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새 생각한 복식부기 아이디어와 윤지훈의 암살 위협. 박준호는 그 둘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새벽 햇빛이 얼굴을 비추는 순간, 윤지훈의 눈과 마주쳤다. 처음으로 흔들린 그 눈동자에서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인간이 기계가 되는 순간의 균열이다.
"가족이 있나?"
박준호는 천천히 물었다. 임재욱이 검을 거두고 몸을 날린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윤지훈의 왼쪽 어깨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고, 호흡은 고르지 않았다.
"…상관없습니다."
윤지훈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갑다. 하지만 침묵이 길어졌다. 그것이 답이었다.
박준호는 일어나 가게로 돌아갔다. 임재욱이 따라 들어왔다.
"저 놈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죽여야 합니다."
"아직은 아니다."
"명주인님, 당신을 죽이려던 자입니다."
"그래서 더욱이다."
박준호는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며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 뒷모습을 보며 임재욱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이 남자가 죽을 날이 올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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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중천일 때쯤, 오서연이 들어왔다. 밤새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고, 동네에서는 저자거리에서 화살 소리가 났다는 말이 떠돌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공포가 아닌 결연함만 남아 있었다.
"상처는?"
"괜찮다."
박준호는 장부를 펼쳐 놓고 있었다. 촛불 아래서 낡은 경영서를 그려낸 글씨들이 읽혀지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복식부기(Double-entry bookkeeping)'라는 항목에서 멈춰 있었다.
"이재성이 온 뒤로 몇 시간이나 지났나?"
"세 시간."
"그 사람이 왜 왔을까?"
오서연은 남편의 곁에 앉으며 물었다. 그녀의 눈은 장부 위의 글씨를 읽고 있었다.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 박준호는 경영서를 들어 올렸다. "이 책이 답인 것 같다."
"그 책이?"
"내가 한명준에게 빼앗긴 쌀은 어디로 갔을까? 그는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시각만 다를 뿐, 나도 그를 고발할 수 있다. 하지만 증거가 없다. 내 머릿속에만 있는 숫자로는 관청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밤새 생각한 것들이 터져 나오는 듯했다.
"그런데 이 책에는 방법이 있다. 모든 것을 기록하는 것이다. 들어온 것, 나간 것. 누가, 언제, 얼마나. 그러면 한명준은 내 것을 훔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기록되기 때문이다."
오서연은 남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뭔가가 타오르고 있었다. 불안감이 아닌 확신. 그것이 위험해 보였다.
"당신의 성공은 결국 누군가의 몰락을 의미한다."
오서연의 목소리가 낮았다.
"…내가 한명준을 밀어낸다는 뜻인가?"
"그 사람이 가만히 있을까?"
박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일어나 가게 뒤쪽으로 가서 낡은 목함을 꺼냈다. 그 안에는 지난 삼 년간 쓴 모든 장부가 있었다. 대충한 필기, 지워진 자국, 검은 잉크로 덮인 숫자들. 그것은 혼란의 기록이었다.
"이걸 정리한다."
박준호는 새로운 종이를 폈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그는 경영서의 예시를 따라 두 개의 열을 그었다. 왼쪽에는 '입금', 오른쪽에는 '출금'. 그 위에는 '거래 일자'와 '거래처'를 기록할 공간이 있었다.
"이렇게 하면 어떤 돈이 언제 어디로 갔는지 한눈에 보인다. 한명준이 와서 '이건 내 몫이다'라고 주장해도, 나는 '여기 있습니다'라고 보여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관청에도 제출할 수 있다."
"관청이?"
"신분제는 여전하지만, 상업의 규칙까지 정할 수는 없다. 그것은 회색지대다."
박준호의 얼굴에 처음으로 웃음이 떠올랐다. 그것은 승리의 미소가 아니었다. 생존의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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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뒤, 박준호의 가게는 변해 있었다.
그는 직원들을 모았다. 모두 여섯 명. 가게 주인으로서의 권한으로 그들을 불렀다. 그들의 표정은 불안했다. 일반적으로 평민 상인이 직원들을 모으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의 신호였다.
"이제부터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일한다."
박준호는 새로운 장부를 펼쳤다. 깔끔한 글씨로 적힌 표. 그것을 보자 한 직원이 입을 열었다.
"명주인님, 이게 뭡니까?"
"거래 기록이다. 모든 것이 여기 적힌다. 누가 쌀을 팔았고, 누가 샀고, 얼마인지.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이 장부를 관청에 제출한다."
"관청에?"
"그렇다."
박준호는 천천히 말했다.
"한명준 같은 놈들은 우리가 어떻게 벌었는지 모르니까 빼앗아 간다. 하지만 모든 것이 기록되면, 그것이 불가능해진다. 왜냐하면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명주인님, 그런데…" 가장 나이 든 직원이 말했다. "관청이 우리 말을 들어줄까요? 우리는 평민입니다."
"들어준다."
박준호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왜냐하면 이것은 신분 문제가 아니라 상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신분제는 여전히 있다. 양반은 양반이고 평민은 평민이다. 하지만 돈은 신분을 따지지 않는다. 돈의 흐름은 기록되어야 하고, 그 기록은 법이 된다."
박준호는 경영서의 한 구절을 읽어 내렸다. 물론 그것은 한문으로 번역되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는 그 의미를 자신의 말로 전했다.
"투명성이 신뢰를 만든다. 신뢰가 거래를 만든다. 거래가 부를 만든다."
직원들은 박준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여전히 불안했지만, 그 속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피어나고 있었다. 희망이었다.
가장 나이 든 직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장부를 쓸 줄 알아야 하나요?"
"그렇다. 내가 가르치겠다."
박준호는 새로운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 직원들 앞에 펼쳤다.
"자, 어제 한명준의 심부름꾼이 왔었지? 그가 우리 쌀의 반을 달라고 했다. 그때를 기억해라."
박준호는 펜을 들었다. 장부의 첫 줄에 날짜를 적었다.
"거래 일자: 지난달 초. 거래처: 한명준 측. 내용: 불법 수탈 시도. 액수: 쌀 50석."
직원들은 그 글씨를 따라 움직였다. 한 명이 펜을 들고 따라 썼다.
"이렇게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 한명준이 '그런 일은 없었다'고 말해도, 우리는 이 장부를 꺼내 '여기 있습니다'라고 보여줄 수 있다."
박준호는 다음 줄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것은 중요하다. 실수도 기록한다. 만약 누군가 잘못 기록했다면, 그 아래에 '수정: 정정 일자와 이유'를 적는다. 투명성이 중요하다. 모든 것이 보여야 한다."
다른 직원이 손을 들었다.
"명주인님,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기록하면 정말 한명준이 우리를 건드릴 수 없을까요?"
"건드릴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관청도 인정하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관청에 제출된 기록을 무시하는 것은 관청 자체를 무시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한명준도 그것을 안다."
박준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다. 직원들은 그 확신을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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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날, 한명준의 심부름꾼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더 거만했다. 세 명의 머슴을 데리고 왔다. 한명준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어제의 일 따위는 잊으라는 것이었다.
"준호야, 이번 달 쌀의 반은 이쪽으로."
심부름꾼은 가게 안에 들어서자마자 외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협박이 가득했다.
"임재욱이 살인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관청에 고발하면 그 놈은 죽고, 넌 부역자가 되어 함께 죽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좋은 쌀을 골라서 담아라."
박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새로운 장부를 꺼냈다. 그것을 심부름꾼의 얼굴 앞에 내밀었다.
"이것을 봐라."
심부름꾼의 얼굴이 찌푸렸다.
"뭐 하는 짓인가?"
"이것은 지난 한 달간의 모든 거래 기록이다. 들어온 쌀, 나간 쌀, 팔린 돈, 쓴 돈. 모두 기록되어 있다."
박준호는 천천히 말했다. 그의 손가락이 각 항목을 가리켰다.
"당신이 어제 '반을 달라'고 했을 때, 나는 이 장부를 관청에 제출했다. 그리고 당신이 무리하게 가져가려는 것이 얼마나 불법인지도 함께 제출했다."
"뭐, 뭐라고?"
심부름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것은 관청도 인정하는 기록입니다. 불법적인 수탈을 시도하는 자는 고발될 수 있습니다."
박준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의 손가락이 장부의 한 항목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한명준 측 불법 수탈 시도 일자 및 액수'가 명확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의 목숨을 결정하는 판사의 선고 같았다.
심부름꾼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돌아섰고, 자신의 머슴들도 따라 나갔다. 그 뒷모습은 처음 들어올 때의 거만함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가게 안은 조용했다. 직원들의 눈이 박준호를 향했다. 그들의 표정에는 경이와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이 남자가 한명준의 심부름꾼을 물리쳤다. 신분제 아래서, 단지 종이와 펜으로만.
한 직원이 손을 들었다. 가장 어린 직원이었다.
"명주인님, 정말 이렇게 되는 건가요?"
박준호는 그 직원을 봤다. 그리고 천천히 대답했다.
"이제 시작이다. 한명준은 이제 다른 방법을 쓸 것이다. 더 직접적인 방법을."
그 순간,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여러 개의 발굽이 한 번에 땅을 치는 소리였다. 가게의 문이 벌컥 열렸다.
관청의 포졸들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황색 종이가 들려 있었다. 고발장이었다.
"평민 상인 박준호! 불법적으로 위조된 장부를 만들어 관청을 기만하려 했다는 고발이 들어왔습니다!"
포졸의 목소리가 가게 전체에 울렸다. 박준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니, 그것은 창백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예상했던 일이 현실이 된 순간의 침착함이었다.
그의 눈이 직원들을 향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한 직원이 한 발 물러섰다. 그것은 배신의 신호였다.
포졸이 손을 뻗어 장부를 집어 가려 했다. 박준호는 한 발 물러섰다. 물러남이 아니라 계산된 거리 조정이었다.
"고발장을 보여주십시오."
박준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신분제 아래에서 관청에 대항한다는 것의 공포가 한순간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그 공포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이미 그는 이 길을 선택했으니까.
포졸은 황색 종이를 펼쳤다. 글씨가 너무 많았다. 하지만 박준호는 맨 아래를 봤다. 인장이 찍혀 있었다. 낮은 직급의 인장이었다.
"이 고발장은 어느 관청에서 나온 것입니까?"
"한양 좌도포도청이다. 문제가 있단 말인가?"
포졸의 어조가 거칠어졌다. 그는 박준호를 범인 취급했다. 하지만 박준호는 여전히 차분했다.
"문제가 있습니다. 상업 거래의 기록에 관한 고발은 한양 좌도포도청이 아니라 육조 중 호조에서 나와야 합니다."
포졸의 얼굴이 굳었다.
"넌 뭐 하는 놈이길래 법을 아는가?"
"상인입니다. 상인은 법을 알아야 합니다."
박준호는 고발장을 다시 들었다. 그리고 한 장의 종이를 더 꺼냈다. 그것은 호조에서 발급한 인가 서류였다. 어제 밤 이재성이 보낸 것이었다. 그 위에는 명백히 쓰여 있었다. '상인 박준호의 거래 기록 유지는 합법적이며, 이를 기반으로 한 고발은 호조의 사전 승인을 필요로 한다.'
포졸은 그 서류를 봤다. 그리고 고발장을 봤다. 그의 얼굴에 혼란이 떠올랐다.
"이건..."
"이것은 모순입니다. 호조의 인가를 받은 거래 기록을 위조라고 고발할 수는 없습니다. 이 고발장은 무효입니다."
박준호의 말이 끝나자, 뒤에서 또 다른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다른 포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표장이 달랐다. 호조의 관리들이었다.
"어디 계신가?"
호조 관리의 목소리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박준호는 손을 들었다.
"여기입니다."
호조 관리는 박준호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좌도포도청 포졸들을 향했다.
"이 건은 법적 절차에 하자가 있다. 고발장을 회수하라."
"하지만 고발이..."
"회수하라. 이건 호조의 결정이다."
호조 관리의 목소리는 냉철했다. 포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들은 고발장을 회수했고, 가게를 나갔다. 호조 관리는 박준호를 한 번 더 봤다.
"이재성 대인께서 당신을 지키라고 하셨다. 잘 기억해두길."
관리가 나간 후, 가게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박준호의 가슴이 요동쳤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평온했다.
직원들은 여전히 박준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그들의 표정에는 경외감만 남아 있었다. 이 남자는 정말로 다르다. 한명준의 심부름꾼을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관청까지 대항했다.
하지만 한 직원의 눈빛은 달랐다. 그 직원은 뒤로 물러서 있었다. 그의 시선은 가게 밖의 골목을 향해 있었다.
임재욱이 옆에 나타났다. 그의 눈은 가게 밖의 골목을 향해 있었다.
"누가 고발했나?"
박준호는 직원들을 천천히 훑어봤다. 그의 시선이 뒤로 물러서 있는 한 직원에게 멈췄다.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이제 알아야 한다."
그는 경영서를 다시 펼쳤다. 이번엔 다른 페이지였다. 그 페이지에는 한 문구가 밑줄 그어져 있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박준호는 그 말을 읽고 있었다. 그것은 경영서에 있던 말이 아니라, 누군가 손으로 적어 넣은 말이었다.
그의 손가락이 글씨를 따라 움직였다. 필체가 낯설지 않았다. 그것은 고서점 주인의 필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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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자, 박준호는 오서연을 만났다. 그들의 방은 촛불만으로 밝혀져 있었다.
"고발장이 들어왔다."
박준호가 말했다. 오서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떻게 되었나?"
"호조의 보호를 받았다. 이재성이 움직인 것 같다."
"그렇다면?"
오서연은 남편의 얼굴을 봤다. 박준호의 눈은 거리를 보고 있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한명준은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는 것도 알았다. 그는 더 이상 조용하지 않을 것이다."
오서연은 남편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했다.
"당신이 아까 말한 것 있나? '투명성이 신뢰를 만든다'는 말 말이다."
"그렇다."
"그렇다면 나도 당신에게 투명하게 말하겠다. 당신의 성공은 누군가의 몰락을 의미한다. 한명준이 그렇고, 그 아래의 양반 상인들도 그렇다. 당신이 이 길을 계속 가면, 그들은 당신을 죽이려 할 것이다."
박준호는 아내의 말을 들었다. 침묵이 길어졌다. 그 침묵 속에는 이미 알고 있던 진실이 담겨 있었다.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박준호가 말했다.
"왜냐하면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있고, 이재성 같은 사람도 있다. 그리고 이 장부가 있다."
그는 경영서를 들었다. 그 책의 무게는 가벼웠지만, 그것이 담은 지식의 무게는 무거웠다.
"이 책이 우리를 구할 것 같다."
오서연은 남편의 얼굴을 봤다. 그 얼굴에는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광기가 아니었다. 함께 견디려는 결연함이었다.
"나도 함께 견디겠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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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박준호는 저자거리의 평민 상인들을 모았다. 그들은 총 열세 명이었다. 모두 한명준의 수탈에 시달리던 사람들이었다.
"당신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어제 내가 무엇을 했는지 말이다."
박준호가 말했다.
"나는 장부를 만들었다. 투명한 장부를. 그리고 그 장부는 한명준의 심부름꾼을 물리쳤다. 관청까지 물리쳤다."
상인들의 눈이 반짝였다.
"이제 당신들도 할 수 있다. 각자 당신들의 가게에 같은 방식의 장부를 만들어라. 그리고 나에게 그 기록을 보여주라. 나는 그것들을 모아서 하나의 큰 장부로 만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명준은 당신들 각각을 개별적으로 수탈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기록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가능할까?"
한 상인이 물었다.
"가능하다. 나가 증명했다."
박준호의 목소리는 확신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한 가지를 명심해라. 이 길은 쉽지 않다. 한명준은 이미 나를 죽이려고 했다. 그리고 더 할 것이다. 당신들도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그래도 따를 것인가?"
상인들은 서로를 봤다. 그들의 눈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희망이 있었다.
"따르겠습니다!"
가장 나이 많은 상인이 외쳤다. 다른 상인들도 따라 외쳤다.
"따르겠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가게를 흔들었다. 박준호는 그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것은 반란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뒤쪽에서 한 명이 조용히 몸을 빼냈다. 나이가 많지 않은 상인이었다. 그는 뒤로 물러서며 한명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박준호의 눈은 그를 따라갔다. 그 시선 속에는 이미 의심이 가득했다.
저녁이 되자, 박준호는 다시 경영서를 펼쳤다. 이번엔 그 책의 가장 마지막 페이지였다. 거기에는 낙서가 있었다. 누군가 손으로 적어 넣은 문구였다.
'모든 혁명은 상업에서 시작된다.'
박준호는 그 말을 읽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이제 정말 시작이다."
그 순간, 밖에서 다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번엔 포졸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 무거운 발굽이었다. 마상 궁수들의 발굽이었다.
임재욱이 손을 올렸다. 그의 눈이 가게 밖을 향했다.
"누군가 온다."
박준호의 심장이 다시 뛰었다. 이번엔 더 빠르게. 그 발굽 소리는 자신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가게의 문이 열렸다. 들어온 것은 포졸이나 궁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 명의 양반이었다. 나이는 이십 대 초반으로 보였다. 그의 옷은 고급 비단이었고, 그의 얼굴에는 차가운 지능이 떠 있었다.
"상인 박준호인가?"
양반의 목소리가 가게 안으로 울렸다.
"나다."
박준호가 대답했다.
"나는 이준구다. 한양의 양반이고, 호조 관리 이재성의 조카다."
이준구는 가게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그의 시선이 박준호에게로 돌아왔다.
"당신이 호조의 인가를 받은 이유가 궁금하다."
질문이었다. 선언이 아닌. 박준호는 이 양반의 눈을 마주했다. 이준구의 표정에는 위협이 없었다. 오히려 호기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호기심 뒤에는 뭔가 다른 것이 숨어 있었다.
"이재성 대인께서 도와주셨습니다."
박준호가 대답했다. 그는 먼저 말하지 않기로 했다. 이 양반이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알아야 했다.
"그렇군요."
이준구가 한 발 가까워졌다. 그의 어깨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어제의 암살자 윤지훈과의 연결고리가 있을까? 박준호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신은 복식부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 맞나?"
"맞습니다."
"흥미롭다. 그것은 매우 흥미로운 시스템이다. 나는 그것을 더 알고 싶다."
이준구의 목소리에는 진정한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박준호는 여전히 조심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준구가 한 발 물러섰다. 그의 손이 검의 자루를 향했다. 박준호는 순간 몸을 날릴 준비를 했다. 하지만 이준구는 검을 뽑지 않았다. 대신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당신이 하려는 일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신분제 아래서 경제적 자유를 추구하는 일 말이다."
이준구의 웃음은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했다. 하지만 그 따뜻함 속에는 계산이 숨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제안을 하러 왔다."
"제안?"
"당신과 내가 함께 한다면 어떻겠는가? 양반과 평민이 함께라면, 이 일은 훨씬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박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경영서의 한 구절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이 양반은 정말 동지인가? 아니면 또 다른 위협인가? 그의 어깨 상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 만남이 우연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계획인가?
박준호의 침묵 속에서, 이준구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 웃음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밖의 서울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 순간, 박준호의 귀에 한 소식이 들어왔다. 뒷골목에서 한 상인이 한명준에게 모든 것을 고변했다는 것이었다. 배신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는 오전에 모인 열세 명 중 한 명이었다.
박준호의 얼굴이 굳었다. 이준구의 웃음은 여전했지만, 그 뒤에는 분명 뭔가가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결정하기 전에 한 가지 더 말해주겠다."
이준구가 입을 열었다.
"당신의 배신자는 이미 한명준에게 당신의 모든 계획을 알렸다. 복식부기, 호조의 인가, 그리고 열세 명의 상인들. 모두 말이다."
박준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런데 나는 당신을 죽이지 않으러 왔다. 오히려 당신을 구하러 왔다."
이준구의 눈이 반짝였다.
"왜냐하면 당신은 내가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