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위 폐가의 어둠은 절대적이었다.
강현은 서태환이 펼친 파일들을 내려다봤다. 임도영의 얼굴. 그 아래 적힌 수치—1,000년. 손가락이 떨렸다. 50년, 100년, 200년. 이준호부터 박수진까지 그가 회수해온 채무자들의 시간이 모두 정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끝에 임도영이 있었다.
"당신이 회수해온 사람들은 채무자가 아닙니다."
서태환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오히려 그 담담함이 더 끔찍했다.
"그들은 임도영의 비리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증거를 없애야 할 사람들."
강현은 입을 다물었다. 입 안의 공기가 돌처럼 무거워졌다.
"3년 전 대학생의 30년도. 그것도 당신의 실수가 아닙니다. 임도영이 당신의 타임칩에 신호를 심었습니다. 당신은 그 신호를 따랐을 뿐입니다."
"그게 무슨…"
"당신의 골든핑거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서태환이 한 장의 문서를 펼쳤다.
"임도영이 당신의 타임칩에 직접 프로그래밍한 기능입니다. 당신을 도구로 만들기 위해."
강현은 테이블을 짚었다. 손가락이 흔들렸다. 이준호의 시신. 박수진의 울음. 민지의 얼굴. 모든 것이 한순간에 거짓이 되어버렸다. 3년간 자신이 짊어진 죄책감, 그 모든 것이 설계된 것이었다면?
"그럼 내가… 내가 한 모든 게…"
"일어났습니다."
서태환이 그의 눈을 마주했다.
"당신이 이준호를 죽게 했고, 박수진을 추적했고, 민지를 만났습니다. 그것이 조종이었든 아니었든, 그것은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거짓이 될 수 없습니다."
강현의 손가락이 멈췄다. 거짓과 진실의 경계가 흔들렸다. 조종당했다는 사실이 자신의 행동을 무효화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렇다면 죄책감도, 그 죄책감 위에 쌓인 모든 것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
강현의 호흡이 가빠졌다. 자신의 모든 선택이 환상이었다는 깨달음. 그 무게가 가슴을 짓눌렀다. 3년간 회수자로서 살아온 삶 전체가 거짓이었다면, 자신은 무엇인가. 도구인가. 그렇다면 도구는 죄책감을 느낄 수 있는가. 도구는 죄를 지을 수 있는가.
"임도영을 만나야 합니다."
강현이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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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47분. 서울 중앙 지점의 본부는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다.
강현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계단을 올라갔다. 39층. 40층. 41층.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타임칩의 맥박이 느껴졌다. 손목의 그것이 아니라, 심장 위의 그것이.
계단을 오르며 강현은 서태환이 건넨 파일을 다시 떠올렸다. 3년 전부터 준비했다는 말. 그 준비의 과정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았지만, 서태환의 눈빛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강현은 기억을 더듬었다. 임도영이 자신을 조종할 때마다 나타나는 신호들. 그것을 서태환이 어떻게 추적했을까. 한 번은 서태환이 강현을 막아섰던 일이 있었다. 이준호의 신호가 나타났을 때, 서태환이 그 신호를 역추적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위험한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임도영의 보안망을 뚫고, 신호 기록을 수집하고, 피해자들을 찾아내는 과정. 3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그 기간 동안 서태환은 얼마나 많은 위험에 노출되었을까.
임도영의 사무실은 최상층이었다. 유리벽으로 된 공간. 도시를 내려다보는 위치. 권력의 상징.
"오셨군요."
임도영은 창가에 서 있었다. 야경을 보고 있었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예상보다 늦으셨습니다. 서태환이 당신을 많이 설득했나 봅니다."
강현은 말하지 않았다. 호흡을 고르려 했다.
"당신은 이미 내 손 안의 도구입니다."
임도영이 돌아섰다. 손에는 작은 리모컨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임도영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강현의 타임칩이 반응했다.
팔찌의 숫자가 바뀌기 시작했다. 3년 0개월 15일에서 급속도로 떨어졌다. 강현의 심장이 철렁했다. 팔목에 타는 듯한 통증이 흘러내렸다. 마치 시간이 물리적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은 감각. 호흡이 얕아졌다. 1초 단위로 줄어드는 숫자를 따라 신체가 반응했다. 손가락 끝이 저렸다.
3년 0개월 0일. 다시 올라갔다. 3년 0개월 15일. 다시 떨어졌다.
"보이시나요? 당신의 시간은 내가 조종합니다. 언제든지 멈출 수 있고, 언제든지 돌릴 수 있습니다. 당신의 모든 선택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강현은 자신의 손목을 봤다. 타임칩의 숫자가 계속 변했다. 2년 11개월. 통증이 깊어졌다. 마치 몸 안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 2년 9개월. 시야가 흔들렸다. 1년 6개월. 손가락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당신이 이준호를 추적했던 것도, 박수진을 거부했던 것도, 모두 내가 설정한 대로입니다. 당신의 양심, 당신의 죄책감, 당신의 분노까지도. 모두 내가 프로그래밍했습니다."
1년. 9개월. 6개월.
타임칩의 숫자 위에 얼굴들이 겹쳤다. 이준호의 절망한 눈. 박수진의 울음. 민지의 웃음. 그 모든 것이 임도영의 손가락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강현의 호흡이 더욱 가빠졌다. 시간 감각이 왜곡되었다. 몇 초가 몇 분처럼 느껴졌다.
"당신은 나의 도구였고, 지금도 도구입니다."
임도영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제 최후의 선택을 하실 차례입니다."
강현은 자신의 타임칩을 들었다. 팔찌를 벗으려 했다. 시간을 끝내고 싶었다. 이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다. 조종당한 삶이라면, 그것은 삶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손가락이 떨렸다. 타임칩을 벗는 것이 자유인지, 아니면 또 다른 조종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서태환이 들어섰다. 총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임도영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강현을 향했다.
"팀장님,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서태환의 목소리가 떨렸다.
"우리는 이 체계를 바꿔야 합니다. 파괴하는 게 아니라, 변화시켜야 합니다."
강현은 서태환을 봤다. 그의 손이 흔들리고 있었다. 총도, 결의도.
"남은 시간은 1년 9개월입니다. 그 시간으로 우리는 크로노스 그룹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임도영을 회수하고, 모든 것을 폭로하고, 이 체계를 바꿀 수 있습니다."
서태환은 강현을 바라봤다.
"저는 3년 전부터 준비했습니다. 당신이 이준호를 추적했을 때, 임도영의 신호를 역추적해서 네트워크를 구축했어요. 그 과정에서 당신의 피해자들을 찾아내고 보호했습니다. 증거를 수집하는 것도 위험했습니다. 한 번은 임도영의 보안망에 걸릴 뻔했고, 박수진을 찾아낼 때는 추적 신호를 피해 3일을 숨어 있어야 했습니다."
서태환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하지만 당신이 그들을 만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었습니다. 당신이 진심으로 용서를 청할 수 있도록."
임도영이 웃음을 흘렸다.
"흥미로운 장면입니다. 회수자와 저항군. 그리고 둘 다 나의 손 안에 있습니다."
강현은 타임칩을 내려봤다. 1년 9개월. 그 시간 위에 수많은 얼굴들이 겹쳐 있었다. 죽은 자들과 살아있는 자들. 회수한 자들과 구원받은 자들.
파괴인가. 변화인가.
강현은 자신의 선택을 떠올렸다. 이준호를 찾아갔을 때. 그 죽음의 시간을 짊어지고도 살아남은 이유. 박수진을 만났을 때, 그녀의 눈물 속에서 느낀 것.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했을 때, 그녀가 건넨 용서의 말.
"당신을 용서합니다. 당신도 피해자니까요."
그 말이 박수진의 입에서 나올 때, 강현의 타임칩에서 무언가가 사라졌다. 죽음의 시간이 아니라, 죄책감이 사라졌다. 그것이 규칙이었다. 조종당한 자가 깨어나는 순간, 그 깨어남을 용서받을 때, 그 시간은 소멸한다.
강현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타임칩을 부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다시 팔목에 끼웠다.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강현이 임도영을 봤다. 그의 눈은 더 이상 회수자의 냉정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언가를 깨달은 자의 눈이었다.
"제 시간은 당신이 조종해왔습니다. 제 선택도, 제 죄책감도, 모두 당신의 프로그래밍이었습니다."
임도영의 얼굴에 만족감이 떠올랐다. 하지만 강현은 계속했다.
"그런데 당신이 놓친 게 하나 있습니다."
"뭐죠?"
"조종당한 것이 맞다면, 저는 이미 죽어야 했습니다."
강현이 한 발 다가섰다.
"이준호를 추적했을 때, 그의 죽음의 시간을 제가 짊어졌습니다. 당신의 프로그래밍대로라면, 저는 그때 죽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있습니다."
임도영의 손가락이 리모컨 위에서 멈췄다.
"왜냐하면, 당신도 모르는 규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강현이 한 발 더 다가섰다. 임도영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죽음의 시간을 짊어질 때, 회수자가 진심으로 그들을 용서받으면, 그 시간은 사라집니다."
강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당신의 시스템에 없는 변수입니다."
서태환이 총을 내렸다. 그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담겨 있었다. 강현이 이런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것을 지금 꺼낸다는 사실이.
"불가능합니다."
임도영이 말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의심이 섞여 있었다.
"제가 3년을 버티고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강현이 임도영의 책상에 손을 짚었다. 그 순간 사무실의 모든 화면이 켜졌다. 타임칩의 신호들. 수십 개의 신호들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었다.
"저는 당신의 피해자들을 찾았습니다. 당신이 회수하라고 시킨 사람들. 모두."
화면에 나타난 신호들의 목록. 각 신호 옆에는 채무액이 표시되어 있었다.
이준호 - 30년 박수진 - 25년 김준석 - 40년 박민호 - 35년 최서윤 - 22년
그리고 수십 개의 다른 이름들. 수백 개의 채무액들. 모두 합쳐진 숫자는 1,000년을 넘었다.
"그들을 모두 구했습니다. 당신이 제거하라고 했던 증인들을 모두. 그리고 그들 각각을 만나 제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했습니다."
강현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이준호를 찾아갔을 때, 그는 이미 죽어있었어요. 하지만 그의 가족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청했습니다. 박수진을 만났을 때, 그녀는 저를 때렸습니다. 손톱으로 할퀴고, 주먹으로 쳤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녀도 저를 용서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도 당신의 피해자였으니까요. 우리 모두 당신의 피해자였으니까요."
강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들이 저를 용서했을 때, 그들의 죽음의 시간은 사라졌습니다. 당신이 제게 부여한 골든핑거 능력으로 회수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지만, 저는 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용서였기 때문입니다."
임도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불가능해. 당신은 혼자야. 회수팀장 하나로는—"
"혼자가 아닙니다."
서태환이 말했다. 그의 총이 이제 임도영을 향했다.
"저는 3년 전부터 준비했습니다. 당신이 강현을 조종할 때마다, 그 신호를 역추적했습니다. 당신의 모든 거짓을 기록했습니다. 당신이 강현에게 내린 명령, 조작한 타임칩 신호, 모든 것을. 그 과정에서 당신의 피해자들을 찾아내 보호했고, 증거를 수집했습니다."
서태환의 목소리에는 피로감이 묻어났다.
"당신의 보안망을 뚫는 데만 몇 달이 걸렸습니다. 한 번은 추적 신호에 걸릴 뻔했고, 박수진을 찾아낼 때는 당신의 추격 팀을 피해 3일을 숨어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강현을 조종하는 모든 순간을 기록했고, 그 기록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서태환은 강현을 바라봤다.
"팀장님이 그들을 찾아다니며 용서를 청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팀장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임도영이 손을 들었다. 리모컨을 들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이 움직여도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화면의 신호들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타임칩의 신호 추적 시스템이 이미 차단된 것이었다.
"당신은 한 가지를 잘못 계산했습니다."
강현이 임도영의 얼굴에 가까워졌다.
"조종할 수 있다는 것과, 조종이 영원히 통할 것이라는 것은 다릅니다. 저는 도구였지만, 도구도 깨어날 수 있습니다."
임도영은 뒤로 물러났다. 창문을 등지게 되었다. 도시의 야경이 그의 뒤에서 반짝였다.
"당신이 제 시간을 조종해왔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저는 이미 자유로워졌습니다. 왜냐하면 조종은 모르는 상태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알고 나면, 그것은 더 이상 조종이 아니라 선택이 되거든요."
강현의 손이 임도영의 팔목에 닿았다. 임도영이 저항하려 몸을 날렸다. 리모컨을 강현에게 내팽개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강현의 손이 임도영의 타임칩을 잡았다.
"아니! 손을 놔!"
임도영이 비명을 질렀다. 그의 팔을 휘둘렀다. 강현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강현은 그 주먹을 피했다. 회수자의 몸은 이미 수년간의 훈련으로 다져져 있었다. 임도영의 두 번째 주먹도 피했다. 임도영이 물려고 했다. 강현은 한 손으로 임도영의 머리를 제압했다. 임도영의 손톱이 강현의 팔을 할퀴었다. 피가 났다. 하지만 강현의 손은 풀리지 않았다.
회수자의 손길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임도영의 타임칩은 검은색이었다. 일반인의 타임칩과는 다른 모양이었다. 조종 기능이 내장된 프로토타입.
"1,000년의 빚이라고 했죠?"
강현이 타임칩을 들었다.
"사실 그건 당신이 진 게 아닙니다. 당신이 회수하라고 했던 모든 사람들의 빚을 당신 이름으로 등재한 겁니다. 당신 혼자 1,000년을 빌린 게 아니라, 수백 명의 사람들이 진 빚을 당신이 가져간 거죠. 그들의 시간을 당신의 것으로 만든 거죠."
임도영의 얼굴에 공포가 떠올랐다. 그는 더욱 격렬하게 저항했다. 강현의 팔을 물었다. 손톱으로 할퀴었다. 하지만 강현의 손은 풀리지 않았다.
"이제 그 빚을 당신이 진짜로 지게 될 차례입니다."
강현이 임도영의 타임칩을 잡았다. 회수의 손길. 골든핑거의 마지막 사용. 강현의 손에서 시간이 흘러내렸다. 임도영의 손목에서 시간이 사라졌다.
임도영의 몸이 흔들렸다. 마치 수백 년이 한순간에 지나가는 것처럼. 그의 얼굴이 주름 잡혔다. 머리카락이 흰색으로 변했다. 손이 떨렸다. 그의 눈은 점점 흐릿해졌다.
화면의 신호 목록이 변했다. 각 이름 옆의 채무액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다.
이준호 - 0년 박수진 - 0년 김준석 - 0년
모든 빚이 임도영의 타임칩으로 이동했다. 1,000년. 그것은 더 이상 추상적인 숫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수백 명의 개별적인 죄책감이었다. 각각의 죽음. 각각의 절망. 각각의 울음.
"아니... 안 돼... 내가... 내가..."
임도영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들이 점점 작아졌다.
"제거해야 할 사람들... 증거... 그들은 증거였어... 나는... 나는 그냥..."
그의 기억이 사라지고 있었다. 1,000년의 시간 속에서 그가 저지른 모든 죄들이 한 장면씩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이준호를 죽음으로 몰아간 그 순간. 박수진을 추적하라 명령한 그 순간. 수백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증거 인멸의 도구로 삼은 그 모든 순간들.
"제가... 뭘 했는데..."
임도영의 목소리는 더 이상 권력자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죄책감에 짓눌린 한 인간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1,000년의 빚을 진 자의 최후.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시간의 소멸이었다. 그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더 이상 무언가를 보지 못했다. 마치 살아있는 시체처럼.
강현은 손을 놨다. 임도영의 타임칩은 더 이상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한 장신구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강현은 자신의 손을 봤다. 골든핑거를 사용한 손. 회수자의 손. 하지만 이제 그것은 도구의 손이 아니었다. 그것은 선택한 자의 손이었다. 죄책감을 짊어지고, 용서함으로써 자유로워진 자의 손.
"팀장님."
서태환이 다가왔다. 그의 얼굴에는 안도감도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다.
"끝났습니다. 이제 정말로."
강현은 자신의 타임칩을 봤다. 1년 8개월 23일. 회수 능력을 마지막으로 사용하면서 1주일이 소모되었다. 하지만 더 이상 죽음의 시간을 짊어지지는 않았다. 임도영의 모든 빚을 그에게 돌려주었기 때문이다.
"아니요."
강현이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이제 시작입니다."
서태환이 강현을 봤다. 그의 눈에 의문이 떠올랐다.
"당신이 했던 말이 기억나십니까? '우리는 이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강현이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계단을 내려갔다. 한 계단씩. 타임칩의 맥박이 여전히 느껴졌다. 심장 위의 그것이.
"제 남은 1년 8개월은 이 체계를 무너뜨리는 데 쓰겠습니다. 당신이 3년 전부터 준비한 모든 것들을 현실로 만들겠습니다."
강현의 목소리가 계단을 따라 울려 퍼졌다.
"당신도 함께할 준비가 되셨나요?"
서태환은 강현을 따라왔다. 그의 총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졌다. 대신 그의 손에는 강현의 회수 파일들이 들려 있었다. 남은 채무자들. 아직도 살아있는 채무자들. 그들을 구원해야 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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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 15분. 서울 중앙 지점의 본부는 조용해졌다. 임도영의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그의 타임칩만이 바닥에 남아 있었고, 창밖의 도시는 여전히 밤을 깨어 있었다.
강현과 서태환은 사라졌다. 그들의 목표는 명확했다. 1년 8개월. 그 시간 동안 크로노스 그룹을 무너뜨리고, 시간 채무 체계를 파괴하고, 남은 피해자들을 구원하는 것.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임도영의 사무실 벽에는 숨겨진 카메라가 있었다. 강현이 사무실을 나가며 무언가를 감지한 듯 벽을 향해 눈을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그 신호는 벌써 누군가에게 전송되고 있었다.
크로노스 그룹의 진정한 지배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