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손가락에서 피가 흘렀다.
내부에서. 자신의 피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피처럼 묵직한 붉은 액체가 한설의 손등을 타고 내려갔다. 목검을 쥔 손가락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그 감촉은 사흘 전 암살자의 피와 다를 바 없었다. 한설은 손가락을 펼쳤다 오므렸다를 반복했다. 손가락 끝에 맺힌 것은 분명 그의 것이 아니었다.
흰 수건에 묻은 붉은 자국. 손가락의 피부 아래에서 누군가의 경맥이 맥박을 뛰고 있었다. 한설은 그 박동을 느낄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이것은 누구의 심장인가? 한설은 자신의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지만, 그 손 속에서는 세 개의 심장이 동시에 뛰고 있었다. 자신의 것, 그리고 두 개의 남 것.
'내가 누구인가?'
그 질문이 한설의 정신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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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의 성 동쪽 훈련장은 새벽부터 들썩거렸다. 어제 밤 연우가 내린 지시 때문이었다. 한설의 검술을 다시 평가하라는 명령이었다. 정파의 검사 다섯 명이 차례대로 한설과 겨루었다. 첫 번째 검사는 목검으로 다섯 번의 교환 끝에 밀려났다. 두 번째는 세 번. 세 번째는 한 번에 떨어져나갔다.
"이상하다."
한설의 뒤에서 두 명의 제자가 속삭였다.
"한 달 전에는 저 정도 경지 아니었는데."
"정파의 약초 때문인가?"
한설은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답하지 않았다. 자신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목검을 휘두를 때마다 암살자의 기억이 손목을 주도했다. 발을 딛는 각도, 호흡의 타이밍, 검의 궤도—모두 다른 누군가의 것이었다. 그의 몸은 자신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체내에 잠긴 기억을 재생하고 있었다.
네 번째 검사가 나왔을 때 훈련장의 분위기가 변했다.
"화경 경지의 검술을 쓰는 자는 드물다. 특히 이렇게 깔끔한 형태는."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검은 도포를 입은 남자가 검사들 사이로 걸어 나왔다. 정파의 사람이 아니었다. 연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한설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정파 내부에서 이 남자를 예상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 남자는 한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 이름은 혁명이다."
혁명은 한설의 대면자로 섰다. 검사들은 물러났다. 연우가 나타나 혁명을 바라봤지만 제지하지 않았다.
"너는 누구의 검술을 쓰고 있는가?"
혁명의 물음에 한설은 답하지 않았다. 혁명이 목검을 들었을 때, 한설은 즉시 알아챘다. 이 남자는 진무교의 사람이었다. 진무교의 검술은 백운파의 그것과 결이 달랐다. 더 빠르고, 더 날카로웠다.
첫 번째 교환에서 한설은 밀렸다. 혁명의 검이 한설의 목검 위를 스쳐 지나갔다. 만약 실검이었다면 팔뚝이 반 정도 깊이로 갈려나갔을 것이다.
"화경을 넘어섰군."
혁명이 말했다.
"하지만 그 화경이 너 자신인가?"
한설은 혁명의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두 번째 교환은 더 빨랐다. 혁명은 마치 한설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있다는 듯 모든 공격을 차단했다. 한설은 밀려났다. 한 발, 두 발, 세 발. 훈련장의 모래가 한설의 발뒤꿈치 아래에서 먼지를 일으켰다.
세 번째 교환에서 혁명은 한설의 팔을 겨냥했다. 한설이 그 공격을 막았을 때 목검 아래로 혁명의 다리가 들어왔다. 한설은 뒤로 굴렀다. 혁명은 따라오지 않았다.
"기연이다."
혁명이 손에서 목검을 놨다.
"넌 기연을 지녔다. 하지만 그것이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아직 모르는군."
연우가 앞으로 나왔다.
"진무교가 무슨 일인가?"
혁명은 연우를 보지 않고 한설만 바라봤다.
"기연은 천명이 아니다. 저주다."
혁명이 말했다.
"그리고 저주받은 자만이 천명을 거스를 수 있다. 너는 그럴 자질이 있어 보인다."
"무슨 말인가?"
한설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혁명은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은 쓸쓸했다.
"기연을 버려라. 그것만이 너를 살릴 수 있는 길이다."
혁명이 훈련장을 떠났다. 연우는 그를 따라가지 않았다. 한설과 연우만 훈련장에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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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갈 때까지 한설은 생각했다. 혁명의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기연을 버려라.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설은 알 수 없었다.
기연은 자신의 몸 속에 있었다. 흡수된 무공들이 혈도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그것을 버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을 죽인다는 뜻인가? 아니면 자신이 흡수한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뜻인가?
한설은 방을 나왔다. 정파의 성은 밤이 되면 조용해졌다. 복도를 따라 남쪽 날개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정파의 장로들이 기연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는 것을 한설은 알고 있었다. 연우로부터 얻은 지도에는 정파 내부의 움직임도 표시되어 있었다.
"한설 선수가 화경을 넘어섰다는 것이 사실인가?"
파주 연설의 목소리였다.
"검술의 형태로는 그렇습니다."
다른 장로의 답변.
"그렇다면 기연의 흡수 과정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다."
"적혼이 움직인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한설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적혼?"
"혈의교의 교주입니다. 기연을 수집하는 자라는 평판이 있습니다."
장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미 세 명의 기연자를 확보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영약산맥 주변에서."
"그들이 누구인가?"
"신원은 파악 중입니다. 다만..."
"다만?"
"그들의 기연 특성이 매우 특이하다는 것입니다. 혈액 조종, 뼈 강화, 신경 증폭. 모두 전투에 최적화된 기연들입니다."
"우리의 한설 선수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적혼은 완성된 기연을 선호합니다. 그리고 한설의 기연은..."
말이 끝나지 않았지만 그 의미는 명확했다. 한설의 기연은 완성되고 있었다. 혈의교의 교주 적혼은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
한설은 천천히 물러났다. 복도를 따라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창밖에는 영약산맥이 검은 실루엣으로 떠 있었다. 그 산맥 어딘가에는 기연을 수집하는 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자는 자신을 찾고 있었다.
한설은 짐을 싸기로 결심했다. 정파의 성을 떠나야 했다. 백설의 안전을 담보로 한 협력도 이제는 의미가 없었다. 정파가 자신을 보호한다고 해도, 그것은 보호가 아니라 감시였다. 그리고 적혼이라는 더 큰 위협이 있다면, 정파의 보호는 무의미했다.
한설은 창문을 열었다. 밤공기가 들어왔다. 아래쪽은 정파의 정원이었다. 담장까지는 삼십 걸음 정도. 충분히 갈 수 있었다.
한설은 창틀에 발을 디디고 내려가려 했다.
"어디로 가려고?"
연우의 목소리가 어둠에서 울려났다. 한설은 움직임을 멈췄다. 연우는 정원 한 구석에 서 있었다. 달빛 아래에서 그녀의 얼굴은 차갑게 빛났다.
"정파를 떠나야 합니다."
한설이 말했다.
"적혼이 저를 노린다면, 여기 있는 것이 모두에게 위험합니다."
"그렇다면 어디로?"
"그것은..."
한설이 입을 다물었다.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연우가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
"당신이 어디로 가든, 강호는 당신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침착했다.
"정파가 당신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적혼이 당신을 찾을 것입니다. 혁명이 당신을 이용하려 할 것입니다. 운영이라는 자는 당신을 게임의 말로 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르겠습니다."
연우가 처음으로 그런 대답을 했다. 그녀의 얼굴이 흔들렸다. 달빛 아래에서 그 동요는 더욱 선명했다.
"정파는 당신을 보호하려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연우가 말을 멈췄다.
"동시에?"
"당신의 기연이 정파를 필요로 합니까?"
그 질문의 의미를 한설은 즉시 이해했다. 자신의 기연이 자신을 주도하고 있다면,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자신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인가?
연우는 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밤새 고민하지 마십시오. 내일 적혼의 부하들이 산맥 남쪽에서 움직인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당신은 준비해야 합니다."
"무엇을 준비합니까?"
"죽음을."
연우가 말했다.
"또 다른 기연을 얻을 준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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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오전. 한설은 정파의 검사들과 함께 영약산맥 남쪽 기슭으로 향했다. 적혼의 부하들이 출몰했다는 보고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산길은 가팔랐다. 한 시간을 올라갔을 때, 검사들이 먼저 나아갔다.
"여기입니다."
한설은 그들이 가리키는 곳을 봤다. 암벽 아래 동굴 입구였다. 그 앞에는 석상들이 놓여 있었다. 아니, 석상이 아니었다.
시체였다.
세 구의 시체가 동굴 입구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이미 부패 상태였지만, 손목에 찬 팔찌는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기연자들의 표식이었다.
한설은 시체들을 자세히 관찰했다. 첫 번째 시체는 왼쪽 팔이 비정상적으로 굵어져 있었다. 뼈가 강화된 기연자였다. 두 번째는 피부가 검게 변색되어 있었고, 혈관이 도드라져 보였다. 혈액 조종의 흔적이었다. 세 번째는 눈이 부풀어 올라 있었고, 신경이 피부 위로 드러나 있었다. 신경 증폭 기연의 특징이었다.
"이들이 적혼이 수집한 기연자들입니다."
한설의 뒤에서 목소리가 났다. 검은 옷의 남자가 나타났다. 적혼의 부하였다. 그 뒤로 열 명 이상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한설. 당신을 찾아왔다."
남자가 말했다.
"우리 교주 적혼께서 당신의 기연에 관심이 있으시다."
검사들이 한설 앞에 섰다. 하지만 그들의 손은 이미 떨리고 있었다. 적혼의 부하들의 무공은 자신들을 훨씬 능가했다.
"한설을 넘겨라. 그러면 너희는 살려주겠다."
한설은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검사들이 제지하려 했지만 그의 손을 잡지 못했다.
"싸우겠습니다."
한설이 말했다.
남자가 웃음을 흘렸다.
"용감하군. 하지만 무의미한 저항이다."
남자가 손을 올렸다. 열 명의 부하들이 한설을 포위했다. 한설은 검을 들었다. 손에서 흐르는 그 피는 여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첫 번째 부하가 달려들었다. 한설의 검이 그를 맞이했다. 교환은 빨랐다. 부하는 밀려났다. 하지만 뒤에서 또 다른 부하가 칼을 휘둘렀다. 한설은 몸을 굴렸다.
가슴 위로 칼이 지나갔다. 한 치 차이였다.
한설은 일어섰다. 이제 세 명이 달려들었다. 그들의 칼은 빠르고 정확했다. 한설은 밀려났다. 한 발, 두 발, 세 발. 돌 위에서 발을 헛디뎠다.
한설은 쓰러졌다. 동시에 칼들이 내려왔다.
그 순간,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형!"
백설이 나타났다. 그녀의 단검이 세 명의 칼을 동시에 막아냈다. 한설은 일어났다. 백설은 한설의 옆에 섰다.
"넌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한설이 물었다.
백설의 눈이 흔들렸다. 형을 살리기 위해 왔다는 말이 목에 걸렸다. 정파의 감시를 벗어나 여기까지 왔지만, 그 이유를 말할 수 없었다. 첩자로서의 의무와 형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그녀 안에서 격렬히 충돌했다. 한 손에는 정파의 명령이, 다른 한 손에는 형의 생명이 달려 있었다.
"형을 살리는 거지."
백설이 겨우 말했다. 그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적혼의 부하가 다시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열 명이 아니라 모두였다. 한설과 백설은 그들을 맞이했다.
한설의 검은 더 빠르고 정확해졌다. 흡수한 무공들이 그의 팔을 주도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설은 자신을 잃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움직임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체내의 기억들이 명령하는 대로였다.
그 순간, 한설의 가슴이 찔렸다.
통증이 아니었다. 죽음의 기운이었다.
한설은 무릎을 꿇었다. 자신의 피가 흘렀다. 이번에는 정말로 자신의 피였다.
"형!"
백설이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절망으로 갈라졌다.
하지만 한설은 그녀를 더 이상 보지 못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또 다른 기연이 자신을 향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심장이 멎었다.
그리고 새로운 목소리들이 한설의 정신 속에서 울려 퍼졌다.
적혼의 부하의 무공이 한설의 체내로 쏟아져 들어왔다. 천 개의 칼날이 뼛속을 헤집는 고통. 자신의 정신이 낯선 영혼들로 잠식되는 공포. 한설은 입을 열었지만 비명이 아닌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그의 의식은 둘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여전히 영약산맥 기슭의 동굴 앞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이미 죽어 있었다.
'아, 이게 두 번째다.'
한설의 남은 의식이 생각했다. 첫 번째는 숙소의 암살자였다. 그때는 혼란스러웠다. 정체성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이번에는 자신이 무엇을 얻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부하의 검술. 부하의 내공. 그리고—
부하의 기억.
영약산맥 천명봉. 붉은 기운이 맴도는 유적. 적혼이 세 명의 기연자를 그곳에 모아두고 있다는 것. 그들의 몸에서 빨려 나가는 기연. 그것을 모으는 적혼의 손. 그 손이 마치 미술품을 정렬하는 수집가의 손처럼 보였다.
한설의 눈이 떠졌다.
그는 여전히 동굴 앞에 누워 있었다. 백설이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적혼의 부하들은 물러나 있었다. 아니, 물러난 게 아니었다. 그들은 한설이 다시 일어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죽었나?"
한 명이 물었다.
"아직 숨이 있다."
다른 한 명이 답했다.
"교주께서 원하는 건 죽은 시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기연이다. 기다려라."
한설은 천천히 일어났다. 백설이 그를 붙들려고 했지만 한설은 손을 들어 그녀를 멈추게 했다.
"물러나."
"형, 당신은—"
"물러나!"
한설의 목소리에 낯선 톤이 섞여 있었다. 방금 흡수한 부하의 음성 특성이 드러나는 것이었다. 백설은 몸을 굳혔다. 형의 목소리가 낯설어졌다. 누군가를 잃는 공포가 그녀를 휘감았다. 이것이 정말 형인가? 아니면 형의 몸을 빌린 다른 누군가인가? 그녀는 입을 열려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첩자로서의 의무와 누나로서의 본능 사이에서 백설은 갈라지고 있었다.
한설은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이 뭔가 중요한 것을 놓쳤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럴 시간은 없었다.
한설은 검을 들었다. 이제 그의 검은 전과 달랐다.
첫 번째 부하가 다시 달려들었다. 한설의 검이 그를 맞이했다. 이번에는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부하가 밀려났다. 두 번째, 세 번째 부하가 동시에 들어왔다. 한설은 한 검으로 둘 다 막아냈다.
그의 움직임이 달라져 있었다. 어제까지의 평범한 검술이 아니었다. 이제는 두 명의 무공이 한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설의 검은 더욱 빠르고 정교해졌다. 부하들의 칼을 쳐내는 각도, 반격의 타이밍, 모든 것이 완벽했다.
"강하군."
남자가 말했다.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예상했다. 우리 부하들은 약한 편이거든."
남자가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손가락에서 붉은 빛이 피어올랐다.
"나를 상대해 봐라. 한설."
남자의 무공이 폭발했다. 그의 손가락에서 붉은 실이 흘러나왔다. 한설은 그것을 피하지 못했다. 칼이 한설의 옆구리를 베었다. 한설은 몸을 굴렸다. 피가 흘렀다.
'이 자는 다르다.'
한설의 의식이 깨어났다. 흡수한 부하의 기억에서 비롯된 정보들이 떠올랐다. 이 남자는 적혼의 직속 부하였다. 적혼으로부터 기연을 받은 자였다.
'혈액 조종.'
한설의 눈이 남자의 손을 따라갔다. 남자의 손가락에서 붉은 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피였다. 남자가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한설의 피가 공중에서 칼처럼 변했다.
한설은 몸을 날렸다. 붉은 칼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한 발 차이였다.
"피할 수 없다."
남자가 말했다.
"네 피는 이제 내 무기다."
남자가 손을 펼쳤다. 한설의 피가 한 점으로 모여 창처럼 변했다. 그것이 한설을 향해 날아왔다.
한설은 검을 들어 그것을 쳐냈다. 피의 창이 산산조각 났다. 하지만 그것은 즉시 다시 모여 새로운 형태를 만들었다. 남자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한설의 피는 무한히 변형되었다.
한설은 뒤로 물러섰다. 그의 숨이 가빠지고 있었다. 아직도 가슴의 상처에서 피가 흘렀다. 흐를수록 남자의 무기는 커졌다.
'이대로라면 죽는다.'
그때, 한설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났다.
"흥미로운 광경이군."
검은 외투의 남자가 나타났다. 긴 검을 든 그의 모습은 어딘가 자유로워 보였다.
"혁명?"
한설이 중얼거렸다. 아니, 그것은 한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흡수한 부하의 기억 속에 있는 이름이었다.
혁명이라 불리는 남자가 웃음을 흘렸다.
"너희들이 하는 짓을 보니 역겹군. 기연을 수집한다? 그것은 수집이 아니라 약탈이다."
혁명이 검을 들었다. 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한설, 물러나거라."
한설은 움직이지 않았다. 적혼의 부하가 혁명을 향해 피의 창을 날렸다. 혁명은 그것을 한 검으로 모두 쳐냈다. 그의 움직임은 예측 불가능했다. 마치 강바람처럼 일정한 형태를 가지지 않았다.
"너희 같은 것들이 강호를 망친다. 기연이 있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나? 결국 모두 죽는다."
혁명이 말했다.
"기연은 천명이 아니다. 저주다."
혁명의 검이 폭발했다. 그의 검은 빠르고 거침없었다. 적혼의 부하가 밀려났다. 한설은 그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이 자도 기연을 가지지 않았다.'
평범한 검술만으로 기연을 가진 자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혁명은 기연 없이 강했다. 그렇다면 왜 자신에게 기연을 버리라고 했는가?
"도망쳐라, 한설!"
혁명이 외쳤다.
한설은 백설의 손을 잡았다. 그들은 산길을 따라 뛰어내렸다. 뒤에서는 여전히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다.
산을 내려오는 동안, 한설의 가슴은 격렬하게 뛰었다. 상처에서 흐르는 피, 체내에서 충돌하는 두 개의 무공, 그리고—
'내가 누구인가?'
한설은 자신의 손을 봤다. 그 손에서는 이미 세 명의 무공이 섞여 있었다. 첫 번째 암살자. 두 번째 부하. 그리고 이제 세 번째가 더해졌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한설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지만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산 아래, 정파의 검사들이 나타났다. 연우가 그들의 앞에 서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연우가 물었다.
한설은 답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가락 끝에 맺힌 피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한설?"
연우가 다시 물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
한설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내 목소리가 어디까지가 내 것이고, 어디부터가 남의 것인지. 내 생각이 어디까지가 내 생각이고, 어디부터가 남의 생각인지."
한설의 눈이 연우를 향했다. 그 눈빛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정파가 나를 보호한다고 했는데, 사실은 나를 통제하려는 것 아닙니까?"
연우는 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한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또 죽어야 합니까?"
한설이 물었다.
"세 번째 기연을 얻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한설의 목소리는 점점 가늘어지고 있었다. 그 안에 담긴 절망감은 더 이상 감출 수 없었다. 한설의 기억 속에서 세 명의 목소리가 겹쳐 울려 퍼졌다.
"당신의 기연이 강해질수록, 당신의 자유는 멀어집니다."
연우가 말했다.
"그것이 천명의 역설입니다."
한설은 밤하늘을 바라봤다. 어디선가 검은 그림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적혼의 부하들이었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혁명도, 정파도, 그 누구도 자신을 완전히 놓아주지 않을 것이었다.
"내일은?"
한설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미 세 명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내일도 또 누군가 나를 죽이려 올 것입니까?"
"예."
연우가 답했다.
"그리고 당신은 또 죽을 것입니다."
한설은 자신의 손을 다시 봤다. 이제 그 손에서는 세 명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첫 번째 암살자의 침착함. 두 번째 부하의 광기. 그리고 세 번째 부하의 냉정함.
그 목소리들이 한설에게 말했다.
'죽어라. 그리고 더 강해져라.'
한설은 그 목소리들을 거부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그 명령을 따르고 있었다. 손가락이 또다시 떨렸다. 이번에는 공포 때문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의지가 그를 움직이고 있었다.
산맥 너머, 붉은 기운이 맴도는 천명봉에서 또 다른 기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설은 그곳으로 가야 했다. 적혼을 만나야 했다. 그리고—
한설의 눈이 밤하늘을 뚫고 산맥 방향을 향했다. 그곳에서 무언가가 한설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연 수집가의 시선. 적혼의 눈.
한설은 그 시선을 느꼈다.
"곧 네 번째가 추가될 것입니다."
한설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한설의 것만이 아니었다.
연우는 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침묵 속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승인이자 절망이었다.
백설은 형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정파의 첩자로서 이 모든 것을 보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누나로서 형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 마음도 결국은 죄책감으로 변할 것이었다. 그녀는 두 세계 사이에서 계속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