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진실의 층

오후 3시, 거울의 방.

에밀리는 눈을 떴다. 손가락 끝에 남은 따뜻함. 그것은 루이의 손이었다. 확신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 반복은 달랐다. 이전의 기억들이 물처럼 흘러내리지 않고, 파편처럼 박혀 있었다. 여섯 번의 반복. 일곱 번의 반복. 여덟 번의 반복.

그 모든 것이 한 번에 몸에 각인되어 있었다.

에밀리는 천천히 일어섰다. 침대 끝자락에 놓인 편지들이 보였다. 루이의 필체. 그녀는 이미 그 편지들을 여러 번 읽었다.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났다. 읽을 때마다 분노했다. 읽을 때마다 사랑했다. 그리고 매번 기억을 잃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에밀리는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의 자신은 창백했다. 그 창백함 뒤에 또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마치 투명한 층이 겹겹이 쌓여 있듯이. 그녀는 손을 뻗었다. 거울의 표면은 차가웠다. 손가락이 닿는 순간, 거울이 흔들렸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날 용서해."

에밀리는 몸을 굳혔다. 그 목소리는 자신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다른 시간대에서, 다른 반복에서 들린 자신의 목소리.

"난 루이를 사랑하고 있어."

거울 속의 이미지가 흔들렸다. 자신의 얼굴이 사라지고, 루이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의 눈은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뒤에는 자신의 모습이 있었다.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 손이 루이의 가슴에 얹혀 있고,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놓지 않고 있었다. 그 누구도 그 손을 떼지 못하게 하려는 듯이.

에밀리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과거의 반복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래였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 혹은 이미 일어난 과거. 거울 속에서는 시간이 선형이 아니었다. 모든 순간이 동시에 존재했다. 그녀의 첫 번째 죽음, 두 번째 죽음, 세 번째 죽음. 그 모든 죽음이 거울 속에서는 한 순간이었다.

숨이 끊겼다.

가슴이 타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마치 자신이 정말로 죽어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이미 여러 번 죽었던 것처럼. 손가락이 거울에 파고들었다. 거울의 표면이 따뜻해졌다. 아니, 자신의 손이 뜨거워졌다.

모든 반복이 한순간에 쏟아져 들어왔다.

여섯 번, 일곱 번, 여덟 번, 아홉 번. 열 번, 열한 번, 열두 번. 그 이상. 그 모든 반복 속에서 자신은 루이를 사랑했다. 그리고 매번 기억을 잃었다. 하지만 몸은 기억했다. 손가락 끝의 따뜻함, 그의 향기에 흐르는 눈물, 목소리에 철렁 내려앉는 가슴. 그 모든 것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마치 파편화된 영혼처럼.

그 순간, 에밀리의 눈앞에서 거울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가는 금이 거울 표면을 타고 흘러갔다. 그 균열 속으로 빛이 새어 나왔다. 에밀리는 손을 떼려 했지만 손이 거울에 붙어 있었다. 마치 거울이 자신을 놓지 않으려는 것처럼. 숨이 짧아졌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과거의 모든 죽음이 동시에 자신의 몸을 관통했다. 칼날, 독약, 절망. 그 모든 고통이 한 순간에.

에밀리는 거울에서 손을 떼었다.

거울의 이미지가 흔들렸다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창백한 얼굴만 남았다. 하지만 그 얼굴 뒤에는 여전히 무언가가 있었다. 과거의 반복들, 미래의 죽음들, 모든 시간이 투명한 층처럼 겹겹이 쌓여 있었다. 거울은 다시 고요해졌다. 하지만 표면에 남겨진 가는 균열은 사라지지 않았다.

에밀리는 방을 나갔다.

서재로 향했다. 루이는 창가에 서 있었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오후 5시. 연회까지 2시간. 그는 에밀리를 보자 몸을 굳혔다.

"넌 왜 날 떠나라고 했어?" 에밀리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손은 떨리고 있었다.

루이는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눈은 생각보다 맑았다. 그 눈 속에는 슬픔만 있었다. 절망이 아닌, 순수한 슬픔.

"왜냐하면 난 너를 원하지만," 루이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천천히 끓고 있었다. "동시에 넌 거울에 갇혀 있기 때문이야."

에밀리는 한 발 다가갔다.

"넌 매번 나를 사랑하고, 매번 기억을 잃어." 루이는 눈을 감았다. "그것이 날 죽이고 있어. 넌 내 눈 앞에서 계속 죽고 있어. 오늘 밤에, 내일 밤에, 그 다음 밤에. 끝이 없어. 넌 죽었어. 그 첫 밤에. 그리고 난 그걸 보고 있어. 매번."

"루이—"

루이가 눈을 떴다. 그 눈에는 눈물이 차 있었다. 그는 에밀리에게 편지를 건넸다. 손으로 쓴 편지. 여러 번 접혀 있었다.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다만 그 편지만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에밀리는 편지를 펼쳤다. 루이의 필체가 보였다.

*"에밀리, 만약 넌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그건 넌 또 기억을 잃었다는 뜻이야. 난 널 사랑해. 그리고 난 넌 이 악몽에서 깨어나길 원해. 오늘 밤 자정 전에 거울을 깨. 그러면 모든 게 끝날 거야."*

에밀리의 손이 떨렸다. 편지가 떨어질 뻔했다. 그 짧은 글귀 속에서 그녀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루이가 매번 이 편지를 남겼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매번 이것을 읽었다는 것. 기억은 없었지만, 손이 기억하고 있었다. 가슴이 기억하고 있었다.

거울은 자신을 시험했다. 복수와 사랑 사이에서. 그리고 자신은 매번 사랑을 선택했다. 기억 없이, 오직 몸의 기억만으로.

"거울을 깨면 뭐가 돼?" 에밀리가 물었다.

루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를 껴안았다. 마치 그녀가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는 것처럼.

오후 7시, 연회장.

샹들리에의 빛 아래 귀족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바이올린과 첼로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에밀리는 춤을 추지 않고 있었다. 코너에 서서 마르셀을 관찰했다. 마르셀은 어머니들 사이에서 웃고 있었다. 그의 웃음은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썩음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마르셀이 에밀리를 발견했다. 그가 걸어왔다.

"백작부인 께서 혼자 계시네요." 마르셀의 목소리는 꿀처럼 부드러웠다. "춤을 청해도 될까요?"

에밀리는 그를 바라봤다. 이 남자의 얼굴을 몇 번이나 봤는가. 이 남자의 목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는가. 이 남자에게 죽음을 당해본 적이 몇 번인가. 칼로, 독으로, 때로는 단순한 절망으로.

"물론이죠," 에밀리가 대답했다.

마르셀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춤의 첫 발을 뗐다. 음악에 맞춰 회전했다. 에밀리는 그를 바라봤다.

"당신이 지금 당신이 아니라는 걸 아나요?" 마르셀이 속삭였다. "당신은 계속 반복되고 있어요. 그리고 난 그걸 알고 있어요."

에밀리의 발이 멈췄다.

"당신은 뭐죠?" 에밀리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갑고 명확했다.

마르셀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음악 속에 묻혔다. 아무도 듣지 못했다.

"난 당신처럼 이 공간에 갇혀 있는 거죠." 마르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당신이 반복되는 동안, 난 당신을 관찰하고 있었어요. 매번 당신은 다른 방식으로 죽었어요. 그리고 매번 당신은 루이를 구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결국 당신은 그를 죽이게 돼요."

에밀리는 마르셀의 손을 강하게 밀어냈다. 마르셀은 바닥에 쓰러졌다. 음악이 멈췄다. 모든 눈이 에밀리에게 쏠렸다.

"당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에밀리가 말했다.

백작모가 에밀리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당신은 감히 내 아들을—"

에밀리는 연회장을 나갔다. 복도를 달렸다. 계단을 내려갔다. 거울의 방으로 향했다. 자정 전에 거울을 깨야 한다. 루이의 편지가 그렇게 명시했다. 자정이 되면 기억이 초기화되기 전에.

밤 10시, 거울의 방.

루이는 이미 거기 있었다.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에밀리가 들어오자 그는 돌아섰다.

"넌 뭘 했어?"

"마르셀을 떠밀었어." 에밀리가 대답했다. "그는 우리를 방해할 수 없어."

루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게 뭐 하는 짓이야?"

"해야 할 일을 한 거야." 에밀리는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속에는 자신과 루이가 비치고 있었다. 그 뒤에는 어둠이 있었다. 죽음의 어둠. 그리고 그 어둠 너머에는 밝은 무언가가 있었다. 현실. 현재. 살아있는 시간.

"거울이 나한테 뭘 원하는 거야?" 에밀리가 물었다.

루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를 안았다.

"거울은 선택을 원해," 루이가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목소리가 떨렸다. "진정한 선택을. 강압이 아닌, 자유로운 선택. 복수가 아닌 사랑을. 그것이 저주를 깨는 유일한 방법이야."

에밀리는 루이의 가슴에서 얼굴을 들었다. "그럼 내가 뭘 선택해야 하는 거야?"

루이는 대답 대신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했다. 그 따뜻함이 사라지지 않도록 에밀리는 손가락을 더 세게 구부렸다.

"함께 끝내자," 루이가 말했다.

에밀리는 루이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다른 손을 거울을 향해 들었다. 손가락이 거울의 표면에 닿았다. 거울이 뜨거워졌다. 가는 금이 거울 표면을 타고 흘러갔다. 그 균열 속으로 빛이 새어 나왔다. 눈부신 빛.

에밀리는 손을 떼려 했지만 손이 거울에 붙어 있었다. 마치 거울이 자신을 놓지 않으려는 것처럼. 숨이 짧아졌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과거의 모든 죽음이 동시에 자신의 몸을 관통했다. 칼날, 독약, 절망. 그 모든 고통이 한 순간에.

그 순간, 루이의 손이 더 강하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거울을 깨는 그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루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멀어지지 않고 점점 더 가까워졌다.

"난 여기 있어. 난 놓지 않을 거야."

거울이 산산이 부서졌다. 빛이 모든 것을 삼켰다.

오후 3시, 거울의 방.

에밀리는 눈을 떴다. 손가락 끝에 남은 따뜻함. 그것은 루이의 손이었다.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몸은 알고 있었다. 침대 옆에 편지가 있었다. 손으로 쓴 편지. 여러 번 접혀 있었다.

에밀리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펼쳤다. 읽었다.

*"에밀리, 만약 넌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눈물이 났다. 왜 우는지 몰랐지만, 눈물이 났다.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기억이 아닌 감정. 기억이 아닌 사랑.

그리고 그 순간, 에밀리는 깨달았다.

손가락 끝의 따뜻함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편지를 들었던 손이 떨리지 않고 있었다. 과거의 반복들이 파편처럼 남아 있었다. 불완전하지만, 분명히 남아 있었다. 자정 전에 거울을 깼기에, 기억 초기화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었다.

에밀리는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표면에는 가는 균열이 남아 있었다. 거울은 여전히 서 있었다. 하지만 깨져 있었다. 완전히 깨지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완전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균열 너머로, 루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 에밀리."

손가락 끝의 따뜻함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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