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첫 번째 경고

밤 11시 50분, 편의점 계산대 앞에서 지우의 손가락이 휴대폰 화면을 미끄러뜨렸다. 기사 제목들이 흐릿하게 흘러갔다. 「건설 현장 안전사고로 1명 중상」, 「병원 엘리베이터 고장으로 인한 추락 사건」. 지우는 눈을 비볐다. 화면에 떴던 얼굴들이 자신이 본 죽음의 영상과 겹쳐졌다. 그 순간 형광등이 깜빡였다.

들어온 것은 나이를 알 수 없는 남자였다. 회색 옷을 입었고, 표정이 없었다. 지우는 그 남자를 본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그런 것 같은 느낌. 마치 오래된 사진을 보는 것처럼 뭔가 불분명했다.

"너는 누구인가."

남자의 목소리는 울림이 없었다. 지우의 입이 저절로 움직였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대화가 끝나면 지우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었다. 단지 남자가 떠나간 후 영상만 남을 것이었다.

밤 11시 55분.

지우의 눈앞에 검은 화면이 펼쳐졌다. 건설 현장. 크레인이 회전하고 있었다. 강철 파이프가 떨어졌다. 한 남자가 깔렸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지우는 알았다. 박준호였다. 친구였다.

다음 영상. 병원의 중환자실. 심전도 기계가 멈췄다. 또 다른 남자가 누워 있었다. 심박동이 멈추기 직전이었다. 그것도 친구였다. 이름은 생각나지 않았다.

세 번째 영상이 떠올랐다. 강가. 밤. 물이 사람을 삼켰다. 한 명, 또 한 명. 무언가 이상했다. 이 죽음들은 '사건'이 아니라 '운명'처럼 느껴졌다. 마치 세상이 이 사람들을 삭제하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지우의 몸에서 뭔가 빠져나갔다.

찬 기운이 척추를 타고 내려왔다. 동시에 가슴이 철렁했다. 마치 엘리베이터가 급하강할 때처럼. 지우의 손가락이 떨렸다. 휴대폰이 떨어질 뻔했다. 남자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밤 11시 57분.

지우는 움직였다. 생각하지 않고. 몸이 먼저 반응했다. 계산대에서 나와 현관으로 달렸다. 밖은 어두웠다. 가로등 불빛이 희미했다. 지우의 숨이 가빠졌다. 휴대폰을 들었다. 손이 계속 떨렸다. 손가락이 준호의 번호를 눌렀다.

"뭐해?"

준호의 목소리는 졸린 듯했다.

"내일 건설 현장 가면 안 돼. 절대 가면 안 돼."

"뭐? 지금 몇 시야?"

"진지해. 진짜. 내일 오전에 현장에 나가지 마. 뭐라고 해도 가지 마."

침묵이 흘렀다. 지우는 호흡을 조절할 수 없었다. 가슴이 철렁거렸다. 준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미친 거 아냐?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내가... 내가 봤어. 너 내일 거기서 다치는 거. 크레인이..."

"지우야. 정신 차려. 자기 전에 무서운 영화 본 거야? 이 시간에 이런 소리 하면..."

"믿어. 제발. 내일 회사에 못 간다고 해. 어떻게든. 열 받을 거 알아. 근데 진짜 가면 안 돼."

다시 침묵이 들었다. 지우는 준호의 호흡음을 들었다. 뭔가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나 내일 아침 7시에 현장 나가기로 했어."

"가지 마."

"지우. 진짜. 이건..."

"가지 마, 준호."

지우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마지막 한 줄은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그 순간 준호가 뭔가를 느낀 것 같았다. 지우의 절박함이.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

"...알았어. 알았어. 내일 못 간다고 할게."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지우의 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따뜻한 액체가 가슴에서 터지는 것 같았다. 희열이었다. 무언가를 구한 느낌.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

"고마워. 고마워, 준호."

"뭐... 뭐 하는 건데. 아무튼 괜찮아?"

"응. 고마워."

지우는 전화를 끊었다. 밤 12시 5분이었다. 편의점 안은 조용했다. 형광등이 계속 울렸다. 불규칙하게. 마치 심장박동처럼.

그 희열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우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거울 앞에 섰다. 자신의 얼굴을 봤다. 왼쪽 뺨이 평소보다 창백해 보였다. 아니, 투명해 보였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귀 뒤쪽이 희미했다. 마치 사진이 흐릿해지는 것처럼. 지우는 손을 들었다. 손등을 봤다. 정맥이 보이지 않았다. 피부가 반투명해진 건 아니었지만, 뭔가 생기가 빠진 것 같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지우는 거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신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게 아닐까.

편의점으로 돌아갔다. 계산대에 휴대폰을 올려놨다. 배터리 표시를 봤다. 100%였다. 아직 밤 12시 10분이었는데. 지우는 휴대폰을 집어 들지 않았다. 그냥 계산대에 놔뒀다. 10분 정도 지났다. 휴대폰을 다시 봤다.

87%.

지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10분에 배터리가 13%나 내려갔다. 휴대폰을 만지지도 않았는데. 지우는 휴대폰을 집어 들고 설정을 확인했다. 배경 앱이 작동하고 있지 않았다. 와이파이도 꺼져 있었다. 손이 떨렸다.

배터리와 투명화. 둘 다 같은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예지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자신이 사라진다. 그리고 배터리가 떨어진다. 아니면 그 반대일 수도 있었다. 배터리가 떨어질 때마다 자신이 사라진다. 지우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손이 떨렸다.

밤 12시 40분.

또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다. 박민지. 지우는 번호를 누르다 멈췄다. 이 친구를 어떻게 경고하지. 심장이 멈춘다고. 병원에 가지 말라고. 그럼 어디로 가. 그리고 박민지는... 지우의 기억이 흐릿했다. 박민지가 언제 죽는지. 오늘인지. 내일인지. 다음 주인지. 영상만 있고 날짜가 없었다.

휴대폰을 들었다. 검색했다. 「박민지 환자 병원」. 기사가 나왔다. 어제 오후 3시경 병원 중환자실에서 사망. 지우는 눈을 감았다. 그럼 이미 죽었다는 건가. 자신이 예지한 죽음은 과거인가. 미래인가.

가슴이 철렁했다. 지우는 거울을 다시 봤다. 왼쪽 손의 손가락 끝이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투명했다. 지우는 손을 펼쳤다 쥐었다. 물질감은 있었다. 하지만 거울에는 비치지 않았다.

준호를 구했다. 그 결과가 이것인가.

밤 1시 10분.

편의점 문이 열렸다. 금발의 여성이 들어왔다. 웃음을 자주 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눈은 공허했다.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다.

"안녕. 너 지우지?"

지우는 대답할 수 없었다. 입이 저절로 움직일 때까지 기다렸다.

"응."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

여성의 웃음이 커졌다. 불길한 웃음이었다. 마치 농담이 아닌 위협처럼. 그 순간 지우의 눈앞이 검어졌다. 새로운 영상이 떠올랐다.

물. 강가. 밤. 한 남자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다음 한 명. 또 한 명. 이번엔 얼굴이 보였다. 윤정민. 친구의 얼굴이었다.

지우의 몸이 무너졌다. 계산대에 기대었다. 가슴이 철렁거렸다. 희열은 사라졌다. 절망이 밀려왔다. 준호를 구했는데, 정민이가 죽는다. 자신이 준호를 살린 대가가 정민이의 죽음인가. 운명은 거래처럼 작동하는 건가.

형광등이 깜빡였다. 여성이 웃음을 내며 사라졌다. 지우는 거울을 봤다. 양쪽 손이 모두 투명했다. 얼굴의 반 이상이 희미해졌다. 휴대폰의 배터리는 62%였다.

---

밤 1시 45분, 지우는 편의점 화장실의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손가락을 들었다. 내려놨다. 다시 들었다. 물질감은 분명히 있었다. 손가락을 꼬집으면 아팠다. 하지만 거울에는 손 끝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포토샵으로 지워낸 것처럼.

거울을 박차고 나왔다.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배터리 62%. 손가락으로 계산했다. 10분마다 약 1.3%씩 떨어진다. 지우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손이 떨렸다.

윤정민이다. 금발 여성의 예지에서 본 얼굴. 친구의 얼굴이었다.

지우는 즉시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윤정민이 받지 않았다. 밤 1시 50분. 자는 시간이다. 지우는 통화를 끊었다. 다시 눌렀다. 이번엔 다섯 번 울렸다.

"어... 누구야?"

윤정민의 목소리가 나른했다. 잠을 깬 목소리였다.

"정민아. 나야."

"지우?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지우는 숨을 고르려 했다. 어떻게 말할 것인가. 예지는 영상이었다. 날짜가 없었다. 하지만 강가는 구체적이었다. 그리고 시간도. 밤이었다. 내일 밤이었다.

"내일 밤에 강가에 가지 마. 절대."

"뭐... 뭐라고?"

"밤에 강가에 가지 말라고. 위험해. 정말 위험해."

"지우, 넌 좀 이상한데. 요즘. 뭐하는 거야?"

"내 말 들어. 제발. 내일 밤에는 강가에 가지 마."

"강가? 난 내일 강가에 갈 일이 없는데. 왜 이래? 너 괜찮아? 혹시... 약 한 건가?"

지우의 입이 열렸다 닫혔다. 약? 마약? 자신이 약물중독자처럼 들렸단 말인가.

"약이 아니야. 진심이야. 정민아, 나를 믿어. 내일 밤에 서강대 근처 강가에 절대 가지 마. 누가 뭐라고 해도."

침묵이 흘렀다. 지우는 윤정민의 호흡음을 들었다.

"서강대 근처... 넌 내 스케줄을 어떻게 알아?"

지우의 가슴이 철렁했다. 윤정민이 내일 밤 서강대 근처 강가에 간다. 영상이 맞다. 정확하다.

"정민아, 정말로. 제발. 가지 마. 위험해."

"위험하다고? 뭐가? 지우, 이건 협박이야? 네가 뭔가 계획하는 거야?"

"아니야. 아니라니까. 그냥... 날 믿어."

윤정민이 한숨을 쉬었다. 긴 한숨이었다. 지우는 그 한숨 속에서 자신을 보았다. 미친 놈. 불안정한 놈. 밤 2시에 강가에 가지 말라고 전화하는 미친 놈.

"알겠어. 가지 않겠다고 할게. 이제 자."

윤정민이 끊었다.

지우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배터리는 58%였다. 겨우 4분 만에 4%가 떨어졌다. 예지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배터리가 급격히 소모된다. 그리고 자신도 함께 사라진다.

편의점 문이 열렸다.

밤 2시 5분. 손님이 올 시간이 아니다. 밤 11시 정각이어야 한다. 지우는 고개를 들었다.

할머니였다. 편의점 근처에 사는 단골손님이었다. 매일 밤 11시 정각에 와서 우유를 사가는 할머니. 하지만 지금은 밤 2시 5분이다.

할머니의 얼굴이 이상했다. 눈이 공허했다. 마치 조종당하는 인형처럼.

"할머니. 요즘 시간이 변했어요?"

할머니가 웃었다. 그 웃음 속에 무언가 이상함이 있었다.

"시간? 내 시간은 이미 끝났어. 넌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니?"

할머니가 우유를 사려고 냉장고에 다가갔다. 하지만 손을 뻗지 않았다. 지우를 바라봤다. 그 시선이 무거웠다.

"너 요즘 많이 변했네. 얼굴이... 흐릿해졌어."

"할머니?"

"밤 11시가 올 때마다, 넌 더 투명해질 거야. 그리고 누군가는 죽을 거야."

할머니의 말이 거기서 멈췄다. 형광등이 깜빡였다. 할머니가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지우는 계산대에 기대었다. 배터리는 53%였다.

할머니의 마지막 말이 계속 반복되었다. '밤 11시가 올 때마다, 넌 더 투명해질 거야. 그리고 누군가는 죽을 거야.' 준호를 구했다. 그 대가로 박민지가 죽었다. 이미 죽었다. 그리고 이제 윤정민이 죽을 차례인가. 자신이 정민이를 구하려고 하면, 또 다른 누군가가 죽을 것인가.

밤 2시 30분. 편의점의 형광등이 다시 깜빡였다. 지우는 고개를 들었다.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첫 번째 손님이었다. 그 남자가 지우를 봤다. 입이 움직였다.

"너는 누구인가."

지우는 답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질문의 답은 없다. 또는 답은 하나다.

"나는 너다."

남자가 웃었다. 웃음이 아니라 음향이었다. 기계음처럼 반복되는 소리였다.

"이제 넌 이해했다."

형광등이 깜빡였다. 남자가 사라졌다. 지우는 혼자 남겨졌다. 배터리는 47%였다.

밤 3시. 지우는 편의점 바닥에 앉아 있었다. 창밖의 서울은 조용했다. 밤이 깊어질수록 도시는 더 조용해진다. 그리고 지우는 더 투명해진다. 손뿐 아니라 팔도, 다리도, 몸통도 희미해지고 있었다.

휴대폰을 들었다. 배터리 47%. 지우는 계산을 포기했다. 결과는 같다. 자신은 사라진다. 그리고 누군가는 죽는다. 또는 누군가는 산다. 그 대신 또 다른 누군가가 죽는다.

밤 11시가 올 때까지 아직 8시간이 남았다. 지우는 계산대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눈을 뜨면 자신이 더 투명해져 있을까. 눈을 감으면 악몽을 볼까. 지우는 선택하지 않았다. 단지 기다렸다.

밤 11시를 기다렸다.

다음 손님을 기다렸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적힌 예지 리스트를 기다렸다. 그 리스트의 맨 위에 자신의 이름이 있을 것을. 그 진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형광등이 다시 깜빡이기 시작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