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의 철제 문이 열렸다. 회색 양복을 입은 남자가 들어섰고, 그 뒤로 또 다른 남자들이 따라왔다. 박준호는 투구 네트 뒤에서 이준영의 폼을 지적하다가 손을 멈췄다.
"코치, 저기요."
이수진이 없었다. 사흘 전부터 오지 않았다. 박준호는 턱을 굳혔다. 어쨌든 일은 계속되어야 했다.
"저분들이 누구세요?"
이준영이 물었다. 마운드에서 내려오며 타월로 이마의 땀을 닦는 아이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3개월 전의 이준영은 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시만 받았다. 박준호는 그 변화가 자랑스러웠고, 동시에 불안했다.
"스카우트들이다."
박준호가 중얼거렸다.
메이저리그 팀의 스카우트 3명, 아마추어 연맹 관계자 1명, 그리고 맨 앞에 선 회색 양복 남자—김 국장이었다. 그들은 일렬로 벤치에 앉았다. 마치 심판관처럼.
"준호, 계속해."
김 국장이 손을 흔들었다. 박준호는 이준영을 다시 마운드로 보냈다.
이준영의 첫 번째 구는 148킬로미터. 포수 박스는 그 볼의 궤적을 따라갔다. 구속 표시기가 울렸다. 스카우트들이 메모장을 펼쳤다. 박준호는 이준영의 왼쪽 어깨의 각도를 봤다. 완벽했다. 3개월간의 훈련이 만든 그 각도.
두 번째 구는 150.
세 번째 구는 149.
스카우트들이 중얼거렸다. 박준호는 그들의 입술을 읽었다. 구속, 제구, 회전수. 모두 메모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은 이준영을 보지 않았다. 그들은 박준호를 보고 있었다. 마치 이준영이 투명인간인 것처럼.
"좋군요, 코치."
한 스카우트가 박준호에게 말했다.
"이 아이를 어떻게 찾으셨어요?"
"그냥 찾은 거다."
박준호의 대답은 짧았다.
"아, 그게 아니라—" 스카우트가 웃음을 지었다. "이 아이에게서 이런 가능성을 어떻게 발견하셨어요? 3개월 전만 해도 이 아이는 그냥 평범한 중학생이잖아요."
침묵이 흘렀다.
박준호는 이준영의 어깨를 봤다. 왼쪽 어깨의 회전 각도. 그 미세한 신경학적 신호. 아무도 모르는 언어로 쓰인 그 신호.
"경험이다."
"경험이라니요?"
"10년간 아이들을 봐왔으니까."
박준호가 일어섰다. 이준영을 마운드에서 내렸다. 아이의 팔에 아이싱 백을 감싸주고, 로커룸으로 보냈다.
스카우트들은 박준호를 둘러쌌다.
"코치, 혹시 다른 아이들도 계세요? 이런 잠재력을 가진?"
"있다."
"어떤 수준의?"
"다양하다."
"그들도 볼 수 있을까요?"
박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김 국장을 봤다. 국장은 웃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계획이 정확히 진행 중이라는 것처럼.
경기장을 나가며 박준호는 스카우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한강 아카데미의 시스템이 정말 대단하네요."
"네, 이 코치가 뭘 하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결과가 나온다는 게 신기해요."
"메이저리그에 가면 이 코치에게 물어봐야겠어요. 스카우팅 시스템 구축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박준호는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저녁 7시, 경기장이 비워졌다. 스카우트들도 떠났고, 이준영도 엄마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갔다. 박준호는 벤치에 혼자 앉아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김 국장이었다.
"준호, 좀 만날까?"
30분 뒤, 박준호는 경기장 근처의 카페에 있었다. 김 국장은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었다.
"스카우트들이 만족했나?"
"그런 것 같은데."
"그런 것 같다니? 너 지금 자기 시스템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는 거야?"
김 국장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준호, 지난 3개월간 뭐가 일어났는지 알아? 미국 메이저리그 팀 3개가 이준영에 관심을 보였어. 미국이야. 한국 선수가 고등학교 입학 전에 메이저리그 팀의 관심을 받다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니야."
"그렇구나."
"그렇구나? 이게 너 덕분인데?"
박준호는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쓸 맛이 입에 맴돌았다. 커피잔을 내려놨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준영이 어느 팀을 원하는데?"
김 국장이 웃음을 멈췄다.
"어느 팀?"
"응. 그 아이가 어느 팀을 선택하기를 원하는지."
"아, 그건 중요하지 않아."
박준호의 눈이 차가워졌다.
"뭐가 중요한데?"
"이준영은 상품일 뿐이야. 중요한 건 너의 시스템이 정말 작동한다는 걸 입증하는 거야. 일단 이준영이 메이저리그에 가면, 너의 이름이 널리 알려질 거고, 그럼 모든 팀이 너한테 관심을 가질 거야. 그때가 진짜 시작이야."
박준호는 그 말을 듣고 있었지만, 귀에 들어오는 건 다른 목소리였다. 3개월 전 이준영을 처음 발견했을 때. 그 아이가 마운드에 올랐을 때의 순수한 표정. 지금 그 표정은 어디에 있는가. 이미 누군가의 계약서에 이미지로 박혀 있는 건 아닐까.
"그때가 되면 너의 시스템을 팔 수 있어. 각 팀마다 너를 고용하게 될 거야. 스카우팅 시스템, 투수 육성 프로그램—모두 너의 노하우를 기반으로. 그럼 너는 연봉 5억 이상의 메이저리그 스카우팅 디렉터가 되는 거지. 이준영이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면 더 빨라질 거고."
"그리고 당신은?"
"나? 나는 이걸 중개한 사람이니까 당연히 몫을 가져야지. 하지만 너는 정말 크게 떠올라. 한국에서 나온 야구 천재 코치. 이미 메이저리그 팀들이 입을 싸물고 있어."
박준호가 일어섰다. 커피잔이 테이블 위에서 넘어졌다. 검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이준영은 어디로 가는 거야?"
"뭐, 한국의 한 평범한 투수가 메이저리그에 가는 거야. 매년 수백 명이 가지. 하지만 너는 다르지. 너는 단 하나의 시스템을 만든 사람이야. 그게 얼마나 귀한지 알아?"
박준호는 대답하지 않고 나왔다. 김 국장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준호! 너 지금 이상한 생각 하는 거 아니야? 이건 윈윈이야. 너도 크고, 이준영도 크고, 나도 크고. 모두 다 행복한 거야!"
박준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밤 10시, 박준호는 경기장으로 돌아왔다. 벤치에 앉아 벽의 사진들을 봤다. 한강 아카데미를 거쳐 프로에 간 아이들의 사진. 그들의 첫 안타, 첫 홈런, 첫 선발 등장 기사들. 모두 박준호의 성과였고, 동시에 모두 박준호의 무덤이었다.
이준영도 곧 저기 붙을 것이다. 박준호의 골든핑거로 발굴된 제자 중 하나로서.
하지만 이준영이 모를 것은, 이미 자신의 이름이 상품화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미 여러 팀의 계약서에 이미지와 함께 써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박준호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시스템, 그의 감각, 그의 트라우마까지도 이미 누군가의 소유물이 되고 있었다.
왼쪽 어깨가 아팠다. 만성통증이 다시 깨어났다. 마치 누군가 그곳을 꼬집고 있는 것처럼.
그때 경기장의 입구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박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가로등의 불빛 아래 회색 양복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박민준이었다.
박민준은 벤치 맞은편에 앉았다. 박준호를 정면으로 마주봤다.
"박준호, 우리 함께 하자."
박준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의 원석 발굴 능력과 우리의 엘리트 시스템이 합쳐지면 정말 무섭다. 너도 알잖아. 한태오가 왜 나한테 왔는지. 그 아이한테 제대로 된 시설과 코칭을 주면, 이준영도 못 따라와. 그리고 넌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낡은 경기장, 형편없는 선수들, 돈도 없고. 우리 팀에 오면 모든 게 달라져. 좋은 시설, 우수한 선수들, 그리고 넉넉한 연봉."
박민준이 명함을 내밀었다.
"생각해봐. 너는 이미 알려졌어. 이제는 더 높이 올라갈 때야."
박준호는 명함을 받지 않았다.
"안 돼."
"왜?"
"여기가 내 자리니까."
박민준이 웃음을 지었다.
"정말 웃기네. 너 지금 자기가 버려진 아이들의 코치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데 그 아이들도 사실은 상품일 뿐이야. 너한테는, 김 국장한테는, 그리고 이제는 내가 보기에도. 모두가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 그 아이들을 이용하고 있는 거야."
박준호의 손이 떨렸다.
"넌 다르지 않아. 넌 아버지의 욕망 때문에 이준영을 이용했어. 그리고 이제는 김 국장이 너를 이용하려고 하고 있지. 근데 넌 여기서 뭘 하는 거야? 자기가 선택받은 것처럼 느끼면서? 이미 모두가 넌 상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박민준이 일어섰다. 명함을 벤치 위에 내려놨다.
"생각 좀 해봐. 그리고 언제든 연락해."
박민준이 떠난 뒤, 박준호는 혼자 남겨졌다. 벤치 위의 명함을 봤다. 그리고 벽의 사진들을 봤다. 한태오의 얼굴도 거기 있었다. 박준호가 버린 아이.
왼쪽 어깨의 통증이 심해졌다. 마치 누군가 그곳을 짓이기고 있는 것처럼. 그것이 자신의 감각의 원천이라고 박준호는 생각했다. 손상된 신체가 만들어낸 특이한 직관력.
하지만 이제 그 감각도 상품이 되었다.
박준호는 로커룸으로 향했다. 비어 있었다. 이준영도, 이수진도, 그 누구도 없었다. 낡은 로커들만 남아 있었다. 한 장의 포스트잇이 사물함에 붙어 있었다.
"코치, 저 엄마 일 때문에 내일부터 훈련 못 나갑니다. 죄송합니다."
박준호의 손이 떨렸다. 또 한 명이 떠나가고 있었다. 포스트잇의 글씨를 들여다봤다. 이준영이 쓴 글씨였다. 3개월 전 그 아이는 박준호의 지시에 고개만 끄덕였다. 이제 그 아이는 자신의 선택을 글로 남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선택도 누군가의 지시였을 것이다.
사흘 전부터 연락이 없던 이수진은 어디에 있는가. 아마도 이미 어딘가로 떠났을 것이다. 박준호가 만든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한 다른 제자들처럼.
박준호는 벤치에 앉았다. 어두워진 경기장에서 선택지들을 생각했다. 지금 떠나면 어떨까. 아니면 김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걸 거부할 수도 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이준영을 포기하겠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선택이 동시에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계약서, 보도자료, 팀들의 관심. 그리고 이준영의 꿈.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아버지였다.
"준호, 이준영이가 정말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대?"
아버지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응."
"정말 자랑스럽구나. 우리 아들. 그 아이를 저렇게까지 만들다니.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정말. 우리 아들이 할 수 없는 걸 그 아이를 통해 이루는구나."
박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계속되었다.
"준호?"
"네, 아버지."
"더 많은 아이들을 메이저리그에 보내. 그럼 모두가 넌 위대한 코치라고 할 거야. 그러면 아버지도 자랑스럽지 않겠니? 아버지도 '그 유명한 박준호의 아버지'가 되는 거야."
통화가 끝났다.
박준호는 경기장의 어둠 속에서 혼자 앉아 있었다. 왼쪽 어깨의 통증이 심했다. 아버지의 욕망, 김 국장의 욕망, 박민준의 욕망. 모두가 자신을 통해 이루려던 것들. 그리고 그 모든 욕망이 이준영이라는 한 아이의 몸을 통과하고 있었다.
밤 11시, 경기장의 불이 켜졌다. 누군가 들어오고 있었다. 박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이준영이었다. 아이는 마운드로 걸어갔다.
"준영?"
"코치, 저 혼자 좀 더 연습하고 싶어요."
박준호가 일어났다.
"이 시간에?"
"네. 엄마가 내일부터 일을 하니까, 오늘이 마지막인 것 같아서요."
이준영이 글러브를 끼고 마운드에 올랐다. 그 아이의 왼쪽 어깨가 박준호에게 보였다. 완벽한 각도. 박준호가 만든 그 각도.
박준호는 포수 자세를 취했다. 아무도 없는 밤 11시, 경기장에서 단 둘이 있었다.
이준영의 첫 번째 구는 150킬로미터였다.
박준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포수 글러브가 볼을 받으려 했다. 그 순간, 그의 시야가 변했다. 이준영의 어깨가 더 이상 '자신이 만든 완벽한 각도'로 보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정교하게 깎아낸 상품처럼, 누군가의 손에 들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손가락이 떨렸다. 글러브 안에서 볼을 쥐는 손가락들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떨렸다. 그리고 그 떨림 속에서 박준호는 포구를 놓쳤다. 볼이 글러브를 스쳐지나갔다.
이준영의 구속이 떨어졌다. 다음 구는 145킬로미터. 그 다음은 142킬로미터. 마치 이준영의 몸이 뭔가를 감지한 것처럼.
박준호는 두 번째 구를 받으려다 다시 놓쳤다. 손가락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세 번째 구도 마찬가지였다. 글러브 너머로 공이 빠져나갔다.
"코치?"
이준영이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아이의 얼굴에 혼란이 가득했다.
"괜찮으세요?"
박준호는 떨어진 볼을 주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아이도, 자신도, 이미 누군가의 게임판 위의 말이 되어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