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고본
한명준의 서재는 어두웠다. 촛불 하나가 서책장 위쪽 모서리에서 희미한 빛을 흘렸고, 그 빛도 먹빛 같은 벽감에 삼켜졌다. 한명준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고, 그 맞은편 어둠 속에 윤지훈이 서 있었다.
"종로다."
한명준이 입을 열었다. 단 두 글자였다. 하지만 그 두 글자 안에는 분노가 살아 있었다.
"저자거리 같은 곳에서 나올 줄 알았는데, 종로라니."
한명준의 손가락이 책상 위의 지도를 눌렀다. 종로 중앙, 시전(市廛)이 모여 있는 곳이다. 박준호의 상회가 들어설 건물의 위치를 표시한 검은 점이 그곳에 있었다.
"신분을 넘어서는 것이군."
한명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낮을수록 위험했다. 윤지훈은 이미 그것을 안다. 3년을 함께한 부하라면, 주인의 침묵보다 이 음성이 더 끔찍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평민이 양반 시전의 한복판에 가게를 연다? 이것이 무엇인가. 신분제 자체에 대한 도전이다. 조정이 이를 용납할 리 없고, 내가 용납할 리도 없다."
한명준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이 윤지훈을 찾았다. 어둠 속에서도 그 눈빛은 선명했다.
"저 남자는 죽어야 한다."
문장이 아니라 선고였다.
"3년 전 일을 기억하십니까, 주인님."
윤지훈이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촛불이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광대뼈가 두드러진 얼굴, 입가의 흉터, 그리고 눈. 그 눈은 한명준의 명령을 받기 전부터 이미 타오르고 있었다.
윤지훈의 목소리는 모래주머니를 끌어당기는 소리처럼 거칠었다.
"저 상인이 저자거리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저는 쌀 도매상이었습니다. 아내와 여섯 살 딸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한명준이 기다렸다. 윤지훈이 계속할 때까지.
"하지만 박준호가 나타났습니다. 복식부기라는 이상한 장부 체계로 시장을 교란했습니다. 기존의 거래 질서를 무너뜨렸습니다. 저는 그 와중에 빚을 지게 되었고, 3개월 만에 재산을 잃었습니다."
윤지훈의 손이 주먹을 쥐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아내는 병들었고, 딸은 기아에 빠졌습니다. 둘 다."
말을 잇기 위해 윤지훈은 숨을 고르고 있었다.
"저를 고용하신 것은 감사합니다, 주인님. 하지만 저는 저 남자를 죽이고 싶습니다. 당신의 명령이 없어도."
한명준이 미소를 지었다. 웃음이 아니라 미소였다. 포식자의 미소.
"좋다. 그렇다면 더욱 좋다. 개인적인 복수심과 공식적인 명령이 만날 때, 일은 깔끔해진다."
한명준이 지도 위의 검은 점을 다시 눌렀다.
"3일 안에 끝내거라. 종로 이전 장식을 할 때가 좋다. 혼란 속에서 한 사람이 죽는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리고 윤지훈, 이 일이 끝난 후에 당신은 내 곁을 떠나야 한다. 복수를 이룬 자는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신은 그 남자의 죽음과 함께 사라져야 한다."
윤지훈의 얼굴이 굳었다. 한명준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당신이 죽지 않으면, 당신이 사라져야 한다. 둘 중 하나다. 이것이 거래다."
윤지훈이 절을 했다. 머리를 깊숙이 숙였다. 그 자세 속에는 감사와 살의가 섞여 있었다. 그리고 이제 절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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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호는 새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종로 한복판, 양반 상인들의 본거지 한 가운데였다. 건물의 목재는 새것이었고, 간판은 아직 달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공간 자체가 이미 선언처럼 보였다.
"이곳이 대동상회의 새 본점입니다."
박준호가 모인 상인들에게 말했다. 저자거리에서 그를 따라온 사람들이 한 줄로 서 있었다. 이준구도, 임재욱도, 그리고 그 외 판매, 구매, 배송 담당자들도.
"여기서부터는 달라집니다. 우리는 더 이상 한명준의 그림자에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거래는 우리의 것입니다."
박준호의 목소리가 건물의 돌담에 부딪혔다.
"이 결정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알고도 하는 것입니다. 신분제는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멈출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제 상인이 아니라 조직이기 때문입니다."
이준구가 앞으로 나왔다. 양반의 신분으로, 양반이 해야 할 말을 했다.
"대동상회는 신분제 내에서 상업의 새로운 질서를 만듭니다. 이것은 도전이 아니라 개혁입니다. 조정도, 한명준도 이를 막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투명하기 때문입니다."
박준호가 이준구를 바라봤다. 양반이 평민을 위해 말하는 장면. 그것이 신분제 내에서는 얼마나 파격적인 일인지 박준호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도.
오서연은 그날 저녁 박준호를 찾아왔다. 새 건물의 작은 방, 아직 가구도 제대로 놓이지 않은 공간이었다.
"당신이 종로로 옮긴다고 했을 때, 나는 당신이 농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서연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남편을 알고 있는 아내의 두려움.
"하지만 당신은 진지했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이 벽을 부수려고 합니다."
박준호가 창문을 통해 종로의 밤거리를 바라봤다. 횃불들이 희미하게 켜져 있었다.
"나는 당신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성공은 결국 누군가의 몰락을 의미한다고."
오서연이 한 발 앞으로 나왔다.
"당신이 한명준의 영역을 침범할 때, 한명준은 죽어야 합니다. 당신이 신분제의 벽을 부술 때, 누군가는 그 벽이 무너지기 전에 당신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박준호가 아내를 돌아봤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멈추지 않습니까?"
오서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처음으로.
"이미 돌아갈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박준호가 대답했다.
"내가 저자거리로 돌아가면, 저자거리 평민 상인들은 다시 한명준의 손에 떨어집니다. 임재욱의 아들은 여전히 관노 수용소에 있을 것입니다. 복식부기를 배운 상인들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내가 멈추면, 이 모든 것이 없던 일이 됩니다."
박준호가 오서연의 손을 잡았다.
"나는 당신을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오서연이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채, 남편의 손을 놓지 않았다.
"당신이 죽는다면?"
오서연이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상회를 이준구에게 맡기고 강원도로 내려가십시오. 나는 이미 그곳에 땅을 사두었습니다. 당신의 이름으로."
박준호가 천천히 말했다.
"당신은 살아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있으니까요."
오서연이 남편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오직 결연함만 있었다. 아내는 그것을 이해했다. 이 남자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당신과 함께하겠습니다."
오서연이 말했다.
"죽음까지라도."
오서연은 밤새 준비했다. 아이들의 옷을 챙기고, 남편이 강원도에 숨겨둔 땅의 위치를 다시 확인했다. 남편의 서류들을 정리하고,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금화를 작은 주머니에 나누어 담았다. 그녀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미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편이 죽을 때를 대비해.
박준호가 아내를 안았다. 그 어둠 속에서, 그들은 함께 밤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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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 박준호는 혼자 밤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상인들을 배웅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종로에서 저자거리로 향하는 골목, 횃불의 불빛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그때였다.
칼이 공중에서 내려왔다. 박준호는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칼이 그의 팔을 스쳤다. 뜨거운 통증이 팔을 타고 흘렀다.
"누구입니까!"
박준호가 외쳤다. 하지만 대답은 칼소리였다.
어둠 속에서 세 개의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얼굴을 가린 자들이었다. 칼을 든 자들이었다. 그들은 박준호를 포위했다. 한 명은 앞, 한 명은 옆, 한 명은 뒤.
"당신이 박준호입니까?"
앞의 자가 물었다. 그 목소리는 모래주머니를 끌어당기는 소리 같았다. 윤지훈이었다. 박준호는 몰랐지만, 그 목소리는 3년 전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는 목소리였다. 도매상 시장의 어딘가에서.
"내 이름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윤지훈입니다."
윤지훈이 칼을 들었다. 칼끝이 박준호의 가슴을 향했다.
"당신은 나를 죽여야 할 이유를 알 것입니다. 3년 전 당신이 시장을 교란했을 때, 나는 아내와 딸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기아에 죽어갔습니다."
윤지훈의 목소리에 절망이 섞여 있었다. 복수심만이 아니라, 3년 동안 짊어진 무게가 그 목소리에 담겨 있었다.
"내가 당신을 죽이는 것은 한명준의 명령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복수입니다."
칼이 움직였다. 박준호는 몸을 굴렸다. 칼이 그의 어깨를 스쳤다. 또 다른 통증이 몸에 스쳤다.
박준호는 골목의 구조를 빠르게 파악했다. 뒤쪽 벽까지는 세 발, 옆 벽까지는 한 발. 그는 왼쪽으로 몸을 날렸다. 세 개의 칼이 동시에 날아왔다. 박준호는 뒤로 물러섰다. 칼들이 공중을 지나갔다. 한 발 더 물러나자 벽에 등이 닿았다. 더 이상 물러날 수 없었다.
"당신이 한명준의 개입니까?"
박준호가 외쳤다. 손으로 날아오는 칼을 막으려 했다. 칼이 손등을 갈랐다. 피가 흘렀다.
윤지훈이 다시 칼을 들었다. 이번에는 더 빠르게. 박준호는 몸을 옆으로 날렸다. 칼이 그의 옷자락을 찢었다. 벽의 돌에 칼이 부딪혔다. 불꽃이 튀었다.
박준호는 벽의 거친 표면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돌 사이의 홈을 찾아 발을 디디고 몸을 들어올렸다. 칼이 그의 다리를 스쳤다. 벽을 타고 올라간 그의 몸은 한 순간 공중에 떴다. 그 사이 칼 세 개가 교차했다.
박준호는 벽에서 몸을 밀어냈다. 낙하하며 앞으로 몸을 굴렸다. 칼이 그의 어깨 위를 지나갔다. 그는 일어났다. 숨이 가쁜 상태로.
"끝이다."
윤지훈이 말했다. 칼을 다시 들었다. 이번에는 목을 겨냥했다. 손가락에 이미 흙이 묻어 있었다. 벽을 타고 올라간 박준호의 흙이.
박준호는 손으로 칼의 손목을 잡으려 했다. 손가락이 칼날에 닿았다. 통증이 손가락을 관통했다. 하지만 그는 놓지 않았다. 윤지훈의 손목을 잡고 밀어냈다.
윤지훈이 발로 차올렸다. 박준호의 배에 발이 박혔다. 숨이 끊겼다. 박준호는 벽에 부딪혔다. 척추에 통증이 흐르고, 폐에서 공기가 빠져나갔다.
그때였다.
검이 날아왔다. 임재욱의 검이었다.
금속음이 울렸다. 칼과 검이 부딪혔다. 그 소리는 밤거리에 울려 퍼졌다. 윤지훈이 물러났다. 임재욱이 박준호 앞에 섰다.
"당신이 내 주인을 해치려 한다면, 당신은 죽을 것입니다."
임재욱의 목소리는 차갑고 명확했다. 그의 검은 윤지훈을 향했다.
윤지훈이 칼을 들었다. 두 사람이 마주섰다. 칼과 검. 노비 출신의 검객과 복수심에 불타는 도매상.
칼과 검이 부딪혔다. 한 번, 두 번, 세 번. 불꽃이 튀었다. 임재욱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그의 검이 윤지훈의 팔을 스쳤다. 피가 흘렀다.
윤지훈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는 물러나지 않았다. 칼을 다시 들었다. 임재욱을 향해 내려쳤다.
임재욱이 검을 돌렸다. 칼을 받아냈다. 그리고 회전했다. 검이 공중을 그었다. 윤지훈의 다른 팔이 베였다.
윤지훈이 칼을 떨어뜨렸다. 두 팔 모두 피투성이였다. 그는 무릎을 꿇었다.
"내 아내를... 내 딸을..."
윤지훈이 중얼거렸다.
"당신의 아내와 딸은 이미 죽었습니다."
임재욱이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형벌입니다."
윤지훈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절망이 있었다. 그는 천천히 일어났다. 칼을 집어들려 했지만, 팔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다음에는 당신이 죽을 것입니다."
임재욱이 말했다.
윤지훈이 물러났다. 천천히, 골목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발걸음은 불안정했다. 한명준의 명령을 완수하지 못한 자, 그리고 죽음보다 무서운 것을 알게 된 자의 발걸음이었다.
세 명의 자객 중 두 명은 이미 움직이지 않았다. 한 명은 도망쳤다.
박준호는 임재욱을 바라봤다. 그 남자는 여전히 검을 들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왜 나를 도웠습니까?"
박준호가 물었다.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벽을 타고 올라갔던 손가락이, 칼을 막았던 손등이.
임재욱이 검을 내렸다. 천천히 칼집에 집어넣었다.
"당신은 나에게 해방을 주었습니다, 박준호."
임재욱이 박준호의 이름을 불렀다. '당신'이 아니라 이름으로. 처음이었다.
"노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계약서라는 것으로. 나는 이제 당신을 위해 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내 선택입니다."
박준호가 임재욱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따뜻했고, 검을 쥐어서인지 약간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박준호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 죽음을 피한 손, 아직도 공포에 젖은 손.
박준호의 숨은 가쁜 상태였다. 폐에 공기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복부의 통증이 계속 울렸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진정한 동료다."
박준호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우리는 더 이상 주인과 노비가 아닙니다. 우리는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임재욱이 박준호의 어깨를 잡았다. 그의 손가락이 박준호의 떨림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했다.
그들은 골목을 빠져나갔다. 종로의 밤거리로. 그곳에서는 여전히 횃불들이 밤을 밝히고 있었다. 하지만 그 빛 속에는 이제 새로운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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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호는 그 밤을 지내며 생각했다. 팔의 상처는 계속 욱신거렸고, 손등의 상처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척추에 남은 충격이 몸을 뒤척이게 했다. 죽음이 얼마나 가까웠는지, 그는 이제 알았다. 그것은 추상적인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칼이었고, 목소리였고, 복수심이었다.
박준호는 새벽이 올 때까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오서연은 옆에서 깨어 있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이제 돌아갈 길이 없다는 것을. 그녀는 남편의 상처를 정성스럽게 씻어주고, 약초를 달여 마시게 했다. 말없이, 하지만 그 손길 속에는 이미 결단이 담겨 있었다.
새벽 무렵, 박준호는 결단했다. 그는 모든 상인을 소집할 것이었다. 그리고 호위 조직을 만들 것이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었다. 이것은 생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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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호는 그날 아침 모든 상인을 소집했다. 새 건물의 작은 방에서.
"우리는 이제 호위 조직을 만듭니다."
박준호가 선언했다. 그의 팔은 붕대로 감싸여 있었고, 손등도 거즈로 감싸져 있었다. 그 상처들은 말없이 지난 밤을 증명했다.
"이것은 방어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지속을 위한 필수 장치입니다. 한명준은 이미 칼을 들었습니다. 조정도 우리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상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전투 중인 조직입니다."
박준호가 임재욱을 앞으로 불렀다.
"임재욱이 우리의 호위책임자입니다. 그는 노비에서 벗어난 남자입니다. 그는 계약으로 우리와 연결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를 보호할 것입니다."
상인들이 임재욱을 바라봤다. 그들은 그를 알았다. 박준호 곁에 항상 있던 조용한 남자. 하지만 이제 그는 달랐다. 그의 눈이 다르게 보였다. 칼의 피가 아직도 그의 손에 묻어 있었다.
"호위 조직의 규칙은 이렇습니다."
박준호가 계속했다.
"첫째, 대동상회의 모든 구성원을 보호한다. 둘째, 어떤 위협도 받지 않는다. 셋째, 필요하면 죽음도 감수한다. 이것은 신분제가 인정하지 않는 조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신분제의 경계 밖에 있습니다."
이준구가 계약서를 꺼냈다. 그가 밤새 작성한 문서였다. 호위 조직의 정관, 급여 체계, 법적 지위를 명시한 계약서였다. 이준구는 이미 한 가지를 더했다. 호위 조직이 신분제 내에서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항들. 상인 조직의 자위 기구라는 명목으로, 조정에 등록할 수 있는 형식.
박준호는 그것에 서명했다. 임재욱도 서명했다.
상인들이 앞으로 나왔다. 한 사람씩, 계약서에 서명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서명하자, 다음 사람이 따랐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 서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것은 단순한 고용 계약이 아니었다. 이것은 신분제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준구가 마지막으로 서명했다. 양반의 손으로. 평민들과 같은 계약서에.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이재성이었다. 호조의 관료 이재성.
"늦은 밤 방문을 용서하십시오."
이재성이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있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따뜻하지 않았다.
"재미있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종로에 새로운 상회가 생겼다고. 그리고 그곳의 주인이 복식부기를 사용한다고."
이재성의 눈은 박준호의 상처 난 팔과 손에 머물렀다.
"그리고 오늘 밤 골목에서 칼싸움이 있었다고도. 한 명은 죽었고, 한 명은 팔이 베였다고."
박준호가 일어났다.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물론입니다. 나는 조정의 관료입니다."
이재성이 천천히 말했다.
"당신이 윤지훈의 칼을 피했다는 것도, 그가 누구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한명준의 부하, 3년 전 도매상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 자의 남편. 당신이 그의 아내와 딸을 죽였다는 것도."
이재성이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임재욱이 그를 제압했다는 것도, 당신이 지금 호위 조직을 만들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조정의 관료이고, 조정은 이 도시의 모든 움직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재성이 박준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사실, 나는 당신을 감시해 왔습니다. 저자거리에서부터. 당신의 움직임이 흥미로웠거든요. 한명준도 감시했고, 윤지훈도 감시했고, 임재욱도.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재성이 계약서를 집어 들었다. 한두 줄을 읽었다.
"흥미롭습니다. 신분제 내에서 신분제를 무력화하려는 시도. 평민 상인이 양반 거상에 도전하는 모습. 암살자를 검으로 제압하는 노비 출신의 남자. 그리고 양반이 평민의 편에 서는 장면."
이재성이 계약서를 내려놨다.
"이것이 신분제 내에서의 새로운 질서군요. 조정도 관심이 있을 만합니다."
이재성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나는 제안이 있습니다. 대동상회에 조정이 투자하는 것은 어떨까요? 물론 공식적으로는 아닙니다."
박준호가 침묵했다.
"하지만 당신의 상회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들이 있습니다. 신분제 체계 안에서."
이재성이 천천히 말했다.
"예를 들어, 상인 조직의 자위 기구로 호위 조직을 공식 등록하는 것. 조정의 보호 아래 있는 상업 시설로 건물을 지정하는 것. 그리고 복식부기 같은 새로운 거래 방식을 조정이 시범적으로 인정하는 것. 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박준호가 이재성을 바라봤다.
"조건이 있을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조정은 자선 사업을 하지 않습니다. 대동상회의 수익의 일부를 세금으로 걷고, 당신의 거래 기법을 조정의 관료들이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재성이 돌아섰다.
"생각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3일입니다."
이재성이 멈추지 않고 말했다.
"당신이 한명준의 다음 시도를 견디려면, 조정의 보호가 필요합니다. 한명준은 이미 한 번 실패했습니다. 그는 분명 다시 시도할 것입니다. 더 강하게, 더 치밀하게. 그리고 당신이 거절한다면, 나도 당신을 도울 수 없을 것입니다."
이재성이 문으로 향했다.
"3일 안에 대답하십시오. 그 이후로는 조정의 결정이 내려질 테니까요."
이재성이 나갔다.
박준호는 창문 너머 종로의 밤거리를 바라봤다. 횃불들이 여전히 밝혀 있었다. 하지만 그 빛 속에는 이제 위협도 있었다. 한명준의 위협, 조정의 조건부 보호, 그리고 신분제라는 벽 자체가 만드는 압력.
그는 팔의 상처를 만졌다. 붕대 아래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아직 3일이 남았다.
3일 안에 모든 것이 결정될 것이었다. 그의 생존, 대동상회의 미래, 그리고 신분제 내에서 신분제를 바꾸려는 이 조직의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