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밤 11시의 손님 - 6화

준호가 편의점 문을 밀고 들어온 순간, 지우의 시야가 찢어졌다.

형광등이 깜빡이고. 그 틈새로.

영상이 흘러들어왔다.

내일 밤 11시 47분. 강남대로 교차로. 신호등 앞. 검은색 승용차. 준호가 운전석에 앉아 있다. 손이 핸들을 잡고 있다. 옆쪽에서 트럭이 돌진한다. 유리가 깨진다. 금속음이 울린다. 검은색이 밀려온다. 준호의 얼굴이 앞유리에 부딪히고. 목이 꺾인다. 아니, 꺾인다기보다는 '느껴진다'. 뼈가 으스러지는 감각이 지우의 목에서 시작된다.

지우는 소리를 질렀다.

"준호!"

팔을 뻗어 준호의 옷깃을 잡았다. 손가락이 옷감을 움켜쥐고. 손목이 투명했다. 손 안쪽에서 혈관이 선명하게 보였다. X선 필름처럼.

준호가 놀라 뒷걸음질쳤다. "뭐 해? 놔."

"내일 차 타지 마. 제발."

지우의 목소리는 부서졌다. 성대에서 나오는 소리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 물 속에서 외치는 것처럼.

"내일 밤 11시 47분에. 강남대로. 신호등에서. 넌 죽어."

준호의 얼굴이 굳었다. 눈동자가 흔들렸다. 입이 벌어졌다가 다시 다물어졌다. 그 사이에 뭔가가 무너졌다. 불신이 깨지는 소리. 아주 작은 균열음이었지만 지우는 들었다.

"넌... 어떻게?"

"내가 봤어. 지우가 봤단 말이야."

준호는 지우의 손—투명한 손—을 내려다봤다. 현실이 균열 났다. 준호의 눈이 커졌다. 공포가 얼굴을 타고 내려왔다.

"뭐... 뭐야. 넌 뭐야."

"미친 게 아니야. 난 본 거야."

지우는 준호의 팔을 붙잡고 편의점 문으로 끌어갔다. 준호는 저항했다. 몸이 뻣뻣해졌다.

"놔! 뭐 하는 거야!"

"집에 가. 내일 밤 11시까지만. 어디도 가지 마. 차도 타지 마."

"지우, 진짜 뭐야. 이건..."

지우는 준호의 손목을 힘껏 잡고 밖으로 나갔다. 밤 공기가 얼굴을 쓸고 지나갔다. 편의점 불빛이 뒤로 물러났다. 준호는 계속 질문했다. 하지만 지우는 듣지 않았다.

택시를 잡았다. 준호의 주소를 기사에게 말했다. 준호는 옆자리에서 지우의 손을 노려봤다. 투명한 손. 손가락 끝이 허공처럼 보였다.

"지우... 넌 뭐야?"

지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준호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 살아 있는 손. 내일 밤 11시 47분에 차 핸들을 잡고 있을 손. 그 손을 놓지 않았다.

"내일만. 제발. 내일만 집에 있어."

"지우. 너... 혹시..."

"내가 구할 거야."

준호는 입을 다물었다. 택시 창밖으로 도시가 흘러갔다. 밤거리의 간판들. 편의점. 편의점. 또 다른 편의점. 이 도시는 편의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지우는 생각했다. 이 도시의 밤은 편의점에서 시작되고, 편의점에서 끝난다. 그리고 자신은 그 모든 밤의 중심에 있다.

준호의 집에 도착했을 때, 지우의 얼굴이 거울에 비쳤다. 현관의 작은 거울. 그곳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희미했다'. 그 단어가 가장 정확했다. 눈동자가 흐릿했다. 코가 반투명이었다. 이마 쪽이 특히 심했다. 손가락은 말할 것도 없고, 손목을 지나 팔뚝까지 투명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피부 아래 근육이 보였다. 뼈가 보였다.

지우는 손을 펼쳤다 다시 주먹을 쥐었다. 손이 움직인다. 여전히 움직인다. 하지만 움직일 때마다 손가락이 물건을 관통하는 기분이 들었다. 책상 모서리를 집으려 했지만 손이 빠져나갔다. 마치 손이 이미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지우?"

준호가 거실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지우는 들어갔다. 준호의 집. 익숙한 냄새. 대학 때부터 알던 공간. 준호의 침대, 책상, 포스터들. 모두 그대로였다. 준호는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우는 변하고 있었다.

"넌... 정말로 본 거야?"

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공포와 무언가 다른 감정이 섞여 있었다.

"응. 명확해. 시간, 장소, 방식까지."

"그럼 대피할 수 있지. 내일 밤에 집에만 있으면..."

"안 된다."

지우의 대답이 준호의 말을 끊었다. 예지된 죽음은 피할 수 없다. 피하려 할수록 더 빠르게 찾아온다. 마치 중력처럼. 마치 운명처럼.

"그럼 뭐 하는데?"

"너를 여기에 묶어둘 거야. 밤 11시부터 아침까지. 누구한테도 전화하지 마. 문도 열지 마."

준호는 지우를 바라봤다. 투명한 팔을 가진 친구. 희미한 얼굴. 흐린 눈동자. 그 친구가 자신을 구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지우... 넌 얼마나 남았어?"

지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휴대폰을 꺼냈다. 배터리는 7%였다. 화면을 켜니 새로운 메시지가 와 있었다.

'좋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남은 시간이 줄어들었네요. 준호의 남은 시간이 3개월이었으니까요. 이제 당신의 남은 시간은 정확히 7일입니다.'

지우의 손가락이 떨렸다.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7일. 그 단어가 화면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뭐야? 뭐가 왔어?"

준호가 다가왔다. 지우는 휴대폰을 숨겼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준호는 지우의 얼굴을 봤다. 그리고 알았다. 자신의 친구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무언가를 잃고 있다는 것을.

"지우... 넌?"

"괜찮아. 내일 밤만 버티면 돼."

거짓이었다. 내일 밤이 와도 지우는 버티지 못할 것이었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7일이라는 시간 안에서. 하지만 준호를 살리는 것이 중요했다. 이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았다.

지우는 준호의 침실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놓인 자동차 열쇠를 집으려 했다. 손가락이 통과했다. 다시 시도했다. 또 통과했다. 세 번째. 네 번째. 손가락이 열쇠를 집을 수 없었다. 투명한 손은 물질을 더 이상 붙잡지 못하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준호가 뒤따라왔다.

지우는 손가락으로 열쇠를 밀었다. 밀려났다. 그제야 열쇠를 집을 수 있었다. 옷장 깊숙이 숨겼다.

"내일 밤 11시 47분까지 넌 여기서 나가면 안 돼. 어디도."

"지우, 그게 막을 수 있을까?"

준호의 목소리가 작았다. 지우도 알고 있었다. 열쇠를 숨기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하지만.

"모르겠어. 하지만 시도하지 않으면 더 확실히 죽는다."

지우는 준호의 창문을 바라봤다. 밤거리가 보였다. 신호등들. 도로들. 모든 길이 강남대로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혹시... 경찰한테 신고할 수 있을까?"

지우가 중얼거렸다.

"뭐?"

"신호등 고장이라고. 내일 밤 11시 47분 강남대로 교차로에 경찰차를 배치하면..."

준호가 지우의 팔을 잡았다. 투명한 팔. 손가락이 통과할 것 같은 팔. 하지만 준호는 놓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해. 뭐든."

지우는 휴대폰을 들었다. 배터리는 2%였다. 경찰청 신고 앱을 켰다. 손가락이 화면을 터치할 때마다 빛이 손을 관통했다. 마치 손이 이미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신고 내용을 입력했다. '강남대로 교차로 신호등 고장. 내일 밤 11시 47분경. 사고 위험.'

제출 버튼을 눌렀다.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화면에 메시지가 떴다. 지우는 준호를 바라봤다.

"신고했어."

준호의 얼굴에 희망이 피어났다. 하지만 지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또 다른 메시지.

지우는 화면을 켰다. 배터리 1%.

'감사합니다. 하지만 내일 밤 신호등은 고장 나지 않습니다. 대신 다른 신호등이 고장 날 거예요. 강남대로 3개 교차로 앞. 차량 통행량이 더 많은 곳. 준호는 경찰차를 피해 다른 길로 나갈 테니까요. 그곳에서 더 큰 사고가 일어날 겁니다. 트럭 대신 버스가 올 거예요. 더 무거운 버스가.'

지우의 손이 떨렸다. 휴대폰이 떨어질 뻔했다. 그 메시지 아래 또 다른 글이 있었다.

'당신은 마지막 손님입니다. 이번이 마지막 예지입니다. 7일 후, 당신이 완전히 투명해질 때, 당신도 손님이 될 거예요. 그리고 그때부터 당신은 영원히 밤 11시의 편의점에서 손님들을 기다릴 겁니다.'

"뭐야? 뭐라고 했어?"

준호가 휴대폰을 빼앗으려 했다. 지우는 몸을 돌렸다.

"뭐라고 했어, 지우!"

준호의 목소리가 커졌다. 지우는 준호를 바라봤다. 투명해지는 손으로 준호의 어깨를 잡았다.

"신호등이 고장 나지 않는다고. 다른 곳에서 더 큰 사고가 일어난다고."

"그럼... 그럼 뭐 해? 뭘 해야 돼?"

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지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준호가 자신의 손을 잡았다. 투명한 손.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손.

"지우... 넌 왜 나를 구하려고 했어? 넌 죽는데?"

준호의 목소리가 울렸다.

"평범한 알바생이 되고 싶었는데..."

지우가 중얼거렸다.

"뭐?"

"그냥 평범한 알바생이 되고 싶었어. 밤 11시에 편의점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새벽 5시에 퇴근하고, 다음 날 또 나타나고. 그런 평범한 삶."

지우의 목소리가 희미해졌다.

"근데 넌 죽을 거였어. 내 손으로 막을 수 있는 죽음이 있는데, 안 할 수 없었어. 너라도 살려야 했어."

"지우..."

준호가 지우를 안으려 했다. 하지만 팔이 지우를 관통했다. 투명한 친구. 이미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친구.

밤이 깊어갔다. 지우는 준호의 거실 소파에 누웠다. 준호는 침실에 있었다. 지우가 강요했다. 밤 11시부터 아침까지는 밖에 나가지 말라고. 아무와도 연락하지 말라고.

소파 위에 누운 지우의 팔을 봤다. 손가락 끝이 완전히 투명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보였다. 뼈가 보였다. 아니다. 뼈도 투명했다. 그냥 빛이 통과했다.

지우는 손을 펼쳤다. 손가락이 소파를 관통했다. 만져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물건을 집을 수 없었다. 준호의 손을 잡아도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이미 죽어 있는 것처럼.

휴대폰을 들었다. 배터리는 0%였다. 화면이 검게 물들었다.

침실에서 준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울음소리였다.

지우는 일어나 앉았다. 침실로 들어갔다. 준호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얼굴을 베개에 묻고 있었다.

"준호."

지우가 말했다. 하지만 준호는 듣지 못했다. 아니,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우의 목소리는 이미 공기처럼 희미했다.

지우는 준호의 침대에 앉았다. 손을 준호의 등에 올렸다.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손이 침대를 관통했다. 지우는 손을 거두었다.

"미안해. 준호."

지우가 중얼거렸다.

"내일 밤 11시까지만 버티면 돼. 그 이후로는... 난 모르겠어."

준호가 얼굴을 들었다. 눈물이 흘렀다.

"지우... 난 너 없이 못 살아."

"그럼 살아. 넌 살아야 돼."

지우가 말했다.

"난 그냥 너를 지켜볼 거야. 마지막까지."

준호는 지우를 바라봤다. 거의 보이지 않는 친구. 투명한 친구. 하지만 그곳에 있는 친구.

"넌... 정말로 사라질 거야?"

지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준호의 손을 잡으려 했다. 손이 관통했다. 지우는 다시 시도했다. 또 관통했다. 지우의 손은 이제 물질을 붙잡을 수 없었다.

밤이 계속 깊어갔다.

내일 밤 11시까지 남은 시간은 약 22시간.

그 이후로 남은 시간은 약 6일 23시간.

지우는 그 시간들을 센다. 매 순간. 매 호흡. 자신의 수명이 시계추처럼 흔들리며 줄어드는 것을 센다.

7일 후, 지우는 완전히 투명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우는 밤 11시의 편의점에서 손님들을 기다릴 것이다.

영원히.

다음 손님의 이름은 윤정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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