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도주와 진실

차가 멈췄다.

산길을 한참 올라온 폐가였다. 서태환이 엔진을 끄고 핸들에서 손을 떼자, 밤의 고요함이 차 안을 집어삼켰다. 강현은 뒷좌석에 누워 있는 민지를 바라봤다. 아이의 숨이 규칙적이었다. 회수팀장으로서 수백 번 추적했던 그 숨소리와는 다른 것이었다. 그건 죽음의 신호가 아니었다.

"여기가 안전합니다."

서태환이 돌아앉으며 말했다. 그의 얼굴은 어두웠다. 차의 실내등을 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켤 수 없었다. 신호를 감지당할 수 있으니까.

강현의 손이 주머니 속 타임칩을 만졌다.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신호 차단 상태라면 정확한 수치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누구를 따르고 있는가라는 문제였다.

"서태환."

강현의 목소리가 낮았다.

"당신이 누군지 말해 달라."

서태환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피로의 숨이 아니었다. 결정을 내린 사람의 숨이었다.

"제 소개는 생략하고, 현실부터 말씀하겠습니다."

서태환이 조수석 글로브박스를 열었다. 메모리칩 여러 개가 들어 있었다. 그는 그 중 하나를 꺼내 대시보드의 홀로그램 디스플레이에 꽂았다. 화면이 켜졌다. 파란 빛이 차 안을 채웠다.

"당신은 회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채무자들의 남은 시간을 거두는 사람. 그렇죠?"

강현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건 거짓입니다."

서태환이 화면을 넘겼다.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크로노스 그룹의 내부 문서들. 회의록. 재정 보고서. 그리고 강현의 이름이 적힌 파일들.

"당신이 회수한 사람들은 채무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증거였습니다."

"증거?"

강현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임도영의 정치적 라이벌, 경제적 위협,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크로노스 그룹의 불법 거래를 알고 있던 사람들. 당신이 회수했던 모든 사람들을 조사해 보세요. 그들의 이름이 어디선가 나타날 겁니다. 임도영의 비리 기록에."

첫 번째 파일이 떴다. 이준호. 강현은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차 안이 흐릿해졌다.

공장의 지하실이 떠올랐다. 15년 전의 그곳. 산업 재해로 죽은 노동자들의 시신이 쌓여 있던 그곳. 그는 그 장면을 채무자의 죄책감으로 덮어두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죄인 양.

"이준호는 임도영이 운영하던 불법 노동 착취 공장의 증인이었습니다. 15년 전, 그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산업 재해로 죽었어요. 당신이 추적했던 그 공장이 맞습니다."

강현이 일어났다. 차의 천장에 머리가 부딪혔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건 채무 때문이었다. 그가 50년을 빌렸으니까—"

"50년을 빌린 게 아닙니다."

서태환이 차분하게 말했다.

"임도영이 그에게 50년을 강제로 주었습니다. 그 다음, 당신이 회수하도록 지시했어요. 이준호의 목숨과 함께 그의 증언까지 제거하기 위해.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이 증거 인멸입니다."

강현의 손이 떨렸다. 그는 이준호를 회수할 때를 떠올렸다. 그 남자의 절망한 얼굴을. 자신이 그 절망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채무 때문에. 법칙 때문에.

하지만 그게 거짓이었다면?

"내가... 내가 뭘..."

"당신은 피해자입니다."

서태환이 손을 뻗어 화면을 껐다. 차 안이 다시 어두워졌다. 하지만 어둠은 이전 같지 않았다. 더 무거웠다. 강현의 호흡이 빨라졌다.

"3년 전, 당신이 무고한 대학생의 30년을 빼앗았다고 생각했죠?"

"그건... 내 실수였다."

강현의 목소리가 떨렸다.

"실수가 아닙니다. 임도영의 명령이었습니다. 그 대학생은 크로노스 그룹의 내부 감시인이었어요. 당신의 능력을 시험하고, 동시에 그를 제거하는 것. 일석이조였습니다."

강현이 뒷좌석에서 내려 차 밖으로 나갔다. 산 위의 공기가 찬 바람으로 몸을 때렸다. 그는 경계 없이 산에 내팽개쳐졌다. 나뭇가지가 얼굴을 긁었다. 그는 그것도 느끼지 못했다.

3년. 3년을 죄책감으로 살았다. 매달 시간을 갚으며, 자신의 죄를 대면하려 했다. 채무자들의 얼굴을 보며 자신이 빼앗은 것들을 이해하려 했다. 그 모든 것이 조종이었다는 게 가능한가.

그렇다면 자신이 죄책감으로 느낀 것들은? 그 고통은? 그것도 누군가가 설계한 감정이었단 말인가.

강현이 나무에 기대앉았다. 흙이 옷에 묻었다. 손이 떨렸다. 그다음은 구토였다. 밤의 산에서 강현은 자신의 배 안에 있던 모든 것을 토해냈다. 그것은 음식이 아니었다. 3년간 자신이 쌓아올린 죄의식이었다. 거짓이었다는 깨달음이었다.

얼마나 된 후, 민지가 나타났다. 손에 물병을 들고. 아이는 말없이 물을 내밀었다. 강현이 받아 마셨다. 입 안의 쓴맛이 빠지지 않았다.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

민지가 갑자기 말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단순한 선언이었다.

강현이 아이를 바라봤다. 민지의 눈은 두려움이 없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왜냐하면 나쁜 사람은 이렇게 울지 않으니까."

강현은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눈물이 흘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민지가 강현의 옷자락을 잡았다. 아이의 손은 작았지만 따뜻했다. 강현은 그 손을 통해 뭔가를 깨달았다. 죄책감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감정은? 민지를 지켜야 한다는 이 절박함은?

"아저씨가 나를 지켜줄 거야?"

민지가 물었다.

"응. 그래."

강현이 대답했다. 그것이 자신의 첫 번째 약속이었다.

서태환이 나타났다. 강현 옆에 앉았다. 그는 침묵으로 기다렸다. 강현이 먼저 말할 때까지.

"당신이... 누구냐."

강현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이제는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

"크로노스 그룹 내부의 저항 조직원입니다. 이 체계를 바꾸려는 사람들 중 한 명이죠."

"그리고 나를?"

"3년 전부터 감시했습니다. 당신의 첫 회수 때부터. 그 대학생을 회수하던 날부터."

강현이 서태환을 바라봤다.

"왜?"

"당신이 그 대학생을 회수할 때, 다른 회수자들과 달랐어요. 의심했습니다. 임도영의 명령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것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어요. 그 순간부터 당신은 이미 체계 밖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날 기다렸다고?"

"네. 당신의 죄책감이 깨어날 때까지. 당신이 스스로 진실을 마주할 때까지."

서태환이 산 아래를 가리켰다.

"당신은 자신이 빼앗은 것들을 되돌리고 싶었어요. 그 욕망이 가장 강한 힘입니다. 당신이 체계를 부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거기서 벗어나 있거든요."

차 안으로 돌아갔을 때, 강현은 서태환이 다시 홀로그램을 켜는 것을 봤다. 이번엔 다른 파일들이었다.

"남은 네 명의 채무자입니다. 당신의 5건 임무 중 나머지 4명이죠."

두 번째 파일이 떴다. 김준석. 나이 34세. 채무액 87년. 체포 기록 12건.

강현은 그 이름을 보자 기억이 떠올랐다. 임도영의 경쟁 조직 보스. 강현이 추적했던 남자.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강현은 어떤 거래 기록을 떠올렸다. 임도영이 김준석의 조직을 무너뜨리기 위해 강현을 보냈던 것. 그것이 단순한 채무 회수가 아니었다는 걸 지금 깨달았다.

"김준석. 임도영의 경쟁 조직 보스입니다. 당신이 추적했던 그 남자. 그의 조직이 임도영의 불법 거래를 적발하려던 조직이었어요. 당신이 그를 회수함으로써 그 수사는 영원히 묻혔습니다."

강현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때 그 남자의 얼굴. 자신을 보며 절망하던 눈빛.

세 번째 파일. 박민호. 나이 56세. 채무액 143년. 직업: 전 검사.

강현은 이 이름도 알았다. 임도영의 뇌물 수수를 적발했던 검사였다. 그 사건은 언론에서 사라졌다. 그 검사도 사라졌다. 강현이 그를 회수했을 때, 그의 증언도 함께 사라졌다. 강현은 그때를 떠올렸다. 검사의 아내가 울던 모습을.

"박민호. 임도영의 뇌물 수수를 적발한 검사였습니다. 현재는 전직이고, 채무로 침묵당하고 있어요."

네 번째. 최서윤. 나이 29세. 채무액 76년. 직업: 의약품 개발자.

강현은 이 얼굴을 본 순간 불안감을 느꼈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여자가 중요한 누군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최서윤. 크로노스 그룹의 독점 의약품 특허를 거부했던 개발자입니다. 그 특허는 생명 연장 약물인데, 실제론 시간 중독성 물질이었어요. 당신이 회수하면 그 특허의 유일한 증거가 사라집니다."

마지막 파일.

화면이 조용했다. 그 이름이 떴을 때, 강현의 숨이 멎었다.

임도영. 나이 58세. 채무액 1,000년.

"임도영입니다."

서태환의 목소리가 담담했다.

"당신의 마지막 회수 대상.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중심."

강현이 화면을 바라봤다. 1,000년. 그것은 현실적인 수치가 아니었다. 사람의 생명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권력이었다.

"그의 채무는 거짓입니다. 완전한 허구예요. 임도영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수치. 이 수치가 존재하는 한, 크로노스 그룹은 불가침의 권력입니다. 누군가 그의 채무를 회수하려 하면, 그는 죽습니다. 동시에 그의 모든 비리와 거래가 그와 함께 사라집니다."

강현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서태환을 봤다.

"그래서... 나를 데려왔군. 내가 그를 회수하길 원하는 건가."

"당신이 결정할 겁니다. 당신의 남은 시간으로."

강현은 잠시 침묵했다. 서태환의 말에 저항하고 싶었다. 이 모든 게 조종이라면, 지금 이 순간도 조종 아닌가. 하지만 동시에 강현은 알고 있었다. 이미 자신이 이 길을 걷고 있다는 걸. 아니, 걷게 될 거라는 걸.

"내가 이 모든 것을 끝내고 나면, 이 아이는 어떻게 되나?"

강현이 민지를 바라봤다.

"안전하게 보호될 겁니다."

"약속이야?"

"약속입니다."

강현이 타임칩을 들었다. 화면이 켜졌다.

1년 9개월. 670일.

그 숫자를 보는 순간, 강현의 몸이 경직되었다. 3년. 1,095일이 주어졌었다. 그 중 425일이 이미 사라졌다. 자신의 죄책감 속에서. 그리고 남은 것은 670일뿐이었다.

670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강현은 3년 전 그 대학생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남자도 이렇게 타임칩을 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남은 시간을 보며 절망했을 것이다. 그리고 강현이 그 절망을 만들었다.

"박수진은 어디 있나?"

"안전한 곳입니다. 당신이 준 3일의 시간으로 아들의 수술을 마쳤습니다. 현재 그들은 임도영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어요."

민지가 강현의 팔에 기대왔다. 아이는 말없이 그의 팔을 안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강현은 알 수 있었다. 이 아이를 지키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그 선택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아니, 정해진 게 아니라 필연이었다.

민지를 지키는 방법은 단 하나. 이 체계를 무너뜨리는 것. 그 체계 속에서 임도영을 제거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죽는 것.

강현이 입을 열었다.

"좋아. 시작하자."

강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5건의 채무자. 모두 회수하겠어."

"마지막 채무자는?"

강현은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서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계산했다. 남은 670일. 그 시간으로 할 수 있는 것들. 그리고 할 수 없는 것들.

"마지막은... 당신들이 정해."

서태환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이 가장 명확한 대답이었다.

"당신들의 목표가 뭔데?"

강현이 다시 물었다. 그 질문이 떠오르는 순간, 강현은 스스로 답을 찾기 시작했다. 크로노스 그룹이 왜 존재하는가. 임도영이 왜 1,000년이라는 거짓을 만들었는가. 그것은 모두 같은 이유였다. 통제. 모든 타임칩의 신호를 추적하고, 모든 거래를 기록하고, 모든 사람을 감시하는 것. 그것이 이 체계의 본질이었다.

"크로노스 그룹을 해체하는 건가? 아니면 이 시간 체계 자체를 바꾸는 건가?"

"둘 다입니다."

서태환이 창밖을 가리켰다. 산 아래 도시 전체가 보였다. 밤의 도시는 수백만 개의 타임칩 신호로 빛나고 있었다. 각각의 신호는 누군가의 남은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죽음까지의 거리였다.

"크로노스 그룹은 이 신호를 통제합니다. 모든 타임칩의 신호를 추적하고, 모든 거래를 감시하고, 모든 채무를 기록합니다. 이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체계를 완벽하게 유지하는 것. 그리고 당신은 그 체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입니다."

"내가 어떻게?"

"당신의 능력으로 그들의 거짓을 폭로하는 것입니다. 이준호의 죽음, 박수진의 강압, 그리고 무엇보다 임도영의 1,000년 채무. 이 모든 것이 사기라는 것을 증명하면 됩니다."

강현이 타임칩을 다시 봤다. 670일. 그 숫자가 더 이상 죄책감의 기간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시간이었다.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죽음까지의 거리였다.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지?"

"당신이 임도영을 회수할 때, 그의 1,000년이 당신에게 전가됩니다. 당신은 순간적으로 1,000년을 짊어지게 돼요."

"그럼 난 죽는다."

"네."

"그리고 임도영도?"

"그도 죽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모든 거짓이 폭로됩니다. 타임칩의 신호 기록에 그 1,000년이 거짓 거래임이 드러나요. 크로노스 그룹의 기반이 무너집니다."

강현이 일어났다. 민지의 손을 잡고 차 밖으로 나갔다. 서태환도 따라왔다.

산의 정상에서 강현은 도시를 내려다봤다. 밤의 도시는 여전히 수백만 개의 신호로 빛나고 있었다. 각각의 신호는 누군가의 생명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신호는 크로노스 그룹의 손 안에 있었다.

"내가 선택하지 않으면?"

"당신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남은 670일 동안 이 아이와 함께. 임도영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강현이 민지를 봤다. 아이는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강현은 깨달았다. 이 아이가 자유로운 삶을 살려면, 이 체계가 무너져야 한다는 걸.

아니, 더 정확히는. 민지가 어디에 숨든 임도영의 손은 계속 뻗어올 것이다. 타임칩의 신호는 계속 추적될 것이다. 이 체계가 존재하는 한, 그들은 영원히 도망쳐야 한다.

그리고 강현은 이미 알고 있었다. 도망칠 수 없다는 걸.

강현이 도시를 바라봤다. 밤의 불빛이 하나씩 꺼지기 시작했다. 아니, 꺼지는 게 아니었다. 신호가 감지되지 않는 것이었다. 임도영의 추적망이 점점 좁혀오고 있었다. 민지의 타임칩 신호가 이 산 위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그 선택지는... 없군."

강현이 중얼거렸다.

"왜?"

"왜냐하면 당신이 이미 말했으니까. 당신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그건 내가 선택할 게 없다는 뜻이야. 아니, 선택지는 있지만 결과는 정해져 있다는 뜻이고."

강현이 타임칩을 들었다. 화면에 떠오른 숫자를 응시했다. 670일. 3년 전 그 대학생도 이렇게 봤을 거야. 자신의 남은 시간을. 그리고 그 남자는 절망했을 것이다. 강현이 만든 절망으로.

이제 강현이 할 일은 명확했다.

"좋아. 시작하자."

강현이 말했다.

"5건의 채무자. 모두 회수하겠어. 그리고 마지막 채무자도."

강현은 타임칩을 주머니에 넣었다. 670일. 그 시간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강현은 그제야 알았다. 자신의 3년이 죄책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선택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이미 시작되었다. 아니, 이미 끝나 있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