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선택의 순간

밤 한시. 박준호는 여전히 경기장 벤치에 앉아 있었다. 휴대폰 화면이 꺼졌다가 켜지기를 반복했다. 김 국장. 박민준. 아버지. 이수진. 한태오. 모두의 목소리가 겹쳐서 들렸다. 그는 어깨를 쓸어내렸다. 10년 전처럼 통증이 울렸다. 아니, 다르다. 그때는 신체의 통증이었다면, 지금은 선택의 무게였다.

라커룸에서 물병을 집어 던지는 소리가 났다. 박준호는 일어나 라커룸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한태오가 있었다. 유니폼을 벗고 있었다. 옷장 앞에서 멍하니 선 모습이 처량했다. 박준호는 문을 닫았다. 한태오가 돌아섰다.

"코치."

"왜 나왔어?"

"박민준 코치가 … 너무 혹독했어요."

한태오의 입술이 떨렸다. 박준호는 말을 기다렸다.

"매일 오전에 기초 체력. 점심 뒤에 투구 연습. 저녁에는 영상 분석. 그리고 밤 아홉 시부터는 혼자 추가 훈련을 강요했어요. 안 하면 다음 날 스쿼트를 500번 시켰어요."

한태오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그런데 가장 힘든 건 … 그게 아니었어요. 코치님."

"뭐가?"

"아무도 나를 봐주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같은 팀 선수들도 날 무시했고, 박민준 코치는 내가 실수할 때마다 다른 선수들 앞에서 욕을 했어요. '넌 왜 이것도 못하냐' … '넌 태생부터 다르다'고."

한태오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어깨가 들썩였다.

"체벌도 있었어요. 진도가 안 나면 배트로 종아리를 맞고, 부상 당한 아이도 훈련장에 나오게 했어요. '약한 놈들은 떨어져 나간다'는 이유로."

박준호의 가슴이 철렁했다. 엘리트 시스템. 그것의 실체가 보였다. 재능 없는 아이들을 버리는 것을 정당화하는 논리. 박준호는 한태오가 자신의 팀에서 떠날 때 그를 막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는 막을 수 없었다. 이준영이 필요했으니까.

"왜 돌아왔어?"

"여기가 … 최후의 기회의 땅이라고 했잖아요. 코치님이."

한태오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저는 다시 한 번 기회가 필요해요. 그런데 박민준 팀에서는 … 난 이미 버려진 선수였어요."

박준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태오는 유니폼을 입고 나갔다. 문이 닫혔다. 박준호는 벽에 기대앉았다. 손가락이 떨렸다.

---

새벽 여섯 시. 경기장은 조용했다. 박준호는 포수 자세로 웅크린 형태로 마운드 앞에 서 있었다. 이준영이 마운드 위에 서 있었다. 구속 측정기가 울렸다.

148km.

150km.

151km.

박준호는 글러브로 공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영의 얼굴은 창백했다. 어제 밤새 훈련했던 흔적이 몸에 밴 것 같았다.

"쉬어."

박준호가 말했다.

이준영은 마운드를 내려왔다. 벤치에 앉아 물을 마셨다. 박준호는 그 옆에 앉았다.

"넌 지금 뭘 생각해?"

"프로에 가는 것."

"그 다음엔?"

이준영이 물병을 내려놨다.

"그 다음이요?"

"프로에 간 뒤에 넌 뭘 하고 싶어?"

이준영은 답하지 못했다. 박준호는 그 침묵을 보고 있었다. 이준영의 눈은 항상 마운드를 향했다. 공을 향했다. 하지만 그 너머는 보지 않았다.

"프로에 가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야. 그 뒤에 뭘 하고 싶은지,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지, 그게 없으면 … 그건 그냥 누군가의 도구가 되는 거야."

박준호의 목소리가 낮았다.

"코치님은 어때요?"

"뭐?"

"코치님은 프로에 가고 싶었어요?"

박준호는 이준영을 봤다. 그 어린 얼굴. 그 안에는 자신의 옛날 얼굴이 있었다. 부상 전의. 모든 것이 확실했던 그 시절의.

"난 … 선수가 되고 싶었어. 그게 전부였어. 그리고 그걸 이루지 못했을 때 … 난 너를 통해서 이루려고 했어."

박준호는 천천히 말했다.

"그건 죄야. 네가 아니라 나를 위한 거니까."

이준영의 눈이 떨렸다. 박준호는 그 표정을 보고 있었다. 어린 선수의 얼굴에 깨달음이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그것이 사이다였다. 그것이 통쾌함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준영이 처음으로 자신의 꿈을 생각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 난 뭘 해야 돼요?"

"너는 너의 꿈을 가져야 해. 프로가 아니라 … 너 자신의."

---

오후 세 시. 이수진이 라커룸에 들어섰다. 박준호는 영상을 분석하고 있었다. 이수진은 그를 보고 멈췄다.

"돌아왔어요."

"뭐가?"

"제자들이."

박준호는 고개를 들었다. 이수진은 노트북 화면을 보여줬다. 한강 아카데미의 그룹 채팅창. 한태오가 '미안합니다'라고 썼다. 그 뒤로 한 명씩 메시지가 올라왔다. '코치님 저 돌아왔어요.' '저도요.' '저도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박준호는 화면을 내려다봤다.

"한태오가 새벽에 박민준 팀에서 나왔대요. 그러면서 한 명씩 따라나왔어. 그 팀의 훈련이 얼마나 혹독한지 알려줬거든요."

이수진이 앉았다.

"박민준 코치는 선수들을 기계처럼 대했대요. 실수하면 욕을 하고, 진도가 안 나면 체벌을 했대요. 심지어는 부상 당한 아이도 훈련장에 나오게 했어요. '약한 놈들은 떨어져 나간다'는 이유로."

박준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것이 엘리트 시스템의 맨얼굴이었다. 자신이 만든 시스템의 극단적 형태. 선택과 배제의 논리가 폭력으로 변한 모습.

"그런데 코치님은 달랐대요."

이수진이 천천히 말했다.

"비록 가혹하지만, 아이들을 믿어줬으니까. 한태오 말로는 … 박민준 팀에서는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 여기에 있다고 했어요. 그게 뭔지 알아요?"

박준호는 답하지 못했다.

"희망이에요. 여기에는 희망이 있다고."

이수진의 눈이 젖었다.

박준호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 말이 자신의 가슴을 헤집고 지나갔다. 희망.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감정이 사실은 제자들 자신이 만든 것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 코치님은 그 희망을 자기 욕망으로 채웠어요."

이수진이 계속했다.

"아이들을 위한 게 아니라 자기 부상의 보상으로."

박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이수진은 그를 정면으로 봤다.

"당신은 이준영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 자신의 과거를 사랑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걸 모르고 있었어요."

박준호는 입을 열었다 닫았다. 이수진의 말이 정확했다. 너무 정확해서 반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반박하고 싶었다.

"아니야. 내가 … 아이들을 위한 거야. 한태오를 봤잖아. 그 아이가 돌아왔어. 그건 내가 희망을 줬기 때문이야."

박준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 아이들을 키우려고 한 거야. 그게 다야."

이수진은 조용히 박준호를 봤다. 그 침묵이 더 큰 말이었다. 박준호는 자신의 말을 다시 들었다. 그 말 속에서 자신을 찾았다. 자신의 욕망을. 자신의 부상을. 자신의 미완성을.

침묵이 길어졌다. 박준호의 손가락이 펼쳐졌다 오므려졌다. 호흡이 얕아졌다가 깊어졌다. 그의 눈이 바닥을 향했다가 천천히 이수진을 바라봤다. 어깨가 움직였다. 목 근처의 근육이 경직되었다가 풀렸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쌓아올린 정당화의 벽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박준호는 천천히 앉았다.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났다.

"나도 너와 같은 짓을 했어. 내가 누군가의 도구가 되는 걸 거부하면서 … 동시에 누군가를 내 도구로 만들고 있었어."

박준호가 천천히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분명했다.

"이제 멈춰야 해."

---

드래프트 전날 밤. 박준호는 경기장에 혼자 있었다. 라인을 따라 걸었다. 투수 마운드에 올라갔다. 포수 자리에서 마주봤던 이 자리. 여기서 몇 번을 버텼는가. 몇 번을 아이들에게 자신의 꿈을 강요했는가.

휴대폰이 울렸다. 김 국장이었다.

"박 코치, 내일이야. 이준영이 1순위 픽이야. 이미 세 개 팀에서 확정 제안을 받았어. 넌 뭘 원해? 메이저리그? 아니면 국내?"

박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 코치? 넌 이준영을 키웠잖아. 어느 팀을 원하는지 말해봐. 내가 조율할 수 있어."

"국장님."

박준호가 말했다.

"당신이 원하는 건 이준영이 아니라 … 나의 이름이야. 내 시스템. 내 육성 노하우. 그걸 자신의 성과로 만들고 싶은 거야."

"박 코치, 무슨 …"

"나도 마찬가지였어. 나도 이준영을 통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했어. 그걸 이제 깨달았어. 그래서 … 이제 그만할 거야."

박준호가 전화를 끊었다.

다시 울렸다. 아버지였다. 박준호는 수화기를 들었다.

"아버지."

"내일 이준영이 1순위야?"

"네."

"좋다. 그럼 내일 경기장에 가겠다. 그리고 … 그 뒤에는?"

"뒤요?"

"다음 유망주는 누구야? 이준영 다음에 프로 보낼 아이는?"

박준호는 침을 삼켰다. 그것이 반복될 것이었다. 이준영 다음. 그 다음. 그 다음. 끝없는 대리 꿈의 반복. 자신이 만든 순환의 고리.

"아버지, 저는 … 이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거예요."

"뭐라고?"

"이준영이 마지막이에요. 한 명만 보내는 게 아니라 … 모든 아이를 봐주려고 해요. 이번엔 선택이 아니라 … 함께 가겠다는 선택을 하려고 해요."

전화 너머에서 침묵이 흘렀다. 길었다. 박준호는 그 침묵 속에서 자신의 심장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당신은 내 아들이 아니야."

아버지가 말했다. 목소리는 차갑고 선언적이었다. 박준호는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그 말이 가슴을 관통했다. 상처였다. 동시에 해방이었다.

"네. 나는 당신의 기대를 채우는 아들이 아니에요."

박준호는 천천히 말했다.

"당신은 나를 선수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내가 실패하자 … 내 아들을 통해 그 꿈을 이루려고 했어요. 그 과정에서 나는 아버지의 욕망을 위한 도구였어요. 그리고 이준영도 그럴 뻔했어요."

박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제는 다를 거예요. 제자들의 꿈을 함께 보는 코치가 되려고 해요. 그게 … 제 꿈이에요."

전화 너머에서 또 다른 침묵이 흘렀다. 이번엔 다른 종류의 침묵이었다. 거부의 침묵. 단절의 침묵.

"그렇구나."

아버지가 말했다. 목소리는 더 이상 박준호의 아버지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럼 이제 우리는 남이야."

박준호는 수화기를 놨다. 손이 떨렸다. 하지만 그 떨림은 절망의 떨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유의 떨림이었다. 오랫동안 누군가의 기대 아래 짓눌려 있던 몸이 일어나는 떨림. 마치 마운드 위에서 처음 공을 집어 드는 순간처럼.

---

드래프트 당일 아침. 서울 종로의 한 호텔 컨퍼런스홀. 12개 팀의 대표들과 수백 명의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홀 입구에서는 이미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있었다. 이준영은 라운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박준호는 그 옆에 앉았다.

"떨려?"

"네. 코치님."

"그게 맞는 거야. 인생의 순간이니까."

박준호가 이준영을 봤다. 그 아이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기대가 섞여 있었다.

"너는 어떤 팀을 원해?"

박준호가 물었다.

이준영이 박준호를 봤다. 그 눈빛이 흔들렸다.

"코치님은 … 어디를 원해요?"

박준호는 그 질문을 받고 멈췄다. 그것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선택하는 순간이 아니라 제자가 선택하도록 하는 순간.

"넌 어디든 갈 수 있어. 넌 그럴 능력이 있어. 그러니까 … 너의 마음이 가는 곳으로 가. 내가 아니라."

박준호가 말했다. 그리고 한 순간, 이준영을 떠나보내는 자신의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을 밀어내고 다시 말했다.

"난 항상 여기 있어. 어느 팀이든. 그러니까 … 너는 자신을 믿어. 내가 본 것들. 왼쪽 어깨 회전, 발 딛음의 타이밍, 너의 눈빛의 집중도 … 그 모든 게 이미 너 안에 있어. 난 그냥 … 그걸 깨워줄 뿐이야."

이준영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의 눈물이 아니었다. 자유의 눈물이었다.

라운지 문이 열렸다. 스태프가 이준영을 불렀다. 박준호와 이준영이 일어났다. 복도를 걸어 컨퍼런스홀로 들어갔다.

무대 입구에 도착했을 때, 박준호는 이준영의 손을 잠깐 잡았다. 말은 없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무대 위.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었다. 수백 명의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었다. 플래시가 터졌다.

"2024년 한국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1순위. 그 영광의 주인공은 …"

순간이 멈췄다. 모든 카메라가 무대 중앙을 향했다. 플래시가 연속으로 터졌다. 박준호는 무대 아래서 그것을 봤다. 이 순간의 무게감. 이 순간의 밝음.

"… 한강 베이스볼 아카데미의 투수, 이준영 선수입니다!"

박준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부상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것이었다. 제자의 성공이 아니라 … 자신의 역할의 완성이었다.

무대 위에서 이준영이 마이크를 잡았다.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사회자가 물었다.

"이준영 선수,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이준영은 한 번 숨을 고르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 자리는 제 것만이 아닙니다. 박준호 코치님이 없었다면 저는 여기 서 있을 수 없었어요. 코치님은 저에게 기술을 가르쳐주신 게 아니라 … 제 꿈이 무엇인지 묻게 해주셨어요. 그리고 그 꿈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이준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저는 프로에 가서 좋은 선수가 되겠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 저는 절대 제 후배들을 버리지 않겠다는 거예요. 코치님처럼."

박준호는 무대 아래서 그 말을 들었다. 눈이 뜨거워졌다. 그것은 성공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승의 눈물이었다.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였다. 뉴욕 양키스의 국제 스카우팅 디렉터.

"박 코치, 축하합니다. 이준영 선수 멋있네요. 그런데 … 다음 선수는 언제쯤 …"

박준호는 전화를 받지 않고 끊었다. 옆에 서 있던 이수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다르네요."

"뭐가?"

"이번엔."

이수진이 박준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박준호는 이준영을 봤다. 무대 위에서 인터뷰를 받는 아이. 그의 입가에 피어나는 미소. 그것은 자신의 꿈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준영의 꿈이었다.

---

드래프트가 끝난 후. 박준호는 한강 아카데미로 돌아갔다. 벤치에 앉았다. 라인을 따라 눈을 움직였다. 벽에 붙은 사진들. 한강 아카데미를 거쳐 간 모든 아이들의 사진. 그들의 첫 안타, 첫 홈런, 첫 선발 등장 기사들. 그것들이 이제는 다르게 보였다.

박준호가 어깨를 만졌다. 통증이 울렸다. 하지만 이제는 그 통증의 의미가 달랐다. 그것은 상처가 아니라 … 감각이었다. 손상된 신체가 만든 특별한 감각. 그것으로 원석을 다이아몬드로 깎는 감각.

라커룸에서 발걸음이 들렸다. 한태오가 나타났다.

"코치님."

한태오가 말했다.

"저도 …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박준호는 일어났다. 한태오의 눈을 봤다. 그 안에는 두려움과 희망이 함께 있었다. 박준호는 한태오의 어깨를 잡았다. 그 어깨가 얼마나 무거운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담고 있는지 느껴졌다.

"물론이야. 여기는 최후의 기회의 땅이니까. 그리고 여기서는 누구도 버려지지 않아."

박준호의 목소리가 낮았지만 확실했다.

"너는 이미 한 번 죽었어. 박민준 팀에서. 그런데 돌아왔어. 그것만으로 충분해. 이제부터는 너의 속도로 가면 돼. 누구와도 비교하지 말고. 너는 너야."

한태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박준호는 그 눈물을 봤다. 절망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희망의 눈물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다시 보아주는 눈물이었다.

라커룸 문이 다시 열렸다. 한 명의 선수가 들어왔다. 박준호는 그를 봤다. 이름을 불렀다. 그 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준호는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 과정을 반복했다.

또 다른 선수가 들어왔다. 그리고 또 다른 선수. 각각의 선수들이 들어올 때마다 박준호는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들의 눈을 봤다. 그들의 상처를 인정했다. 그리고 그들 각각의 속도를 존중했다.

박준호 자신도 변했다. 제자들을 받아들일 때마다 자신의 죄책감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그것은 용서가 아니라 시작이었다.

"우리는 이제 선택하지 않을 거야. 모두가 함께 간다. 이준영처럼 프로에 가는 아이도 있을 거고, 여기서 코치가 되는 아이도 있을 거고, 다른 길을 가는 아이도 있을 거야. 그게 다 좋아. 왜냐하면 그건 너희의 꿈이니까."

박준호의 목소리가 낮지만 분명했다.

"그리고 나는 … 너희를 따라갈 거야. 어디든."

한강 경기장의 야경이 깜박였다. 그 불빛 아래에서 박준호와 그의 제자들은 다시 시작했다. 이번엔 선택이 아니라 함께 가는 길로.

그런데 박준호의 휴대폰은 계속 울렸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전화. 국내 프로팀들의 제안. 그리고 한 번도 받지 않은 아버지의 이름이 부재중 전화 목록에 쌓여 있었다. 박준호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들. 아직 마주하지 않은 것들. 박민준의 반격. 그 모든 것이 다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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