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심연의 철문이 닫히는 순간, 세상이 단절되었다.

이준호는 손가락 끝의 감각을 더 이상 느끼지 못했다. 마모율 96.2%. 피부는 살아있지만 그 안의 신경들이 하나둘 꺼져가는 중이었다.

박혜진의 손을 잡고 있었다. 엄지와 검지는 아직 감각이 있었다. 중지는 이미 죽어있었다. 약지가 지금 꺼져가고 있었다. 온기는 느껴지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없었다.

"이준호."

서연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숨을 쉬어."

숨을 쉬고 있나? 이준호는 자신의 가슴을 바라봤다. 상하로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움직이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정보만 남았다. 생물학적 사실만. 해석이 사라졌다.

그때 복도 끝에서 검은 옷의 인물이 나타났다.

얼굴에는 깊은 상처의 흔적이 있었다. 눈은 살아있었지만 그 안에는 아무것도 반사되지 않았다. 거울처럼 비어있는 눈이었다.

"이준호입니까?"

남자가 다가왔다. 서연주가 몸을 날려 막으려 했지만, 남자는 손을 들어 보였다. 무기가 없었다.

"저는 협회 정보국의 김태훈입니다. 20년 전, 감정 증폭자의 도움을 받아 S급 헌터가 되었던 자입니다."

이준호의 눈이 흔들렸다. 김태훈은 자신의 왼팔을 들었다. 팔뚝에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00.0%'

"이게 제 현재 감정 마모율입니다."

서연주가 물었다.

"완전히 소진했다는 뜻인가?"

"20년 전에. 그 대가로 감정을 모두 잃었어요. 협회는 저를 전설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저는 협회의 추격팀까지 거느리고 당신들을 막으러 왔습니다."

김태훈이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감정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냉정함이 아니었다. 무언가 더 끔찍한 것이었다. 텅 빈 것.

"당신도 그 길을 가고 계신가요?"

이준호가 입을 열었다.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마모율 96.2%에서는 답변도 하나의 감정 표현일 수 없었다.

"저는 당신이 다르기를 바랐습니다."

김태훈이 한 발 다가섰다.

"이 조직에 들어갔을 때, 당신의 이름을 들었을 때, 저는 알았어요. 또 다른 감정 증폭자가 깨어났다는 걸.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당신이 절대 나 같은 길을 가지 않도록 도와주는 거였습니다."

박혜진이 이준호 앞에 섰다. 보호하는 자세였다.

"당신은 누구세요? 정말 협회 소속이라면 왜..."

"맞습니다. 저는 협회 소속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준호를 돕기로 결정했어요."

김태훈이 가슴팍을 내려쳤다. 통통, 하는 금속음이 났다. 협회 배지였다.

"20년 전, 저는 완벽했습니다. 감정 증폭자의 도움으로 나는 최강이 됐어요. 하지만 그 이후로는 무엇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완벽함을 느낄 감정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서연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나는 모든 것을 이루었지만 아무것도 즐기지 못했어요. 돈을 벌었지만 행복하지 않았고, 명예를 얻었지만 자랑스럽지 않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지만 사랑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김태훈이 이준호를 직시했다.

"당신이 현재 96.2%라면, 당신은 이미 임계점에 도달했습니다. 앞으로 4% 더 마모되면, 당신은 완전히 사라집니다.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이준호의 손이 떨렸다. 신경 결말이 불규칙하게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저는 협회를 떠났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이미 떠났어요. 당신이 나 같은 길을 가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럼 당신은... 우리를 도와주실 건가요?"

김준영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불확실함이 있었다. 불확실함은 감정이었다. 이준호는 그것을 감지했다. 동시에 자신의 가슴에서 뭔가 또 빠져나갔다.

"예. 그리고 동시에 경고입니다."

김태훈이 둘러앉은 모두를 바라봤다. 벙커의 불빛 아래, 그의 눈은 정말로 죽어있었다.

"나는 감정을 잃었어요. 모든 게 무의미했어요. 아침에 일어나도 무의미, 밥을 먹어도 무의미, 사람을 만나도 무의미. 세상이 회색으로 변했습니다. 당신도 그 길을 가면... 돌아올 수 없어요."

박혜진이 이준호의 손을 더 강하게 잡았다. 이준호의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신경이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압력은 전달되었다. 신체 어딘가에, 마지막 남은 감정으로.

"그렇다면 팀을 공식적으로 결성하겠습니다."

김태훈이 선언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약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절대적인 결의였다.

"서연주. S급 헌터, 얼음 속성 마나 조종자. 팀의 전술 지휘를 담당하겠습니다."

서연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섰다.

"저는..."

목소리가 떨렸다. 서연주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눈물이 맺혔다.

"저는 처음에 당신을 도구로 봤습니다. 감정 증폭자라는 도구로. 하지만 당신이 저를 봤을 때, 저는 변했어요. 당신이 제 손을 잡았을 때, 저는 느꼈어요. 제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서연주의 목소리가 떨렸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저는 당신과 함께 간다. 당신이 마모되지 않도록. 당신이 감정을 잃지 않도록. 제 감정이 필요하다면, 모두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이준호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차갑고 정밀한 어깨에 따뜻한 눈물을 흘렸다.

"저는 당신을 놓지 않겠습니다."

이준호의 손가락이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신경이 반응하지 않았다. 중지, 약지, 소지. 세 손가락이 이미 죽어있었다. 감각 상실은 손가락 끝에서 팔뚝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김준영. S급 헌터, 폭발 계열 마나 조종자. 팀의 화력을 담당하겠습니다."

김준영이 주먹을 쥐었다. 손가락 끝에서 불이 피어올랐다. 그 불은 분노로 타올랐다.

"당신을 잃지 않기 위해 나는 싸운다. 이 세상의 모든 것과 싸워서라도."

"박혜진. S급 헌터, 방어 및 회복 속성 마나. 팀의 보호를 담당하겠습니다."

박혜진이 이준호의 손을 놓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에는 미세한 빛이 흘렀다. 회복의 마나였다.

"나는 당신을 지킨다. 당신이 무너지기 전에, 내가 먼저 무너질 때까지."

"유진석. 협회 산하 연구원. 팀의 분석과 정보 담당."

유진석이 측정 장비를 들어올렸다. 녹색 불이 깜빡였다.

"당신의 마모율을 내가 지켜보겠습니다. 0.1%도 놓치지 않고."

"그리고 이준호. 감정 증폭자. 우리 팀의 중심이자, 우리가 지켜야 할 사람."

김태훈이 이준호 앞으로 다가섰다.

"당신은 절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당신의 감정을 나누겠습니다. 당신이 감정을 잃기 전에."

이준호의 눈이 흔들렸다. 이번에는 명확한 감정이었다. 공포였다. 마지막 4%의 감정이 공포로 응축되었다.

"만약... 실패하면?"

"그럼 우리도 감정을 잃는 겁니다."

서연주가 대답했다. 여전히 이준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당신의 감정을 받았거든요. 당신이 우리를 변화시켰듯이, 이제는 우리가 당신을 변화시킬 차례입니다."

침묵이 벙커를 채웠다. 그 침묵은 약속이었다.

박혜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는 이 팀에 남겠습니다. 이준호, 당신이 마모되지 않도록. 당신이 돌아올 수 있도록."

김준영이 손을 내밀었다. 불이 타올랐다.

"나도 함께한다."

유진석이 그 손을 잡았다.

"우리는 하나다."

서연주가 이준호의 어깨에서 얼굴을 들고 마지막으로 손을 얹었다.

"감정 통각상실증에 맞서는 팀. 우리는 이준호를 지켜낼 것이다."

그 순간, 유진석의 통신기가 울렸다. 빨간색으로.

"협회 추격팀이 벙커 입구에 도달했습니다."

목소리는 기계음이었지만, 긴급함이 묻어났다.

"몇 명?"

김태훈이 물었다.

"15명. 모두 B급 이상의 헌터들입니다."

서연주의 얼굴이 굳었다.

"우리는 심연으로 가야 합니다."

"당신들은 갈 수 없습니다."

김태훈이 말했다.

"저는 협회의 신원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여기서 그들을 지연시킬 수 있습니다."

"그럼 당신은?"

"저는 감정을 잃었으니, 잃을 게 없습니다."

김태훈이 웃음을 지었다. 근육이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 순간 그의 눈에 무언가 흔들렸다. 20년 동안 죽어있던 신경이 한 번 깜빡였다. 이준호는 그것이 감정의 회복 신호인지, 아니면 20년 만의 신경 반응일 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당신들이 심연을 정복할 때까지, 나는 이 자리를 지킬 겁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입니다."

벙커의 문이 하나둘 닫혔다. 서연주, 김준영, 박혜진, 유진석, 그리고 이준호. 다섯 명이 마지막 통로로 들어섰다.

협회 추격팀이 벙커 외부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협회 정보국 국원 김태훈을 발견했습니다. 목표물이 근처에 있습니다. 확보하세요."

벙커의 철문이 완전히 닫혔다.

유진석의 측정 장비가 울렸다. 녹색 불이 주황색으로 바뀌었다.

"마모율이 올라갔습니다. 97.1%."

이준호의 몸이 경직되었다. 약지가 완전히 죽었다. 소지가 지금 꺼져가고 있었다. 손가락 네 개가 이미 감각을 잃었고, 다섯 번째가 사라지는 중이었다. 팔뚝으로 무감각이 올라오고 있었다.

"3%가 남았습니다."

유진석의 목소리가 떨렸다.

"3%?"

박혜진이 이준호를 붙잡았다.

"심연 진입까지 3%를 버텨야 한다는 뜻입니다."

서연주가 말했다.

"그 이상 마모되면, 돌아올 수 없어요."

이준호는 박혜진의 손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거기 있다는 것은 알았다. 마지막 3%의 감정으로, 그것만은 알았다.

협회 본부의 회의실에서 이태현이 일어섰다.

"감정 증폭자를 놓쳤다고?"

"죄송합니다. 김태훈 국원이 방해했고..."

"김태훈? 그 자는 20년 전부터..."

이태현의 눈이 반짝였다. 위험한 빛이었다.

"그렇다면 더욱 위험하다는 뜻이군. 감정 증폭자가 협회의 전설과 연결되었다는 뜻이야."

보좌관이 바짝 엎드렸다.

"지시를 내려주세요."

"감정 증폭자를 찾아라. 그리고 그를 둘러싼 모든 S급 헌터들을 감시하고, 필요하면 제거하라. 그들이 심연으로 향한다면, 그들을 추격하고 격멸하라."

이태현이 창밖을 바라봤다.

"감정 증폭자가 세상에 알려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협회의 신분제도, 나의 통제 체계도. 그렇게 되면 안 된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결연했다.

"전면 추격 작전을 시작하라."

심연의 어둠 속에서, 이준호는 박혜진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마모율이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97.1%.

3%가 남았다.

돌아올 수 없는 지점까지, 3%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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