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청의 심문과 계약서의 힘
한양 조정청 정문 앞. 박준호의 얼굴은 창백했다. 밤새 몸이 떨렸고, 아침 해가 떠오르는 시각 호조 검사들이 가게에 나타났을 때 손가락이 저렸다. 이재성의 조카 이준구가 "복식부기는 불법이 아닙니다"라고 중얼거렸지만, 그 말은 공기처럼 흩어졌다.
고서점에서 얻은 그 책. 그 책이 가져온 모든 것이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나.
"들어가세요."
호조 관리 임유진이 박준호의 팔을 잡았다. 그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이미 고발장은 도착했고, 한명준의 고급 술렁임은 한양 전역에 퍼졌다. 평민이 양반을 사기했다. 신분제를 모독했다. 위조 장부로 거래를 조작했다. 말 하나하나가 박준호의 목에 올가미를 씌웠다.
심문실은 어둡고 습했다.
심문관 이경수는 오십 대 중반의 양반으로, 턱 아래 수염이 흰색으로 곱슬거렸다. 그의 눈은 박준호를 보는 순간 냉담하게 굳었다. 책상 위에는 한명준이 제출한 고발장과 함께 박준호의 장부 몇 장이 펼쳐져 있었다.
"박준호라고 했지."
"예. 호조께서 부르신 종입니다."
박준호는 무릎을 꿇었다. 두 손을 모아 차분히 누르며 진정했다. 경영서의 첫 장을 떠올렸다. "위기 상황에서의 침착함이 모든 결정을 좌우한다." 그 말을 되풀이했다.
"한명준 거상이 고발했다. 그대가 거짓 장부를 만들어 그를 사기했다고." 이경수가 손가락으로 장부를 튕겼다. "이것들이 전부 위조라는 뜻이다. 돈의 출처, 거래의 기록, 모두 거짓.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분을 넘는 행위를 했다. 평민이 양반의 거래를 의도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아닙니다."
박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이경수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보통의 평민 상인이라면 이 순간 변명과 눈물로 자신을 구할 것이다. 하지만 박준호는 달랐다.
"이것은 위조가 아니라 기록입니다. 모든 거래가 증인과 인장이 있는 계약서로 보호되어 있습니다."
"계약서?"
이경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박준호는 이미 준비한 두루마리를 꺼냈다. 쌀 한 섬을 팔 때마다, 한명준의 부하들이 올 때마다, 그리고 이재성이 찾아올 때마다 박준호는 계약서를 만들었다. 거래처, 거래량, 가격, 거래 날짜, 증인의 이름과 인장.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저는 한명준 거상과의 모든 거래를 기록했습니다. 쌀 한 섬씩, 가격 한 냥씩. 이것을 무시하려면 증인들을 모두 거짓말쟁이로 만들어야 합니다."
심문실이 조용해졌다. 이경수는 계약서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글씨를 따라갔다. 첫 번째 계약서. 두 번째. 세 번째. 손가락이 멈추지 않았다.
"증인이 누구인가?"
"저자거리의 평민 상인들과 이곳 호조의 관리 임유진 나인입니다."
이경수가 임유진을 보았다. 임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이 정확합니다. 호조에서도 거래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박준호는 계속했다. 목소리가 차분했다.
"저는 신분을 모독하려 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거래를 투명하게 하려 했습니다. 투명성이 있으면 분쟁이 없습니다. 한명준 거상도 알 것입니다. 제 장부에는 그의 모든 거래가 기록되어 있고, 그것이 정확하다는 것을 그 자신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경수는 말이 없었다. 계약서를 한 장씩 들어올렸다. 글씨는 명확했고, 인장은 선명했고, 증인의 이름은 구체적이었다. 이것은 거짓을 만들 수 없는 형태였다. 만약 이 계약서가 거짓이라면, 증인들이 모두 거짓을 증언한 것이고, 그렇다면 호조 자체가 거짓을 공인한 것이었다.
이경수의 호흡이 깊어졌다. 그는 계약서를 모두 내려놓고 책상을 응시했다. 펜을 집어 들었다가 다시 놓았다. 입술이 움직였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것이... 어디서 나온 방법입니까?"
이경수가 물었다. 박준호는 순간 침묵했다. 경영서를 꺼낼 수는 없었다. 그것은 사학이라고 낙인찍힐 수 있었다. 역모죄로 끌려갈 수 있었다. 박준호는 신중하게 대답했다.
"제가 생각한 방법입니다. 거래를 기록하면 분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평민이 이런 생각을 했단 말입니까?"
"예. 저는 상인입니다. 상인은 거래로 생존합니다. 거래가 명확해야 상인이 살 수 있습니다."
이경수는 계약서를 다시 집어 들었다. 이번엔 더 천천히 읽었다. 한 줄씩, 한 글자씩. 그의 눈빛이 변했다. 처음엔 의심과 경멸이 섞여 있었다. 이제는 다른 것이 보였다. 흔들림. 그것은 관료의 눈이 아니라 한 명의 사람이 낯선 무언가를 마주했을 때의 눈이었다.
"법이... 없다면?"
이경수가 중얼거렸다. 박준호는 대답했다.
"법이 없으면 거래가 없습니다. 제 계약서는 법이기를 원했습니다."
이경수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박준호를 관통했다.
"이 계약서는 법입니다."
심문실의 공기가 변했다. 이경수의 호흡이 들렸다. 박준호의 손이 떨렸다. 이경수가 계속했다.
"투명한 거래는 신분을 초월한다. 왜냐하면 법은 신분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한명준 거상이 이 계약서를 부정하려면 자신의 거래가 거짓이라고 주장해야 한다. 그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심문관님."
"너는 이 계약서를 다른 거상들에게도 제시했는가?"
"아직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박준호는 잠깐 생각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저자거리의 평민 상인들에게 이 방법을 알려주려고 합니다. 모두가 투명하게 거래하면, 모두가 보호받을 것입니다."
이경수의 눈이 흔들렸다. 그것은 심문관의 눈이 아니라, 한 명의 관료의 눈이었다. 그 눈 너머에는 뭔가 다른 감정이 있었다.
심문실의 문이 열렸다. 젊은 양반이 들어섰다. 이경수의 얼굴이 굳었다.
"대호. 이곳에 왜."
"아버지가 이 사람의 계약서를 보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한 번 봐도 됩니까?"
이경수는 일순간 거부하려는 듯했지만, 아들의 눈을 보고는 계약서를 건넸다. 이대호라는 이름의 젊은 양반은 계약서를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그의 눈이 넓어졌다.
"이것은... 놀랍습니다."
"뭐가?"
"거래가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버지, 이렇게 되면 거짓이 불가능합니다. 거짓을 하려면 증인을 모두 사야 하는데, 그러면 비용이 거래액보다 커집니다."
이대호가 다시 읽었다. 그의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이런 방법이 가능합니까? 이렇게 하면 누구든 신뢰할 수 있습니다."
이경수가 아들을 보았다. 아들의 얼굴은 진지했다. 이대호가 계약서를 내려놓고 박준호를 바라봤다.
"당신이 이것을 만들었습니까?"
"예. 저는 상인입니다."
"상인이 법을 만들었습니다."
이대호의 목소리에는 존경이 담겨 있었다. 이경수는 아들의 표정을 보다가 심호흡을 했다. 그는 박준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풀려난다. 한명준 거상의 고발은 기각된다. 너의 계약서가 거래의 법적 증거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방법을 다른 상인들에게 알린다 해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박준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동시에 뜨거워졌다. 처음이었다. 관청이 자신을 인정했다. 신분제 체계 안에서, 법의 이름으로, 평민의 방법을 정당하다고 인정한 것이었다.
심문실을 나온 박준호는 한양의 햇빛을 받았다. 임유진이 옆에 섰다.
"잘하셨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박준호는 조정청 뒷골목으로 향했다. 가게로 돌아가야 했다. 저자거리의 상인들에게 소식을 전해야 했다. 계약서가 법이라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
그 순간이었다.
박준호는 뒷골목의 코너를 돌다가 멈추었다. 비명이 들렸다. 채찍질의 소리였다.
박준호는 그 소리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골목의 모퉁이에는 양반 하나와 노비 하나가 있었다. 양반은 채찍을 들었고, 노비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 노비의 등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도망쳤다가 잡혔으니 이 정도는 참아야지, 놈."
양반의 채찍이 다시 내려졌다. 노비의 비명이 더 커졌다.
박준호의 몸이 경직되었다. 그 순간, 노비가 고개를 들었다. 박준호와 눈이 마주쳤다.
임재욱이었다.
밤거리에서 화살을 맞은 그 남자. 윤지훈을 생포한 그 남자. 박준호의 가게 앞에서 자신을 지킨 그 남자가, 지금 이 골목에서 채찍을 맞고 있었다.
박준호의 입에서 말이 나왔다.
"멈추세요!"
양반이 고개를 들었다. 채찍이 멈추었다. 그 양반의 얼굴은 박준호를 보며 일그러졌다.
"뭐 하는 거냐, 평민아. 내 노비를 왜?"
"그 사람은 제가 알고 있습니다."
"뭐?"
박준호는 한 발 더 나아갔다.
"그 사람을 팔겠습니다. 얼마를 원하십니까?"
양반의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이 노비는 도망친 놈이야. 다시는 쓸 수 없어. 그냥 죽여 버릴 거다."
"그렇다면 제가 매입하겠습니다. 죽일 것을 팔면 손해 아닙니까?"
양반이 박준호를 쳐다봤다. 박준호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사업가의 눈이었다. 양반은 한숨을 쉬었다.
"오십 냥."
"오늘 저녁에 드리겠습니다."
"좋아. 대신 이 놈을 당장 데려가."
박준호는 임재욱에게 손을 내밀었다. 임재욱은 박준호의 손을 잡았다. 박준호는 그를 일으켜 세웠다.
"이름이 뭐냐?"
"임재욱입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명확했다. 박준호는 그 이름을 반복했다.
"임재욱. 좋은 이름이네."
박준호는 임재욱을 가게로 데려갔다. 오서연이 나타났다. 그녀의 눈이 임재욱을 보며 커졌다.
"준호. 이 사람이?"
"노비입니다. 하지만 이제 아닙니다."
오서연은 박준호의 얼굴을 보았다. 그 얼굴은 결정된 표정이었다. 오서연은 박준호의 팔을 잡았다.
"따로 이야기해야겠습니다."
오서연은 박준호를 안방으로 데려갔다. 문을 닫았다. 그리고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노비를 산다는 것은 신분제에 대한 도전입니다. 조정의 보수파가 이것을 알면, 당신을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정말 알고 있습니까? 당신의 성공은 이미 많은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한명준, 그리고 조정의 기득권 세력들이 당신의 목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노비를 산다는 것은 자살과 같습니다."
박준호는 침묵했다. 오서연이 계속했다.
"당신이 그 남자를 구하면, 우리 가족도 함께 죽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도 죽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박준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뇨. 난 감수하지 않겠습니다."
오서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럼 그 남자를 팔아야 합니다."
"아닙니다."
박준호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심문실에서 이경수를 마주했을 때의 그것이 아니었다. 더 단단했다. 더 결연했다.
"난 그 남자를 구하고, 동시에 우리 가족을 보호하겠습니다."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있습니다."
박준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짓누르는 듯한 무게도 있었다.
"만약 임재욱이 내 상회의 직원이 되고, 법적으로 고용 계약서를 쓴다면? 그러면 그는 노비가 아니라 상인이 됩니다. 신분제 내에서 노비 신분은 유지되지만, 경제 영역에서는 고용인입니다. 이재성이 이런 방식을 인정하지 않을까요?"
오서연의 눈이 움직였다. 그것은 두려움과 희망이 섞인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 희망은 곧 의심으로 변했다.
"당신은..."
"미쳤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계약서가 법이라는 것을 조정이 이미 인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방법도 가능할 겁니다."
박준호가 가게로 나갔다. 임재욱은 상처를 감싸고 앉아 있었다. 박준호는 두루마리를 꺼내 펴놨다.
"임재욱. 너는 내 상회의 호위 책임자가 되겠는가?"
"예?"
"내가 너를 산 이유는 너를 노비로 삼기 위해서가 아니다. 너는 이미 나를 도왔다. 밤거리에서 화살을 막아줬지. 그것은 고용인의 일이다."
박준호는 계약서를 쓰기 시작했다. 임재욱의 이름, 역할, 급여, 계약 기간. 모든 것을 기록했다. 손가락이 떨리지 않았다. 심문실에서 느꼈던 그 차분함이 돌아왔다.
"이 계약서에 서명하면, 넌 더 이상 노비가 아니다. 법적으로 인정받은 고용인이다."
"그런 게 가능합니까?"
"오늘 심문실에서 계약서는 법이라고 인정받았다."
박준호는 계약서를 임재욱에게 내밀었다. 임재욱은 그것을 읽었다.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저는... 글을 모릅니다."
"그럼 내가 읽어주겠다."
박준호는 계약서의 내용을 천천히 읽어주었다. 임재욱은 듣고 있었다. 마지막에 박준호가 물었다.
"동의하는가?"
"예. 감사합니다."
임재욱이 손을 들었다. 박준호는 그의 손가락을 받아 계약서 위에 도장처럼 눌렀다. 그리고 자신의 인장을 찍었다.
계약서가 완성되었다. 박준호는 처음으로 웃음이 나왔다. 심문실에서의 승리감이 골목에서의 도덕적 충동과 충돌했고, 그 결과 내린 결정. 그것이 맞다는 확신이 피어올랐다. 임재욱도 웃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알지 못했다. 이 계약서가 가져올 다음의 무게를.
그 순간, 가게의 문이 열렸다. 검은 옷을 입은 무리들이 나타났다. 한명준의 부하들이었다. 맨 앞에 선 자가 입을 열었다.
"상인 박준호. 당신의 시간은 끝났다."
그 자의 손에는 칼이 들렸다. 뒤에 선 것들도 모두 칼을 들었다. 다섯 명. 아니, 일곱 명이 보였다.
"다시는 우리 영역에 발을 들이지 말 것이다. 아니면..."
검이 탁 소리를 내며 박준호의 목을 향해 올라왔다.
임재욱이 움직였다. 그의 손이 바닥에 떨어진 채찍을 집어 들었다. 임재욱은 그것을 휘둘러 칼을 막았다. 검과 채찍이 부딪혔다.
"당신들이 원하는 것이 뭡니까?"
박준호의 목소리가 침착했다. 하지만 가슴은 철렁 내려앉고 있었다. 심문실에서의 승리가 이곳에서는 무의미했다. 계약서가 칼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 순간, 뒤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이재성이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차분했다. 하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호조의 명령으로 이 사람을 체포한다. 한명준의 부하들이여, 지금 당장 물러나시오."
한명준의 부하들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재성의 권력 앞에서는 감히 나설 수 없었다. 그들은 칼을 거두고 물러났다.
이재성이 박준호를 바라봤다.
"너는 조정의 심문을 통과했다. 계약서가 법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해결한 것은 아니다."
박준호는 입을 열 수 없었다.
"너의 노비 구입, 그것이 신분제에 대한 도전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예."
"그렇다면 왜 했는가?"
박준호는 임재욱을 바라봤다. 임재욱의 눈은 여전히 박준호를 향해 있었다. 그 눈빛 속에는 감사와 두려움이 함께 있었다. 박준호는 천천히 대답했다.
"그 남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재성의 입이 움직였다. 하지만 웃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숨이었다.
"옳은 일. 평민이 노비를 산다는 것이 옳은 일인가? 그렇다면 너는 조선의 신분제를 무너뜨리려는 것인가?"
박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재성이 계속했다.
"계약서가 법이라는 것은 조정이 인정했다. 하지만 노비 구입은 다르다. 그것은 신분제에 대한 정면적 도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박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재성은 박준호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내가 그 노비를 샀다고 하자."
"예?"
"호조의 이름으로 그 남자를 구입했고, 그를 너에게 고용인으로 넘겼다고 하자. 그러면 신분제 위반이 아니라 관청의 행정이 된다."
박준호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그 안에는 안도감만 있지 않았다. 뭔가 더 큰 것이 숨어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지 말고, 기억해라. 너는 이제 조정의 보호 아래 있다. 그것은 동시에 조정의 감시 아래 있다는 뜻이다."
이재성이 돌아섰다. 그리고 멈춰 다시 박준호를 바라봤다. 그의 눈은 마치 무언가 중요한 것을 전하려는 듯했다.
"그런데 너는 아직 모르는 것이 있다."
박준호의 몸이 경직되었다.
"임재욱에게는 아들이 있다. 여덟 살 난 아들이다."
박준호는 임재욱을 돌아봤다. 임재욱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노비의 신분으로 아이를 낳았을 때, 그 아이도 노비가 되는 것은 조선의 법이었다. 박준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사실이 현실이 되자, 심문실에서의 모든 확신이 무너졌다.
"저는... 아이를 본 지 칠 년이 됩니다."
임재욱의 목소리가 떨렸다. 박준호는 임재욱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칠 년. 도망쳤던 칠 년 동안 임재욱은 자신의 아들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 아이는 지금 관노 수용소에 있다."
이재성의 목소리가 계속됐다. 박준호의 손가락이 저렸다. 계약서로는 해결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문실에서 느꼈던 승리감은 이곳에서 무의미했다. 계약서는 칼을 막을 수 없었고, 법도 신분제를 넘을 수 없었다.
"그 아이를 데려올 수 있습니까?"
박준호의 목소리는 작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분노와 절박함이 함께 있었다.
이재성의 입이 움직였다. 그의 눈은 박준호를 관통했다.
"할 수 있다면, 넌 정말 신분제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조선은 너와 함께 죽을 것이다."
이재성이 사라졌다. 박준호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임재욱의 아들. 여덟 살 난 아이. 관노 수용소에 갇힌 아이. 그 아이를 데려와야 했다.
계약서는 그곳에 닿을 수 없었다. 법도 그곳에 닿을 수 없었다. 관노 수용소는 한양 북쪽 산골짜기에 위치했고, 탈출한 노비를 수용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아이를 꺼내는 것은 신분제에 대한 정면적 도전이었다. 신분제를 위반하는 자는 곤장을 맞고 귀양을 가거나, 더 심하면 죽임을 당했다.
박준호는 임재욱을 바라봤다. 임재욱의 눈은 박준호를 향해 있었다. 그 눈 속에는 희망과 절망이 함께 있었다.
이것은 계약서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이것은 신분제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영역이었다. 이것은 죽음의 영역이었다.
박준호는 임재욱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그 영역으로 한 발을 내디뎌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