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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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동 원룸의 벽시계가 아침 6시를 가리켰다. 이준호는 여전히 바닥에 앉아 있었다. 어제 밤 협회 긴급 공지는 폰 화면에 세 번 깜박였다. 미등록 게이트 침입 용의자 수사 중. 협조 요청.

그의 손가락이 떨렸다. 계약의 빛이 눈에 남아 있었다.

협회 소환장은 오전 10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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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실의 형광등은 너무 밝았다. 이준호의 눈이 자꾸 감겼다. 책상 너머 김태준 부회장은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그 뒤로는 두 명의 조사원이 섰다.

"어제 밤 11시 47분. 강남구 압구정동 북쪽 산림 지역에서 비정상 마나 파동이 감지됐습니다."

김태준이 사진을 던졌다. 드론 촬영 이미지였다. 게이트의 입구가 명확히 보였다. 이준호의 심장이 철렁했다.

"같은 시간대 CCTV에는 당신이 등산로를 올라가는 모습이 기록됐습니다."

다음 사진. 그의 실루엣이 어둠 속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 이것."

김태준이 마지막 자료를 밀어냈다. 협회 의료실의 기록지였다. E등급 영구 고착 판정. 이준호의 이름이 붉은 줄로 그어져 있었다.

"E등급인 당신이 어떻게 S등급 게이트의 외벽을 넘었습니까?"

침묵.

"더군다나 게이트 내부에 남겨진 마나 흔적은 일반 헌터의 것이 아닙니다. 협회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패턴입니다."

김태준이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의 눈이 이준호를 뚫고 들어왔다.

"당신은 무언가를 숨기고 있습니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힘을 사용했거나, 미등록 생명체와 접촉했거나."

이준호의 목이 말라왔다. 라이라. 계약. 기억 소실.

"협회는 당신을 보호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당신이 솔직해야 합니다. 게이트에서 무엇을 만났는가? 누가 당신에게 힘을 줬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당신은 어떻게 그곳에서 살아나왔는가?"

이준호가 입을 열었다.

"기억이 안 납니다."

"뭐라고?"

"게이트에 들어갔을 때부터 기억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의식이 끊겼다가 깨어났을 땐 이미 밖에 있었어요."

거짓이면서도 사실이었다. 어제 밤 계약 후, 그의 기억은 실제로 조각났다. 게이트 내부의 장면들은 흐릿했고, 라이라와의 대화는 마치 꿈처럼 남아 있었다.

김태준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조사원들의 시선이 이준호에게 집중됐다.

"당신의 신체는 게이트 강화가 불가능합니다. 그런 당신이 미등록 게이트에 침입했다는 자체가 문제입니다."

"법을 어겼다는 말씀입니까?"

"미등록 게이트 침입은 헌터법 제8조 위반입니다. 최대 징역 3년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충분히 협조한다면, 합의 가능한 부분도 있습니다."

김태준이 서류 한 장을 꺼냈다.

"이것은 협회 감시 대상자 지정 통지입니다. 당신은 향후 협회의 특별 감시 하에 놓이게 됩니다. 매월 신체 검사, 분기별 마나 파동 기록 제출, 그리고 게이트 접근 금지. 이 조건을 위반하면 신원 구속 절차가 즉시 진행됩니다."

이준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김태준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당신을 만난 사람이 있습니까? 당신에게 게이트 위치를 알려준 사람이?"

"혼자서 그 위치를 찾았습니다."

"E등급이 S등급 게이트를 우연히 찾다니."

김태준이 몸을 다시 앞으로 숙였다. 책상을 두드렸다.

"당신의 대답이 일관성이 없습니다. 기억이 안 난다면서 우연히 찾았다? 게이트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던 건가요? 아니면 누군가의 안내를 받은 건가요?"

이준호의 손이 떨렸다. 함정이었다. 김태준은 이미 의심하고 있었고, 그의 대답 속 모순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짓말은 쌓인다. 한 번의 거짓이 다음 거짓을 낳고, 그것이 또 다음을 낳는다. 이준호는 지금 그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손끝이 저렸다. 목 뒤가 따뜻해졌다. 자신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기억이 완전히 없는 건 아닙니다. 그 지역에 뭔가 있다는 느낌만 있었어요. 그래서 찾아갔습니다."

"느낌이라고요?"

"마나의 흐름 같은 것. E등급이지만 감지할 수는 있습니다."

김태준이 한숨을 쉬었다. 그가 손을 들자 조사원들이 물러났다.

"이 건은 계속 조사 중입니다. 당신은 향후 협회 소환에 응하지 않으면 신원 구속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당신이 다시 게이트에 접근하는 것은 절대 금합니다. 만약 적발되면 징역 3년은 기본입니다."

이준호가 일어섰다. 조사실의 문이 열렸다. 복도로 나올 때까지 그의 다리는 떨렸다.

협회를 나온 것은 정오였다.

---

박세진은 강남역 지하 창고에서 덤벨을 들고 있었다. 56살의 나이에 그의 신체는 여전히 A등급 수준의 근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회색으로 벗겨진 머리, 군더더기 없는 얼굴. 그는 이준호를 보고 덤벨을 내려놨다.

"협회 조사는 어땠나?"

"특별 감시 대상자로 지정됐습니다. 매월 신체 검사, 분기별 마나 파동 기록 제출을 해야 합니다."

박세진의 표정이 굳었다.

"그럼 앞으로 활동이 제한된다는 뜻이네."

"협회가 나를 추적할 겁니다."

이준호가 대답했다.

박세진이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다행이야. 그런데 말야, 준호."

그가 이준호를 바라봤다. 박세진의 눈은 언제나 정직했다.

"너는 뭔가 다르다. 어제 밤부터. 눈빛이."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박세진이 창고 한구석을 가리켰다. 낡은 책상, 오래된 컴퓨터, 헌터 협회의 게이트 등급표가 벽에 붙어 있었다.

"이게 내 꿈의 시작이야. 5년 전부터 이곳에서 프리랜서 헌터들을 모아 팀을 꾸렸다. 메이저 헌팅사 없이 고등급 게이트를 독점하는 거야. 하지만 협회가 고등급 게이트를 배분하는 권한을 쥐고 있으니까, 우린 항상 저등급 게이트만 배당받는다. 저등급에서는 절대 성장할 수 없어. 그게 이 세상의 시스템이야."

박세진이 앉았다. 의자가 삐걱거렸다.

"그런데 넌 다르다고 생각했어. 재벌 도련님. 넌 돈이 있으니까, 협회의 권력에 맞설 수 있을 것 같았어."

"맞설 수 있습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지만 단호했다.

"어떻게?"

"게이트를 조종할 수 있으니까."

박세진이 고개를 들었다. 이준호가 창고 중앙으로 나섰다. 그의 손이 천천히 올라갔다.

마나가 응집되기 시작했다.

창고 안의 공기가 떨렸다. 박세진이 느꼈다. 마나의 흐름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그것이 이준호의 신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변 모든 것을 관통하고 있다는 것을.

이준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창고의 먼지가 공중에 떠올랐다. 아니, 먼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나였다. 눈에 보이지 않던 마나가 이준호의 손 움직임에 따라 형태를 드러냈다. 마치 실처럼 엮여서 공중에 무언가를 그려내고 있었다.

박세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준호의 손이 창고 벽을 향했다. 벽이 투명해졌다. 아니, 투명해진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공간이 드러난 것이었다. 벽 너머 게이트의 내부 구조가 선명하게 보였다. 크리스탈처럼 빛나는 마나 결정들. 그 사이로 흐르는 에너지의 맥. 게이트 내부의 생명체들이 움직이는 궤적.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사라졌다.

이준호의 손이 내려갔다. 창고는 다시 벽으로 돌아왔다. 마나는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박세진은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준호의 눈빛이 이전과 달랐다. 무언가 차갑고 계산적인 것이 그 안에 깃들어 있었다. 마치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그 눈을 통해 박세진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박세진은 한 발 물러섰다. 그의 호흡이 얕아졌다. 등에 식은땀이 맺혔다.

"당신이... 게이트를 본 거야?"

"게이트와 계약을 맺을 수 있습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도 달랐다. 감정이 빠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존재가 그의 입을 빌려 말하는 것처럼.

"당신이 원하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메이저 헌팅사에 맞설 헌팅사. 협회의 권력을 흔드는 조직. 그것을 만들 수 있습니다. 나와 함께라면."

박세진이 천천히 앉았다. 그의 눈이 반짝였다. 욕망이 피어올랐다. 20년 전 젊은 베테랑 헌터의 꿈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얼굴에 공포가 스쳤다. 이준호의 변화. 그 차가운 눈빛. 감정 없는 목소리. 그것이 뭔가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박세진은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가 알던 그 청년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남겨진 것은 뭔가 다른 것. 뭔가 낯선 것.

"정말로?"

"정말로입니다."

박세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즐거운 웃음이 아니었다.

"미쳤다. 완전히 미쳤다. 하지만..."

그가 이준호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게 현실인 것 같아. 그리고 넌... 넌 뭔가 위험해졌어.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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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협회 산하 마나 연구실. 유민서는 화면에 떠 있는 데이터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비정상 마나 파동의 기록. 어제 밤 11시 47분. 강남구 산림 지역.

그 근처에는 공식 등록된 게이트가 없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마우스를 움직였다. 마나 파동의 파형을 분석했다. 일반 헌터의 마나 흐름은 신체 중심에서 방사형으로 퍼진다. 하지만 이 파동은 다르다. 그것은 마치 중심에서 흡수되는 것처럼 보였다.

유민서가 화면을 확대했다.

파형의 중심을 향해 모든 마나가 집중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다시 방사되는 패턴. 마치 누군가가 마나를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이건..."

그녀가 중얼거렸다.

"뭐지?"

유민서는 협회 자료실로 향했다. 오래된 헌터 기록들을 꺼냈다. 100년 전 기록. 200년 전 기록. 마나 파동의 비정상 사례를 찾기 위해.

기록에는 없었다.

그녀는 컴퓨터 앞으로 돌아가 타이핑을 시작했다. 협회 내부 데이터베이스에서 모든 비정상 마나 파동 기록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록들을 연결해, 혹시 같은 패턴이 있는지 역추적하기로 했다.

만약 이것이 단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면?

만약 같은 사람이 여러 번 반복했다면?

화면에 데이터가 쌓여갔다. 유민서의 눈이 점점 더 커졌다. 같은 패턴이 있었다.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히 있었다. 3개월 전. 6개월 전. 1년 전. 더 오래전.

"이게... 뭐지?"

그녀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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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의 어머니 이혜진은 오후 2시에 전화를 걸었다.

"너 지금 어디야?"

"강남역입니다."

"협회 조사는?"

"끝났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통화 잡음만 들렸다.

"준호, 엄마 말 들어. 이제 그만해. 헌터 활동 말고, 이 모든 것을 그만둬. 넌 우리 가문의 자산이야. 더 이상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어."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넌 어릴 때부터 뭔가 달랐어. 항상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고 했어. 형들처럼 강하길 원했고, 아빠처럼 성공하길 원했고. 하지만 넌 충분해. 넌 이미 충분히 가치 있어."

"엄마."

이준호가 말했다.

"내가 여섯 살 때 뭘 했는지 기억하세요?"

"뭐라고?"

"여섯 살 때. 내 생일날 뭘 했는지."

통화 너머에서 이혜진의 숨소리가 들렸다.

"... 케이크를 사줬어. 초콜릿 케이크. 넌 초콜릿을 좋아했으니까."

이준호는 그 기억을 찾으려 했다. 여섯 살의 자신. 초콜릿 케이크. 엄마의 얼굴.

아무것도 없었다.

그 자리에는 공허함만 있었다. 마치 누군가 정교한 칼로 그 부분만 도려낸 것처럼. 기억이 있어야 할 자리에 검은 구멍만 남아 있었다.

"엄마, 그때 아빠는?"

"아빠는... 출장이었어. 아빠는 항상 바빴어."

그것도 없었다. 아버지의 모습. 그 기억 속의 아버지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어제 밤 계약 후, 그의 기억은 조각났다. 어린 시절의 일부가 흐릿해졌다. 엄마와의 기억. 아버지와의 기억. 형들과의 기억. 모두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이 가속화되고 있었다. 초등학교 교실의 냄새. 친구의 목소리. 첫 번째 게이트 앞에서 느꼈던 두려움. 모두 사라지고 있었다. 그것들을 붙잡으려 할수록 더 빠르게 흩어졌다.

"준호? 넌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누구야?"

이혜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넌 내 아들이야. 이준호. 그게 전부야.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아. 그저 살아만 줘. 그것만으로 충분해."

이준호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엄마의 목소리는 여전히 낯설었다. 그 음성은 기억 속의 목소리와 다르게 들렸다. 아니, 기억이 없으니 비교할 수 없었다. 그냥 낯선 여성의 목소리일 뿐이었다.

이준호는 손을 펼쳤다. 손가락 끝에 마나가 모였다. 얇은 빛.

라이라.

계약을 맺은 순간부터, 그는 뭔가를 잃기 시작했다. 기억. 감정. 그리고 지금 그것이 가속화되고 있었다. 기억의 대가. 그것이 계약의 조건이었다.

정말로 계속하면,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잊게 될 것이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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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내부 회의실에서 김태준은 자료를 모으고 있었다. 이준호의 모든 기록. E등급 판정 이전의 신체 검사 기록. 게이트 접근 기록.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제 밤의 비정상 마나 파동 데이터.

그것은 협회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패턴이었다.

김태준이 의자에 기댔다. 30년간 협회에 있으면서, 그는 이런 마나 패턴을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게이트와의 상호작용처럼 보였다. 마치 누군가가 게이트와 '대화'하는 것처럼.

그것은 불가능해야 했다.

헌터는 게이트에서 자원을 채취할 뿐, 게이트와 대화할 수 없다. 게이트는 일방적인 채취 대상이다. 그것이 헌터 이론의 기초였다.

하지만 이 데이터는 다르다고 말하고 있었다.

김태준이 핸드폰을 집었다. 메이저 헌팅사 아르테미스의 회장 이한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E등급 헌터입니다. 비정상 마나 파동 데이터를 확보했습니다."

"어느 정도?"

"S등급 게이트 수준입니다."

통화 너머에서 이한기의 숨소리가 들렸다.

"그를 계속 추적하시오. 그리고 그의 정체를 밝혀라. 금지된 마법이라면 더욱 그렇다."

통화가 끊어졌다.

김태준은 창밖을 바라봤다. 서울의 풍경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해가 넘어가는 시간. 이준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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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6시. 이준호는 박세진과 유민서를 만났다. 강남역 지하 창고에서.

유민서는 노트북을 들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심각했다.

"어제 밤 비정상 마나 파동 데이터를 보셨나요?"

"본 것 같습니다."

이준호가 답했다.

유민서가 노트북 화면을 켰다. 파형이 떠올랐다.

"이 파형은 일반 헌터의 것이 아닙니다. 마나가 중심으로 집중되는 패턴이에요. 그리고..."

그녀가 화면을 스크롤했다. 더 많은 데이터가 나타났다.

"같은 패턴이 여러 번 나타났어요. 3개월 전. 6개월 전. 1년 전. 더 오래전까지. 모두 다른 위치에서. 모두 미등록 게이트 근처에서."

박세진과 이준호가 동시에 유민서를 바라봤다.

"협회가 이 데이터를 연결하면 며칠 내로 당신의 신원을 확정할 겁니다. 마나 연구실 내에서도 이미 파벌 간 경쟁이 시작됐어요. 누가 먼저 이 현상의 정체를 밝히느냐를 놓고."

유민서가 계속했다.

"그런데 패턴을 자세히 보면..."

그녀가 화면에서 눈을 떼고 이준호를 바라봤다.

"마나가 단순히 흐르는 게 아니라, 뭔가와 상호작용하는 것 같아요. 마치 누군가가 게이트와 '대화'하는 것처럼. 이건..."

"게이트와 계약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미 시작했습니다."

이준호가 손을 펼쳤다. 마나가 응집되었다. 창고 안의 공기가 떨렸다.

유민서의 눈이 커졌다.

"그럼 당신이 어제 밤..."

"네. 그리고 더 있습니다."

이준호가 박세진을 바라봤다.

"우리는 헌팅사를 만들 겁니다. 메이저에 대항하는 헌팅사를. 그리고 숨겨진 게이트를 찾아내서 그것을 독점할 겁니다. 협회의 권력을 흔들 수 있을 정도로."

유민서가 노트북을 닫았다.

"협회가 알아차리면 위험합니다. 데이터 수집이 진행 중입니다. 당신을 추적하고 있어요. 특히 마나 연구실에서. 그리고 아르테미스의 이한기 회장도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뜻입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박세진이 일어섰다. 그는 낡은 책상으로 가서 서류 뭉치를 꺼냈다. 헌팅사 설립 신청서. 5년 전부터 준비해 둔 것들이었다.

"내일부터 시작한다. 헌팅사 '컨트랙트' 공식 출범. 협회에 신고하고, 자금을 투입하고, 인원을 확보한다. 그리고..."

박세진이 이준호를 바라봤다.

"넌 첫 번째 게이트를 찾아. 우리가 독점할 게이트를."

이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협회의 게이트 데이터를 다시 열었다. 공식 등록된 모든 게이트의 위치. 등급. 채취량. 그리고 그 사이의 빈 공간들.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게이트들이 숨어 있는 곳들.

그곳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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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이준호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강남역 지하도에서.

그의 손가락 끝에 마나가 모였다. 그것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계약할 때마다.

이준호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손등의 주름. 손가락의 길이. 그것이 자신의 손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었다.

기억이 자꾸 흐릿해졌다.

어제 아침 협회 의료실에서 본 의사의 얼굴. 그것이 이미 낯설었다. 아니, 기억 자체가 희미했다. 의사가 뭐라고 말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엄마의 목소리도.

여섯 살 생일의 초콜릿 케이크. 그것도 없었다.

아버지의 얼굴. 형들의 이름. 다니던 초등학교. 첫 번째 친구. 모든 것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것을 잃으면, 그는 정말로 누가 될 것인가?

이준호는 핸드폰을 켜서 협회의 게이트 데이터를 열었다. 공식 등록된 모든 게이트의 위치. 등급. 채취량.

그리고 그 사이의 빈 공간들.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게이트들이 숨어 있는 곳들.

강남 지역의 지도를 확대했다. 마나의 흐름을 감지했다. 협회 데이터에 기록되지 않은 흐름. 그곳에 뭔가 있었다. 게이트가 있었다.

압구정동에서 서쪽으로 3킬로미터. 산림 지역. 좌표: 37.0234, 127.0156.

그곳이 첫 번째였다.

시간이 없었다.

김태준은 계속 추적하고 있을 것이다. 유민서도. 이한기도. 협회 내 파벌들도.

그리고 라이라는?

이준호는 눈을 감었다. 그의 의식 깊은 곳에서 라이라의 존재를 느꼈다. 그녀는 자신 안에 있었다. 기억과 함께. 감정과 함께.

아니, 기억을 대신하면서.

점점 더 깊숙이.

협회 소환 재소집은 3일 뒤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 전에 첫 번째 게이트를 찾아야 했다. 그 전에 헌팅사를 공식 출범시켜야 했다. 그 전에 자신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기억의 임계점이 얼마나 남았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아침이 될 때까지 12시간.

그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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