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은 시간
**긴급 공지**
전국의 모든 타임칩 화면이 동시에 켜졌다.
**"크로노스 그룹 공지사항. 시간 전당포 연합은 새로운 체계로 전환합니다. 모든 채무자는 즉시 체포 대상입니다. 현재 전국의 모든 지점에서 수색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메시지가 끝나고, 두 번째 신호가 울렸다.
**"서울 강북구 폐가 지역. 신호 추적 중. 추적 대상: 강현, 서태환, 보호 대상 민지. 도주 시도 시 강제 회수 진행."**
폐가의 거실. 창밖으로 경찰차의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강현과 서태환이 서로를 봤다.
―
"이제 시작입니다."
강현이 말했다.
서태환이 노트북을 켰다. 화면 위에는 전국 수백 개의 채무자 신호가 떠올랐다. 모두가 도망치고 있었다. 모두가 죽음으로 향하고 있었다.
"강현."
"뭐죠?"
"당신의 689일이 정말로 구원의 시간이 될 수 있을까요?"
강현은 창밖의 서울을 봤다. 그 도시에는 수백만 명의 민지가 있었다. 아버지를 찾고 있는 아이들. 사랑을 남기고 싶어 하는 어른들. 시간을 되찾고 싶어 하는 모두.
"네. 될 겁니다."
강현의 손이 타임칩을 만졌다.
1년 9개월 22일. 689일.
―
아침이 밝았을 때, 민지가 왔다.
폐가의 현관 앞에서 그 아이는 서태환의 손을 잡고 있었다. 어제 본 것보다 더 작아 보였다. 추운 아침 공기 속에서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아저씨."
민지가 강현을 봤다.
강현은 무릎을 꿇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응."
"아빠는 나를 사랑했어?"
그 질문이 날아올 때, 강현의 손가락이 떨렸다. 호흡이 멈췄다. 3년 전 그가 회수해간 이준호가 남긴 마지막 질문이 아이의 입을 통해 돌아왔다.
강현은 민지의 손을 잡았다. 아이의 손가락이 자신의 손 위에 놓였다.
"그래. 너의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너를 사랑했어."
"왜... 왜 나를 버렸어?"
목이 메었다. 민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건 사랑 때문이야.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건 사랑 때문이었어. 너를 보호하려고. 너를 지키려고."
민지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의 울음은 작고 떨렸다. 강현은 그 아이를 안았다. 폐가의 현관 앞에서, 창백한 아침 햇빛 아래에서.
"아저씨... 아빠가... 아빠가 마지막에 뭐라고 했어?"
민지의 목소리가 강현의 가슴팍에 닿았다.
강현은 아이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그 손이 떨렸다.
"말해줄래?"
"응."
민지가 고개를 들었다. 눈물 때문에 얼굴이 흐릿했다.
"아빠가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어. '누군가에게 내 시간을 남겨주고 싶었어.'"
강현의 손이 멈췄다.
"아빠는 그렇게 말했어. 자기 시간을 빼앗기는 게 아니라, 남겨주고 싶었대."
민지가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 울음에는 다른 것이 섞여 있었다. 용서. 이해. 그리고 사랑.
강현은 그 아이를 더 깊게 안았다.
그 순간, 강현이 깨달았다. 자신이 3년간 한 모든 회수가 무엇이었는지.
빼앗음이 아니라 남김.
끝이 아니라 시작.
―
오후 2시 정각. 강남구 청담동의 작은 카페.
박수진은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가 이 카페를 선택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아들이 치료를 받는 병원에서 가장 가까운 곳. 매일 아침 아들을 데려다주고, 오후에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 지 이미 3개월.
그 3개월 동안 박수진은 자신의 시간이 무엇인지 다시 배웠다.
병실에서 아들의 손을 잡고 있는 시간. 아들이 자는 동안 옆자리에서 책을 읽는 시간. 회복 중인 아들을 위해 죽 쑤고 밥을 지으러 집에 가는 시간. 그 모든 시간이 돈보다 소중했다.
어제 밤, 서태환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 박수진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강현이 자신의 회수를 유보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강현이 카페에 들어섰다.
박수진이 먼저 일어나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뭐가요?"
"제 시간을 회수하지 않아주셔서요."
강현이 테이블에 앉았다.
"덕분에 제가 제 아들과 함께할 시간이 생겼어요. 지난 3개월 동안 매일 그 옆에 있을 수 있었어요."
박수진의 손이 테이블 위에 펼쳐졌다. 손금이 보였다.
"처음엔 이해가 안 됐어요. 왜 저를 회수하지 않는지. 하지만 그 시간들이 쌓이면서 깨달았어요. 제 시간이 뭔지."
그녀의 목소리가 잠깐 흔들렸다.
"전에는 제 시간이 돈이었어요. 그래서 팔았어요. 아들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하지만 아들은 돈이 아니라 엄마가 필요했어요. 매일 아침 제 얼굴을 보고 싶어 했어요. 제 목소리를 듣고 싶어 했어요."
박수진이 강현을 봤다. 그 눈에는 결연함이 있었다.
"이제 저는 제 시간을 아들과 함께 쓰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 시간이 될 거예요. 다른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시간도 되겠죠."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강현 씨, 한 가지만 더 말해도 될까요?"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저를 회수하지 않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구원해주세요. 그들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거예요. 그들도 마지막까지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 할 거예요."
박수진이 일어섰다.
"저는 이제 가야 해요. 아들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그녀가 카페를 나갔다. 창문 너머로 서울의 거리가 보였다. 박수진은 병원 방향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그 뒷모습에는 더 이상 두려움이 없었다. 오직 사랑만 있었다.
강현은 박수진이 마신 차 잔을 봤다. 잔 위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
저녁 7시 15분. 폐가로 돌아왔을 때, 강현은 자신의 타임칩을 다시 들었다.
1년 9개월 22일.
689일.
그 숫자를 보면서, 강현은 이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형벌이 아니었다. 기회였다.
3년 전, 자신이 빼앗은 30년. 그것을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남은 689일 동안, 자신이 빼앗은 다른 모든 것들을 돌려줄 수 있다. 사랑을. 용서를. 구원을.
강현은 거울 앞에 섰다.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회수자의 얼굴. 채권자의 얼굴. 하지만 그 얼굴 안에는 다른 것도 있었다. 변화하는 무언가.
"서태환."
서태환이 계단을 올라왔다.
"네?"
"함께 이 체계를 바꿔봅시다."
강현의 목소리가 낮지만 확실했다.
"어떻게요?"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이 689일 동안, 우리는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시키겠습니다. 회수가 아니라 구원하겠습니다. 한 사람씩. 한 번씩."
서태환이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두 사람은 폐가의 거실로 내려갔다. 밤이 다시 깊어 오고 있었다.
거실의 벽에는 5개의 파일이 붙어 있었다. 회수 대상들의 얼굴. 하지만 강현은 이제 그들을 다르게 봤다. 채무자가 아니라, 구원받아야 할 누군가로. 각자의 이유가 있고, 각자의 사랑이 있는 누군가로.
"김준석은?"
"시간 빈민가 북동쪽. 조직원 30명과 함께 있습니다."
"박민호는?"
"인천 항구. 밀수 조직과 연계 중입니다."
"최서윤은?"
서태환이 노트북 화면을 가리켰다.
"의료 사기 조직의 수장입니다. 가짜 타임칩을 팔아 수천 명의 채무를 조작했어요. 이번 수색이 시작되면 자살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강현은 그 정보들을 받아들였다. 이전 같으면 단순한 채무액과 위험도만 계산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에 보인 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들도 누군가를 사랑했을 겁니다."
"그렇겠죠."
"그들도 마지막까지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을 겁니다."
서태환이 강현을 봤다. 그의 얼굴에 묻혀 있던 냉정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3년간 갑옷처럼 입고 있던 무감정이 벗겨지고 있었다.
"당신이 정말로 바뀌었군요."
"바뀐 게 아닙니다."
강현이 말했다.
"깨어난 겁니다. 누군가를 파괴하는 것이 정의라고 착각했어요. 누군가를 죽게 만드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준호의 딸이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사랑했다고. 박수진은 시간을 아들과 함께 쓰고 싶다고 말했어요."
강현의 손이 벽의 파일들을 가리켰다.
"이들도 그럴 겁니다. 우리가 그들을 찾아가면, 그들도 자신들이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말할 거예요."
"하지만 그들은 도망치고 있습니다. 이미 신호는 전국에 송출되었고—"
"그래서 더욱 빨라야 합니다."
강현이 자신의 타임칩을 다시 들었다. 그 손가락에 금색이 흐르기 시작했다. 골든핑거. 하지만 이번에는 추적이 아니었다.
"강현, 잠깐."
서태환이 다가왔다.
"골든핑거를 쓰면 일주일이 소모됩니다. 689일은—"
강현이 타임칩의 화면을 켰다.
"689일을 7로 나누면 약 98.4주. 즉, 98번 사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네, 하지만—"
"각 채무자를 찾는 데 평균 3~4주가 걸린다면 시간이 부족할 겁니다."
강현이 서태환의 말을 받았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찾는' 것이 아니라 '만날' 겁니다. 그들이 우리를 찾아오게 만드는 거죠."
"어떻게요?"
강현이 거실의 창문으로 나갔다. 밤의 폐가에서 서울의 전경이 보였다. 불빛들이 깜빡이고 있었다. 경찰차의 사이렌이 들렸다. 회수팀의 신호 음성이 골목골목에 울려 퍼졌다.
'모든 채무자는 즉시 체포 대상입니다.'
그 메시지가 반복됐다.
강현은 그 음성을 들으면서,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크로노스 그룹이 모든 채무자를 일시에 수색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들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임도영의 사망이 시스템에 균열을 냈고, 그 균열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채무자들이 더 이상 순종하지 않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서태환."
"네?"
"이 도시의 모든 채무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세요."
강현이 돌아섰다.
"강현이 그들을 회수하러 가는 게 아니라, 그들의 시간을 '선물'로 돌려주러 간다고."
서태환이 강현을 바라봤다.
"그런 메시지가 먹혀들까요?"
"이준호는 먹혀들었습니다. 박수진도. 민지도. 모두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남기고 싶어 했어요. 이 도시의 모든 채무자들도 그럴 겁니다."
강현이 폐가의 계단을 내려갔다. 1층의 어두운 방에는 노트북과 통신 장비들이 놓여 있었다. 서태환의 저항 조직의 본부. 하지만 이제 그곳은 다른 것이 될 거였다.
"689일 동안, 우리는 이 도시를 바꿀 겁니다."
강현이 말했다.
"한 사람씩. 한 번씩. 파괴가 아니라 변화로. 회수가 아니라 구원으로."
그 순간, 거실의 모든 스크린이 켜졌다. 서태환이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전국 수백 개의 채무자 신호가 떠올랐다. 모두가 도망치고 있었다. 모두가 죽음으로 향하고 있었다.
"메시지를 보냅니다."
서태환이 엔터를 눌렀다.
화면 위에서 텍스트가 전국의 모든 타임칩으로 송출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당신의 것입니다. 빚이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시간을 돌려주러 갑니다. 강현이 갑니다."**
메시지가 도시 전역에 퍼져 나갔다. 강북구의 노후 주택가. 강남의 고급 아파트. 인천의 항구. 수원의 공장 기숙사. 모든 곳에서 채무자들의 타임칩이 울렸다.
―
강북구 시간 빈민가. 조직원 30명과 함께 있던 김준석은 메시지를 받는 순간 멈췄다. 손에 들린 권총이 떨렸다.
그는 자신의 딸을 생각했다. 10년 전, 자신의 빚 때문에 시간을 팔아야 했던 딸. 그 딸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자신. 딸은 자신을 원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현의 메시지는 다르게 들렸다. 구원이라는 단어가 자신의 가슴을 뚫고 들어왔다.
"강현이 간다고?"
옆의 조직원이 물었다.
"네."
김준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손에 들린 권총을 내려놨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딸을 만나러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인천 항구. 밀수 조직과 연계 중이던 박민호는 메시지를 받고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 메시지가 자신을 위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자신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자신의 아내. 그 아내가 죽어가면서 남긴 말은 "아들을 잘 키워줘"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 아들은 자신을 모르는 남이 되어 있었다. 자신은 아들의 양육비를 벌기 위해 밀수 조직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은 자신이 아니게 되었다.
박민호는 항구의 밤바람을 맞았다. 그리고 천천히 생각했다. 강현이 자신의 시간을 돌려준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그것이 정말 가능한지.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 자신의 아들을 위해서라도, 자신은 변해야 한다는 것.
박민호는 천천히 걸어 나갔다.
―
강현과 서태환이 폐가를 나갔을 때, 서울의 모든 채무자 신호가 한 방향으로 수렴하기 시작했다.
강현을 향해.
구원을 향해.
경찰차의 사이렌은 여전히 울려 퍼졌지만, 이제 그것은 배경음에 불과했다. 진짜 움직임은 거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폐가의 문이 열렸다.
밤거리로 나가는 강현의 뒷모습이 사라졌다. 서태환이 노트북을 들고 따라갔다.
그들의 689일이 시작되는 순간, 서울은 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