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3화 「정파의 영접」

연우의 손가락이 한설의 팔목을 짚었다. 진맥이었다.

침상에 누운 한설은 천장의 백색 비단을 바라봤다. 창밖으로 영약산맥의 능선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연우의 손가락이 경맥을 따라 움직였다. 팔목에서 팔뚝으로, 어깨로. 마치 폭탄을 해제하듯 조심스럽게. 한설의 가슴 속에서 두 기운이 부딪혔다. 혈기와 다른 무언가가. 그 충돌로 인한 통증이 경맥을 타고 퍼졌다.

"위험합니까?" 한설이 눈을 떴다.

연우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녀의 눈이 한설의 눈과 만났다. 계산과 두려움이 섞인 눈빛이었다.

"당신의 두 번째 기연은 제가 아는 어떤 기연과도 다릅니다." 연우가 천천히 말했다. "순수한 형태가 아니라, 여러 음성이 겹친 것처럼. 혈기와 충돌할 때마다 새로운 파형을 만듭니다."

연우의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엔 더 깊게. 경맥을 누르는 압력이 강해졌다. 한설의 얼굴이 창백해졌지만 입은 다물었다. 연우의 손가락이 한설의 단전 근처에 도달했을 때, 그녀의 움직임이 멈췄다.

"여기서..." 연우가 말을 흐렸다. 그녀의 손이 떨렸다.

"뭔가가 뭡니까?"

연우는 대답하지 않고 손을 거두었다. 침상 옆에 앉은 그녀는 창밖을 바라봤다. 그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동정도, 거짓도 아니었다. 단지 현실이었다.

"정파 내에 두 가지 입장이 있습니다." 연우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백운파는 당신을 도의의 수호자로 봅니다. 강호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존재로. 하지만 진무교는 다릅니다. 혁명은 당신을 자유의 상징으로 보려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반을 흔드는 것입니다."

한설이 이 말을 곱씹었다. 정파 내부의 분열. 그것은 자신이 감지한 공기의 흐름과 일치했다.

"마파는?"

"더 직접적입니다." 연우가 침상의 모서리에 손을 놓았다. 그 손가락이 천천히 주름잡혔다. "혈의교 교주 적혼은 모든 기연을 수집하려 합니다. 당신의 흡수 능력은 그에게 있어서 마지막 그림의 한 조각입니다. 그는 당신을 죽이지 않을 것입니다. 포획하고, 당신의 기연을 채취하려 할 것입니다."

한설이 몸을 일으켜 앉으려 했다. 팔다리가 떨렸다. 경맥이 경직되어 움직임이 둔했지만, 그는 억지로 상체를 세웠다.

"그렇다면 정파는 나를 도구로 삼으려 한다는 뜻이다."

연우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녀의 손이 침상의 가장자리를 움켜쥐었다. 손가락이 창백해졌다.

"당신이 강해질수록, 강호의 모든 세력이 당신을 노릴 것입니다." 연우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명확했다. "백운파, 진무교, 혈의교, 암살동맹. 모두가 한설을 원합니다. 도구로서, 전리품으로서, 자산으로서."

한설은 입을 열었다. "기연이 없었으면 좋았겠다."

연우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당신은 기연이 없어도 우승할 수 있었습니다. 검술 대회에서 당신은 평범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겼습니다. 기연이 없었다면, 당신은 평범한 검객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강호는 당신을 주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설이 그녀를 바라봤다. 연우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냉정한,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내 여동생은?"

"안전합니다. 정파의 보호 아래 있습니다. 그녀의 생명은 보장됩니다."

"조건이 있나?"

"하나입니다." 연우가 일어섰다. "정파의 영접을 받으십시오."

한설이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통증이 온몸을 관통했지만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연우를 향해 한 발 내디뎠다.

연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 사이의 거리는 팔 길이만큼 남았다.

"영접의식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연우가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멈추었다.

"강호에는 당신처럼 기연을 지닌 자들이 더 있습니다. 대부분은 이미 천명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모두 당신의 기연을 탐냅니다. 영약산맥의 천명봉에서 그들은 수련합니다. 거기서 나오는 기운이 기연을 더욱 깊게 만듭니다."

한설이 그 이름을 되뇌었다. 천명봉. 암살자가 죽기 직전 중얼거렸던 그 말.

"천명봉에서 나온 자."

연우가 뒤를 돌아봤다.

"당신을 죽이려던 암살자가 한 말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그곳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의 기연을 빨아들였으므로, 이제 천명봉의 누군가는 당신을 찾을 것입니다."

그녀가 떠났다. 방문이 닫혔다. 한설은 창밖의 영약산맥을 바라봤다. 산맥의 중심부, 가장 높은 봉우리가 보였다. 천명봉. 거기서 나오는 기운이 기연을 깊게 만든다고 했다.

한설은 침상 옆 작은 탁자 위에 놓인 경맥도를 들었다. 자신의 몸 안의 기맥을 그린 그림이었다. 첫 번째 기연의 흔적은 명확했다. 혈기 계통의 붉은 선들이 가슴에서 팔로 뻗어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기연의 흔적은 불규칙했다. 여러 색의 선들이 얽혀 있었다. 검은색, 회색, 그리고 한 줄의 은색.

한설의 손가락이 그 은색 선을 따라갔다. 가슴에서 시작해 복부로, 그리고 단전으로 내려가는 경로. 그것은 자신의 내공 흐름과 다른 무언가였다.

방문이 다시 열렸다.

의약사가 들어섰다. 그는 한설의 얼굴을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약을 드시겠습니까?"

"무슨 약인가?"

"영약산맥의 약초로 만든 것입니다. 기연의 충돌로 인한 혈도 손상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의약사가 흰 자기 그릇을 내밀었다. 검은 액체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계속 복용하면 신체가 의존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이 약 없이는 기연의 고통을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한설이 그릇을 받았다. 냄새는 쓰고 달콤했다.

"약물 의존성이 생기면?"

"그러면 당신은 영약산맥으로 가야 합니다." 의약사가 말했다. "더 강한 약초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곳은..."

의약사는 말을 마치지 않았다. 하지만 한설은 알았다. 그곳은 천명들이 수련하는 곳이었다. 자신을 노리는 모든 자들의 거점.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그곳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것처럼.

한설은 그릇을 입에 가져갔다. 한 모금을 마신 순간, 가슴 속 두 개의 기연이 순간 가라앉았다. 고통이 줄어들었다. 첫 번째로 생기는 휴식.

그 순간, 한설의 몸 안에서 무언가가 깨어났다. 경맥도에 그려진 은색 선이 활성화되었다. 가슴에서 시작한 그 선이 복부로, 단전으로 내려가며 밝아졌다.

동시에 낯선 기억이 침입했다.

어두운 방. 누군가를 기다리는 자신의 모습. 아니, 자신이 아니라 누군가 다른 자의 모습이었다. 암살자의 눈으로 보는 세상.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독약의 차가움. 가슴팍에 박힐 칼날의 예감. 죽음 직전의 공포가 온몸을 휩쓸었다.

한설의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릇이 떨어졌다. 검은 액체가 바닥에 흩어졌다.

의약사가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기억이... 침입했습니다."

의약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빠르게 한설의 팔목을 잡았다. 진맥을 다시 했다.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은색 선이 활성화되었군요. 약이 그것을 자극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예상하지 못한 반응입니다."

"제거할 수 있습니까?"

"모릅니다." 의약사가 솔직하게 답했다. "당신의 두 번째 기연은 제가 본 어떤 기연과도 다릅니다. 약물 의존성뿐 아니라, 당신은 이제 그 기억들과도 싸워야 할 것 같습니다."

의약사가 떠났다. 한설은 창문을 통해 영약산맥을 계속 바라봤다. 정파의 영접을 받아들인 순간, 모든 것이 시작된 것 같았다. 정파의 보호, 백설의 안전, 그리고 하나씩 자신을 천명봉으로 끌어당기는 보이지 않는 줄들.

그때 한설의 눈이 움직였다.

창 밖, 영약산맥의 숲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여러 개의 시선. 숨을 고르게 쉬고, 움직임 없이 기다리는 자들의 시선. 정파의 보호가 끝나는 곳, 숲의 경계에서.

한설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손가락에 미세한 검은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암살자의 혈기. 아직도 그것은 자신의 몸 안에서 살아 있었다. 마치 자신이 암살자가 되어가는 것처럼.

밤이 내려왔다. 영약산맥의 숲에서 누군가는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적혼의 부하들. 그들은 인내했다. 정파의 보호가 약해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설은 창문을 닫았다. 하지만 그 시선은 여전히 느껴졌다. 정파의 성벽 너머로, 계속해서 자신을 바라보는 무수한 눈들.

발걸음 소리가 복도에서 들렸다. 한설이 몸을 일으켰다. 통증이 몸 곳곳을 훑고 지나갔지만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문이 열렸을 때 이미 그는 창가에서 물러나 있었다.

연우였다. 그녀는 여전히 흰 제복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작은 보자기를 들고 있었다. 어제의 차가움은 사라져 있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무언가 더 복잡한 감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한설을 향했다. 그 눈빛에 흔들림이 있었다.

"몸 상태는 어떻습니까?"

"약을 먹었습니다. 그 후로..."

연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한설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손을 들어 다시 진맥을 시작했다. 이번엔 더 꼼꼼하게. 그녀의 손가락이 경맥을 따라 움직였다. 가슴에서 복부로, 단전으로.

"은색 선이 활성화되었군요." 연우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긴장이 묻어났다. "약물 반응입니까?"

"기억이 침입했습니다. 암살자의."

연우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녀의 눈이 한설의 눈과 만났다. 그 눈빛에는 공포가 있었다. 그리고 결정이 있었다.

"의약사가 말씀드렸을 겁니다. 약의 대가에 대해."

한설이 침묵했다. 연우는 보자기를 방 한쪽 책상 위에 내려놨다. 그 손이 살짝 떨렸다.

"정파의 경영회의가 있었습니다." 연우가 계속했다. "당신에 대해. 결론은 보호와 감시입니다."

연우는 책상 위의 보자기를 풀었다. 안에는 지도와 문서가 들어 있었다. 영약산맥의 지도였다. 그 위에는 여러 개의 빨간 점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강호에는 당신처럼 기연을 지닌 자들이 더 있습니다." 연우가 지도를 가리켰다. "이 점들이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천명 또는 천명에 준하는 기연자들의 위치입니다. 총 열세 명입니다."

한설의 시선이 지도에 고정되었다. 빨간 점들이 산맥을 중심으로 흩어져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영약산맥 주변에 모여 있습니다. 특히 천명봉 근처에." 연우가 지도의 가장 높은 곳을 가리켰다. 검은색으로 표시된 그곳은 마치 거미줄의 중심처럼 보였다. "그곳은 기연을 수집하는 자의 거점입니다. 적혼입니다."

한설의 호흡이 가빠졌다. 가슴 속의 두 기연이 다시 출렁이기 시작했다.

"적혼은 모든 기연을 모으려 합니다." 연우가 계속했다. "한 몸에 모아 천명을 초월한 자가 되려고. 당신의 기연은 그가 가장 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기연은 다른 기연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설이 지도 위의 한 점을 지목했다. 천명봉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였다.

"여기는?"

연우가 그 점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이 순간 흔들렸다.

"정파가 파악하고 있는 또 다른 기연자입니다." 연우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정체는 불명확합니다. 최근에 활동이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죽었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더 강해졌거나." 연우가 말했다. "정파도 그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한설이 지도를 내려놨다. 그것이 책상 위에 떨어지면서 먼지가 일었다.

"정파가 저를 보호한다면, 왜 이것을 보여줍니까?"

"왜냐하면 당신이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연우가 답했다. 그녀의 목소리에 결연함이 담겨 있었다. "당신은 더 이상 평범한 검객이 아닙니다. 정파의 영접을 받아들이는 순간, 당신은 강호의 정사 속으로 완전히 빨려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정사의 흐름은 모두 한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알든 모르든, 그곳으로 가게 될 겁니다."

한설이 연우를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에는 갈등이 드러나 있었다. 눈동자가 흔들렸다. 손가락이 옷깃을 움켜쥐었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연우가 한설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그 눈빛이 변했다. 무언가 부드러워졌다.

"당신이 강해질수록, 강호의 모든 세력이 당신을 노릴 것입니다." 연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파의 보호는 당신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당신을 가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옥의 벽이 높을수록, 그것을 부수려는 자들도 더 강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망칠 수 없다는 뜻입니까?"

"도망칠 수 없습니다." 연우가 고개를 저었다. "왜냐하면 당신은 기연을 흡수합니다. 죽음의 순간에. 그리고 그때마다 당신은 누군가의 무공과 기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당신은 동시에 누군가가 되어갑니다. 이미 두 명의 암살자가 당신 안에 있습니다. 한 명 더 흡수하면 어떻게 될까요? 세 명, 다섯 명, 열 명이 되면?"

"저는 아직 저입니다."

"지금은." 연우가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강해질수록 그렇지 않을 겁니다. 정파의 장로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아니, 모르고 싶어 합니다. 당신이 강해지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방 안의 침묵이 무거워졌다. 창밖에서는 점점 더 어두워지는 밤이 들어오고 있었다.

"정파에 들어가시겠습니까?" 연우가 물었다. 그 질문에는 이미 정해진 답이 있었다. 한설이 거절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조건이 있습니다." 한설이 말했다. "백설이 정파의 손에 들어가는 것은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생명은 절대 위협받아서는 안 됩니다."

연우가 한설을 바라봤다. 그 눈빛이 변했다. 무언가 부드러워졌다.

"당신의 요구를 정파에 전하겠습니다."

"즉시."

"예." 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요구는 받아들여질 겁니다. 정파는 당신이 협력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협력?"

"강호의 변화에 대항하기 위해." 연우가 지도를 다시 집어 들었다. 그 손가락이 여러 점들을 가리켰다. "적혼뿐 아니라 다른 세력들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진무교의 혁명, 암살동맹의 새로운 지령, 심지어 독립 검객들까지도 당신을 노리고 있습니다. 정파는 당신을 통해 이 모든 변수를 통제하려 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도구가 되는 겁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연우가 대답했다. "그것은 당신이 얼마나 강해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도구가 아닌 주체가 될 정도로."

한설이 창밖을 다시 바라봤다. 완전한 어둠이 내려와 있었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여러 개의 그림자. 정파의 성벽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들.

"밤이 깊었습니다." 연우가 말했다. "내일 정파의 제자들이 당신을 훈련장으로 데려갈 겁니다. 당신의 기연을 정파의 방식으로 통제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겁니다."

"통제할 수 있습니까?"

"저도 모릅니다." 연우가 솔직하게 답했다. "아무도 당신 같은 기연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위험합니다."

연우가 방을 나가려 하다가 멈췄다. 그녀가 돌아섰다. 그 눈이 한설을 향했다.

"한설." 그녀가 처음으로 이름을 부르며 입을 열었다. "정파에 들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습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당신은 이제 정파의 검입니다." 연우가 말했다. "검은 주인의 손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검의 운명은..."

연우는 말을 멈췄다.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입술이 움직였다가 다시 다물어졌다. 마치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참은 것처럼.

"검의 운명은 무엇입니까?"

"부러지거나 녹슬거나, 아니면 누군가를 죽이는 것입니다." 연우가 마침내 말했다. "그 중 하나입니다."

한설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연우가 나갔다. 방 안에는 다시 침묵만 남았다. 한설은 책상 위의 지도를 들었다. 빨간 점들이 천명봉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검은색으로 표시된 천명봉은 마치 눈을 뜬 무언가처럼 보였다.

밤이 깊어졌다. 창밖의 어둠은 더욱 짙어졌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영약산맥의 숲 어딘가에서.

그곳은 정파의 성벽 너머, 정파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인물들이 불을 피우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그들의 눈은 모두 성 위의 한 창문을 향해 있었다. 한설의 방의 창문.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한 명이 물었다.

"적혼의 지시까지." 다른 이가 대답했다. "그는 아직 준비가 덜 됐다고 했다. 정파의 보호 아래에서 더 강해질 때까지."

"그리고?"

"그리고 충분히 강해지면, 우리가 끝낸다."

숲 속의 그림자들이 다시 침묵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인내했다. 적혼의 부하들은 항상 인내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냥꾼이고, 한설은 사냥감이기 때문이었다.

밤은 계속 깊어갔다. 한설의 방에서 불이 꺼졌다. 하지만 숲 속의 눈들은 여전히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파의 성벽 너머로, 계속해서 그를 지켜보는 무수한 시선들.

그때 한설의 창문이 다시 밝아졌다. 그는 일어나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들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한설의 손가락에 은색 선이 미세하게 빛났다. 암살자의 기억이 다시 침입하고 있었다. 그것은 밤이 깊어질수록 더욱 강해질 것이었다. 약의 부작용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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