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거실의 형광등이 켜졌을 때, 이수진은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투명한 손가락이 공중에서 흔들렸다. 아들 준호의 손가락이었다. 석현은 그녀의 표정이 변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6개월 동안 억눌렀던 모든 슬픔이 목구멍에서 터져나오는 것을.

"준호?"

그녀의 목소리는 부서진 도자기처럼 울렸다.

"엄마!"

준호가 투명한 몸 전체를 이용해 엄마를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손이 통과했다. 두 팔을 벌려 안으려고 했지만, 그녀의 가슴에 닿지 않았다. 이수진은 아들을 안으려고 또 시도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투명한 아이를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 깨달아지는 순간, 그녀의 무릎이 꺾였다.

거실 바닥에 엎어지듯 앉은 이수진.

"우리 준호... 엄마를 봤어? 엄마야."

석현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 순간에 움직일 수 없었다. 천 년을 저승에서 살아온 공무원도, 현생 회계사의 가면을 쓴 자도 이 장면을 처리할 규정을 가지지 못했다. 준호가 엄마 곁에 투명하게 누워 있었다. 안을 수 없는 아들. 목소리는 들리지만 온기는 전달되지 않는 아들.

박옥희가 이수진의 등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엄마, 미안해."

준호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7살 아이의 목소리인데, 그 안에는 6개월의 시간이 응축되어 있었다.

"나 때문에 아빠가 졸았던 거 아니야. 아빠가... 아빠가 자책하지 말아 달라고 말해 줄 수 있어?"

침묵이 거실을 채웠다.

이수진이 얼굴을 들었다. 눈이 부어 있었지만, 그 안의 것은 분명했다. 아내가 석현을 바라봤다. 아니, 이준석을 바라봤다. 그리고 깨달음이 밀려왔다.

그녀는 일어나 남편에게 다가갔다. 투명한 준호의 손가락을 잡은 채로.

"석현아, 넌 왜 이러는 거야?"

목소리가 떨렸다. 의문이었지만, 이미 의심으로 변해 있었다.

"3년을 함께했는데, 갑자기 왜 이렇게 변했어? 준호 이름을 자꾸 꺼내고, 회계 일을 팽개치고, 밤중에 혼잣말을 하고..."

석현이 입을 열었다.

"내가..."

"정말 우리 준호를 그렇게 그리워했어? 내 남편이?"

이수진의 눈이 흔들렸다. 의심과 절망이 뒤섞여 있었다.

"넌 뭘 알아? 준호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 밤 뭐가 일어났는지."

석현은 한 발을 내디뎠다. 이수진 옆에 앉으며 투명한 준호를 바라봤다.

"그 밤, 난 잠들었다. 넌 깨어 있었고. 준호는 내 곁에서 죽어갔다. 그런데 난 몰랐어. 아무것도 못 해줬어."

목이 메었다. 돌아가며 말했다.

"천 년을 저승에서 살아오면서 수많은 영혼을 보냈지만, 그 아이들의 가족이 얼마나 아파하는지는 본 적이 없었다. 규정만 있었지. 그런데 이제... 이 아이를 보니 내 아들도 이렇게 죽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수진의 몸이 작게 떨렸다.

"그럼 넌... 정말 우리 준호를..."

"응. 엄마를 보고 싶어했어. 너를."

석현이 이수진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 살아 있는 손.

"우리 함께 살자."

이수진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준호가 원하는 것도 이거야. 우리 함께."

아이는 엄마의 손가락을 잡으려고 또 시도했다. 이번엔 손끝이 닿았다. 엄마의 손가락 끝. 0.5센티미터. 6개월 만의 접촉.

이수진의 몸이 작게 떨렸다.

"우리 준호."

그녀가 속삭였다.

"여기 있구나."

박옥희가 준호 곁에 무릎을 꿇었다. 세 명의 어른과 한 명의 투명한 아이. 석현은 이 장면이 자신의 규정 위반의 가치를 증명한다고 생각했다. 천 년을 저승에서 살아온 공무원이 이제 알았다. 죽음 이후에도 사랑은 남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규정따위는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아빠, 나 어제 꿈을 봤어. 우리 다 함께 공원에 갔는데, 엄마가 나를 안고 있었어. 엄마 팔이 따뜻했어."

준호가 말했다. 7살 아이의 목소리로. 하지만 그 안에는 영혼의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그 공원에 우리 가보자. 내일. 내일 아침에."

이수진이 말했다.

"우리 가자. 함께."

시각 23시 47분. 저승 재정과세청의 대회의실.

이명희 부장의 음성이 울렸다. 강석준 과장은 책상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경직되어 있었다.

"최종 송출 명령을 내린다."

이명희의 목소리는 차갑고 명확했다.

"미련 등록 번호 준호(7세)를 즉시 저승으로 송출할 것. 석현 공무원을 현생에서 회수할 것. 48시간 기한은 만료되었다."

강석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즉시 현생으로 출장을 가겠습니다."

"아파트 정문에서 석현을 발견하는 즉시, 강제 귀환 절차를 시작하라. 준호는 저승으로 송출. 이는 규정이다."

"알겠습니다."

강석준의 손이 책상 위의 '골든핑거' 장비에 닿았다. 저승과 현생을 잇는 통로를 여는 기구였다. 파란 빛이 흔들렸다. 그의 몸이 현생으로 이동했다.

거실에서 석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뭐해?"

이수진이 물었다. 남편이 갑자기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갔기 때문이었다.

석현은 아파트 정문을 내려다봤다. 밤 11시 49분. 강석준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 뒤로 저승 감시원 2명이 따라왔다. 그들의 기운은 현생에서도 느껴졌다. 차갑고, 절대적이고, 규정 그 자체였다.

"48시간이 만료됐다."

석현이 중얼거렸다.

박옥희가 일어섰다.

"뭐라고?"

"강석준이 온다. 저승에서 보낸 사람이다. 48시간이 다 됐다는 뜻이야."

이수진이 투명한 준호를 바라봤다. 아이는 엄마의 손가락을 아직도 잡고 있었다. 손끝이 닿아 있었다. 0.5센티미터. 그것이 전부였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강석준이 복도를 걸어왔다. 저승 공무원의 경직된 걸음걸이로.

석현은 현관문으로 나갔다. 이수진과 박옥희와 준호를 뒤에 남기고.

"과장."

복도의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이 마주쳤다.

"규정을 어겼다."

강석준이 말했다. 감정 없이.

"알고 있다."

"준호를 저승으로 송출해야 한다. 그리고 당신은 즉시 저승으로 복귀해야 한다."

석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이 문을 바라봤다. 거실의 불빛. 그 아래 투명한 아이가 엄마의 손가락을 잡고 있는 장면. 6개월 만의 접촉. 그리고 아내의 눈물.

"규정은 규정이다."

강석준이 한 발을 내디뎠다.

"당신도 안다. 미련을 지속시키면 그 아이는 영영 저승으로 갈 수 없다. 영혼이 현생에 영구적으로 묶인다. 그것이 그 아이를 위한 것인가?"

강석준의 입술이 움직였다. 규정 조항을 중얼거리다 멈췄다. 그 규정이 정말 옳은 것인지 의심하는 듯한 표정으로.

석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규정을 바꾸면 된다."

강석준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말인가?"

"미련이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 미련을 지우는 방법도 사랑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죽은 아이를 현생 가족이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며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송출이 아닐까?"

"그것은 규정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이다."

"그렇다. 감정이다."

석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천 년을 규정으로만 살아온 내가 처음으로 배운 감정이다. 이 아이를 만나면서 깨달았다. 규정만으로는 영혼을 보낼 수 없다는 것을. 사랑만이 영혼을 보낸다는 것을. 그리고 내 아들도 이렇게 죽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천 년 전에. 그 아이의 엄마도 지금 이수진처럼 울고 있었을 거야. 하지만 난 규정만 지켰다. 그게 전부였다."

강석준의 몸이 미묘하게 움직였다. 규정 조항을 다시 읽으려다 멈췄다. 손가락이 떨렸다.

현관문 뒤에서 이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석현아!"

석현이 돌아섰다. 그리고 강석준을 지나 거실로 걸어갔다. 강석준은 그를 막지 않았다. 저승 공무원은 한 발도 움직이지 않았다. 규정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거실로 들어선 석현. 이수진과 박옥희, 그리고 투명한 준호가 있었다. 준호의 손가락은 여전히 엄마의 손끝에 닿아 있었다.

자정의 종이 울렸다.

저승 감시망의 알람이 울렸다.

"엄마."

준호가 말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7살 아이의 것이었지만, 이번엔 다른 결연함이 담겨 있었다.

"내가 아빠한테 미안해한 거, 너한테도 말해야 해. 아빠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졸렸던 거야. 아빠 잘못이 아니야."

이수진의 손이 떨렸다. 투명한 손가락 끝. 아직도 닿아 있었다.

"그리고... 엄마도 아빠도 나 때문에 자책하지 말아. 난 여기 있잖아. 아빠 곁에 있고, 이제 엄마하고도 있고."

박옥희가 손을 입에 가져갔다. 눈물이 흘렀다. 할머니는 손자가 엄마를 위로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죽은 아이가 산 엄마를 위로하고 있었다.

"준호."

이수진이 말했다. 목이 메었다.

"엄마는... 넌 어디 가? 저승이라고 했잖아. 거기서 잘 지낼 수 있어?"

준호가 잠시 침묵했다. 7살 아이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모르겠어. 근데 지금 엄마 손가락이 닿아 있으니까... 무섭지 않아."

석현은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신체가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현생 체류 시간이 단축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시야도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복도에서 강석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호를 데려가야 한다."

그는 거실 입구에 서 있었다. 손에는 저승의 '영혼 이송 장치'가 들려 있었다. 작고 투명한 구체 같은 것이었다. 유령을 그 안으로 빨아들이는 도구였다.

강석준의 손가락이 떨렸다. 영혼 이송 장치를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아직이다."

석현이 말했다.

"규정상 72시간의 유예 기간이 있다. 미련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지금 미련을 정리하고 있다."

"72시간은 이미 초과됐다. 당신이 현생에 계속 머물면서 규정을 어겼기 때문이다."

강석준의 입술이 움직였다. 규정 조항을 중얼거리다 멈췄다. 그 규정이 정말 옳은 것인지 의심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렇다면 이제 새로운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석현이 계속했다.

"미련이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 미련을 지우는 방법도 사랑이어야 한다. 가족이 함께 아이를 보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송출 아닐까?"

강석준의 얼굴이 굳었다. 영혼 이송 장치가 손에서 떨어질 듯했다.

"당신은 공무원이다. 공무원의 감정은 규정 앞에서 무의미하다."

"천 년 동안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석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하지만 이 아이를 만나면서 깨달았다. 규정만으로는 영혼을 보낼 수 없다는 것을. 사랑만이 영혼을 보낸다는 것을."

그는 투명한 준호를 바라봤다.

"내 아들도 이렇게 죽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천 년 전에. 그 아이의 엄마도 지금 이수진처럼 울고 있었을 거야. 하지만 난 규정만 지켰다. 그게 전부였다."

강석준의 몸이 미묘하게 움직였다. 영혼 이송 장치를 내렸다.

이수진이 일어섰다. 투명한 준호의 손가락을 잡은 채로.

"제 남편 말이 맞습니다. 제 아들이... 우리 준호가 필요한 건 규정이 아니라 엄마, 아빠, 할머니의 '함께'입니다."

박옥희도 일어났다. 지팡이를 짚고.

"내 손자를 보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 아이가 편하게 가기를 원한다. 그럼 우린 함께해야 한다. 마지막 밤을 함께."

강석준은 세 사람을 바라봤다. 그리고 투명한 아이를 봤다. 7살 유령의 손가락이 엄마의 손끝에 닿아 있는 모습을.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부장에게 보고하겠습니다."

"뭐라고?"

"규정 위반의 정황. 그리고... 규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

석현의 눈이 움직였다.

"과장?"

"당신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강석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마치 오랫동안 억눌렀던 말을 꺼내는 듯.

"천 년을 규정만으로 살아온 저도... 이 아이를 보니 생각이 바뀝니다. 규정이 모든 영혼을 구할 수는 없다는 것을. 오직 사랑만이 그들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강석준이 영혼 이송 장치를 내렸다.

"48시간을 더 주겠습니다. 부장의 최종 결정이 날 때까지."

"감사합니다."

"감사하지 마십시오. 저도 규정을 어기고 있으니까요."

강석준이 돌아섰다. 복도를 향해 걸어갔다. 그의 뒷모습은 어딘가 가벼워 보였다.

현관문이 닫혔다.

거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투명한 준호의 손가락이 엄마의 손끝에 닿아 있었다.

"48시간?"

이수진이 중얼거렸다.

"그 다음엔?"

석현이 대답했다.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이수진이 투명한 준호를 더 가까이 안았다. 손가락이 닿은 그 0.5센티미터를 더 이상 거리로 느끼지 않으려고.

"준호, 우리 공원에 가자. 내일 아침."

"정말?"

"응. 엄마가 너를 안고 가. 아빠도, 할머니도 함께."

박옥희가 소파에 앉았다.

"밤은 아직 길다. 준호, 너 뭐 하고 싶어?"

투명한 아이가 웃었다.

"할머니, 옛날 얘기 해줄래?"

"무슨 얘기?"

"내가 태어났을 때 얘기.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고, 아빠가 얼마나 기뻐했고... 그런 거."

이수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미소가 있었다.

"응. 얘기해 줄게, 우리 준호."

그녀는 투명한 아들을 안고 소파에 앉았다. 손가락은 여전히 닿아 있었다.

"너 태어났을 때, 아빠는 병원 복도에서 울었어. 기쁨으로 우는 거라고 했지만, 나도 봤어. 너무 소중한 아이라고 생각해서 우는 거였어."

박옥희가 덧붙였다.

"내 손자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할머니는 하늘에 감사했단다. 너처럼 예쁜 아이가 우리 가족에 왔다고."

밤 12시 15분. 거실에 가족이 모였다. 죽은 아이와 산 사람들. 그들은 준호의 탄생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엄마의 진통, 아빠의 눈물, 할머니의 기쁨. 모든 것이 다시 살아났다.

석현은 소파에서 그들을 바라봤다. 손가락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고, 시야는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지만, 그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떴다. 현생에 남겨진 시간이 얼마나 되든, 이 장면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었다.

저승에서 이명희 부장의 눈이 떨렸다. 감시망에는 이상한 신호가 계속 나타나고 있었다.

'미련 수치: 98% 유지.'

'규정 위반: 지속 중.'

'영혼 송출: 지연 중.'

하지만 강석준의 보고서는 다르게 쓰여 있었다.

'규정 개정 검토 필요. 미련의 정의 재검토. 가족 단위 송출 프로세스 개발 건의.'

이명희는 그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마치 처음으로 규정을 의심하는 것처럼.

저승 재정과세청의 다른 부서. 사망자 관리팀.

한 공무원이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준호의 파일이었다. 6개월 전 사망, 미련 등록, 영혼 송출 지연.

그 파일을 열면서 시스템이 자동으로 유사 사례를 검색했다.

현생에 머물고 싶어하는 영혼들. 가족을 놓지 못한 영혼들. 죽음 이후에도 사랑을 포기하지 못한 영혼들.

화면을 채운 파일들. 모두 '규정 위반'으로 분류된 케이스들이었다.

공무원의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부장님께 보고합니다. 준호 사건과 유사한 사례가 1,247건 적발되었습니다. 모두 '미련 지속으로 인한 송출 지연' 케이스입니다.'

보고서가 이명희의 화면에 떠올랐다.

그녀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1,247건?"

이명희는 화면을 응시했다. 1,247건의 미련. 1,247개의 가족. 모두 규정 때문에 저승으로 가지 못한 영혼들이었다. 그녀는 강석준의 보고서를 다시 읽었다. 그 안에는 준호 사건의 상세 기록이 있었다. 석현의 천 년간의 규정 준수. 그리고 한 아이를 만나 규정을 의심하기 시작한 공무원의 기록.

'아이의 엄마가 아들을 안으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습니다. 규정상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규정이 의미 없어 보였습니다. 영혼을 보내는 것이 규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완성하는 것이라면 어떨까요?'

이명희의 손이 움직였다.

"강석준을 불러라."

밤 12시 30분. 저승 재정과세청의 회의실.

강석준이 들어섰다. 이명희는 책상 위의 1,247건 파일을 가리켰다.

"이게 뭐냐?"

"준호 사건과 유사한 사례들입니다. 부장."

"유사한 사례?"

이명희가 파일을 집어 들었다.

"모두 미련 때문에 저승으로 가지 못한 영혼들이군."

"그렇습니다."

강석준이 대답했다.

"그리고 모두 규정상 '위반' 케이스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엔..."

"제 생각엔?"

"규정이 모든 영혼을 구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사랑으로 이루어진 미련은."

이명희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규정이 모든 영혼을 구할 수는 없다는 깨달음이 천천히 그녀를 짓눌렀다. 1,247건. 1,247개의 가족. 모두 규정 때문에 저승으로 가지 못한 영혼들이었다.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다.

"규정 위원회에 의안을 상정한다. 제목: 미련의 재정의 및 가족 단위 송출 프로세스 개발."

강석준이 일어섰다.

"부장, 이것은..."

"규정은 영혼을 보내기 위한 것이다. 영혼을 묶기 위한 것이 아니다. 준호 사건이 그것을 증명했다."

이명희의 눈이 모니터의 감시망 화면을 바라봤다. 거실의 불빛 아래, 가족이 모여 있는 장면이 떠 있었다. 엄마의 팔 안에 있는 투명한 아이. 손가락이 닿아 있었다.

"이 아이의 미련은 사랑이다. 그리고 사랑은... 규정으로 지울 수 없다."

밤 12시 47분. 거실.

이수진이 투명한 준호를 안고 있었다. 박옥희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석현은 소파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신체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손가락의 떨림이 심해지고 있었고, 시야는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다.

창밖으로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47시간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47시간은 더 이상 절망의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적의 시간이 되려고 하고 있었다.

저승에서 규정 위원회의 소환장이 석현의 파일에 붙었다.

제목: '준호 사건의 규정 개정 관련 청문회'

날짜: 48시간 후.

저승은 처음으로 변화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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