 왼손이 자동으로 나아갔다.

황금빛이 폭발했다.

손가락에서 시작된 불꽃이 남궁현을 향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마치 유동하는 액체처럼 공중을 가로질렀다. 남궁현은 몸을 날려 그것을 피했다. 황금빛은 그의 등 뒤 돌벽을 맞았고, 벽에 작은 흔적을 남겼다. 황금색으로 타버린 자국이.

이준은 그 광경을 보며 깨달았다.

자신이 지금 처음으로, 진정으로, 자신의 능력을 의도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왕의 명령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그 순간 가슴에서 뭔가가 터졌다. 마치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이 열리는 것처럼. 그리고 그 안에서 무언가가 흘러나왔다. 통증. 분노. 그리고 그것들 아래 깊이 묻혀 있던 또 다른 감정.

사랑.

손가락이 멈췄다. 황금빛도 멈췄다. 이준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그것은 무기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자신이었다. 자신의 의지의 연장이었다.

그 순간, 발걸음이 들렸다.

계단을 내려오는 발걸음. 그리고 목소리.

"이준."

이준이 돌아봤을 때, 서연이 계단 위에 서 있었다. 그녀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칼을 들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황금빛이었다.

아니다. 그것은 황금빛이 아니었다.

그녀의 손에서 검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칼날을 따라 흐르는 검은 화염. 그것은 황금빛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마치 빛을 삼키는 어둠처럼. 마치 기억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는 것처럼.

이준은 그것을 봤을 때 알았다.

서연도 선택했다는 것을. 왕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그리고 그 선택이 그녀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당신이 나를 지웠으니까, 이제 내가 당신을 지워야 할 차례 아닌가?"

그녀의 목소리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하지만 그 아래에서 이준은 들었다. 절망을. 그리고 그 절망 아래 더 깊은 무언가를.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을 향한 분노를.

"뭐가 기억나?"

"너다."

서연이 칼을 내렸다. 손이 떨려서 칼이 계단에 쓸렸고, 검은 불꽃이 튀었다. 그 불꽃은 돌을 까맣게 태웠다. 하지만 칼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그것을 쥐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날 봤잖아. 내 눈을 봤잖아. 나를 안다는 걸 알면서도, 왜 자꾸 모르는 척 하는 거야?"

서연의 목소리가 무너졌다. 칼을 들었던 손도 떨렸다. 검은 불꽃이 점점 커졌다. 그 불꽃은 계단을 태웠다. 돌을 검게 만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사라졌다. 마치 그녀의 감정처럼. 마치 그녀가 자신의 감정을 삼켜버린 것처럼.

이준은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남궁현이 뒤에서 움직였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서연만 봤다. 그녀의 눈만 봤다. 그 눈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기억난다."

거짓이었다. 조금이 아니라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심장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 여인을 안아본 팔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 여인의 목소리를 들었던 귀가 기억하고 있었다.

이준은 계단을 올라갔다. 한 계단씩. 서연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저 그를 바라봤다. 그 눈빛 속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15년 동안 지워진 시간들. 그 시간들 속에서 잃어버린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되찾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

이준이 손을 들었다. 서연도 손을 들었다. 검은 불꽃이 다시 피어올랐다. 황금빛이 다시 타올랐다. 두 개의 불꽃이 공중에서 마주쳤다.

"제발."

서연이 속삭였다.

"날 태우지 말아. 나도 너를 태우지 말아. 제발."

하지만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칼이 들려 있었다. 검은 불꽃이 칼날을 감싸고 있었다. 그것은 위협이었다. 동시에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였다. 그녀는 자신이 이준을 태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왕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아니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서연."

이준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 이름이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웠는지, 자신도 놀랐다.

"나를 기억해."

서연의 눈이 흔들렸다. 검은 불꽃이 약해졌다.

그 순간, 궁궐의 종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왕의 소환이었다.

그 소리와 함께, 지하 깊은 곳의 벽이 진동했다. 기억의 도서관의 문이 서서히 열렸다. 그 틈 사이로 황금빛이 새어 나왔다.

비통한 황금빛이.

이준은 서연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저항하지 않았다. 칼이 손에서 떨어졌다. 검은 불꽃도 사라졌다.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뒤에서 호위대의 함성이 들렸다. 남궁현이 그들을 막고 있었다.

"가세요, 심문관."

남궁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당신을 지킬 시간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통로는 어두웠다. 손을 앞으로 뻗어야 벽이 보였다. 이준은 서연을 이끌며 앞으로 나아갔다. 몸이 길을 알고 있었다. 이 궁궐의 어떤 길보다도 잘.

"어디로 가는 거야?"

서연이 물었다.

"기억의 도서관. 민서가 말했다. 그곳에 모든 게 있다고."

"뭐가 있어?"

"우리. 우리가 뭔지. 우리가 뭘 했는지."

통로를 나가자 또 다른 통로가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계단. 이준의 손가락에서 황금빛이 다시 피어났다.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그 빛이 길을 밝혔다.

황금빛의 불꽃은 이제 자신을 태우지 않았다. 길을 밝혔다. 어둠 속에서 길을 밝혔다.

서연이 뒤에서 그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이준. 만약 우리가 모든 걸 알게 되면?"

"그럼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뭘?"

"왕을 따르거나, 아니면 모든 걸 태워버리거나."

서연이 웃음을 흘렸다. 비통한 웃음이 아니라 진짜 웃음이었다.

"그 둘 다 우리를 죽일 거야."

"알아."

"그래도 가?"

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갔다. 한 계단씩, 한 계단씩. 서연의 손을 잡은 채로. 마지막에 도착할 때까지.

궁궐의 가장 깊은 곳으로.

기억의 도서관의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이준의 손가락에서 황금빛이 꺼졌다. 마치 그곳에 도착하기 위해서만 필요했던 것처럼.

문 앞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민서가 아니었다.

남자였다. 창백한 얼굴로 회랑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 서 있었다. 그의 눈은 공허했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에서는 황금빛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불꽃이 아니라 액체처럼. 마치 그의 손가락 자체가 이미 타버린 것처럼.

"처음 뵙는군요. 후임자."

그 남자가 말했다.

"나는 기억의 도서관 수호자였습니다. 15년 전, 능력을 거부한 심문관입니다."

이준의 몸이 경직되었다. 그 남자의 얼굴에서 뭔가 익숙한 것이 보였다. 마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미래를 보는 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 오래된 과거를 보는 것처럼.

"당신이..."

"네. 나는 당신이 될 것입니다. 또는 이미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능력을 거부한 심문관은 역사에서 지워집니다. 하지만 이 도서관 안에서만, 나는 아직 존재합니다. 기억이 남아 있는 한."

그 남자가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움직임은 느렸다. 마치 자신의 몸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것처럼. 액체처럼 흐르는 황금빛이 그의 팔을 타고 내려왔다.

"기억의 도서관을 열려면, 먼저 당신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뭘?"

"당신의 능력. 당신의 기억. 당신 자신. 하지만 그 대신 얻을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뭔데?"

"진실. 그리고 선택."

그 순간, 지하 깊은 곳의 벽이 진동했다. 기억의 도서관의 문이 서서히 열렸다. 그 틈 사이로 황금빛이 새어 나왔다.

비통한 황금빛이.

"당신의 선택의 시간입니다."

수호자가 말했다.

"왕실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태울 것인가."

그의 목소리는 마치 이준 자신의 목소리 같았다. 미래의 목소리. 또는 과거의 목소리.

이준은 서연을 바라봤다. 그녀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 속에는 묻는 것이 있었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거냐고.

"그리고..."

그 남자가 손을 들었다. 그의 손가락에서 황금빛이 폭발했다. 그것은 이제 불꽃이 아니었다. 액체처럼 흐르는 빛이었다. 마치 그의 몸 전체가 이미 타버린 것처럼. 그것은 경고였다. 그리고 동시에 미래였다.

"당신이 선택하지 않으면, 나처럼 될 것입니다. 이 도서관에 갇혀, 계속 타올라야 할 것입니다."

이준은 손을 들었다. 손가락에서 황금빛이 피어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빛이 자신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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