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세계의 추적, 시작되다
밤 11시. 석현은 준호의 투명한 손가락을 잡고 있었다.
손가락이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단지 존재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아빠, 할머니가 또 뭐라고 할 거 같아."
준호가 창밖을 내다봤다. 시어머니 박옥희가 거실 입구에 나타났다가 다시 돌아갔던 직후였다.
"괜찮아. 할머니는 착한 분이니까."
석현이 준호의 머리를 쓸었다. 손이 반쯤 투명한 아이의 머리를 통과했다. 매번 이 순간이 낯설었다. 천 년을 살아오며 처음 경험하는 감정이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근데 아빠, 엄마한테 자꾸 거짓말하는 거 맞아?"
준호가 고개를 돌렸다. 7살 아이의 눈이 만드는 질문이 가장 무거웠다.
"그건… 아빠가 엄마를 지키려고 하는 거야."
"엄마는 아빠를 속이는 게 싫어해. 엄마가 말했어. 엄마는 진짜 아빠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대."
준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석현의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아이가 맞다. 천 년을 공무원으로 살며 배운 것은 규정이었지, 가족이 아니었다.
그 순간이었다.
저승에서의 신호.
강석준의 기운이 현생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감지.
석현의 얼굴이 굳었다. 준호를 보지 말라는 신호를 눈으로 보냈다.
"준호, 지금 저승으로 잠깐 가 있어. 아빠가 나중에 부를 때까지."
"어? 아빠—"
하지만 준호는 이미 투명해지고 있었다. 석현의 골든핑거가 작동했다. 아이는 저승으로 빨려 들어갔다.
거실에 석현만 남았다.
문을 여는 소리가 났다.
"어? 누구세요?"
시어머니 박옥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뒤로 남자의 목소리.
"저승 재정과세청의 강석준입니다. 이준석 씨 찾고 있는데."
박옥희가 놀란 목소리로 "네?"라고 되물었다.
석현은 침실에서 나왔다.
강석준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검은색 정장, 50대 후반의 엄격한 얼굴, 그리고 저승 공무원만이 가진 그 차가운 눈빛. 현생에서 저승 공무원을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강 과장님. 이곳은…"
"현지 조사."
강석준이 말을 끊었다. 그의 눈이 석현을 훑었다.
"최근 업무 부실이 많다고 들었다. 직접 확인해보려고."
박옥희가 끼어들었다. "아, 그럼 아들 회사 사람이네요. 요즘 아들이 좀 이상해서…"
"어떻게 이상한데요?"
강석준의 질문이 박옥희를 향했다. 시어머니는 조금 당황하며 대답했다.
"일을 안 하고 자꾸 아이 얘기만 해요. 우리 준호가 6개월 전에 사고로 돌아가서… 남편이 아직도 못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요즘 자꾸 혼잣말도 하고…"
강석준의 눈이 좁혀졌다.
"혼잣말. 누구랑 말하는데요?"
박옥희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뭔가 이상한 질문이었다. 회사 사람이 이런 걸 물어볼 리가 없었다.
"그게… 뭐, 아이 생각하면서 중얼거리는 것 같은데…"
석현이 나섰다. "개인적 사정입니다."
"개인적 사정."
강석준이 일어섰다. 그의 움직임이 예각이었다. 천 년을 규정만 봐온 공무원의 움직임은 늘 그랬다.
"어제 당신의 사무실을 들어갔습니다. 회계 장부를 봤는데, 필체가 달라졌더군요. 작년 말의 이준석 씨 필체와 현재의 필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석현의 심장이 철렁했다. 빙의 상태에서 신체가 바뀌면 필체도 바뀐다는 것을 강석준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 3개월간 보고서 제출이 14건 지연되었습니다. 이전 기록에는 없던 일입니다. 저는 천 년을 공무원으로 살며 배웠습니다. 신체가 바뀌면 필체도 바뀐다는 것을. 그리고 당신의 신체는 정확히 3화 이후로 바뀌었습니다."
박옥희가 조용히 물러섰다. 이건 아들과 회사 사람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는 걸 감지했다.
"무슨 말씀을…"
"당신이 이준석이 아니군요."
강석준이 그렇게 말했을 때, 현생의 빛이 한순간 어두워지는 착각이 들었다. 천 년을 저승에서 근무한 공무원의 추적 능력은 현생에서도 작동했다. 그것이 가장 무서웠다.
강석준이 손을 들었다. 저승 기기가 현생에서 나타났다. 화면에 석현의 신호가 떴다. 그리고 그 신호 주변으로 미련 신호들이 빨간 점으로 표시되었다.
"이것이 저승 감시망입니다. 당신의 신호와 미처리 영혼들의 신호가 겹쳐 있습니다. 특히 이 신호는…"
강석준이 화면의 한 점을 확대했다.
"미련 등록 카드 번호 0627-준호. 6개월 전 교통사고로 사망한 아동입니다."
박옥희의 눈이 커졌다. 그 순간 그녀는 모든 것을 알았다. 아까 거실에서 본 소파 팔걸이를 잡던 투명한 손가락. 아들의 이상한 행동들. 그리고 강석준이 말하는 '준호'라는 이름.
"규정 위반 징계 절차를 시작하겠습니다. 당신은 72시간 내에 저승으로 복귀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준호는—"
석현이 말을 뱉었다. 그 순간 그는 이미 졌다. 자신이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지를 드러냈으니까.
강석준의 입가에 미세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 아이의 이름을 어떻게 아십니까?"
침묵.
"미련 등록 카드에 있습니다."
강석준이 저승 기기를 거두며 던진 말이었다.
박옥희는 아들과 회사 사람 사이의 대화를 더 이상 듣지 않았다. 조용히 거실에서 물러나갔고, 그 뒷모습은 뭔가를 알아버린 할머니의 것이었다.
―
밤 11시 30분.
강석준이 떠난 후 침실에서 석현의 핸드폰이 울렸다. 저승에서의 공식 통보였다.
**[이명희 부장 → 석현]** **규정 위반 징계 절차 1단계 완료.** **2단계 준비 중.** **현생 체류 시간 초과로 인한 빙의 신체 쇠약 진행 중.** **현재 생명력 78%.**
석현의 손이 떨렸다. 이미 느껴지고 있었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 저승 공무원이 현생에 오래 머물면 그 신체가 점진적으로 죽어간다는 규정이 작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메시지는 이상했다. 부장이 왜 이 상황을 계속 방치했는지, 그 이유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석현이 이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처럼.
준호를 다시 현생으로 불렀다. 아이는 눈이 빨개 있었다.
"아빠, 나 저승 가기 싫어."
"준호—"
"아빠가 거짓말을 했어. 엄마한테도, 할머니한테도."
준호가 울었다. 투명한 눈물이 투명한 볼을 타고 흘렀다.
"그리고 아빠, 너 죽어가고 있어."
7살 아이가 본 것은 무엇인가. 석현은 거울을 봤다. 자신의 손이 반투명하게 변해 있었다. 저승 공무원의 신체가 현생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침실 문이 열렸다.
이수진이 나왔다. 아내의 얼굴은 창백했다.
"너… 정말 뭐하는 거야?"
"이수진—"
"핸드폰을 봤어. 준호 준호 준호… 계속 검색하고 있더라. 그리고 아까 그 사람이 뭐라고 한 거야?"
이수진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희미했지만 단호했다.
"혹시 너 준호를 만나고 있는 거야?"
"아니야."
"거짓말하지 마."
이수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6개월 전부터 억눌려온 그리움이 그 목소리 속에 있었다.
"혹시 준호가… 여기 있는 거야?"
석현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침실 벽이 희미하게 빛났다. 저승에서 신호가 오고 있었다. 강석준이 계속 추적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아빠."
준호의 목소리가 거실에서 났다. 아이는 투명한 손으로 소파 팔걸이를 잡고 있었다. 아까 박옥희가 본 그 손가락이었다.
"엄마가 나를 봤어?"
"아니야, 준호. 엄마는 너를—"
이수진이 움직였다. 그녀는 준호 쪽으로 손을 뻗었다. 투명한 아이를 만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손은 계속 뻗어졌다. 유령의 아들을 붙잡고 싶은 모성은 규정도 차원도 뚫어버렸다.
손이 준호의 몸을 통과했다.
온기가 없었다. 저항이 없었다. 손가락이 아이의 투명한 가슴을 헤쳐 나갔다. 그 순간 이수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의 입술이 떨렸다. 숨이 끊어질 듯 가슴이 철렁했다.
"아… 아이고…"
아내는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 순간 온몸이 경직되었다가 풀렸다. 마치 6개월 동안 얼어붙어 있던 몸이 처음으로 해동되는 것 같았다.
"준호… 준호가 여기 있었어? 자기 엄마 곁에 있었어?"
"네, 엄마."
준호가 말했다. 아이는 어머니의 머리 위에 투명한 손을 올렸다. 닿지 않는 손으로, 엄마의 머리를 쓸어올렸다.
"나 여기 있어. 계속 여기 있었어."
이수진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 울음은 처음에는 작았다. 하지만 점점 커졌다. 6개월 동안 억눌러온 울음이 모두 쏟아져 나왔다. 어깨가 들썩였다. 손가락이 떨렸다. 목에서 나오는 소리는 거의 신음에 가까웠다.
"우리 준호… 우리 준호…"
이수진의 손이 공중을 헤맸다. 아이를 붙잡고 싶었지만, 붙잡을 수 없었다. 그 좌절감이 더 큰 울음을 만들었다. 손가락이 준호의 투명한 몸을 몇 번이나 헛되이 통과했다. 닿을 수 없는 아들. 만질 수 없는 아이. 그 절망이 온몸을 흔들었다.
"미안해… 미안해… 엄마가 몰라줘서…"
석현의 핸드폰이 울렸다. 저승에서의 공식 통보였다.
**[이명희 부장 → 석현]** **규정 위반 징계 절차 1단계 완료.** **2단계 준비 중.** **현생 체류 시간 초과로 인한 빙의 신체 쇠약 진행 중.** **현재 생명력 78%.**
석현이 화면을 내려다봤을 때, 손가락이 점점 더 반투명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준호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처럼, 아이도 현생에서 사라져가고 있었다.
"아빠, 우리 저승 가야 돼?"
준호가 물었다. 아이의 목소리는 작았다.
"아니야. 아직 아니야."
"거짓말이잖아."
아이가 맞았다. 거짓말이었다. 72시간 안에 저승으로 가지 않으면, 석현의 신체는 완전히 죽을 것이다. 그리고 준호는 영원히 현생에 묶여 있을 것이다. 미처리 사건이 되어, 아버지도 아들도 아무도 구원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수진이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그녀의 눈은 붉고 젖어 있었다. 눈물이 계속 흘렀다.
"너 뭐야? 뭐가 돼 있어? 너 진짜 내 남편이야?"
"이수진…"
"그리고 준호는? 준호가 정말로 여기 있는 거야? 지금까지 우리 집에 있었던 거야?"
석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천 년을 규정으로만 살아온 공무원이 처음으로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규정 대 감정, 의무 대 사랑이 충돌하는 그 지점에서.
박옥희가 거실로 나왔다. 시어머니는 준호의 존재를 본 것처럼 보였고, 또한 본 것이 아닌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소파 팔걸이를 향해 있었다.
"아들, 넌 지금 뭘 하는 거야?"
"할머니—"
"네가 뭘 숨기고 있든, 그게 뭘 하려고 하는 거든, 이건 너 혼자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박옥희의 목소리는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손자를 지키려는, 아들을 지키려는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저 아이…"
박옥희가 준호를 보지 않으면서도 준호 쪽을 가리켰다. 그녀는 정확히 아이가 있는 위치를 알고 있었다. 아까 거실에서 본 투명한 손가락. 그리고 강석준이 말한 '준호'라는 이름. 모든 조각이 맞춰졌다. 할머니의 직관이 아니라, 이제 그녀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 아이가 뭘 원하는 건데, 넌 그렇게 괴로워하고 있어?"
준호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할머니, 나… 아빠랑 엄마랑 평범한 아침을 맞이하고 싶어."
침묵이 거실을 감쌌다. 7살 아이의 소원은 단순했고, 그래서 더 무거웠다.
"72시간 안에 우리 뭘 할 수 있어?"
준호가 다시 물었다.
"아빠, 그 시간 안에 우리 뭘 할 수 있어?"
석현은 아이를 봤다. 투명한 아이의 손가락이 자신의 셔츠 단추를 다시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 손가락도 이제 희미해지고 있었다. 아버지처럼, 아이도 현생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석현은 침실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저승과의 통신 채널을 열었다. 강석준의 추적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규정을 우회할 방법은 있을 수도 있었다.
그는 저승 공무원 김은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천 년을 함께 근무해온 동료였다. 저승 감시망의 사각지대를 아는 사람이었다.
**[석현 → 김은철]** **현생에서 72시간을 버티는 동안 감시망 신호를 약화시킬 수 있나?**
메시지를 보낸 후, 석현은 이명희 부장과의 협상을 생각했다. 규정은 절대적이지만, 규정을 집행하는 사람은 절대적이지 않았다. 부장이 왜 이 상황을 계속 방치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했다. 그리고 그 이유 속에 72시간을 버틸 수 있는 실마리가 있을 수도 있었다.
72시간.
그 시간 안에 석현은 모든 것을 선택해야 한다.
준호를 저승으로 보내거나, 자신을 저승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규정 자체를 부숴버리거나.
하지만 이제 그는 알았다.
천 년을 저승에서 봐온 규정들이 실제로는, 누군가의 절망을 처리하기 위한 절차일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절망 속에서 준호는 여전히 투명한 손가락으로 석현의 셔츠 단추를 잡고 있었다. 약해져가는 손가락으로, 아버지를 놓지 않으려고.
밤 11시 47분.
저승 감시망의 알람이 또 울렸다. 그리고 김은철의 회신이 들어왔다. 침묵이 아니었다. 거부도 동의도 아닌, 뭔가 다른 것이었다.
**[김은철 → 석현]** **그럴 수 없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