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임도영의 사무실 문이 닫혔다.

강현은 40층 창밖의 야경을 보지 않았다. 타임칩을 들었다. 화면에 떠오른 숫자는 985일. 정확히 2년 8개월 16일. 정확히 죽음까지의 시간이었다.

서태환의 목소리가 복도에서 들렸다. "팀장."

강현은 칩을 손목에 차고 돌아섰다.

"이준호 추적 과정에서 나온 정보 있습니다." 서태환은 파일을 건넸다. "주소지는 중랑구 노동장 인근. 최근 3개월간 불법 일당 현금 수령 기록이 있습니다."

"불법 노동?"

"네. 시간 빈민가에서 돈을 버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시간을 파는 것, 아니면 법의 사각지대에서 몸을 파는 것." 서태환의 표정은 평탄했다. "이준호는 후자를 선택했던 모양입니다."

강현은 파일을 훑었다. 이준호의 얼굴 사진이 있었다. 사진 속 남자는 마르고 창백했다.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50년의 빚을 진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표정이었다.

"딸이 있습니다." 서태환이 덧붙였다. "10세, 이름은 민지. 현재 양육자는 모친입니다."

"모친이?"

"작년 사망. 차량 사고. 이후 피부양자 현황에서 이준호의 모친이 기재되어 있었는데, 최근 사망 신고가 올라왔습니다. 3일 전입니다." 서태환은 한숨을 쉬었다. "딸의 현재 거주지를 파악 중입니다."

강현은 다시 사진을 봤다. 이준호의 눈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는 파일을 덮었다.

"주소지를 보내줘."

---

중랑구는 회색이었다.

강현이 도착했을 때 해는 이미 졌고, 거리의 가로등도 절반만 켜져 있었다. 노동장 건물은 낡은 공장을 개조한 것이었다. 벽에는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고, 창문 유리는 깨져 있었다. 그 안에서 나오는 빛은 노란색이었다.

골든핑거를 발동했다.

타임칩의 신호들이 뇌 속으로 쏟아졌다. 건물 내부에 6명. 각각 다른 색의 신호. 가장 약한 신호가 지하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곳이 이준호였다.

강현은 건물 뒷문으로 들어갔다. 노크는 하지 않았다. 사다리를 내려가며 골든핑거를 유지했다. 신호가 점점 가까워졌다. 손가락이 저렸다. 능력 사용 시 일주일의 시간이 소모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강현은 멈추지 않았다.

지하실 문이 열렸다.

이준호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니, 앉혀 있었다. 팔이 등 뒤로 묶여 있었고, 머리는 떨어져 있었다. 호흡은 얕았다. 눈은 떴지만 초점이 없었다. 강현이 처음 본 사진의 표정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더 죽어 있었다.

"이준호."

이준호의 눈이 움직였다. 아주 천천히. 마치 늪지에 빠진 사람이 위를 보려는 듯.

"50년의 시간 채무로 회수팀의 강현 팀장입니다." 강현이 말했다. "채무 상황을 정리해드리겠습니다. 현재 미납 금액은 50년. 월 이자 5%에 따른 누적 이자는 23년 6개월입니다. 총 채무액은 73년 6개월입니다."

이준호의 입이 움직였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당신의 남은 시간은?"

강현의 손가락이 이준호를 향했다. 골든핑거가 작동했다. 타임칩의 신호가 선명해졌다. 빨간색이었다. 거의 소진 직전의 색상이었다.

"1년 3개월."

이준호가 웃었다. 목에서 나오는 소리는 웃음이 아니라 신음이었다.

"딸이 있습니까?" 강현이 물었다.

이준호의 눈이 흔들렸다.

"민지. 10세. 현재 보육원 입소 대기 중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강현은 파일에서 사진을 꺼냈다. 민지의 얼굴이 있었다. 아버지와 같은 눈을 가진 여자아이였다. "당신의 딸이 맞습니까?"

이준호가 울음을 흘렸다. 눈물이 아니라 침이었다. 목이 마른 상태였다.

강현은 휴대폰을 들었다. 서태환에게 메시지를 쳤다. 『민지 위치 파악. 긴급 보호 절차 진행.』

그 순간 이준호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타임칩이 울렸다. 경고음이었다. 아주 작은 음성. 하지만 강현은 들었다. 그것은 생명 신호의 급격한 감소를 알리는 신호였다.

강현이 몸을 날렸다. 이준호의 묶인 팔을 풀었다. 호흡을 확인했다. 아직 있었다. 맥박도 있었다. 하지만 약했다. 아주 약했다.

"병원. 지금 병원으로."

강현이 이준호를 안아 올렸다. 남자의 몸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마른 나뭇가지를 들어올리는 무게였다. 근위축성 측삭경화증. 서태환이 말했던 진단명이 떠올랐다. 신경이 죽어가는 병이었다. 뇌와 척수의 신경세포가 점진적으로 파괴되는. 그래서 이준호는 움직이지 못했다.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데도 시간을 빌렸다.

왜?

강현은 이준호를 들고 계단을 올랐다. 밖으로 나왔다. 거리는 여전히 회색이었다. 자동차의 엔진음이 들렸다. 서태환이 차를 몰고 나타났다. 뒷문이 열렸다.

"시간이 없습니다." 서태환이 말했다.

강현은 이준호를 뒷좌석에 누였다. 자신도 탔다. 자동차가 급가속했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이준호의 호흡이 더 얕아졌다.

강현은 그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이 차갑고 딱딱했다. 뼈가 피부 바로 아래 있는 손이었다. 살이 없었다. 시간을 팔아 번 돈으로 누군가를 부양했던 손이었다.

"딸을 보고 싶으십니까?"

이준호의 눈이 강현을 봤다. 처음으로 초점이 맞았다.

"딸을 보고 싶습니다." 이준호의 목에서 나오는 소리는 바람 같았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강현의 손가락이 떨렸다.

---

민지는 보육원의 회색 침대에서 잠들어 있었다.

강현이 도착했을 때 밤은 깊었다. 보육원 원장은 강현의 신분증을 본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회수팀의 권한 앞에서는 아이의 사생활도 무의미했다.

강현은 침대 옆에 섰다.

민지의 얼굴을 봤다. 사진으로 본 얼굴과 같았다. 그리고 달랐다. 사진은 죽어 있었고, 침대의 민지는 살아 있었다. 숨을 쉬고 있었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미간에 주름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진 아이의 표정이었다.

강현이 손을 내밀었다. 민지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온기가 전해졌다.

"아빠?"

민지의 눈이 떴다. 초점이 맞지 않았다. 아직 꿈의 세계에 있었다. 아이는 강현의 손을 잡았다.

"아빠 왜 안 와?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강현의 목이 조여 왔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아이의 손가락이 자신의 손등에 파고들었다.

"아빠가 왜 날 버렸어?"

강현은 손을 빼려고 했다. 민지가 더 강하게 잡았다.

"아빠...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날 용서해줄래?"

강현의 눈이 흔들렸다. 침대 위의 아이는 자신을 아버지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현은 그 착각을 깨뜨릴 수 없었다. 아이의 손을 놓을 수 없었다.

민지의 눈이 다시 감겼다. 손의 힘도 풀렸다. 아이는 다시 꿈으로 돌아갔다.

강현은 그대로 서 있었다. 손을 빼지 않은 채. 아이의 손등을 봤다. 하얀 피부. 파란 핏줄. 아직 시간이 가득한 손이었다. 80년의 시간을 가진 손이었다.

강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아이는 80년을 산다. 그리고 자신은 983일을 산다. 강현은 민지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의 모든 시간을 볼 수 없다. 아버지를 기다리며 죽어가는 이준호처럼, 강현도 누군가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손가락이 떨렸다. 팔이 떨렸다. 그리고 강현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 체계 안에서 자신은 회수자가 아니라 또 다른 채무자일 수도 있다는 것을.

강현의 타임칩이 울렸다.

메시지였다. 서태환으로부터. 『이준호 사망. 21시 47분. 병원 응급실.』

강현의 손이 떨렸다. 민지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아이의 손가락이 자신의 손등에 파고들어 있었다. 마치 놓지 말라고 애원하는 듯.

강현은 천천히 손을 빼냈다. 민지의 손이 침대 위에 떨어졌다. 아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강현은 침대를 떠났다. 보육원의 복도를 걸었다. 어둠 속에서 아이들의 숨소리만 들렸다.

---

병원의 영안실은 차가웠다.

이준호의 시신은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다. 시신의 옆에 서 있는 것은 시간 전당포의 담당자였다. 정장을 입은 남자. 강현은 이 남자를 알고 있었다. 이름은 박준호. 채무 정리를 담당하는 직원이었다.

"채무자 이준호, 1년 3개월 미납, 최종 채무액 73년 6개월." 박준호가 서류를 읽었다. 기계적인 목소리였다. "사망 시점에서 회수팀장 강현의 책임 범위 내 사망입니다. 죽음의 시간 규칙 적용. 이준호의 남은 시간 1년 3개월을 회수팀장의 계좌로 이관합니다."

강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재 강현 팀장의 남은 시간은 983일 23시간 47분입니다."

숫자가 바뀌었다. 985일에서 984일로. 능력 사용의 대가였다. 그리고 이제는 이준호의 죽음의 대가까지 더해졌다.

강현은 이준호의 시신을 봤다. 천 위로 보이는 것은 남자의 윤곽뿐이었다. 얼굴은 가려져 있었다.

"유족은?" 강현이 물었다.

"딸이 있습니다. 10세. 보육원에 입소 예정입니다. 아버지의 채무는 상속되지 않으므로 문제없습니다." 박준호가 말했다. "시신의 처리는 시간 전당포에서 담당합니다. 비용은 채무자의 계정에서 공제됩니다."

강현이 돌아섰다.

"팀장, 한 가지 더." 박준호가 말했다. "채무자 이준호의 타임칩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박준호가 뭔가를 건넸다. 종이였다. 휴지처럼 얇은 종이. 그 위에 글씨가 있었다.

"글씨는 채무자가 남긴 것으로 추정됩니다. 타임칩 마지막 거래 기록 시점, 약 2시간 전입니다."

강현이 종이를 펼쳤다.

글씨는 떨리고 있었다. 마비된 손가락으로 쓴 글씨였다. 하지만 읽을 수 있었다.

『민지에게. 미안해. 아빠가 이렇게 밖에 못해줄 수 없어서 미안해. 언젠가 다시 만나면 용서해줄래? 그 때는 아빠가 너를 안아줄게. 약속할게.』

강현의 손가락이 종이를 움켜잡았다. 손이 떨렸다. 종이가 구겨졌다. 팔이 떨렸다. 이준호가 마비된 손으로 쓴 글씨. 그 글씨가 담은 절망과 사랑이 강현을 밀어냈다.

강현은 입을 열었다. 목에서 나오는 소리는 말이 아니라 신음이었다. 이준호가 남긴 약속. 딸을 안아주겠다는 약속. 강현은 그것을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 약속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 약속을 부순 사람이라는 것도.

강현은 종이를 내려놨다. 구겨진 종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영안실의 형광등이 그것을 비추고 있었다.

"팀장?"

강현은 영안실을 나갔다. 복도를 걸었다. 병원의 형광등이 천장에서 점들처럼 떠 있었다. 그 아래를 걷고 있는 자신이 보였다. 냉철한 회수자. 채무자를 추적하고 시간을 회수하는 자.

그리고 이제 한 어린 아이의 아버지를 죽인 자.

강현의 휴대폰이 울렸다. 임도영이었다.

"축하합니다, 팀장." 임도영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갑고 깨끗했다. "첫 번째 임무 완료. 이준호의 73년 6개월 채무를 회수했습니다."

강현은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임도영이 계속했다. "이준호의 타임칩에서 이상이 감지됐습니다. 마지막 거래 기록에 타임칩 바이러스가 심어져 있었습니다. 시간 전당포의 시스템을 공격하려던 흔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 지역의 보스, 김준석이 연루된 것 같습니다."

강현은 말했다. "이준호가 의도적으로 바이러스를 심은 건가요?"

"그것이 핵심입니다." 임도영의 목소리에 흥미로움이 묻어났다. "이준호는 채무자이면서 동시에 시스템 공격의 도구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움직였다는 뜻이죠. 당신의 추적을 방해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강현의 호흡이 변했다. 그렇다면 이준호의 죽음은 단순한 질병의 결과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계획 속에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 계획의 일부였다.

"조사해보겠습니다." 강현이 말했다.

"좋습니다. 그리고 팀장, 당신의 다음 임무를 준비하세요." 임도영이 말했다. "시간은 흐르고 있습니다."

통화가 끊겼다.

강현은 병원의 복도에 서 있었다. 천장의 형광등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강현의 타임칩은 경고음을 울리고 있었다.

983일 23시간 47분.

그것이 남은 시간이었다.

강현은 휴대폰을 들었다. 서태환에게 메시지를 쳤다. 『김준석 위치 파악. 타임칩 바이러스 관련 정보 수집.』

그리고 한 가지 더 추가했다. 『민지. 보육원이 아닌 다른 보호 방안 찾아줄 수 있나?』

서태환의 답장은 빨랐다. 『알겠습니다. 팀장.』

강현은 타임칩을 다시 봤다. 983일. 거의 3년 미만이었다. 3년 전 자신이 빼앗은 30년과 비교하면, 남은 시간은 거의 무의미했다. 하지만 그 무의미한 시간 안에서 강현은 이제 뭔가를 알아야 했다.

이준호가 왜 시간을 팔았는지. 누가 그를 이용했는지. 민지가 왜 아버지를 원했는지. 그리고 자신이 왜 이 모든 것을 회수해야 하는지.

강현은 병원을 나갔다.

밤의 서울은 여전히 야경으로 빛나고 있었다. 40층 임도영의 사무실에서 본 그 야경과 같은 빛. 아름답고 냉정한 빛. 모두가 같은 빛을 보고 있지만, 아무도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 않은 도시.

강현의 휴대폰이 울렸다.

알 수 없는 번호였다.

"팀장님, 저 김준석입니다." 목소리는 낮고 위협적이었다. "이준호를 회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강현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김준석이 계속했다. "당신도 결국 이 체계의 일부입니다. 당신이 회수할 때마다 이 체계는 더 견고해진다는 뜻입니다. 당신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잊지 마십시오."

강현은 입을 열었다. "이준호를 이용한 건 당신입니까?"

"이용? 흥미로운 표현이군요." 김준석의 목소리에 웃음이 섞여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거래라고 부릅니다. 그는 자신의 딸을 위해 시간을 팔았고, 우리는 그에게 돈을 줬습니다. 공정한 거래였습니다."

"그 대신 바이러스를?"

"그것도 거래의 일부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끝내 실패했군요. 당신이 너무 빨랐던 모양입니다." 김준석이 말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르게 해보려고 합니다. 당신의 다음 대상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박수진. 당신의 전 동료입니다."

강현의 몸이 경직됐다.

"그녀도 채무자입니다. 30년의 시간을 빌렸거든요. 당신을 만나기 전에 말입니다." 김준석이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미 당신을 추적 중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녀의 시간을 빼앗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당신을 만나기 전에 당신을 죽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강현의 호흡이 가빠졌다.

"그것이 거래입니다, 팀장님." 김준석이 말했다. "당신은 이준호를 회수했고, 이제 박수진이 당신을 회수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이 체계의 진실입니다. 누군가는 항상 누군가를 회수하고 있습니다."

통화가 끊겼다.

강현은 핸드폰을 내려놨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손가락이 아니라 팔 전체가 떨리고 있었다.

박수진. 자신의 전 동료. 그리고 채무자.

강현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이 회수가 아니라, 사실은 또 다른 형태의 빚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빚은 절대 갚을 수 없다는 것을.

983일.

그것이 남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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