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밤 11시의 질문들

밤 10시 55분. 강준은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손가락이 마우스 위에서 맴돌고만 있었다. 어제도 이맘때쯤 이수현이 나타났다. 그제도. 어제는 계란말이 김밥을 들고 왔고, 그제는 주먹밥이었다. 오늘은 뭘 가져올까.

강준은 이 생각을 밀어내려 했다. 신입 후배의 야근 방해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손가락은 여전히 마우스 위에서 맴돌고 있었고, 가슴 어딘가가 자꾸만 부풀어 올랐다. 뭐 하는 짓이야. 자조했지만 시계는 계속 봤다.

밤 11시 정각 3분 전. 엘리베이터 소리가 났다.

"팀장님, 안녕하세요."

이수현은 매번처럼 밝았다. 어둡고 텅 빈 사무실에 그의 목소리만으로도 공기가 달라졌다. 삼각김밥 봉지를 들었고, 오늘따라 편의점 도시락도 하나 더 들려 있었다.

"저 오늘 계란말이 아니라 스팸 덮밥 사왔어요. 팀장님, 오늘 따라 피곤해 보여서요."

강준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안 먹어도 돼."

"그래도 저랑 먹으세요. 이거 혼자 먹기엔 너무 많거든요."

이수현은 이미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펼쳐놓고 있었다. 강준이 거절할 틈을 주지 않는 방식이었다. 이제 익숙했다. 3주 동안 매일 밤 11시마다 반복된 패턴이었다.

강준은 의자를 돌렸다. "왜 자꾸 여기 와?"

"팀장님, 내일 갑자기 죽으면 어떻게 해요? 그 야근이 무슨 소용이에요?" 이수현이 밥을 떠 입에 넣으며 웃었다. "아, 지난번에도 했던 말이네."

"알아. 그 말 지겨워."

"하지만 팀장님은 계속 야근하시잖아요. 그 말을 안 들어먹는 것처럼."

강준은 식사를 시작했다. 스팸 덮밥의 기름진 냄새가 올라왔다. 생각보다 맛있었다. 이수현은 계속 말했다.

"팀장님, 혹시 알아요? 팀장님이 죽으면 저 정말 슬플 것 같아요."

강준의 손이 멈췄다.

"뭐 하는 소리야?"

"진짜예요. 팀장님이 자꾸 밤새고 있는데, 저 생각하면 정말 슬픈 거 있죠. 팀장님 혼자 여기서 일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안 나타나면, 저 뭐 해야 돼요?"

강준은 밥을 먹었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또는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팀장님, 왜 혼자 고생해요?"

"일이 많으니까."

"그게 아니라..." 이수현이 포크를 내려놨다. 처음으로 진지한 표정이었다. "팀장님, 혼자가 아니고 싶으신 거 맞죠?"

강준의 젓가락이 멈췄다. 밥이 한두 톨 떨어졌다.

"뭐라고?"

"팀장님, 누가 팀장님을 봐주고 싶어요. 저처럼."

침묵이 사무실을 채웠다. 강준은 이수현을 보지 않았다. 모니터 위 자신의 흐릿한 반영만 봤다. 회색빛이던 얼굴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고마워."

그 말이 나왔다. 강준 자신도 놀랐다. 자신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이 두 글자가 자신의 입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에. 숨이 얕아졌다.

이수현이 웃었다. "뭘 감사하세요. 저 또 내일 올 거든요."

"알았어."

밤 11시 15분. 이수현이 돌아갔다. 강준은 남겨진 삼각김밥 봉지를 들었다. 계란말이였다. 어제와 같은 것이었다. 그는 봉지를 책상 옆 서랍에 넣었다. 이미 세 개가 들어 있었다. 한 개는 주먹밥, 한 개는 김밥, 한 개는 계란말이. 어제 오늘 모레의 기록이었다.

그 서랍을 닫고 다시 모니터를 켰다. 밤 12시까지는 아직 45분이 남았다. 야근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꾸 '내일 밤 11시'가 생각났다. 이수현이 또 올까. 올 거다. 지난 3주간 한 번도 안 온 날이 없었다. 강준은 마우스를 움직였지만 집중이 안 됐다.

밤 11시 30분경, 휴대폰이 울렸다. 이서였다.

"강준, 지금 뭐 해?"

"일."

"또? 진짜 매일 야근이네. 언제는 제대로 자고 살 거야?"

강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서의 목소리가 예전과 달랐다. 뭔가 팽팽했다.

"너 내일 시간 돼? 점심 같이 할 수 있어?"

"모르겠어. 일정 봐 봐."

"강준, 진짜..."

통화가 끝났다. 강준은 휴대폰을 내려놨다. 이서와의 대화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이서가 뭔가를 원하고, 강준이 그것을 외면하는 식. 하지만 어제 이수현과의 대화는 달랐다. 이수현은 강준이 외면해도 또 돌아왔다. 자신의 감정을 일방적으로 쏟아내지 않았다. 대신 강준을 물었다.

"너는 뭐가 필요해? 혼자가 아니고 싶지 않아?"

그 질문이 자꾸만 맴돌았다.

밤 1시 45분. 강준은 일을 멈추고 퇴근했다. 평소보다 빨랐다. 내일 밤 11시를 생각하면서.

---

3일이 더 지났다.

밤 11시는 이제 강준의 일과의 일부가 되었다. 이수현과의 짧은 만남. 10분에서 20분 정도. 하지만 그 시간이 하루를 지탱했다.

밤 11시가 오기 전까지 강준은 일을 했다. 그리고 밤 11시가 지나면 다시 일을 했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이제 그것은 도피가 아닌 것 같았다. 다만 일일 뿐이었다.

밤 11시 10분경, 사무실의 불이 꺼져 있었다. 강준이 퇴근했다.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강준, 내일 반드시 점심하자. 진심이야."

이서였다. 목소리가 단호했다. 강준은 대답했다.

"알았어."

"정말?"

"응."

통화가 끝났다.

---

다음 날 점심. 강준은 이서를 만났다. 회사 근처 카페였다. 이서는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강준이 앉자 이서가 먼저 말했다.

"강준, 너 요즘 뭐 해?"

"뭐라고?"

"너 뭐 해? 진짜. 회사에서 좀 달라졌다는 소리가 들려."

"일만 하고 있지."

"거짓말하지 마. 박민준이가 말했어. 너 요즘 밤 11시에 퇴근한다고. 야근 팀장이 밤 11시에?"

강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너 그 신입 때문이지?"

"뭐?"

"그 신입. 이수현이. 너 그 애 때문에 야근을 덜 한다는 거 맞지?"

강준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강준, 너 이 아이 좋아하니?"

침묵이 흘렀다. 오래. 강준은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도 그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침묵이 이서에게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이서의 얼굴이 굳었다. 커피잔을 집어 들었다가 내려놨다. 손이 떨렸다.

"강준."

"응."

"우리, 얘기 좀 하자."

강준의 가슴이 철렁했다. 이서의 목소리가 예전과 완전히 달랐다. 뭔가 깨져가고 있었다. 20년 동안 쌓아 올린 무언가가 순식간에 균열이 가고 있었다.

"뭐?"

"너 알아? 내가 너랑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응."

"20년이야, 강준. 20년. 그 시간 동안 내가 뭘 했는지 알아?"

강준은 대답할 수 없었다.

"너를 봤어. 그냥 너를 계속 봤어. 그런데 이제 와서 나타난 신입 때문에 넌 나를 외면하고 있어. 그게 뭐 하는 짓이야?"

강준의 입이 떨렸다. 이서는 계속했다.

"너 이 아이 좋아해?"

"..."

"대답해."

"모르겠어."

이서가 손을 뻗었다. 강준의 책상 위에 놓인 삼각김밥 봉지를 집어 들었다. 계란말이. 강준이 어제 남겨 놓은 것이었다.

"이게 뭐야?"

"음식이지."

"내가 그동안 뭘 했는데?"

"뭐라고?"

"내가 너를 챙겼잖아. 얼마나 오래 챙겼는데. 그런데 넌 이 아이한테는 이 정도의 신경을 쓰는 거야?"

강준이 입을 열려고 했다.

"20년이야, 강준. 20년. 내가 너를 봤어. 계속 봤어. 그런데 이 아이는 겨우 몇 주? 겨우 몇 주 만에 넌 이렇게 변했어?"

이서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삼각김밥을 내려놨다가 다시 집어 들었다. 봉지를 구기고, 펼쳤다. 반복했다. 손이 할 일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너 이 아이 좋아해?"

"..."

"대답해."

강준은 여전히 말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이서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침묵 자체가 가장 큰 상처가 되고 있었다.

이서가 삼각김밥을 책상에 내려놨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넌 정말 모르니? 내가 뭘 원했는지?"

"이서..."

"난 너를 원했어. 너를. 그냥 너를. 근데 넌 나를 봐주지 않았어. 일만 봤어. 야근만 했어. 그리고 이제 와서 다른 사람 때문에 변한다고? 그게 말이 돼?"

이서가 일어섰다. 강준은 그녀를 따라 일어났다.

"이서, 잠깐."

"뭐?"

"내가..."

강준이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뭘 말해야 할지 몰랐다.

이서가 돌아섰다. 강준은 그녀의 뒷모습을 봤다. 어깨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20년을 기다렸어. 넌 절대 나를 보지 않았지만, 난 기다렸어. 언젠가는 넌 나를 볼 거라고. 그런데..."

이서가 멈췄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넌 절대 나를 보지 않았어. 절대."

그리고 이서는 카페를 떠났다. 강준은 그녀를 따라갈 수 없었다.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남겨진 카페. 테이블 위의 삼각김밥. 그리고 강준.

---

밤. 사무실. 밤 10시 50분.

강준은 이수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심정이었다. 이서의 말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너, 그 신입 좋아하니?"

자신은 뭘 느끼고 있는 걸까. 이수현이 오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이 감정. 이수현의 목소리를 들으면 목이 메이는 이 느낌. 이게 뭘까.

강준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자신의 심장 박동처럼. 자신은 누구를 원하고 있는가. 그것을 알아야 한다. 이서 때문에도,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 때문에도.

밤 11시 정각.

"팀장님, 안녕하세요."

이수현이 나타났다. 오늘도 삼각김밥을 들고. 그리고 강준은 그 모습이 반갑다는 것을 느꼈다. 뚜렷하게. 선명하게.

"어? 팀장님 뭐 해요? 모니터 켜져 있네요."

이수현이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강준은 화면을 끄려고 했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계획서 보고 있었어."

"또요? 이미 다 했던데요. 어제 본 건데."

이수현은 강준 옆에 앉았다. 요즘은 그렇게 앉아 있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강준의 책상 옆 의자는 이수현을 위한 자리가 되어 있었다.

"봐야 할 부분이 있어."

"거짓말이지. 팀장님 얼굴 봐요. 뭔가 있어."

강준이 이수현을 봤다. 그 밝은 눈. 항상 자신을 꿰뚫고 보는 그 눈.

"뭐가 있긴."

"뭔데요?"

"글쎄."

이수현이 삼각김밥을 강준의 책상에 놨다. 계란말이 김밥. 요즘 강준이 제일 많이 고르는 맛이었다.

"팀장님, 제 질문에 대답해 주실래요?"

강준이 고개를 들었다.

"팀장님, 저 죽으면 슬플 것 같아요."

그 말. 어제도 들었고, 그 전날도 들었다. 이수현은 매일 같은 말을 반복했다. 매일 밤 11시마다. 하지만 강준은 이제 알았다. 그것이 반복이 아니라는 것을. 매번 그 말 속에는 다른 질문이 숨어 있다는 것을.

"뭐 하는 말이야."

"그냥 그래요. 팀장님이 계속 이렇게만 있으면, 저 정말 슬플 것 같아요. 혼자 일만 하시고, 밤 11시만 기다리시고. 그게 전부인 것처럼."

"언제부터 날 알았어?"

"처음부터요."

강준이 고개를 기울였다.

"제가 처음 팀장님 책상에 왔을 때, 팀장님이 뭘 하고 있었는 줄 알아요?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냥... 있었어요. 시간만 때우고 있었어요."

"할 일이 있었어."

"없었어요. 제가 옆에서 다 봤거든요. 팀장님은 밤 11시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니, 정확하게는..."

이수현이 강준을 똑바로 봤다.

"팀장님은 누군가 자신을 봐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강준의 가슴이 철렁했다. 이서의 말이 떠올랐다. 그 차가운 목소리. '너, 이 아이 좋아하니?'

"왜 그런 얘기해."

"왜냐면 팀장님이 그래 보여서요. 그리고..."

이수현이 한 발 물러섰다.

"저도 팀장님을 보고 싶었거든요."

침묵이 흘렀다. 강준은 대답할 수 없었다. 이수현의 말이 자신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팀장님, 혼자가 아니고 싶으신 거 맞죠?"

강준의 입술이 떨렸다. 그 질문에 대답하려면, 자신의 가장 깊은 부분을 드러내야 했다. 자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자신이 얼마나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있는지.

"..."

"대답하셔도 괜찮아요. 팀장님."

강준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그 한 마디. 강준은 자신이 뱉은 그 말에 놀랐다. 숨이 멎었다. 손가락이 경직되었다.

"팀장님?"

"이수현은... 누구야?"

이수현이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자신을 놀렸던 웃음이 아니었다. 따뜻한 웃음이었다.

"그래, 하고 대답할 수 있으셨어요. 잘했어요."

강준은 계란말이 김밥을 집어 들었다. 손이 조금 떨렸다. 자신도 모르게. 봉지를 만지며, 그 안의 것을 느껴보려 했다. 이수현이 자신을 위해 사온 것. 그것이 의미하는 것.

"팀장님, 왜 밤 11시를 기다렸던 것 같아요?"

강준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누군가 자신을 봐주기를 원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 누군가가 이제 나타났어요."

이수현이 일어섰다. 강준은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팀장님, 내일 밤 11시에도 올게요. 그때까지 자신을 봐 주세요. 남은 시간 동안. 그리고..."

이수현이 강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순간, 강준의 몸이 굳었다.

"고마워."

강준이 갑자기 말했다. 이수현이 멈췄다.

"뭐라고요?"

"고마워. 정말로."

그 말을 하는 순간, 강준의 가슴이 철렁했다. 이수현이 자신에게 중요하다는 것. 그 사실이 이제 피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이서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도.

이수현의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그녀는 강준의 등을 한 번 톡톡 쳤다.

"내일 봬요, 팀장님."

이수현이 떠났다. 강준은 남겨진 책상에 앉아 있었다. 계란말이 김밥이 손에 들려 있었다.

그때였다.

"강준."

목소리가 들렸다. 강준은 고개를 들었다. 이서가 서 있었다. 사무실 입구에서.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

"이서? 이 시간에?"

이서가 천천히 다가왔다. 강준의 책상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멈췄다. 책상 위에는 삼각김밥 봉지들이 여러 개 있었다. 계란말이, 참치마요, 김자반. 지난 며칠간 이수현이 놔 둔 것들.

"누가... 놔 둔 거야?"

"신입이."

강준이 대답했다. 그 간단한 대답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서의 얼굴이 굳었다. 마치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강준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이서의 눈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분노로 변했다.

"강준."

"응."

"너, 이 아이 좋아하니?"

침묵이 흘렀다. 오래. 강준은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도 그것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침묵이 이서에게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이서의 손이 떨렸다. 그녀는 책상에 놓인 삼각김밥 봉지를 집어 들었다. 계란말이. 봉지를 구기고, 펼쳤다. 반복했다.

"이게 뭐야?"

"음식이지."

"내가 그동안 뭘 했는데?"

강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서는 계속했다.

"내가 너를 챙겼잖아. 얼마나 오래 챙겼는데. 그런데 넌 이 아이한테는 이 정도의 신경을 쓰는 거야?"

강준이 입을 열려고 했다.

"20년이야, 강준. 20년. 내가 너를 봤어. 계속 봤어. 그런데 이 아이는 겨우 몇 주? 겨우 몇 주 만에 넌 이렇게 변했어?"

이서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삼각김밥을 내려놨다가 다시 집어 들었다. 손이 할 일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너 이 아이 좋아해?"

"..."

"대답해."

강준은 여전히 말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이서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침묵 자체가 가장 큰 상처가 되고 있었다.

이서가 삼각김밥을 책상에 내려놨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넌 정말 모르니? 내가 뭘 원했는지?"

"이서..."

"난 너를 원했어. 너를. 그냥 너를. 근데 넌 나를 봐주지 않았어. 일만 봤어. 야근만 했어. 그리고 이제 와서 다른 사람 때문에 변한다고? 그게 말이 돼?"

이서가 일어섰다. 강준은 그녀를 따라 일어났다.

"이서, 잠깐."

"뭐?"

"내가..."

강준이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뭘 말해야 할지 몰랐다.

이서가 돌아섰다. 강준은 그녀의 뒷모습을 봤다. 어깨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20년을 기다렸어. 넌 절대 나를 보지 않았지만, 난 기다렸어. 언젠가는 넌 나를 볼 거라고. 그런데..."

이서가 멈췄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넌 절대 나를 보지 않았어. 절대."

그리고 이서는 사무실을 떠났다. 강준은 그녀를 따라갈 수 없었다.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남겨진 사무실. 책상 위의 삼각김밥 봉지들. 그리고 강준.

밤 11시 30분. 사무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조용함이 따뜻하지 않았다. 그것은 차갑고, 무거웠다.

강준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너, 이 아이 좋아하니?"

그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이서의 질문. 그리고 자신의 침묵.

강준은 책상 위의 삼각김밥을 바라봤다. 계란말이, 참치마요, 김자반. 각각 다른 날, 다른 마음으로 받은 것들. 그리고 그것들이 모두 같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자신은 이제 알았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하지만 그것을 알게 된 순간, 자신이 얼마나 큰 것을 잃었는지도 깨달아야 했다.

강준은 손을 뻗었다. 삼각김밥을 집어 들려다 멈췄다. 손가락이 봉지 위에서 떨렸다. 그것을 집어 들 수도, 치울 수도 없었다.

밤 11시 45분. 사무실은 여전히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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