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거울

밤 10시 58분. 지우의 손가락이 투명해지고 있었다.

편의점 카운터에 기댄 지우는 자신의 손을 들었다. 형광등 빛이 손가락 사이를 통과했다. 계산대 뒤의 담배 진열장이 보였다. 그 뒤의 벽이 보였다. 손가락이 아닌 공간만 남았다.

남은 시간 3일. 처음엔 7일이었다.

준호는 죽었다. 예지는 정확했다. 내일 밤 11시 47분, 강남대로 교차로. 지우가 밤새 준호를 자신의 옆에 묶어두었는데도, 준호는 새벽 8시에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왔을 때 지우는 준호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손목이 투명해서 경찰은 지우의 손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오직 준호만 봤다. 미친 친구의 경고를 받은 피해자로.

지우는 준호가 경찰차에 실려가는 것을 봤다. 그 후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휴대폰만 울렸다. 다섯 명의 이름. 다섯 명의 죽음. 모두 예정된 시간에. 모두 예정된 방식으로.

그리고 이수영의 목소리. "우린 항상 알고 있었어. 시작부터 너를 선택할 때부터."

이수영은 폐점 후 떠났다. 지우의 얼굴을 직접 보고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오직 담담하게 말했을 뿐이다. "너는 이제 손님이 되어가고 있어. 축하할 일이야."

밤 11시 1분.

형광등이 깜빡이지 않았다.

지우는 문을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들어올 것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밤 11시 2분. 밤 11시 3분. 밤 11시 5분. 시간은 흐르고 있었는데, 손님은 오지 않았다.

이것이 처음이었다.

지우는 카운터에서 일어나 편의점을 돌아다녔다. 라면 코너, 음료 냉장고, 간식 진열대.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형광등은 부드럽게 울리고 있었다. 깜빡이지 않고. 신호를 보내지 않고.

아무도 오지 않는 밤 11시. 이것도 예지였을까.

지우는 계산대 옆의 거울을 바라봤다. 편의점 매니저들이 외모를 체크하는 용도의 작은 거울. 손가락이 투명해진 이후로, 지우는 거울을 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이 순간, 피할 수 없었다.

거울 속의 자신을 직시했다.

얼굴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눈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눈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두 개의 검은 구멍. 공허함 자체. 그 안에는 감정이 없었다. 콧대도 희미했다. 입술의 테두리는 흐릿해졌다. 머리카락은 개별적인 가닥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나의 흐린 덩어리. 몸통은 셔츠와 바지의 윤곽으로만 존재했다. 손은 완전히 투명했다.

지우는 거울을 향해 손을 들었다. 손가락이 형광등 불빛을 통과해서 반대편이 보였다. 계산대의 담배 진열장이. 그 뒤의 벽이.

"나... 사라지고 있어?"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자신의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물 아래에서 전해오는 울림처럼.

지우는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움직임이 느렸다. 목을 돌리는 데 1초가 걸렸다. 팔을 내리는 데 2초가 걸렸다. 시간이 진전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었다.

손가락을 구부렸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시도했다. 3초 후에야 손가락이 구부러졌다. 지우는 손을 쥐려 했다. 손가락들이 손바닥 위에서 닫혔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쥐고 있는데도.

지우는 카운터를 집어던지려 했다. 손가락이 카운터를 통과했다. 아무 저항도 없었다. 손가락이 나무를 뚫고 들어갔다. 지우는 손을 빼냈다. 카운터에는 자국이 남지 않았다.

"안 돼. 안 돼."

지우가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목소리도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편의점 문이 열렸다.

윤정민이 들어왔다.

지우는 즉시 알아챘다. 윤정민의 외모가 아니라, 그 존재감의 질이 다르다는 것을. 윤정민의 손이 투명했다. 얼굴은 희미했다. 눈빛은 공허했다.

윤정민이 편의점을 둘러봤다. 마치 처음 온 곳인 양. 그리고 지우를 봤다. 하지만 제대로 보지 못했다.

"지우? 넌 왜 여기 있어? 난 여기 온 적이 없는데..."

윤정민의 목소리도 지우의 것과 같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울림. 물 아래의 음성.

지우는 이해했다. 윤정민이 손님이 되었다는 것을. 자신의 친구가 예지 능력의 대상자가 되었다는 것을. 지우가 윤정민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니다. 다시 생각해봤다. 지우가 윤정민에게 "거리를 두라"고 경고했을 때, 윤정민은 이미 죽어 있었을 수도 있다. 이미 손님들의 세계에 발을 들였을 수도 있다. 그 경고는 구원이 아니라, 단순히 사건의 진행 순서를 바꾼 것일 수도 있다.

지우가 입을 열려 했다. 하지만 말할 말이 없었다. 윤정민에게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너도 죽었어? 너도 손님이 되어가고 있어? 미안해?

"넌 누구지?"

윤정민이 다시 물었다. 그 질문은 지우를 향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것처럼 들렸다. 윤정민도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다.

지우는 거울을 다시 봤다. 거울 속의 자신은 이제 윤정민과 같은 상태였다. 투명한 손. 공허한 눈. 희미한 존재감. 거울 속의 지우는 거울 밖의 윤정민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제야 지우는 깨달았다. 자신이 언제 죽었는지를.

처음이 아니었다. 밤 11시에 회색 옷의 남자를 만났을 때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전. 지우는 생각을 거슬러 올라갔다. 편의점 알바를 시작했을 때. 아니다. 그 전. 고등학교. 대학. 어린 시절. 지우는 자신의 기억을 뒤져봤다.

기억이 흐릿했다. 마치 물속의 영상처럼. 편의점에서 일하기 전의 지우는 누구였을까. 부모님은. 친구들은. 학교는. 모두 흐릿했다. 마치 다른 사람의 꿈을 보는 것처럼.

지우는 자신의 손을 들었다. 손가락이 계산대를 통과했다. 손가락을 움직였다. 움직임이 느렸지만 움직였다. 이것이 환각이라면, 환각이 이렇게 일관성 있게 진행될까. 아니면 환각이기 때문에 일관성 있게 진행되는 걸까.

"난 지우야."

지우가 말했다.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윤정민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지우를 보지 못했다. 지우가 선 위치가 아닌 다른 곳을 봤다.

"누가 말했어?"

윤정민이 물었다.

지우는 이제 이해했다. 손님들이 왜 말이 없었는지를. 왜 공허한 눈빛으로 지우를 봤는지를. 왜 대화가 마치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는지를.

손님들은 서로를 보지 못했다. 손님들은 서로를 들을 수 없었다. 손님들은 오직 지우만을 볼 수 있었다. 아직 완전히 투명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지우가 아직 게임을 진행 중이기 때문이었을까.

편의점 형광등이 깜빡였다.

지우는 즉시 알았다. 이것이 신호라는 것을. 새로운 손님이 들어올 신호.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것 같았다. 형광등의 리듬이 이전과 달랐다. 더 빠르고. 더 불규칙하고. 마치 심장 박동이 불안정한 것처럼.

편의점 문이 열렸다.

여자가 들어왔다. 검은 옷을 입은 여자. 지우는 그 여자를 본 순간 알아챘다. 이 여자는 손님이 아니라는 것을. 투명하지 않았다. 눈빛은 명확했다. 이 여자는 살아 있었다.

그 여자가 지우를 봤다. 정확히 지우의 얼굴을 봤다.

"오래 기다렸어?"

여자가 물었다. 목소리는 명확했다. 울림이 있었다. 생명이 있었다.

"너는 누구야?"

지우가 물었다.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여자는 들었다.

"난 지우 다음이야."

여자가 말했다.

그 순간, 지우의 뒤에서 윤정민이 움직였다. 윤정민이 여자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마치 소환당하는 것처럼. 윤정민의 투명한 손이 여자의 팔에 닿았다. 하지만 여자는 느끼지 못했다. 손님의 손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닿을 수 없었다.

여자가 지우에게 다시 물었다.

"이제 준비됐지?"

준비? 준비된 것이 뭔가. 지우는 자신의 거울 속 모습을 생각했다. 투명한 손. 공허한 눈. 희미한 존재감.

"뭐가?"

지우가 물었다.

"너도 손님이 되는 것. 마지막 손님. 가장 오래 기다려온 손님."

여자가 웃었다. 그 웃음은 죽음의 웃음이었다. 마치 물 아래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지우는 거울을 다시 봤다. 거울 속의 자신은 이제 윤정민과 완전히 같은 상태였다. 투명한 존재. 공허한 눈. 아무도 볼 수 없는 손.

남은 시간 3일. 그것도 거짓일 수도 있었다. 지우가 이미 죽어 있다면, 시간은 이미 끝났을지도 몰랐다.

지우가 거울을 집어던지려 했다. 손가락이 거울을 통과했다. 거울은 흔들리지 않았다. 지우가 거울을 밀었다. 손이 거울을 뚫고 들어갔다. 지우는 손을 빼냈다. 거울에는 자국이 남지 않았다.

"안 돼. 안 돼!"

지우가 소리쳤다. 목소리가 공기를 흔들지 못했다. 지우는 카운터를 흔들려 했다. 손가락이 카운터의 가장자리를 집어 올렸다. 손가락이 나무를 통과했다. 지우는 손을 쥐었다. 손가락이 카운터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너는 누가 보낸 거야?"

지우가 물었다. 부정하고 싶었다. 이 모든 것이 거짓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손가락의 투명함이 증명하고 있었다.

"너."

여자가 대답했다.

"뭐?"

"너가 보낸 거야. 너는 이미 알아. 손님들의 게임은 너를 자신들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거라는 것을.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너 자신을 손님으로 만드는 것이야. 너는 이제 누군가의 밤 11시가 되는 거야. 그리고 그 누군가는 너처럼 발버둥칠 거고. 너처럼 실패할 거고. 너처럼 투명해질 거야."

여자가 지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살아 있는 손. 따뜻한 손. 지우는 그 손을 봤다. 그리고 자신의 투명한 손을 봤다.

편의점 형광등이 다시 깜빡였다.

이번에는 지우도 함께 깜빡였다. 몸이 희미해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지우의 손가락이 여자의 손등을 향해 움직였다. 닿지 않았다. 손가락이 그 손을 통과했다.

"안 돼."

지우가 중얼거렸다. 부정이 아니었다. 절망이었다.

"뭐가?"

"이건 안 돼. 난 이미... 누군가를 구했어. 준호를. 준호는 살아있어야 해."

여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웃음이 아니었다. 동정이었을까. 아니면 조소였을까.

"준호? 그 애는 이미 죽었어. 지우. 너도 알잖아."

"아니야. 난 그를 구했어."

지우가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목소리는 공기를 흔들지 못했다. 마치 진공 속에서 외치는 것처럼. 윤정민이 지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투명한 손. 지우도 느낄 수 없는 손. 하지만 무겁게 느껴졌다. 그것은 절망의 무게였다.

여자가 편의점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다. 편의점 카운터 위에는 노트북이 있었다. 지우는 그 노트북을 본 적이 없었다. 여자가 노트북을 켰다. 화면에는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박혜진. 이지현. 김은하. 송민주. 최유미. 박준호.

그리고 그 아래, 훨씬 더 긴 이름들의 목록.

"이건 뭐야?"

지우가 물었다.

"너의 리스트. 아니. 너의 다음."

여자가 말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화면을 스크롤했다. 이름들이 계속 나타났다. 수십 개. 수백 개.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저 사람들을 다 구하지 못한 거야?"

지우가 물었다. 목소리에 떨림이 있었다.

"구하지 못한 게 아니야. 못 구한 거야. 그리고 이미 구한 애들도 있고. 하지만 중요한 건..." 여자가 노트북 화면을 지우에게 돌렸다. "너는 이 리스트 때문에 죽었다는 거야."

화면 맨 아래에는 한 줄이 더 있었다.

지우.

"내가... 마지막이야?"

지우가 물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 의미가 비로소 명확해졌다.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밤 11시의 시작.

"마지막이면서 처음이야. 너는 이 게임의 끝이자 다음 게임의 시작이야. 그리고 그 다음, 또 그 다음... 영원히."

여자가 가까워졌다. 지우는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편의점은 이미 너무 작았다.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여자의 손이 지우의 얼굴에 닿았다. 살아 있는 손이 투명한 얼굴을 통과했다. 지우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아직도 모르고 있네."

여자가 속삭였다.

"뭘?"

"너는 이미 며칠 전에 죽었어. 그 첫 번째 손님 만났을 때. 너는 이미 죽어 있었어. 그 이후로는 전부 환각이야. 너는 죽은 상태에서 살아 있는 척 행동하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지금 넌 마지막 단계에 들어간 거고."

지우의 몸이 떨렸다. 하지만 떨림도 공기를 흔들지 못했다.

"그럼 준호는?"

"환각."

"윤정민은?"

"환각."

"편의점은?"

"환각."

여자가 한 걸음 물러섰다. 편의점이 흔들렸다. 아니, 흔들린 게 아니었다. 편의점이 투명해지고 있었다. 벽이 희미해졌다. 형광등이 꺼졌다. 검은 것이 모든 것을 삼켰다.

지우는 저항했다.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손은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투명한 손가락들이 공기를 헤쳤을 뿐이다.

"마지막 질문."

여자가 말했다. 여자의 목소리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너는 누구야?"

지우는 답할 수 없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만약 대답한다면, 그것이 곧 받아들임이 되기 때문이었다.

편의점이 완전히 사라졌다.

검은 것 속에서 지우는 혼자였다. 아니, 혼자가 아니었다. 주변에는 수많은 투명한 형상들이 있었다. 손님들. 지우가 만났던 모든 손님들. 그리고 지우가 만나지 못했던 손님들. 그들은 모두 같은 공허한 눈으로 지우를 봤다. 아니, 봤다는 표현은 틀렸다. 그들은 지우를 통해 무언가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왔다. 회색 옷의 남자였다. 지우가 처음 만났던 손님.

"너는 누구인가."

회색 옷의 남자가 물었다. 같은 질문. 처음부터 같은 질문.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될 질문.

"난... 지우야."

지우가 대답했다.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했다. 그것이 받아들임이었다.

"맞아. 넌 지우야. 그리고 넌 이제 손님이야. 내일 밤 11시에 누군가의 편의점에 들어갈 거야. 그리고 그곳에서 누군가를 만날 거야. 그리고 넌 그 누군가에게 물어볼 거야. 너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 누군가는 너처럼 대답할 거야. 너처럼 발버둥칠 거야. 너처럼 죽을 거야."

"그럼 이건... 끝이 아니야?"

지우가 물었다. 마지막 저항이었다.

"끝이 아니야. 이건 시작이야. 영원한 시작. 영원한 밤 11시."

회색 옷의 남자가 지우의 손을 잡았다. 투명한 손과 투명한 손. 이제 닿을 수 있었다. 손가락들이 맞물렸다. 그것은 계약이었다.

검은 것이 빛으로 변했다.

지우는 편의점에 서 있었다. 같은 편의점. 하지만 다른 것 같았다. 카운터 뒤에는 누군가가 서 있었다. 젊은 남자. 초록색 조끼. 편의점 직원. 지우 같은 표정. 공허한 눈. 투명한 손.

그 남자가 지우를 봤다. 아니, 정확히는 지우를 보지 못했다. 지우가 선 위치가 아닌 다른 곳을 봤다.

"누가... 있어?"

그 남자가 중얼거렸다. 공포가 목소리에 묻어 있었다. 지우는 그 공포를 알았다. 그것은 자신의 공포였다.

형광등이 깜빡였다.

편의점 문이 열렸다.

새로운 손님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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