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 11시의 손님 5화
밤 10시 52분, 지우는 편의점 카운터에 기댄 채 시계를 본다. 8분 남았다.
손가락이 떨린다. 어제처럼 누군가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지우는 또 누군가의 죽음을 볼 것이다. 배터리는 21%로 떨어져 있다. 손목 위쪽으로 투명해진 피부가 형광등 불빛을 그냥 통과한다. 지우는 그 자리에서 손을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한다. 손가락들이 공중에서 흔들린다.
휴대폰이 울렸다.
윤정민이다. 화면에 떠 있는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철렁했다. 어제 경고 후로 정민과는 통화를 하지 않았다. 전화를 받으면 또 다시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하지만 받지 않을 수도 없었다.
"여보세요."
지우의 목소리는 낮았다.
"지우. 지금 어디야?"
"편의점. 야간 근무."
침묵이 흘렀다. 통화선 너머로 정민의 숨소리만 들렸다.
"너... 정신과 갔어?"
"안 갔어."
"왜?"
"내가 미친 게 아니니까."
지우는 이 말을 몇 번 반복했는지 모른다. 자신에게, 거울에, 공허한 공기에. 하지만 정민에게 한 번도 제대로 말한 적이 없었다.
"지우, 제발. 진짜 가봐. 내가 병원을 찾아줄 테니까. 좋은 곳이 있어."
"정민, 들어. 어제 내가 말한 사람 기억해?"
"응..."
"신문 봤어?"
"봤어. 근데—"
"박혜진은 구조됐어. 내가 말한 대로."
"그건 그냥... 그냥 우연이야. 지우, 그냥 우연일 수도 있지 않아?"
지우의 손이 주먹을 쥔다. 투명한 손가락들이 부들거렸다.
"우연? 김은하는?"
"...익사했다는 거 알아. 근데 그것도..."
"우연?"
"내가 뭐라고 해야 돼, 지우? 너한테 뭘 해줄 수 있어? 나는... 나는 그냥..."
정민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울음이 묻어 있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근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지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민이 하는 말이 맞다. 정민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누구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 세상에 이런 일을 믿을 사람은 없다.
"정민."
"응?"
"내가... 내가 진짜 봤어. 그 사람들이 죽는 거. 어떻게 죽는지 다 봤어."
"알아. 난 그걸... 받아줄 수가 없어."
통화가 끊겼다.
지우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시계는 10시 59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1분 남았다.
형광등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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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정각, 형광등이 깜빡인다.
문이 열렸다.
하지만 손님이 아니었다.
준호였다.
지우는 순간 숨을 쉴 수 없었다. 준호는 편의점에 들어오면서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치 누군가를 피해 도망치듯.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밑에는 검은 그림자가 져 있었다. 마치 밤새 깨어 있던 것처럼.
"준호?"
지우가 말했다.
준호는 지우를 보자 발걸음을 멈췄다. 그의 눈이 지우의 팔로 향했다. 투명한 부분이 소매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왜... 여기 왔어?"
"담배 사려고."
거짓이었다. 준호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지우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준호는 왜 왔을까. 지우를 확인하러? 아니면 피하러? 아니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러?
"준호, 넌 지금 뭘 하고 있어? 어디 가는 거야?"
"왜 자꾸 내 일에..."
"위험한 일 하지 말아. 제발. 정말로."
지우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준호는 지우의 팔을 다시 봤다. 투명한 부분이 소매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준호의 얼굴이 굳으며 한 발 물러섰다.
"넌... 뭐야?"
"난 괜찮아. 넌—"
"넌 왜 자꾸 사람들을 따라다녀?"
준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제도 그렇고, 그 전날도 그렇고. 뭐 하려고? 넌 뭐가 목표야?"
"너를 구하려고."
"뭔 소리야!"
준호가 물러섰다. 지우와의 거리를 늘리듯.
"넌... 넌 진짜 미쳤어. 윤정민이 맞다. 넌 정신과를 가야 돼."
"준호—"
"내가 죽을 거라고? 내가?"
준호의 눈이 흔들렸다. 그 순간 지우는 알았다. 준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서 들었을 것이다. 자신이 죽을 거라는 말을.
"넌 누구한테서 들었어?"
"뭐?"
"내가 죽을 거라고. 누가 말했어?"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편의점 문을 향해 걸어갔다.
"준호!"
"날 따라오지 마. 진짜."
문이 닫혔다.
형광등이 다시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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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는 계산대에 무너져 앉았다. 손가락이 떨렸다. 투명한 손가락들이 자신의 다리 위에서 부들거렸다.
준호가 왜 편의점에 왔을까. 담배를 사려고? 그건 거짓이다. 준호는 지우를 피하려고 왔다. 아니, 준호는 지우를 확인하려고 왔다. 자신이 정말 죽을 것인지. 그리고 준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누가 말했을까. 누가 준호에게 자신의 죽음을 알려줬을까.
손님들인가. 아니면 이수영인가.
지우는 휴대폰을 들었다. 메모장을 열었다. 예지 리스트를 다시 봤다.
1. 지우 - 7일 후 밤 11시, 편의점 2. 박준호 - 3일 후 오후 2시, 건설 현장 3. 박혜진 - 내일 오후 5시, 강변 도로 4. 이지현 - 모레 오전 11시, 아파트 베란다 5. 김은하 - 내일 밤 9시, 강 6. 송민주 - 모레 밤 11시, 지하철역 7. 최유미 - 4일 후 오전 8시, 병원
3일 후. 준호는 3일 후에 죽는다.
손가락으로 계산해봤다. 이틀 반 정도 남아 있다는 뜻이다. 지우 자신은 7일이 남아 있다. 그리고 준호는 3일.
지우가 준호를 구하면 지우의 수명도 3일이 깎인다. 그러면 지우의 남은 시간은 4일이 된다.
4일.
손가락으로 다시 계산해봤다. 이틀 반. 3일. 4일. 계산이 맞다. 지우가 준호를 구하면 지우는 4일 후에 죽는다. 그리고 그 다음은 없다.
그렇다면 지우는 준호를 포기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오래 산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 박혜진도, 이지현도, 김은하도, 송민주도, 최유미도. 아무도 구할 수 없다면 아무도 구하지 않는 것이 낫다. 하지만 준호는 다르다. 준호는 지우의 친구다. 준호는 지우가 지켜야 할 사람이다.
지우는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투명한 손이 자신의 얼굴을 덮었다. 손가락이 보이지 않는다. 얼굴만 남는다. 아니, 얼굴도 투명해질까. 그러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하지만 지우는 준호를 구할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지우의 몸이 떨렸다. 지우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준호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준호는 자신의 첫 번째 친구이고, 유일한 친구이고, 지우가 지켜야 할 사람이다. 그 사실 앞에서 계산은 무의미했다.
그래서 지우는 죽을 것이다.
편의점에서. 밤 11시에.
그리고 준호는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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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2시, 지우의 휴대폰에 메시지가 왔다.
발신자는 알 수 없었다.
"좋은 선택입니다."
지우는 그 메시지를 봤다. 손가락이 떨렸다. 누가 이 메시지를 보냈을까. 손님들인가. 아니면 이수영인가.
메시지 속 문장이 자꾸 떠올랐다. '좋은 선택입니다.' 이것은 승인인가. 조종인가. 테스트인가. 지우가 준호를 구하기로 결정한 것을 누군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좋은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지우의 모든 것을 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지우의 선택을 미리 알고, 그것을 감시하고,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지우는 자유로운가. 아니면 이미 누군가의 손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가. 자신이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선택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우는 화면을 끈다. 형광등 아래에 앉아 천장을 본다. 형광등이 깜빡인다. 깜빡인다. 깜빡인다.
얼마나 오래 이 상태가 지속될까.
얼마나 오래 이 밤이 계속될까.
지우는 모른다. 단지 밤 11시가 올 때마다 누군가는 죽을 것이라는 것만 안다. 그리고 지우는 그들을 구하려고 발버둥칠 것이다. 그리고 지우의 수명은 계속 깎일 것이다.
4일 남음.
그 다음은 3일.
그 다음은 2일.
그 다음은 1일.
그 다음은 0일.
그 다음은 없다.
지우는 눈을 감는다.
형광등이 깜빡인다.
밤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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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지우는 눈을 뜰 수 없었다. 계산대 옆 쇼파에서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누군가 깨웠다.
"지우."
이수영 매니저였다. 얼굴이 굳어 있었다.
"어제 밤 뭐 했어?"
지우는 일어나려다 멈췄다. 팔이 투명했다. 손목 위까지. 이수영이 그것을 봤을까. 지우는 서둘러 팔을 내렸다. 소매 아래로 손가락을 숨긴다.
"그냥... 자다가 깼어요."
"손님들이 많았어. 어제 밤."
이것도 거짓이었다. 지우는 어제 밤 손님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형광등이 깜빡일 때마다 몸이 움직였고, 누군가와 대화했고, 그 다음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점프하는 것처럼.
"네, 그럴 수 있죠."
"CCTV에는 안 나왔어."
지우의 심장이 철렁했다. 손님들이 CCTV에 안 나온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수영이 그것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건 처음이었다. 이수영은 무언가를 알고 있다. 지우는 그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수영이 이 말을 꺼낸 것은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뭐... 카메라 고장일 수도 있죠."
이수영은 계산대에 기대어 있었다. 검은 교복 같은 제복을 입고 있었고, 팔을 교차하고 있었다. 그의 눈은 지우를 뚫어지게 봤다. 그 눈빛 속에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마치 지우를 재단하는 듯한. 마치 지우를 시험하는 듯한.
"계속 일하고 싶어?"
"예?"
"이 편의점에서. 계속 일하고 싶어?"
지우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이 질문에는 함정이 있었다. 이수영은 지우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우도 이수영이 뭔가를 알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먼저 말하지 않았다. 이것은 게임이었다. 누가 먼저 자신의 카드를 드러낼 것인가. 누가 먼저 약한 모습을 보일 것인가.
"예?"
라고 하면 이수영은 뭔가를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수영은 그것을 지우에게 말할 수도, 말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아니오'라고 하면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지우는 편의점을 떠날 수 없었다. 밤 11시가 올 때마다 손님들은 이곳에 나타났다.
"네. 계속 일하겠습니다."
이수영의 입가가 한순간 떨렸다. 웃음처럼 보였지만 웃음이 아니었다. 마치 뭔가를 말하려다 멈춘 것처럼. 마치 지우의 대답이 예상과 다른 것처럼.
"좋아. 그럼 오늘도 밤 10시에 들어와. 알겠지?"
"네."
이수영은 돌아섰다. 그의 뒷모습이 사라지고, 지우는 한숨을 쉬었다. 투명한 팔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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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지우는 윤정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지우."
윤정민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마치 지우가 깨질 듯한 물건을 다루는 것처럼.
"정민아, 만날래? 지금."
"지금?"
"응. 강남역 앞."
침묵이 있었다. 3초. 5초. 10초.
"... 또 뭐야? 또 누가 죽을 거라고 말할 거야?"
"아니야. 그냥 만나자. 제발."
윤정민은 한숨을 쉬었다.
"알겠어. 1시간 있으면 도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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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앞 카페에서 윤정민을 기다리던 지우는 자신의 손을 본다. 투명한 손가락들이 테이블 위에서 떨리고 있었다. 지우는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가 다시 꺼낸다. 손을 숨길 수 없었다. 이미 너무 투명했다.
윤정민이 나타났을 때, 지우는 처음으로 자신의 친구를 제대로 봤다. 윤정민의 얼굴은 창백했다. 눈 아래에 검은 자국이 있었다. 마치 지우처럼. 마치 같은 고통을 나누는 사람처럼.
"안녕."
윤정민은 앉았다. 커피를 시키지 않았다. 지우의 손을 봤다. 투명한 손가락들이 테이블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윤정민의 눈이 커졌다.
"지우, 그게... 뭐야?"
"내 손이야."
"손이... 투명해?"
지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을 들어 올렸다. 형광등 불빛이 손가락을 통과했다.
"미쳤어. 진짜 미쳤어."
윤정민이 뒤로 물러섰다. 지우와의 거리를 늘리듯.
"정민아, 미안해. 내가 이상한 소리를 많이 했어."
"지우, 정말로 병원을 가. 제발. 진짜 가."
"내가 본 게 다 맞았어. 그 날 밤, 너한테 강가에 가지 말라고 했잖아. 그 다음 날 뉴스 봤지?"
윤정민이 눈을 돌렸다.
"봤어."
"그거야. 내가 말한 게 맞아. 그 여자, 강가에서 익사했잖아. 내가 미리 알았어."
"그건... 운이 좋았던 거야. 우연이야."
"우연? 정민아, 내가 몇 명을 더 말했어. 박혜진, 이지현... 다 맞았어. 다 정확했어."
윤정민이 지우를 봤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거리감. 그리고 미안함.
"지우, 정말로 정신과 가봐. 제발. 나 진짜 걱정돼."
"난 미친 게 아니야."
"그럼 뭐야? 넌 이 몇 주 동안 계속 사람들을 따라다니고, 경고하고, 자꾸만 누군가가 죽을 거라는 소리를 해. 그게 정상이야? 그리고 넌... 넌 투명해."
"난 미친 게 아니야!"
지우의 목소리가 커졌다. 카페의 다른 손님들이 돌아봤다. 윤정민은 입을 다물었다.
"내가 본 게 다 맞아. 내가 본 게 다 맞다니까!"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 속에서 지우는 자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느꼈다. 누구도 자신을 믿지 않았다. 누구도 자신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유일한 친구도.
"정민아."
"응?"
"내가 미친 거 아니야. 정말."
윤정민은 한참 지우를 봤다. 그의 눈에는 동정심이 있었다. 그리고 두려움. 그리고 거리감. 그리고 무언가 더. 지우의 투명한 손을 보며 윤정민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지우는 윤정민이 뭔가 말하려다 멈추는 것을 봤다. 입이 벌렸다가 다시 다물어졌다. 마치 말과 침묵 사이에서 흔들리는 것처럼.
"정민아, 잠깐—"
"지우, 나... 나 정말..."
윤정민이 손을 내밀었다. 지우의 투명한 손을 향해. 그 손은 공중에서 멈췄다. 손가락이 거의 닿을 듯 말 듯 떨렸다. 그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한 사람의 따뜻한 손과 다른 사람의 투명한 손. 그 사이의 거리. 그 사이의 간격. 그 사이의 세계.
"미안해. 정말 미안해."
윤정민의 손이 지우의 손을 잡았다. 투명한 손과 따뜻한 손. 살아 있는 손과 사라지는 손. 그 접촉은 짧았다. 1초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1초 안에 지우는 모든 것을 느꼈다. 윤정민의 온기. 윤정민의 두려움. 윤정민의 사랑. 그리고 윤정민의 포기.
그리고 윤정민은 손을 놨다.
"나... 나 가야겠어."
"뭐?"
"진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넌 병원을 가야 해. 진짜로."
그 순간 지우는 알았다. 윤정민과 자신 사이에는 더 이상 메울 수 없는 간격이 생겼다는 것을. 투명한 손처럼, 보이지 않지만 확실하게 존재하는 간격. 하지만 그 손을 잡았다는 것만으로, 지우는 완전히 버려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한 번은. 적어도 1초는.
"가야겠다."
지우가 일어섰다.
"지우, 잠깐—"
"괜찮아. 진짜."
지우는 카페를 나갔다. 뒤에서 윤정민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지우는 듣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발걸음 소리와 형광등 같은 도시의 불빛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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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 지우의 휴대폰에 준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야?"
지우는 편의점으로 가는 길에 전화를 받았다.
"지우 너, 어제 뭔가 말하고 싶었잖아."
"응. 너한테 이 일을 그만둬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어."
"뭔 일?"
"건설 현장. 내일 가지 말아. 제발. 진짜 위험해."
준호는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웃음이 떨렸다.
"지우, 넌 정말... 정말 미친 것 같아."
"나 미친 게 아니야."
"그럼 뭐야? 넌 왜 자꾸 사람들을 따라다니고 협박 같은 소리를 해? 넌 왜 나한테 일을 그만두라고 해? 넌 왜..."
준호가 말을 멈췄다. 숨소리만 들렸다.
"내가... 죽을 거라고 했지?"
"응."
"언제?"
지우는 대답할 수 없었다. 말하는 것이 현실이 될까봐. 말하는 것이 그것을 확정할까봐.
"언제냐고 물어봤어!"
"3일 후. 오후 2시. 건설 현장."
준호가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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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지우는 편의점에 들어갔다. 이수영은 없었다. 카운터에는 지우만 있었다.
지우는 형광등을 봤다. 깜빡인다. 깜빡인다. 깜빡인다.
밤 11시가 다가왔다.
지우는 계산대에 서서 기다렸다. 손가락이 떨렸다. 투명한 손가락이. 팔도 투명했다. 손목 위까지. 그 다음은 어디까지 투명해질까. 팔꿈치? 어깨? 그리고 나면 몸 전체가 투명해질까. 마치 단골 할머니처럼. 마치 이미 사라진 사람처럼.
밤 11시 정각, 형광등이 깜빡였다.
지우는 누군가를 기다렸다.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형광등이 계속 깜빡였다.
밤 11시 1분.
밤 11시 2분.
지우의 심장이 빨라졌다. 손님이 안 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예지가 안 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아니면 이미 예지가 된 거고, 지우가 모르고 있는 걸까. 이 불안감은 뭔가. 손님을 기다리는 강박. 손님이 나타나지 않을 때의 불안. 이것이 중독인가. 아니면 운명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밤 11시 3분.
편의점의 문이 열렸다.
누군가가 들어왔다.
지우의 눈이 커졌다.
준호였다.
하지만 준호의 옷은 이상했다. 건설 현장의 안전모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몸은 흔들렸다. 마치 누군가에 의해 끌려오는 것처럼. 마치 자신의 의지가 아닌 다른 힘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준호의 뒤에서 다른 손님들이 따라 들어왔다.
"준호?"
지우가 말했다.
준호는 지우를 봤다. 그의 눈에는 절망이 있었다.
"지우... 나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