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두 번째 기연

고목마을에 들어서던 그 순간, 한설은 자신이 기원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 전, 검술 대회를 우승한 후 정파로부터 처음 소환을 받기 위해 내려왔던 바로 그 길이다. 마을의 진입로는 변한 것이 없었다. 낡은 목책, 담장을 넘은 버드나무, 우물가의 돌 벤치. 그러나 한설의 눈은 이제 그것들을 다르게 본다.

정파의 명령은 명확했다. 장로 연설이 직접 전달했다. "영약산맥 남쪽 기슭의 마을에 마파의 거점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넌 그곳을 정찰하고 돌아오거라." 말은 정찰이었지만, 한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정파가 자신을 왜 이곳으로 보냈는지를.

암살동맹의 또 다른 자객. 적혼의 추적자. 정파는 한설이 다시 죽음의 기로에 서기를 원했다. 기연 흡수는 정파에게 보약이었다. 한설이 강해질수록, 기연을 더 많이 흡수할수록, 정파의 손아귀 안에서 한설은 더욱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연우의 지도가 떠올랐다. 성을 떠나기 직전, 그녀가 한설에게 건넨 그 종이. 13명의 기연자. 적혼의 세력도. 그리고 그 지도 한구석에 적힌 글씨: "고목마을—암살동맹 제3지부 활동 거점. 파견 시 접촉 가능성 90%."

정파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연우의 지도까지 알면서도, 그것을 무시하고 보냈다.

한설은 마을 안쪽으로 걸어갔다. 오후 해는 이미 서쪽 산등성이에 걸려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눈이 그를 따랐다. 검객의 옷차림, 허리에 찬 검. 이곳은 일반인들의 마을이었지만, 어떤 눈썹 구부린 노파는 한설을 보며 입꼬리를 내렸다. 그 눈빛은 공포가 아니라 인식이었다.

한설은 주막으로 들어갔다.

밥과 국, 누룽지. 한설은 음식을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맛은 없었다. 입안의 감각이 둔해져 있었다. 두 번째 기연을 흡수한 이후, 그의 감각은 점점 외부 세계와 단절되고 있었다. 음식도, 햇빛도, 바람도 마치 종이에 그려진 그림처럼 느껴졌다.

"손님, 어디서 오셨습니까?"

주막 주인이 물었다. 한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주변을 살폈다. 주막 안의 사람들. 노인 셋, 장사꾼 둘, 그리고 창가에 앉은 여인. 그 여인의 손가락 끝에는 여전히 검의 굳은살이 남아 있었다.

한설의 눈과 여인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여인은 웃음을 흘렸다. 단순한 웃음이 아니었다. 사냥감을 발견한 포식자의 미소였다.

"이놈, 온 거군."

여인이 일어섰다. 주막 안의 다른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움직였다. 노인들은 뒷문으로 빠져나갔고, 장사꾼들은 몸을 숨겼다. 그들은 모두 이 상황을 예견한 듯했다. 주막 주인은 시선을 돌려 아무것도 보지 않는 척 했다.

"기연 사냥꾼. 이름은 설(雪)이라고 들었다."

여인이 검을 뽑았다. 검신이 반짝였다. 그 검에는 혈흔이 말라붙어 있었다.

"난 망혼(亡魂). 적혼의 칼이야. 넌 내 사냥감이다."

한설은 천천히 일어섰다. 두 번째 암살자. 정파의 계획대로다. 그의 손이 검의 자루를 감싸 쥐었다. 손가락의 온도가 돌아왔다. 이것만은 생생했다. 죽음이 가까워질 때의 그 절박한 감각.

"시작할까?"

망혼이 먼저 움직였다. 검은 번개처럼 날아왔다. 첫 번째 암살자와는 다른 기법이었다. 첫 번째는 독침처럼 정확했다면, 두 번째는 태풍처럼 거침이 없었다. 한설의 검이 맞섰고, 두 검이 부딪칠 때마다 주막의 목재가 울음을 내며 부서져 나갔다.

한설의 팔이 움직였다. 신묘한 발놀림, 손목의 섬세한 각도 조절. 그것이 자신의 의지인지, 아니면 체내에 흡수된 무공의 반사 작용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한설은 자신의 몸이 움직이는 것을 마치 남의 일처럼 지켜봤다. 팔이 올라갔다. 다리가 굽혀졌다. 검이 휘어졌다. 모두 자신이 명령한 일이 아니었다.

그 순간, 한설의 오른팔이 갑자기 다른 궤도를 그렸다. 망혼의 예상과 완전히 다른 각도. 첫 번째 암살자의 검술이 한설의 팔을 지배하고 있었다. 망혼이 놀라며 검을 돌렸고, 동시에 한설의 왼다리가 독립적으로 움직여 망혼의 옆구리를 노렸다. 두 개의 서로 다른 검술이 한 몸에서 동시에 발현되고 있었다.

한설은 자신의 몸이 분열되는 것을 느꼈다. 오른쪽은 망혼의 기법으로 움직이고, 왼쪽은 첫 번째 암살자의 기법으로 움직였다. 마치 두 명의 검객이 한 구의 몸을 두고 싸우는 것처럼.

망혼의 기연은 그 모든 움직임을 압도했다. 검에서 흐르는 혈기가 한설의 검을 밀어냈다. 그 혈기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설은 밀려났다. 주막의 벽에 등이 부딪혔다. 목재가 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약하네. 정파에서 이 정도?"

망혼이 다시 검을 올렸다. 이번엔 더 빨랐다. 한설의 검이 방어를 시도했지만, 망혼의 검은 그것을 무시하고 한설의 팔뚝을 그었다. 피가 흘렀다. 따뜻한 피. 여전히 자신의 것이었다.

한설은 뒤로 물러서며 주막의 문을 빠져나갔다. 마을 골목. 해는 더 내려가 있었고, 그림자는 길어져 있었다. 망혼이 뒤따랐다.

"도망치나? 기연 사냥꾼이?"

"아니다."

한설이 멈췄다. 골목 깊숙한 곳, 마을 뒤편의 숲으로 통하는 길. 이곳이라면 충분했다. 한설은 다시 검을 들었다. 이번엔 방어가 아니라 공격이었다. 체내의 무공이 폭발하려 했다. 한설은 그것을 느꼈다. 자신의 몸이 아닌 다른 것이 깨어나려 하는 감각.

검이 비명을 질렀다.

망혼의 검과 한설의 검이 맞서며 불꽃을 튀겼다. 둘의 내공이 충돌했을 때, 골목의 돌벽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망혼의 검이 빨라졌다. 한설도 빨라졌다. 하지만 그것은 한설이 원해서가 아니었다. 한설의 팔과 다리가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다른 누군가의 팔과 다리인 것처럼.

망혼의 검이 한설의 어깨를 스쳤다. 동시에 한설의 검이 망혼의 옆구리를 노렸다. 하지만 그것도 한설의 의도가 아니었다. 첫 번째 암살자의 기억이 그렇게 움직이도록 강제했다. 둘 다 피를 흘렸다.

한설은 공포를 느꼈다. 자신의 몸을 잃어버리는 공포. 그것이 첫 번째 기연 흡수 때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두려움이었다. 자신이 누군지 알 수 없게 되는 것. 자신의 팔이 자신을 배반하는 것. 자신의 검술이 다른 누군가의 검술로 변해가는 것.

"좋아. 이 정도면..."

망혼이 웃음을 흘렸다. 그 순간, 한설은 그녀의 검에서 혈기의 흐름이 변하는 것을 감지했다. 기연을 완전히 방출하려는 신호였다. 이것이 정사대전의 고수들이 사용하는 최후의 기법. 기연을 검에 완전히 담아 한 번의 일격으로 모든 것을 끝내는 방식.

한설은 그 일격을 피하지 못했다.

검이 한설의 가슴을 꿰뚫었다.

고통.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종류의 감각이었다. 첫 번째 기연 흡수의 고통을 10이라 한다면, 이것은 백이었다. 아니, 천이었다. 마치 천 개의 칼날이 동시에 뼛속을 헤집고 다니는 느낌. 그 칼날들이 경맥을 따라 흐르며, 단전을 지나 심장에 도달했다.

한설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의식이 흔들렸다. 한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잠시 잃었다. 그 순간, 다른 기억이 밀려들었다. 망혼의 기억. 혈의교의 수련 과정. 한 소녀의 목을 그으며 검술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 그 차갑고 무감각한 정신. 한설은 그 정신의 무게에 짓눌렸다.

**아니다. 난 한설이다.**

그러나 그 목소리도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첫 번째 암살자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한설의 손이 움직였다. 어떤 기법도 아닌, 어떤 무공도 아닌, 순수한 본능의 움직임. 망혼의 검을 틀어냈다. 그리고 한설의 검이 망혼의 목을 그었다.

망혼은 쓰러졌다.

그 순간, 한설의 몸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망혼의 기연이 한설에게 빨려 들어갔다. 그것은 마치 폭풍이 그를 집어삼키는 것 같았다. 혈기의 색깔, 혈기의 무게, 혈기의 원한. 모든 것이 한설의 체내로 쏟아져 들어왔다.

한설은 비명을 질렀다.

아니, 비명을 질렀다고 해야 할까. 그것은 한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망혼의 목소리, 첫 번째 암살자의 목소리, 그리고 한설의 목소리가 섞여 나왔다. 한 사람에게서 여러 명의 목소리가 나오는 현상.

한설의 의식이 조각나기 시작했다.

**나는 망혼이다. 적혼의 칼이다.**

**나는 암살자다. 나는 한설이다.**

**나는... 누구인가?**

세 가지 기억이 충돌했다. 한설의 신체는 그 충돌의 전장이 되었다. 경맥 곳곳에서 파열음이 울렸다. 마치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처럼. 그 소리는 한설의 귀에만 들렸다. 내공이 역류했다. 폐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액체가 차올랐다. 한설의 입과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한설은 골목의 돌벽에 등을 기대고 쓰러졌다.

의식이 멀어져 갔다. 마지막으로 들린 것은 망혼의 시체 위에 내려앉는 비의 소리였다. 밤이 된 것 같았다. 아니면 그저 한설의 눈이 감긴 것일 수도 있었다.

---

한설이 깨어났을 때, 천장은 하얀색이었다. 정파의 성. 침실의 천장. 한설은 자신이 이곳에서 몇 번을 깨어났는지 세어보려 했지만, 그 숫자도 불분명했다.

"깨었군요."

의약사의 목소리였다. 흰 가운을 입은 노인이 한설의 옆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맥침이 들려 있었다.

"며칠을 잤나?"

"사흘입니다."

한설은 자신의 팔을 들어올렸다. 팔뚝에는 붕대가 감싸져 있었다. 가슴도 마찬가지였다. 온몸이 붕대로 감싸여 있었다. 그리고 그 붕대 아래에서는 여전히 화끈거림이 느껴졌다.

"기연 흡수. 두 번째."

의약사가 중얼거렸다. 그는 한설의 팔 안쪽을 살펴보고 있었다.

"경맥이 손상되었습니다.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 모두 흡수 과정에서 기연이 충돌하며 생긴 상처입니다."

의약사의 손가락이 한설의 팔의 여러 지점을 가리켰다. 한설은 그 지점들을 느껴보려 했다. 그 순간, 팔의 특정 부위에서 갑자기 뜨거운 감각이 솟아올랐다. 마치 두 개의 서로 다른 불꽃이 같은 자리에서 부딪치는 듯한 느낌. 그 부위에서는 미세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경맥이 갈라지는 소리처럼.

"당신은 세 명의 기연을 체내에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 그리고 자신의 기연이라고 해야 할까요. 세 가지 기운이 당신의 경맥 안에서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의약사가 손을 거두자, 그 뜨거움도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경맥 깊숙한 곳에서는 약한 울음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게... 뭐하는 거지?"

"자살입니다."

의약사의 말은 담담했다.

"기연 흡수가 반복될수록, 당신의 정신이 파괴될 위험이 높아집니다."

의약사가 말을 잇다가 멈췄다. 한설의 팔이 갑자기 경련을 일으켰다. 의약사가 재빨리 한설의 어깨를 누르며 말을 계속했다.

"이번 흡수에서 당신은 자신이 누구인지 잊었습니다. 다음 흡수에서는 더 오래 잊을 것입니다. 세 번째, 네 번째..."

한설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의약사의 손이 한설의 가슴 위를 누르고 있었다. 그 순간, 한설의 눈이 순간적으로 변했다. 차갑고 무감각한 눈. 마치 다른 누군가의 눈처럼. 그 눈동자에는 망혼의 냉정함과 첫 번째 암살자의 살의가 동시에 떠 있었다. 그것은 1초도 채 지나지 않아 사라졌지만, 의약사는 그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본 순간, 의약사는 한설을 더 이상 한설이라고 부를 수 없을 날이 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언젠가는 당신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의약사가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한설의 몸이 다시 침대에 가라앉았다.

"당신의 기연은 죽음의 순간의 영혼을 빨아들입니다. 상대의 무공만이 아닙니다. 그들의 원한, 그들의 기억, 그들의 정신. 모든 것을 빨아들입니다. 한 명의 영혼도 버거운데, 당신은 이미 세 명의 영혼을 담고 있습니다."

의약사가 맥침을 거두었다. 한설은 천장을 보고 있었다. 하얀 천장. 그 위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움직이고 있었다. 한설의 의식 속에서.

"조금 있으면 신체적으로는 회복될 것입니다. 정신적으로도 버틸 수 있다면."

의약사가 침실을 나갔다. 한설은 여전히 천장을 보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손인지, 아니면 체내의 기연이 일으키는 떨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

백설이 들어온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형!"

백설이 한설의 침대 옆으로 달려왔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어디가 많이 아파? 괜찮아?"

한설은 백설을 봤다. 여동생의 얼굴. 그 얼굴의 창백함. 눈 아래 검푸른 자국. 마치 며칠을 자지 못한 듯한 표정. 그녀의 입술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괜찮다."

"거짓말해. 넌 항상 거짓말을 해."

백설이 한설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이 떨리고 있었다. 한설은 그 떨림을 느껴보려 했다. 손가락 끝에서 약한 신호가 전해졌다. 마치 먼 곳에서 전해지는 신호처럼. 그리고 그 순간, 한설의 입술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였다. 백설의 손을 더 세게 잡으려고. 하지만 그것도 1초 만에 멈췄다. 한설의 손이 다시 차가워졌다. 마치 돌로 변한 것처럼.

"형,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 정파를 떠나자. 난 널 빼낼 수 있어. 암살동맹도... 적혼도..."

"못 떠난다."

한설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왜?"

"강호가 날 놓지 않을 거야."

한설은 천장을 봤다. 그곳에 드리워진 그림자. 그것이 정파인지, 마파인지, 아니면 자신의 그림자인지 알 수 없었다.

백설의 목소리가 떨렸다.

"형..."

한설은 백설을 다시 봤다. 여동생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의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목이 메인 듯 말을 잇지 못했다.

한설은 그것을 보고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마치 그 눈물이 다른 세상의 일인 것처럼. 그 떨림이 자신과 무관한 것처럼. 그것이 더욱 무서웠다. 자신의 여동생을 보면서도 감정이 죽어 있다는 것. 그 무감각 자체가 공포였다.

그 순간, 문이 열렸다. 정파의 제자가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급박했다.

"한설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제자가 무릎을 꿇었다.

"새로운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혈의교의 또 다른 고수가 영약산맥에 나타났습니다. 교주 적혼의 직속 부하, 칠명의 기연자 중 한 명입니다."

한설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백설이 그를 붙잡았다.

"형, 아직..."

"이름이?"

한설이 물었다.

"화염(火焰)이라고 불리우는 자입니다. 검술도, 기연도 망혼보다 강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자가 계속했다.

"그리고 그 자가 현재 고목마을 북쪽 10리 지점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정파의 정찰대가 그를 추적 중입니다. 한설님이 회복되면..."

회복. 한설은 그 단어를 씹어 봤다. 자신이 회복될 수 있을까. 세 명의 영혼을 담은 몸이. 세 가지 기억이 뒤섞인 정신이.

한설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붕대가 감싸인 몸이 움직였을 때, 경맥에서 또 다른 고통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너무 익숙한 고통이었다.

"준비해 줄래. 내일 아침에 떠날 거야."

백설이 한설의 팔을 잡았다.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형, 제발..."

한설은 백설을 봤다. 여동생의 눈. 그곳에서 무언가가 죽어 가고 있었다. 한설은 그것을 인식했다. 그것이 희망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을 느낄 수 없었다. 마치 유리벽을 통해 보는 것처럼.

한설은 기연을 버리고 싶었다. 간절했다. 그 기연이 자신을 집어삼키기 전에, 그 기연이 자신을 완전히 다른 누군가로 만들기 전에. 하지만 그것도 선택할 수 없었다. 기연이 자신을 놓지 않는 한.

"난 선택할 수 없어."

한설이 말했다.

"기연이 날 놓지 않는 한, 난 계속 걸어야 해."

제자가 물러났다. 백설도 결국 한설을 놓았다. 그녀의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 침실 안에는 다시 고요함이 돌아왔다.

한설은 창문을 통해 밤하늘을 봤다. 별들이 떠 있었다. 하지만 그 별들도 이제 한설에게는 다르게 보였다.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눈으로 보는 것처럼.

내일 아침, 화염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또 한 번, 죽음의 기로에 설 것이다.

한설은 자신의 손을 들어 봤다. 손가락들이 떨리고 있었다. 그것이 공포 때문인지, 아니면 흡수된 세 명의 기연이 한 몸 안에서 일으키는 공명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밤은 계속 깊어졌다.

그 순간, 한설의 감각이 갑자기 뾰족해졌다. 창밖의 어둠 너머에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뜨거운 기운. 마치 불길이 산을 타고 내려오는 듯한 그 위협. 화염. 그 자가 이미 가까워지고 있었다.

한설의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켰다. 체내의 세 가지 기연이 동시에 반응했다. 망혼의 냉정함, 첫 번째 암살자의 살의, 그리고 한설 자신의 검술이 한 점으로 수렴되었다.

내일 아침이 아니었다.

화염은 이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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