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후 다섯 시, 한강 베이스볼 아카데미
그라운드는 따뜻한 햇살로 물들어 있었다. 박준호는 이준영 앞에 섰다. 중학생의 어깨는 작았다. 가슴팍도 일반 또래 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박준호의 눈은 그 작은 몸에서 무언가를 읽어냈다.
"팔을 펴. 완전히."
이준영이 팔을 펼쳤다. 박준호는 그의 왼쪽 팔의 각도를 손가락으로 재었다. 어깨에서 손목까지의 거리, 어깨에서 팔꿈치까지의 각도—모든 것이 기록되었다.
"이 각도를 기억해. 매일 이 각도를 유지한 채로 1000번을 한다."
"천... 천 번이요?"
박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이준영의 왼쪽 발을 밀어 위치를 조정했다. 발가락이 마운드를 향하도록, 무릎이 약간 구부러지도록. 모든 움직임은 계산되었다.
"발 딛음이 투구 폼의 기초다. 기초가 흔들리면 전부 무너진다. 알았나?"
"네..."
이준영의 목소리는 작았다. 박준호는 듣지 않는 척했다.
다음 일시간은 지옥이었다. 스트레칭, 발 딛음 교정, 어깨 회전 드릴. 박준호는 이준영의 몸을 마치 기계처럼 다루었다. 한 동작에서 나는 소음도 놓치지 않았다. 무릎이 삐걱거리면 "더 낮게", 어깨가 흔들리면 "고정해", 발이 미끄러지면 "다시". 반복, 또 반복.
이준영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팔은 떨리기 시작했다. 호흡은 불규칙해졌다. 하지만 박준호는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
"코치님... 잠깐..."
"계속해."
이준영은 다시 시작했다. 자신이 할 수 없다고 말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와중에 박준호는 한발 물러섰다. 이준영을 보며 무언가를 관찰하듯. 그의 눈은 차가웠다. 감정이 없었다. 마치 기술자가 기계를 점검하듯 그는 제자를 바라봤다.
잠깐, 박준호가 움직였다. 자신의 왼쪽 어깨를 만졌다. 손가락이 그 자리를 누르자, 얼굴이 일그러졌다. 통증이었다. 늘 그곳에 있는 통증. 10년 전부터 자신을 따라다니는 통증.
그의 입이 움직였다. 목소리는 작았다. 아무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이 통증이... 내 감각의 원천이야."
박준호는 손상된 신체의 신경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았다. 손상된 것들이 어떻게 적응하는지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이준영의 몸을 읽을 수 있었다. 완벽하지 않은 신체에서 완벽함을 찾아낼 수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박준호는 이준영을 내버려두고 그라운드 한쪽으로 물러났다. 화면을 봤다. 아버지였다.
그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응."
"준호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변한 게 없었다. 늘 그렇듯 명령조였다.
"요즘 뭐 하고 있냐?"
"훈련 중이다."
"그 중학생 애, 잘되고 있냐? 뉴스에서 봤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가 찾아왔다고?"
박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들었냐?"
"응."
"좋다. 그 아이, 꼭 프로까지 보내라. 완벽하게 만들어서 보내라. 너는 선수로 실패했지만, 감독으로는 성공해야 한다. 이해했나?"
침묵이 흘렀다.
"감독으로 성공한다는 게 뭔데?"
"뭐긴 뭐냐. 좋은 선수를 만드는 거지. 네 이름이 알려지게 만드는 거고. 우리 가문의 이름이 야구로 다시 빛나게 하는 거다."
박준호의 손가락이 주먹을 쥐었다.
"내가 제자들을 위해 하는 거 아니냐?"
"그래, 제자들을 위해 하는 거다. 그리고 동시에 너 자신을 위해서도 해야 한다. 너는 뭔가를 증명해야 해. 부상 때문에 선수 생활을 못 했지만, 코치로서는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
"있잖아, 준호. 너를 봤을 때 가장 아쉬운 게... 넌 할 수 있었는데."
그 문장이 박준호의 가슴을 뚫었다. 늘 그렇듯이.
"더 이상 그런 말 하지 마."
"너는 원래 최고였어. 고등학교 때 150 이상의 구속에, 제구도 완벽했고... 그런데 이 모양이 돼 버렸다. 정말 아깝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너는 다른 방식으로 최고가 돼야 한다. 그 중학생 아이, 완벽하게 만들어. 그게 너의 증명이야."
박준호의 눈이 흔들렸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계속 울렸다. 그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준호? 들었지?"
"... 네."
"좋아. 그럼 그렇게 해. 나중에 연락해."
박준호는 통화를 끝냈다. 손이 떨렸다.
그라운드로 다시 나왔을 때, 이준영은 여전히 같은 자세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박준호의 눈에 비친 이준영은 더 이상 단순한 제자가 아니었다. 자신의 연장선이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어야 할 누군가였다. 자신의 이름을 빛낼 누군가였다.
박준호가 걸어왔다.
"계속해. 더 깊게. 더 낮게."
"코치님..."
"뭐?"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박준호는 이준영의 팔을 잡았다. 무릎을 구부렸다. 더 낮게. 더 깊게. 이준영은 신음을 삼켰다.
"넌 다르니까. 이해해?"
"무... 무슨 말이에요?"
"넌 원석이야. 내가 본 원석. 그걸 다이아몬드로 만드는 데 얼마나 오래 걸릴 줄 알아? 6개월. 단 6개월이야. 그 6개월 동안 넌 지옥을 경험할 거야. 하지만 그 지옥을 견디면... 넌 프로가 된다."
이준영의 얼굴이 창백했다. 박준호는 계속했다.
"다른 애들은 못 한다. 타고난 재능이 없으니까. 하지만 넌 할 수 있어. 그 왼쪽 어깨 회전, 그 미세한 각도... 내가 봤어. 넌 정말로 할 수 있어."
박준호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실려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격려가 아니었다. 강박이었다.
한 시간이 더 흘렀다. 이준영의 몸은 한계에 다다랐다. 호흡이 가빠졌다. 팔은 완전히 떨렸다.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리고 결국, 이준영은 무너졌다.
무릎이 땅에 닿았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손이 풀렸다. 완전한 탈진.
박준호는 즉시 물병을 집어 들었다. 아무 표정도 없이 물을 건넸다.
"마셔."
이준영은 물을 마셨다. 손이 떨렸다. 눈물이 맺혔다.
"코치님..."
"뭐?"
이준영이 물었다. 목소리는 부러진 유리처럼 가늘었다.
"왜... 왜 저만 이렇게 하세요?"
박준호는 대답했다. 목소리는 차가웠다.
"넌 다르니까."
그 순간, 그라운드의 한쪽에서 이수진이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은 단단했다. 박준호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의 표정은 말했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박준호는 그 눈빛을 외면했다.
---
라커룸 복도. 이수진이 박준호의 팔을 잡았다.
"준호. 잠깐만."
"뭐."
"이준영만 집중하면 안 돼. 다른 아이들도 봐야지."
박준호는 손목을 빼냈다. 동작이 차갑고 정확했다.
"다들 괜찮아."
"괜찮은 게 아니야."
이수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10년을 함께 일해온 그녀가 처음으로 박준호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한태오는 이미 세 번이나 물었어. '코치님은 왜 저한테만 신경 안 써요?' 그 아이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몰라?"
박준호는 걸어갔다. 이수진의 말을 뒤로하고.
"넌 자신을 잃고 있어, 준호."
그 말이 등에 꽂혔다. 하지만 박준호는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
저녁 여섯 시. 그라운드 벤치.
한태오는 박준호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코치님과 눈이 마주쳤을 때, 입을 열었다.
"코치님, 저도... 훈련 봐주실 수 있어요?"
박준호는 멈추지 않고 지나갔다.
"내일."
"내일도 이준영 선수만..."
박준호는 돌아서지 않았다. 한태오는 그대로 남겨졌다. 벤치에 앉은 채로. 그의 눈이 흔들렸다. 질문이 아닌 고발이 담긴 눈빛으로.
그라운드 한쪽에서 김민석과 이호준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같은 상처, 같은 의문, 같은 절망이 흐르는 시선.
김민석은 글러브를 내팽개쳤다. 이호준은 고개를 돌렸다. 둘 다 박준호를 더 이상 보지 않으려는 듯.
박준호는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돌렸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이미 그의 가슴에 박혀 있었다.
---
밤 여덟 시. 라커룸.
이준영은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몸 곳곳이 멍들었다. 팔뚝, 다리, 허리. 마치 누군가에게 맞은 것처럼.
"이준영."
이수진이 들어왔다.
"네?"
"어디 아파?"
"괜찮습니다."
이수진은 이준영의 팔을 봤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돼? 코치님이 이렇게까지?"
이준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너 뭐가 특별해? 왜 유독 너만?"
"... 모르겠어요."
"코치님이 뭐라고 했어?"
이준영은 기억했다. 그 차가운 목소리를.
'넌 다르니까.'
"넌 다르니까... 라고 했어요."
이수진의 눈이 흔들렸다. 그것은 슬픈 눈이었다. 또는 두려운 눈이었다.
"이준영, 넌 다르지 않아. 그냥 운이 좋은 거야. 코치님이 너를 본 거. 그건 네 탓이 아니야."
이수진은 이준영의 어깨 멍을 조심스레 만졌다.
"이 정도 훈련으로 네 몸이 망가지면 어떻게 할 거야? 코치님의 기대가 축복이 아닐 수도 있어."
이준영은 고개를 들었다. 처음으로 이수진의 눈을 정면으로 봤다.
"그럼... 제가 거절해야 하나요?"
이수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조심해. 그것만 기억해."
---
밤 열 시. 경기장 스탠드.
박준호는 혼자 앉았다. 야간 조명이 텅 빈 그라운드를 밝히고 있었다. 흙냄새가 밤공기에 섞여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그라운드 위에 투수의 궤적을 그렸다. 이준영의 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디가 부족한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하지만 손가락이 멈췄다.
한태오의 눈이 떠올랐다. 그 눈에 담긴 질문. 그 눈에 담긴 절망. 김민석이 글러브를 내팽개친 동작. 이호준이 고개를 돌린 각도.
박준호는 자신의 왼쪽 어깨를 만졌다. 통증이 일었다. 10년 전 수술 자국이 울렸다.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아버지'라고 떴다.
박준호는 받지 않았다. 3초 뒤, 문자가 왔다.
"준호. 전화받아. 너 요즘 뭐 하는 거야?"
손가락이 흔들렸다. 아버지의 문자를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철렁했다.
다시 전화가 울렸다.
이번엔 받았다.
"네, 아버지."
"뭐 했어? 전화 왜 자꾸 안 받아?"
"미안합니다. 훈련 중이었어요."
"훈련? 밤 열 시에?"
"네. 새로운 선수를 봐야 해서요."
전화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은 박준호가 잘 아는 침묵이었다. 아버지가 판단하는 침묵.
"선수라고? 누구?"
"이준영이라고 합니다. 중학생 투수인데..."
"괜찮은 아이야?"
박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라운드를 봤다. 이준영이 훈련했던 자리가 아직도 보였다.
"아버지, 이 아이가 프로에 갈 수 있습니다."
"프로? 확실해?"
"네. 6개월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변했다. 가늘어졌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사업처럼 중요한 것처럼.
"그럼 드래프트 때 1순위로?"
"가능성이 높습니다."
"좋아. 그런데..."
"네?"
"너 혼자서 감당할 수 있어? 이전에 한 번 실패했잖아."
박준호의 얼굴이 굳었다.
"전은준. 3년 전 그 아이 기억나? 드래프트 2순위였어. 너는 1순위가 될 거라고 했잖아."
"네."
"그런데 떨어졌어. 왜?"
"... 정신력이 부족했습니다."
"정신력? 코치 탓이잖아. 네가 제대로 관리 못 했다는 거지."
박준호의 어깨가 움츠렸다.
"이번엔 실패하면 안 돼. 너 알지? 내가 회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했는데. '내 아들이 무명 팀에서 프로 선수를 배출했다'고. 그런데 그 다음이 2순위? 3순위? 그건 말이 안 돼."
"알겠습니다."
"모를 거야. 넌 선수로는 실패했지만, 감독으로 성공해야 해. 그게 너의 역할이야. 너의 책임이야. 알겠나?"
박준호는 대답하려다 멈췄다.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그 이준영이라는 아이, 절대 실패하게 하지 마. 알겠지?"
"네."
"좋아. 그럼 진행해. 잘하면 내 자랑거리가 될 테니까. 내일 낮 2시에 아카데미에 간다. 이준영이를 직접 봐야겠다."
박준호의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켰다.
"네, 아버지."
통화가 끝났다.
박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손이 떨렸다.
그라운드가 흐려 보였다.
---
밤 열 시 삼십 분. 박준호는 여전히 스탠드에 앉았다.
자신의 어깨를 만지며.
10년 전 부상 받은 그 어깨를.
손가락이 어깨 뒤쪽으로 미끄러졌다. 수술 자국이 울렸다. 신경이 비명을 질렀다.
그 통증이 자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통증이 이준영까지 집어삼키고 있었다.
박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그 손이 이준영의 팔을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그 손이 한태오의 눈을 얼마나 외면했는지. 김민석의 절망을 얼마나 무시했는지.
그 손가락들이 뭔가를 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투구 폼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타락이었다.
박준호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화면 위를 맴돌았다. 아버지에게 문자를 보낼 생각을 했다. 뭔가를 거절하는 문자를. 이준영에게 사과하는 문자를. 한태오에게 미안하다고 전하는 문자를.
하지만 손가락이 멈췄다.
그는 보내지 않았다.
대신, 화면을 껐다.
그리고 다시 그라운드를 봤다.
내일 오후 2시.
아버지가 온다.
그리고 그 전에, 오후 5시에는 이준영이 올 것이다.
아버지는 이준영을 볼 것이다. 그 작은 몸에서 무엇을 읽어낼까. 그 중학생이 정말 1순위 드래프트감인지 판단할 것이다.
박준호는 일어섰다. 스탠드에서 내려왔다. 그라운드로 걸어갔다.
마운드에 섰다.
손가락으로 투수의 궤적을 다시 그었다.
이번엔 더 깊게. 더 강하게.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이 이준영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왜냐하면 아버지가 내일 온다.
왜냐하면 자신은 선수로 실패했다.
왜냐하면 이제 남은 길은 하나뿐이다.
박준호는 주먹을 쥐었다.
마운드 위에서.
어둠 속에서.
혼자서.
그의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불규칙하게. 마치 누군가의 비명처럼.
그것은 자신의 비명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준영의 비명이었다.
박준호는 마운드를 떠났다.
경기장의 불빛이 꺼졌다.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박준호는 그라운드를 떠나갔다.
내일을 향해.
아버지를 향해.
그리고 이준영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