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지하의 선택
반지하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 박준호는 숨을 깊게 들었다. 습기가 코를 찔렀다. 곰팡이 냄새. 벽을 타고 내려온 물때의 검은 선.
왜 나는 한 명만 선택하는가.
그 질문이 먼저 떴다. 이준영의 집 주소를 받은 순간부터 박준호를 따라다니던 질문이었다. 이수진이 건넸던 메모지. 반지하. 그 안에 있을 아이의 삶.
"여기예요."
이준영이 앞에서 문을 밀어 열었다.
열두 평 남짓한 방. 창문은 길 위에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의 발과 하체만 보였다. 천장의 곰팡이가 갈색으로 피어난 자국을 남기고 있고, 한쪽 구석에는 빨래를 널어 말리는 빨랫줄이 엉켜 있었다. 침대 매트는 한쪽이 푹 꺼져 있었고, 책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작은 플라스틱 의자 옆의 상자뿐이었다.
박준호는 한 발 안으로 들어섰다가 멈췄다. 발을 디딜 곳을 찾는 데 몇 초가 필요했다.
"엄마는?"
"야간 근무 나가셨어요. 새벽까지 돌아오세요."
이준영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작았다. 하지만 박준호는 그 작음 속에 숨겨진 뭔가를 들었다. 익숙함. 이 공간에 대한 완전한 익숙함.
"남동생은?"
"편의점 야간 알바 들어갔어요. 요즘 거의 매일."
박준호가 창문을 통해 보이는 길을 바라봤다. 발이 지나간다. 다시 발이 지나간다. 이 방에서 자는 아이는 밤새 발소리를 들어야 한다.
"여기서 얼마나?"
"2년 반."
그 시간 동안 이준영은 한강 아카데미에 왔다. 박준호는 기억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이준영. 키는 작았고, 어깨는 굽어 있었고, 눈빛은 흐릿했다.
"잠은 잘?"
이준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침대 옆 바닥에 놓인 작은 스피커를 가리켰다. 백색 소음. 아이는 밖의 소리를 지우기 위해 밤새 백색 소음을 틀어 둔다.
박준호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알 필요가 없었다. 이미 다 본 것이다. 반지하의 습기. 곰팡이. 좁은 창. 엄마의 야간 근무. 남동생의 알바.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견디는 아이.
"훈련은 잘하고 있어."
박준호가 말했다.
"네."
"구속이 늘었다. 제구도 안정되고 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해?"
이준영이 박준호를 바라봤다. 눈이 살짝 흔들렸다.
"야구를 말이야."
"…"
"왜 계속 나온 거야? 매일 새벽에. 여름에 땀 흘리면서."
이준영의 입술이 움직였다. 말을 하려다가 멈추고, 또 하려다가 멈췄다. 박준호는 그 과정을 봤다. 아이가 진실을 말할지 말지 판단하는 과정.
"…저는 프로가 되어야 합니다."
낮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왜?"
"엄마를 돕고 싶어요."
박준호의 표정이 변했다. 미세한 변화였지만, 이준영은 그것을 포착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5년이에요. 그 전에는 아버지가 일하셨는데…" 이준영이 방을 둘러봤다. "지금은 엄마 월급만으로는 부족해요. 남동생도 알바를 하고 있어요. 제가 프로가 되면…"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박준호는 창문을 통해 다시 길을 봤다. 발이 지나간다. 또 발이 지나간다. 이 반지하 반대편의 세상. 햇빛이 닿는 세상.
내가 이 아이를 선택하면, 누군가는 떨어진다.
그 생각이 박준호의 가슴을 짓눌렀다. 동시에 다른 생각도 떠올랐다. 한강 아카데미의 그라운드. 한태오의 얼굴. 그 아이도 프로가 되고 싶을 것이다. 그 아이도 누군가를 도와야 할 사정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박준호는 선택해야 했다. 한 명만 선택할 수 있었다.
이 반지하의 아이인가, 아니면 다른 아이인가.
박준호의 어깨가 움직였다. 왼쪽 어깨. 수술 후 10년이 지난 그곳의 통증이 맥박을 쳤다. 그 통증이 그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손상된 신체만이 다른 누군가의 미래를 볼 수 있다고. 그리고 그 미래를 위해서는 누군가가 희생해야 한다고.
"잘했다."
박준호가 말했다.
"네?"
"훈련을 잘하고 있다는 거야. 그 정도면 충분해."
이준영은 박준호를 바라봤다. 코치의 얼굴에는 무언가가 지나가고 있었다. 아이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감정.
박준호는 이준영의 어깨를 한 번 쳤다. 가볍게. 그리고 돌아섰다.
계단을 올라오며 박준호는 자신의 왼쪽 어깨를 만졌다. 그곳의 통증은 아직도 살아 있었다. 수술 이후 10년이 지났는데도. 날씨가 흐리면 더 아팠고, 훈련을 많이 하면 더 아팠고, 밤이 되면 더 아팠다.
그 통증이 이준영을 읽는 감각이 됐다. 손상된 신체. 부러진 꿈. 그것을 통해서만 다른 누군가의 미래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반지하에서 나온 박준호는 생각했다.
내 어깨가 이 아이의 탈출구를 만들었다.
그것은 죄책감인가, 아니면 사명감인가. 박준호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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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아카데미의 그라운드. 오후 훈련이 한창이었다.
박준호는 투수 라인의 이준영을 보고 있었다. 구속이 올랐다. 어제보다, 그저께보다. 그리고 제구가 점점 안정되고 있었다. 스트라이크 존의 경계가 명확해지고 있었다.
"에이, 너무하네."
한태오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박준호는 그 소리를 들었지만, 이준영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뭐가?"
"아니, 저 놈 봐요. 한 달 전만 해도 구속이 140 중반이었는데 이제 147까지 올라왔어. 제구도 완전히 달라졌어."
한태오는 투수 라인의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 자신이 던질 차례를 기다리며 캐치볼을 하는 다른 투수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눈은 계속 이준영에게 가 있었다.
"내 구속도 147이잖아."
"그래, 너도 잘하고 있어."
박준호의 대답은 자동적이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이준영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제구는 어때요?"
"좋아."
한태오의 얼굴이 굳었다.
"근데 왜 저 놈만 특별히 봐요? 저도 열심히 하는데."
박준호가 처음으로 한태오를 바라봤다.
"누가 그래?"
"누가? 코치님이 그러잖아요. 새벽에 저 놈만 따로 불러서 훈련시키고, 훈련 끝나고도 저 놈한테만 조언해주고…"
"그런 건 없다."
"있어요! 우리 다 봤어요!"
한태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다른 아이들이 고개를 돌렸다.
박준호는 한태오의 어깨를 잡았다. 힘은 들어가지 않았지만, 무언가 단호한 무게가 있었다.
"너는 너의 훈련을 해.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남과 비교하지 말라니, 코치님이 비교하시는데요!"
그 순간이었다.
이준영이 공을 던지고 포수 쪽으로 걸어가다가 한태오 쪽을 지나갔다. 아이들은 서로 지나치고, 인사도 없었다. 그냥 지나갔다.
하지만 한태오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몸을 옆으로 돌리며 이준영의 팔을 밀었다. 작은 충돌이었다. 크지 않은. 하지만 분명한.
이준영이 비틀거렸다.
박준호는 그 장면을 봤다. 모든 것을 봤다. 한태오의 질투. 그 질투 속에 담긴 절망. 그리고 밀침의 강도 속에 숨겨진 절박함.
이준영은 한태오를 바라봤다. 눈이 만났다. 그 순간 뭔가가 흐르고 지나갔다.
박준호는 한태오를 놓았다.
"가서 준비해."
"네."
한태오는 가지 않고 서 있었다.
"가라고."
아이는 이제 가야 했다. 박준호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협상의 여지가 없었다.
한태오가 돌아서며 이준영을 한 번 더 바라봤다. 눈빛이 예리했다.
박준호는 이준영을 바라봤다. 아이는 여전히 한태오를 보고 있었다. 표정은 없었다. 하지만 눈은 뭔가를 이해하고 있었다.
이 아이는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이 선택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박준호는 옆 건물을 바라봤다. 건물 벽에는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한강 아카데미를 거쳐 프로에 간 아이들의 사진. 그들의 첫 안타. 첫 홈런. 첫 선발 등판 기사.
그리고 지금 박준호는 생각했다.
다음 주 리그전에서 한태오와 이준영이 마주칠 것이다. 다른 팀의 투수로서가 아니라, 같은 팀의 투수로서. 한강 아카데미 대표로 나갈 수 있는 선수는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 박준호는 이미 선택했다.
한태오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모든 아이들이 알고 있었다.
박준호의 어깨가 움직였다. 저절로 움직인 것 같았다. 그곳의 통증이 맥박을 치듯 울렸다.
반지하에서 나온 아이. 엄마를 돕고 싶다고 말한 아이. 그 아이의 꿈을 위해 다른 누군가가 희생해야 한다.
박준호는 자신의 어깨를 만졌다.
내 손상된 신체가 이 아이들의 경쟁을 만들었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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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벤치. 박준호는 한태오를 바라봤다.
아이는 자신이 떨어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눈빛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절망과 질투가 뒤섞인 눈빛.
박준호는 휴대폰을 집었다. 화면에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 김 국장의 메시지.
'이준영의 영상 봤습니다. 완벽합니다. 다음 달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과 만나실까요? 이미 몇 팀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박준호는 메시지를 읽고 있었다. 그것은 압박이었다. 가속도였다. 자신의 선택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드는 힘.
그는 경기장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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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아홉 시 반. 반지하 골목.
박준호는 차를 세우고 한참을 앉아만 있었다.
이준영이는 이 반지하에서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경기장으로 온다. 엄마는 밤 열 시까지 일한다. 남동생은 야간 알바를 한다. 그리고 이 아이는 자신의 어깨 통증으로 읽어낸 천재성을 가지고 있다.
박준호의 왼쪽 어깨가 움직였다. 손상된 신체가 맥박을 치듯 울렸다.
그의 부상이 이 아이의 탈출구를 만들었다. 그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사실도 있었다.
그의 선택이 한태오의 절망을 만들었다. 그것도 사실이었다.
박준호는 핸들을 잡았다. 차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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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계단 앞에서 박준호는 멈췄다.
내려갈 것인가, 말 것인가.
그 선택 앞에서 그는 한참을 서 있었다. 계단 위에서 내려다보는 반지하의 출입문. 그 문 너머에는 이준영의 엄마가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자신의 아들이 어떤 선택을 받았는지 모르고 있을 것이었다.
박준호는 내려갔다.
계단의 끝에서 문을 찼다. 작은 소리가 났다.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다시 찼다.
"누세요?"
여자의 목소리였다. 낮고 피곤한 목소리. 틈새로 얼굴이 나타났다. 마흔 중반의 여성. 이준영의 엄마였을 것이다. 얼굴의 생김새가 이준영과 같았다.
"저는 한강 베이스볼 아카데미의 박준호 코치입니다."
여성의 눈이 커졌다.
"아, 코치님! 들어오세요, 들어오세요."
문이 활짝 열렸다. 박준호는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천장은 낮았다. 그의 머리가 거의 닿을 정도였다. 거실과 주방이 한 공간이었고, 그 옆으로 문이 두 개 있었다. 침실이겠지. 방 하나는 이준영의, 하나는 엄마의.
"어서 앉으세요."
이준영의 엄마는 소파를 쓸었다. 먼지가 날렸다. 그녀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일이 많아서 자주 집에 못 들어와요. 요즘은 밤 열 시까지 근무하고 있거든요."
박준호는 소파에 앉았다. 엄마도 앉았다.
"이준영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학교에서는 말도 안 하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훈련도 열심히 하고."
"그 아이가…"
엄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아이가 야구를 정말 좋아해요. 어려서부터 공을 가지고만 놀았어요. 아버지가…"
말을 멈췄다.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더 그랬어요. 마치 공 던지는 것으로 아버지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야구를 못하게 말리지 않았어요. 그게 그 아이의 희망이 되는 것 같았거든요."
박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들었다.
"코치님이 그 아이를 특별히 봐주신다고 이수진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는…"
그녀가 거실을 바라봤다.
"저희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형편이거든요."
박준호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준영의 엄마를 바라봤다.
내가 이 여자의 아들을 선택했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아들을 떨어뜨렸다.
"이준영이가 프로에 가면 뭘 하고 싶습니까."
박준호의 목소리는 낮았다.
"프로?"
"그렇습니다."
"그 아이가… 프로까지 갈 수 있을까요?"
엄마의 얼굴에는 믿음도 없었고, 희망도 없었다. 그저 피로만 있었다.
"갈 수 있습니다."
박준호가 말했다.
"저는 그 아이의 안에서 그걸 봤습니다."
여성의 눈이 다시 떨렸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감정이었다. 뭔가가 그녀의 얼굴에 스며들었다. 희미한 빛 같은 것이.
박준호는 신발을 신고 나갔다. 계단을 올라가며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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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에서 박준호는 한참을 앉아만 있었다.
밤 아홉 시 반. 훈련은 끝났고, 아이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을 시간이었다. 이준영도 가야 했다. 하지만 박준호는 그 아이의 집을 직접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그는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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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새벽 다섯 시.
박준호는 경기장의 마운드에 서 있었다. 이준영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한태오도 없었다.
그는 마운드 위에서 기다렸다.
첫 번째로 나타난 것은 이준영이었다. 검은 운동화, 낡은 가방. 숨이 약간 차 있었다. 반지하에서 여기까지 뛰어온 것이다.
"아침이야."
"네, 코치."
"준비해."
이준영이 워밍업을 시작했다. 어제보다 구속이 올라가 있을 것이었다. 박준호는 알고 있었다. 이 아이는 밤새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의 엄마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더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섯 시 십오 분. 한태오가 들어왔다.
"아침이야."
"네."
한태오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눈 아래에 다크서클이 있었다. 어제 밤을 잘 못 잔 것 같았다.
"넌 저쪽에서 준비해."
박준호가 경기장의 반대쪽을 가리켰다. 한태오는 가면서 이준영을 봤다. 그 눈빛에는 뭔가가 담겨 있었다. 증오는 아니었다. 더 복잡한 감정이었다. 절망과 질투와 무언가 더.
박준호는 이준영을 바라봤다.
"너는 그 아이를 신경 쓰지 말고, 너 자신만 봐."
"네."
"넌 이미 선택됐다. 그건 변하지 않는다."
이준영의 눈이 움직였다. 코치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다음 주 리그전에서는 달라진다. 그때부턴 너와 한태오가 경쟁한다. 같은 팀 투수로서."
"네."
"그 아이도 프로가 되고 싶을 거야. 너처럼. 하지만 한 명만 올라간다."
박준호는 이준영의 눈을 봤다. 아이의 얼굴이 변했다. 처음으로 무언가를 완전히 깨달은 표정이었다. 자신의 선택이 다른 누군가의 절망이라는 것을.
"이해했니?"
"네."
"그럼 던져."
이준영이 던졌다. 공이 포수의 미트에 꽂혔다. 구속 표시기가 울렸다.
148.
어제보다 1킬로 올랐다.
박준호의 어깨가 또 다시 움직였다. 그 통증 속에서 그는 생각했다.
한 명의 성공은 다른 누군가의 실패를 만든다.
그것이 이 세계의 법칙이었다.
그리고 그 법칙을 만드는 것은 자신의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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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월요일. 리그전의 날.
박준호는 경기장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한강 아카데미 대표팀의 투수는 이준영이었다. 선발은 그였다.
상대팀은 도시의 다른 유스팀이었다. 그들의 투수는 구속 150의 좌완이었다. 그 아이도 재능이 있는 아이였다.
경기가 시작됐다.
첫 이닝. 이준영이 마운드에 올랐다. 그 아이의 얼굴은 평온했다. 마치 어제까지의 모든 것이 사라진 것처럼.
첫 공이 날아갔다.
스트라이크.
구속 149.
관중석에서 탄성이 나왔다.
박준호의 손이 벤치 난간을 쥐었다.
두 번째 공이 날아갔다.
스트라이크.
구속 150.
한태오가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 아이도 보고 있었다. 자신의 경쟁자가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세 번째 공.
스트라이크.
삼진 아웃.
경기장이 떠들썩해졌다.
박준호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앉아 있었다. 손은 벤치를 놓지 않았다.
경기는 계속됐다. 이준영의 공은 점점 빨라졌다. 151. 152. 구속이 계속 올라갔다. 그리고 한태오는 벤치에서 그것을 봤다. 자신이 도달할 수 없는 높이를 향해 달려가는 경쟁자를. 한태오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졌다. 절망의 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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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끝. 한강 아카데미 승리.
이준영은 완투했다. 12개의 삼진. 0개의 볼넷. 완벽한 경기였다.
경기장을 나가며 한태오와 이준영이 마주쳤다.
한태오는 이준영을 보지 않았다. 눈을 돌렸다. 하지만 그 눈빛에는 뭔가가 담겨 있었다. 인정. 그리고 절망.
박준호는 그 장면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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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열한 시. 박준호의 사무실.
그는 경기 영상을 다시 보고 있었다. 이준영의 모든 투구를.
150. 151. 152.
구속이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이 아이는 6개월 뒤 드래프트 1순위가 될 것이었다. 박준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태오는 떨어질 것이었다.
박준호의 손가락이 키보드를 눌렀다. 한태오의 영상을 띄웠다.
구속 150. 제구 불안정. 정신력 약화.
그 아이는 끝났다. 아직 경기를 하고 있지만, 이미 끝난 것이었다.
박준호는 노트북을 덮었다.
밖을 봤다.
밤이었다. 깊은 밤이었다.
그리고 박준호는 생각했다.
내가 이 밤을 만들었다.
이준영의 밝은 미래와 한태오의 어두운 미래. 그 둘을 동시에 만들었다.
그것이 자신의 일이었다.
골든핑거. 원석을 다이아몬드로 깎는 눈.
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깨져 나간다.
박준호의 왼쪽 어깨가 또 맥박을 쳤다.
이 통증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 손상된 신체가 다른 아이들의 꿈을 부숴가며 한 명의 아이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과정은 멈추지 않았다.
박준호는 휴대폰을 집었다.
번호를 모르는 번호에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코치님, 저 한태오입니다. 저도 프로 가고 싶은데, 왜 저한테는 기회를 안 주세요? 제 실력이 부족한가요? 아니면… 저는 애초에 안 되는 건가요?'
박준호의 손이 떨렸다.
메시지를 지우려다 멈췄다. 그 메시지를 지울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실이었기 때문이었다.
한태오는 안 된다.
아니다. 더 정확히는, 한태오는 '선택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선택은 자신이 했다.
박준호는 화면을 켜 답장을 쓰려다 멈췄다.
무엇을 써야 할까. 위로의 말인가. 아니면 진실인가.
그는 화면을 껐다.
답장을 쓰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박준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침묵. 그것이 자신의 선택을 확정하는 방식이었다.
밤이 더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