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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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진의 눈이 이준호를 인식하는 데 0.3초가 걸렸다.

그 시간 동안 일어난 일: 사무실 문이 열렸고, 이준호가 들어섰고, 박세진이 책상에서 고개를 들었고, 그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정상적인 인식 속도라면 이 정도면 충분하다. 하지만 박세진은 그 0.3초 안에서 뭔가가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이준호의 눈이 파란색이 아니었다.

아니, 파란색이었다. 정확히는 파란색이었던 것 같은데, 보는 순간 다른 색으로 보였다가 다시 파란색으로 돌아왔다. 마치 프리즘을 통과한 빛처럼 색이 분산되었다가 수렴했다. 동공은 수직선처럼 가늘어져 있었고, 각막이 반짝거렸다. 투명한 막이 한 겹 덮여 있는 것처럼.

"준호."

박세진이 천천히 일어섰다.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

이준호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박세진을 봤다. 아니, 봤다기보다는 인식했다. 마치 카메라가 피사체에 초점을 맞추듯이, 그의 눈이 박세진의 형체를 스캔했다. 위에서 아래로. 신발에서 얼굴까지. 한 번에.

"무슨 일이 있었어? 협회에서 뭐라고 했어?"

박세진이 한 발 앞으로 나갔다. 책상 모서리를 돌아 이준호에게 가까워졌다. 거리는 2미터. 충분히 가까운 거리였다. 평소라면.

"회사가 어떻게 되는지 얘기해 봐."

이준호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박세진이 멈췄다.

"뭐?"

"죄송합니다. 저는 당신을 모릅니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사무실의 공기가 얇아졌다. 박세진이 숨을 들이마셨는데 산소가 충분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가슴 중앙에 작은 구멍이 생긴 것 같았다.

"이준호, 너 뭐 하는 거야?"

"저는 이준호입니다. 하지만 당신을 모릅니다."

목소리가 이준호의 것이 아니었다. 음역대는 같았지만, 말의 리듬이 달랐다. 마치 누군가 이준호의 성대를 빌려 말하는 것처럼. 사이사이에 묘한 침묵이 있었다. 한국어를 배운 지 얼마 안 된 외국인처럼.

박세진이 이준호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눈썹은 정상이었다. 코는 정상이었다. 입은 정상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합쳐져 만드는 '표정'이 정상이 아니었다. 얼굴 근육들이 마치 다른 누군가의 지시를 받는 것처럼 움직였다. 감정 없이. 기계적으로.

"당신은 박세진입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맞아. 나 박세진이야."

"당신은 현장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B등급 헌터입니다."

"응, 맞고."

"당신은 이준호가 무모하다고 자주 지적합니다."

박세진의 입술이 떨렸다.

"그래, 자주 지적했어. 그런데 넌 왜 그래? 나 봤잖아. 나 말 들었잖아. 우리가 함께했잖아!"

박세진이 소리쳤다. 목이 쉬었다. 그 목소리는 3시간 전부터 울부짖고 있었다. 협회 고발장이 떨어진 이후로 계속.

이준호가 한 발 물러섰다.

"당신과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럼 돌아와! 지금 당장! 내가 뭘 잘못했어?"

"기억이 있습니다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그 말이 박세진의 모든 것을 끊어 버렸다. 기억이 있지만 무엇인지 모른다. 그건 기억이 아니었다. 그건 흔적이었다. 발자국만 남은 것이었다. 누가 지나갔는지는 알 수 없는.

박세진이 손을 뻗었다. 이준호의 손목을 잡으려고. 따뜻한 손이었다. 여전히 따뜻했다. 맥박도 뛰고 있었다. 하지만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정확히 1.3초 간격으로.

"날 봐. 제발, 내 눈을 봐."

박세진이 애원했다. 이준호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 높이로 들어올렸다.

"나야. 박세진이야. 너랑 컨트랙트 만들었던 사람이야. 처음엔 의심했지만 너를 믿기로 했던 사람이야.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넌 내게 물었어. '당신이 날 도와줄 사람입니까?' 그리고 나는..."

박세진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이준호의 눈이 박세진을 봤다.

그리고 박세진은 그 눈 속에서 자신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 속에는 이미지가 있었다. 박세진의 형태가 반사되고 있었다. 마치 거울처럼. 하지만 거울 속에는 '인식'이 없었다. 카메라 렌즈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만, 아무것도 해석하지 않는 그런 눈.

박세진의 손이 이준호의 팔을 내려갔다. 손가락의 떨림을 따라가려고 했지만, 주기가 너무 빨랐다. 1.3초마다. 1.3초마다. 기계음처럼.

"제발..."

박세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눈물이 흘렀다. 자신도 모르게. 이 정도는 울 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제발, 돌아와."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이준호의 눈이 변했다.

파란색에서 하늘색으로. 하늘색에서 더 밝은 하늘색으로. 마치 새벽이 밤을 밀어내듯이. 색이 순환하는 게 아니라 '회귀'했다. 가장 처음의 색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박세진이 처음 본 이준호의 눈색으로.

"박... 세진?"

이준호가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흔들렸다. 정상적인 음성대로 돌아왔다. 감정이 담긴, 불안정한 음성.

박세진이 이준호를 끌어안았다. 말 없이. 가슴에 이준호의 얼굴을 묻었다.

"응, 나야. 돌아왔어? 돌아왔어?"

이준호가 떨었다. 손이 박세진의 등을 잡았다. 정상적인 손이었다. 따뜻하고, 살이 있고, 감정이 담긴 손. 박세진은 그 손의 온기를 느끼며 한 가지를 깨달았다.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을.

"기억이..."

"괜찮아. 기억은 나중에. 지금은 숨만 쉬자."

박세진이 이준호의 머리를 쓸어올렸다. 그의 이마는 차가웠다. 마나 때문인지 공포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그때 문이 다시 열렸다.

유민서가 들어왔다. 손에는 측정 장비를 들고 있었고, 얼굴은 창백했다. 3시간 동안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들고 온 것이었다.

"이준호, 마나 포화도가 72%를 넘었어. 이건..."

유민서가 말을 멈췄다. 이준호의 눈을 봤기 때문이었다.

눈이 다시 변하고 있었다. 파란색에서 보라색으로. 보라색에서 금색으로. 금색에서 더 이상 정의할 수 없는 색으로.

"아니야. 안 돼."

유민서가 손에 들었던 장비를 떨어뜨렸다. 측정기가 바닥에 부서졌다. 화면이 깜깜해졌다. 하지만 유민서는 그것을 보지 않았다. 이준호의 눈을 봤다.

그 눈 안에 자신이 비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거울이 검어지듯이. 마치 창문이 닫히듯이. 그의 눈이 유민서를 받아들이는 것을 멈췄다.

"이준호?"

유민서가 한 발 앞으로 나갔다.

이준호가 박세진의 팔에서 빠져나왔다. 부드럽게. 마치 물처럼. 박세진이 그를 놓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이준호의 팔이 마나로 변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놓을 수밖에 없었다.

"준호, 뭐 하는 거야?"

박세진이 외쳤다.

이준호가 사무실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창문 쪽으로. 밤 11시 47분의 강남역 상공. 도시의 불빛들이 아래로 펼쳐져 있었다.

"라이라."

이준호가 속삭였다. 하지만 그것은 이준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두 개의 목소리가 겹쳐 있었다. 남성의 음성과 여성의 음성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여성의 목소리가 주도권을 가져갔다.

"한 번의 계약만 더 하면, 내가 이 세상에 완전히 강림할 것이다."

사무실의 창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래층 사람들이 느낄 정도로. 건물 전체가 울렸다. 마치 거대한 악기처럼.

박세진이 이준호를 잡으려고 달려갔다.

"안 돼! 제발!"

하지만 이준호의 주위에 형성된 마나 장벽이 박세진을 밀어냈다. 무게가 없는 손으로 가슴을 밀어내는 것처럼. 박세진이 벽에 부딪혔다.

유민서가 휴대폰을 들었다. 누군가에게 전화하려고. 하지만 신호가 끊겼다. 이준호의 주위의 마나가 모든 전자파를 교란하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뭐 하는 거야!"

박세진이 벽에서 밀려나며 외쳤다. 하지만 이준호는 듣지 않았다. 듣고 있지 않았다. 아니, 듣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마치 의식적으로 박세진의 목소리를 필터링하듯이.

이준호가 자신의 손목을 잡았다. 팔목에 계약 문양이 떠올랐다. 검은 선이 피부를 따라 움직였다. 살아 있는 것처럼. 마치 뱀처럼. 마치 혈관처럼.

"모든 것을 담보로."

이준호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계약 의식이 시작됐다.

사무실 안의 공기가 응축되기 시작했다. 마나가 보이는 것처럼 농축되면서 은빛으로 변했다. 그 안에서 이준호의 신체가 빛나기 시작했다. 피부가 투명해지고, 그 안에서 마나가 흐르는 것이 보였다. 마치 유리 도관 안의 물처럼.

박세진이 다시 달려갔다. 이번엔 마나 장벽을 뚫고 들어갔다. 어깨로. 온 몸의 힘을 모아서. 마나를 폭발적으로 분출하며.

그의 손이 이준호의 팔을 잡았다.

따뜻했다. 여전히 따뜻했다. 하지만 그 따뜻함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마나로 변하면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제발, 돌아와. 날 봐. 내 얼굴을 봐!"

박세진이 울부짖었다.

이준호가 박세진을 봤다.

그 눈 안에는 더 이상 이준호가 없었다. 오직 금색만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다른 것이 있었다. 다른 의식이. 다른 의지가.

라이라.

고대 정령이 이준호의 눈을 통해 박세진을 봤다. 그 시선은 호기심이 아니었다. 동정도 아니었다. 그것은 지나가는 미물을 보는 눈이었다. 잠깐 눈에 들었다가 사라질 존재를 보는 눈.

"놓아."

라이라가 말했다. 이준호의 목소리로.

박세진이 놓지 않았다.

마나 폭발이 일어났다.

사무실의 창문이 깨졌다. 23층 높이에서. 유리 조각들이 밤하늘로 흩어졌다. 마나 파동이 건물 전체를 흔들었다. 아래층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지진인 줄 알았다.

박세진이 벽에 부딪혔다. 다시. 이번엔 등으로. 허리로.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그는 일어났다. 다시 이준호에게 향했다.

유민서가 박세진의 팔을 잡았다.

"안 돼. 이미..."

"뭐?"

"이미 끝났어."

유민서가 손에 들었던 측정기의 파편을 집어 들었다. 화면은 깨져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기록된 수치들이 보였다.

"마나 포화도 104%. 신체 변환율 89%. 정신 분리도 92%."

유민서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의 눈에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박세진을 붙잡았다. 정확하게. 과학자처럼.

"정신 분리도가 92%에 도달했다는 건 이준호의 의식이 거의 라이라에게 잠식당했다는 뜻이야. 계약이 완성되는 순간, 그의 정신은 완전히 덮어씌워질 거야. 그럼 그는..."

그 말이 끝나기 전에, 바닥이 갈라졌다.

강남역 지하 400미터에서 뭔가가 깨어나고 있었다. 세상과 다른 곳을 연결하는 S등급 게이트가 개방되고 있었다. 이준호의 신체가 라이라의 육체를 이 세상에 강림시키는 그릇이 되고 있었다.

하늘이 갈라졌다.

밤하늘이 세로로 찢어졌다. 23층 사무실 위의 하늘이. 그 틈 사이로 다른 빛이 흘러나왔다. 황금색 빛이. 마치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그 틈 사이에서 무언가가 웃고 있었다.

형태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여성의 목소리로. 오랫동안 기다렸던 존재가.

그때 헬리콥터의 소리가 들렸다.

협회의 특별 부대였다. 마나 폭발을 감지한 협회가 긴급 출동한 것이었다. 3대의 헬리콥터가 건물 주위를 에워쌌다. 서치라이트가 사무실을 비췄다. 이들은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정확한 타이밍에 도착했다.

그리고 박세진의 휴대폰에 문자가 들어왔다. 신호가 복구되면서.

[협회 부회장 김태준 발신] [이준호 용의자를 긴급 체포한다. 저항할 경우 무장 진압 권한을 행사한다.]

박세진이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이준호가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창문을 통해서. 23층에서. 마나의 흐름을 타고. 마치 날개가 있는 것처럼.

박세진이 창문 밖을 봤다. 이준호가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공중에 떠 있었다. 마나를 마치 고체처럼 사용해서.

그리고 하늘의 틈이 더 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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