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저승에서 돌아온 석현의 입에서 첫 번째 말은 "당신은 침착하셔야 합니다"였다.

강석준 과장이 책상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얼굴은 무표정이었지만, 손가락이 책상을 두드리고 있었다. 드르르르. 규정을 어길 때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었다. 천 년을 그 소리와 함께 살았다.

"현생에서 뭘 했습니까, 석현?"

"회계 정산입니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감시망이 떴습니다. 준호라는 유령. 7살. 사망 6개월. 미련 등록 상태."

석현의 목이 경직되었다. 준호의 이름이 저승 시스템에 떴다는 것은, 그 아이가 공식적으로 '처리 대상'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규정 제47조를 알지 않습니까? 유령과의 감정 교감은 3단계 위반입니다. 현생 송출 조력은 5단계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 왜 했습니까?"

석현은 대답할 수 없었다. 준호의 투명한 손가락이 자신의 셔츠 단추를 잡던 감각이 손가락에 남아 있었다. 그걸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강석준이 일어섰다. "부장님께 보고하겠습니다. 당신은 현생에 계속 있되, 감시 상태에 들어갑니다. 빙의 신체 강제 회수까지 72시간입니다."

돌아가는 길, 석현은 현생의 시간이 저승의 시간과 다르다는 것을 다시 생각했다. 저승에서 몇 분은 현생에서 몇 시간이 되기도, 몇 초가 되기도 했다. 준호는 지금 거실에서 혼자 있을 것이다. 투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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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통과해 현생으로 돌아왔을 때, 아파트는 고요했다. 거실의 TV는 꺼져 있었고, 침실에서는 이수진의 자는 숨소리가 들렸다. 밤은 깊었다.

"준호?"

"아버지!"

투명한 아이가 소파 뒤에서 나타났다. 준호는 달려와 석현의 다리에 안겼다. 투명한 팔이 석현의 종아리를 감쌌다. 손가락이 차가웠다.

"오래 있었어?"

"네. 엄마랑 언니가 거실 들어왔을 때 무서워서 숨었어요. 아버지 언제 올 줄 알고 기다렸어요."

석현은 준호를 안아 들었다. 아이는 거의 무게가 없었다. 저승 공무원의 팔에 안긴 유령의 무게는 측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규정이 있단다. 너는 저승으로 가야 한다."

"싫어요."

"규정이니까."

"싫어요! 아버지가 자꾸만 슬퍼해요. 아버지 눈이 자꾸만 물어요."

준호가 석현의 얼굴을 들었다. 투명한 손가락이 석현의 뺨을 만졌다.

"아버지, 나 때문에 아버지가 슬퍼하는 거 아니에요? 아버지가 나 때문에 죽은 거 아니고?"

석현은 준호의 눈을 봤다. 투명한 눈빛 속에는 질문이 아니라 간청이 있었다.

"아니다. 절대 아니다."

"정말요?"

"응. 그건 아버지의 실수일 뿐이야. 너의 탓이 아니다."

준호가 석현의 셔츠를 집었다.

"그럼 아버지가... 아버지 자신을 용서해 줄래요? 그럼 나도 괜찮을 것 같아요. 아버지가 나를 용서하고, 아버지가 아버지를 용서하면... 내가 저승 가도 괜찮을 것 같아요."

석현의 가슴이 철렁했다.

"한 가지만 해줄래요? 진짜 한 가지만. 우리 함께 밥 먹어요. 엄마처럼. 아버지가 밥 먹을 때 나도 옆에 앉아서 숟가락 들고 있을래요. 그럼... 아버지가 덜 슬플까요?"

석현은 준호의 얼굴을 봤다. 투명한 얼굴이었지만 눈빛은 분명했다. 그것은 저승 규정이 아무것도 아닐 만큼의 진지함이었다.

"좋다. 그럼 내일 아침에 함께 밥을 먹자."

준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투명한 아이의 웃음소리는 거실 전체에 울렸다. 석현의 가슴이 철렁했다. 이것이 규정 위반의 시작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준호의 웃음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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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석현은 이준석의 신체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무거웠다. 저승 업무를 거의 하지 않은 첫 밤이었다. 대신 그는 준호와 함께 거실 소파에 누워 천장을 봤다. 투명한 아이는 '아버지, 저거 뭐예요?'라며 천장의 스프링클러를 가리켰고, 석현은 '화재 경보 장치'라고 대답했다. 그게 대화의 전부였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현생의 시간은 느렸다. 저승의 업무 시간과는 달리, 현생의 아침은 길었다.

석현은 주방으로 갔다. 냉장고를 열었다. 계란, 밥, 된장국의 재료들이 있었다. 이준석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천 년을 규정으로만 살아온 손이 계란을 깨고, 밥을 담았다.

"준호?"

투명한 아이가 부엌 문에서 나타났다. 준호는 침대에서 나와 석현을 따라다녔다.

"밥 준비하고 있다. 밥상 앞에 앉아라."

준호는 의자에 올라앉았다. 투명한 엉덩이가 의자에 닿지 않았지만, 아이는 마치 앉아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석현이 밥과 계란, 된장국을 담아 밥상을 차렸다. 밥상은 한 사람 분량이었다. 준호는 투명했으니까.

"이제 먹어."

준호가 숟가락을 들었다. 투명한 손가락이 숟가락을 잡았다. 아이는 밥을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물론 밥은 투명한 입 안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밥은 공중에서 멈췄다. 하지만 준호는 먹는 척했다. 아버지와 함께 식탁에 앉아 먹는 척했다.

석현은 자신의 밥을 집었다. 한 숟가락. 두 숟가락.

그리고 웃음이 나왔다.

천 년을 살면서 한 번도 나오지 않던 웃음이었다. 목구멍에서 울려 나온 그 소리는 규정도 없고, 의미도 없고, 효율도 없는 것이었다. 석현의 호흡이 변했다. 어깨가 들썩였다. 투명한 아이가 공중의 밥을 입으로 가져가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아버지가 웃었어! 아버지 웃음 봤어!"

준호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손뼉을 쳤다. 투명한 손이 투명하게 쳤다.

"조용히 해. 엄마가 깬다."

"미안해요. 근데 아버지 진짜 웃었어요. 진짜!"

석현은 밥을 계속 먹었다. 마음이 이상했다. 가슴이 부풀었다. 이것이 감정이라는 건가. 천 년을 저승 공무원으로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감각이 몸을 훑고 지나갔다.

침실 문이 열렸다. 이수진이 나왔다.

"준석이? 벌써 일어났어?"

석현은 빨리 앞을 봤다. 준호는 의자에서 사라졌다. 아이는 주방 모서리로 몸을 숨겼다.

"응. 아침이라서."

이수진은 석현의 얼굴을 봤다. 그리고 밥상을 봤다. 밥상 앞에 의자가 하나 더 놓여 있었다. 준호를 위한 의자.

"너... 혼자 밥 먹어?"

"응."

"왜 의자를 두 개..."

"습관이다."

이수진은 밥상 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눈이 의자에 머물렀다. 그리고 남편의 얼굴로 돌아왔다. 석현은 밥을 먹었다. 한 숟가락. 두 숟가락. 입을 다물었다.

"준석이... 너 괜찮아?"

"괜찮다."

"요즘 이상해. 진짜."

"이상한 게 뭐가 있어?"

이수진은 밥상 옆에 앉았다. 그녀의 눈은 울었던 흔적이 있었다. 아침부터 울었던 것 같았다.

"준호 얘기를 자꾸 해. 아침에 일어나면 준호, 밤에 자기 전에 준호. 그리고 어제는 거실에서 혼잣말을 하더라. '준호, 아버지가 너를 본다'고."

석현의 손이 멈췄다.

"그리고 이 의자... 왜 의자가 두 개야?"

"먹고 싶으니까 놨다."

"혼자는 안 돼?"

"응."

이수진이 한숨을 쉬었다. 길고 깊은 한숨이었다. 그녀는 남편을 바라봤다. 그리고 두 개의 의자, 남편의 떨리는 손, 준호라는 이름을 반복하는 입술을 모두 봤다. 아, 저 사람이 준호를 본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사람이 우리 아들을 보고 있다는 것을.

"너도 준호를 그리워하는 거지? 나처럼?"

석현은 대답할 수 없었다. 준호는 주방 모서리에서 엄마를 보고 있었다. 투명한 손가락이 벽을 집고 있었다.

"그렇다면... 좋아. 우리 함께 그리워하자. 나 혼자만 슬퍼하는 것보다, 우리 함께 슬퍼하자. 그게 낫지 않을까?"

이수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밥상 앞에 앉은 남편의 손을 잡았다.

"나 한 가지만 할래. 준호 생각할 때... 그냥 울어. 나한테 보여줘. 나 혼자 우는 것보다 우리 함께 우는 게 나을 것 같아."

석현은 이수진의 손을 봤다. 따뜻했다. 살아 있는 손이었다.

"알겠다."

"정말?"

"응."

이수진이 밥상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 밥 먹고 회사 가. 너는 요즘 회사 안 나가니까... 준호 생각하면서 있어."

석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수진이 침실로 돌아갔다. 준호가 주방 모서리에서 나왔다.

"아버지, 엄마한테 나한테 들킬까봐 무서웠어."

"엄마는 너를 볼 수 없다."

"근데 아버지 말 들으면서... 나 있는 거 알 것 같아요."

석현은 준호를 안아 들었다. 투명한 아이를 가슴에 안았다. 규정을 어기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감정을 멈출 수 없었다.

"괜찮다. 엄마는 아버지가 너를 사랑한다는 걸 알면 된다.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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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12시】

박옥희가 들어왔다.

"준석아, 나 왔어."

"어머니, 안녕하세요."

박옥희는 신발을 벗으며 거실을 둘러봤다. 정돈된 거실, 밥상이 놓인 식탁. 그리고 남편 옆의 빈 의자.

"너 밥을 혼자 먹어?"

"예."

"그럼 왜 의자가 두 개야?"

"습관입니다."

박옥희는 소파에 앉았다. 눈은 계속 식탁의 빈 의자에 머물렀다. 거실 구석에서 준호가 나타났다. 아이는 할머니 옆에 서 있었다. 투명한 손이 할머니의 어깨를 만지려 했지만 닿지 않았다.

"너 요즘 준호 얘기를 자꾸 하더라."

"그렇습니까?"

"응. '준호가 이걸 좋아했는데', '준호가 저 만화를 봤는데'. 너 우울증인 거 아냐?"

석현은 입을 다물었다.

"준호를 그리워하는 건 정상입니다."

"그건 알지. 근데 너 뭔가... 이상해. 내가 안다니까. 엄마가 아들을 모를 리가."

박옥희는 일어섰다. 거실을 다시 둘러봤다. 소파, TV, 벽장. 그리고 공중의 어딘가.

"너 혼자가 아니지? 여기 누가 더 있지?"

석현의 호흡이 가빠졌다. 규정을 어겼다. 준호를 현생에 너무 오래 두었다. 감시망에 들릴 것이다.

"아무도 없습니다."

"거짓말하지 마. 엄마 눈을 속이지 못한다. 너 준호 때문에 이러는 거지? 준호가 자꾸 들어와? 너 그래서 의자를 두 개 놓고, 밥을 두 개 준비하고..."

박옥희의 눈이 흔들렸다. 그 눈빛에는 의심이 아니라 소원이 담겨 있었다. 손자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이 집에 손자가 있다면.

"할머니..."

"아니. 말하지 마. 나 모르고 싶어. 넌 준호를 계속 여기 두고 싶은 거지? 그럼 그렇게 해. 엄마는 모를 거야."

박옥희는 거실에서 돌아섰다. 침실로 가려고 발을 옮기다 멈췄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근데 준석아. 준호 때문에 뭔가 잘못되는 일은 없겠지?"

"없습니다."

"거짓말하지 마."

석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 자체가 답이었다. 박옥희는 침실로 들어갔다. 준호는 할머니가 간 방향을 바라봤다.

"할머니가 나 있는 거 알았어?"

"모를 것이다."

"근데 할머니가 나 그리워하는 것 같았어. 아버지처럼."

석현은 준호를 저승으로 보내야 했다. 규정을 어길 수 없었다. 하지만 72시간이 남아 있었다. 감시망이 떠도 아직 강제 회수까지는 시간이 있었다. 석현은 준호의 손을 잡았다.

"조금만 더 있자. 아버지가 너를 이해해 줄 테니까. 아버지가 아버지를 용서할 테니까."

준호는 아버지를 바라봤다. 투명한 눈에는 희망이 있었다.

"정말요?"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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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은 어두웠다.

석현이 준호를 거실 앞에 놓고 저승으로 내려간 후, 석현은 재정과세청 사무실로 돌아갔다. 책상 위에는 업무 서류가 쌓여 있었다. 현생 회계사 이준석의 월급 정산, 저승 사망자 명부 정리, 환생 자격 심사 서류.

천 년 동안 하던 일이었다.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숫자가 떨렸다.

석현은 미련 등록 카드를 찾아냈다. 준호의 이름이 적힌 초록색 카드.

【미련 등록 카드】 이름: 이준호 (7세) 사망일: 2024.01.14 미련 사유: 아버지가 자신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용서했으면 좋겠습니다. 미련 해소 예상 기한: 미정 현재 상태: 현생 체류 중 (규정 위반)

석현의 손이 떨렸다.

준호의 진정한 소원은 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는 것이 아니었다. 준호의 진정한 소원은 아버지가 자신의 죽음을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알아주는 것이었다. 졸음운전은 아버지의 실수였지만, 그 실수로 죽은 자신을 아버지가 용서하고, 아버지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현생에서 그것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버지가 아들의 손을 잡고 있었다. 아버지가 아들을 안고 있었다. 아버지가 아들을 용서하고 있었다.

석현은 카드를 들었다. 손가락이 글씨 위를 훑었다. 투명한 손가락으로 쓰인 그 글씨는 7살 아이의 글씨였다. 어눌하고, 흔들리고, 진심으로 가득 찬.

그 순간, 저승 감시망이 울렸다.

삐릭. 삐릭. 삐릭.

석현의 책상 옆에 빨간 불이 떴다. 【미련 등록 대상 현생 체류 시간 초과】.

강석준 과장이 나타났다. 얼굴은 무표정이었지만, 손가락이 책상을 두드렸다. 드르르르.

"72시간이 지났습니다. 빙의 신체를 회수하겠습니다."

"잠깐만요."

"규정입니다."

석현은 강석준을 봤다. 그리고 미련 카드를 들었다.

"준호의 미련이 해소되고 있습니다."

"아직입니다. 미련 해소는 환생 직전에 확정됩니다."

"현생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용서하고 있습니다."

강석준은 말을 삼켰다. 그 순간, 미련 카드가 반짝였다. 초록색이 옅어지고 있었다.

"미련이... 해소되고 있네요."

"네."

"그렇다면 규정 위반은..."

"미련 해소 과정에서의 필요한 조치였습니다."

강석준은 카드를 봤다. 초록색이 완전히 사라지고 있었다. 아이의 글씨가 흐릿해지고 있었다. 준호의 미련이 현생에서 완성되고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환생 절차를 진행하겠습니다. 다만 이 사건은 기록에 남을 것입니다."

강석준이 사라졌다. 석현은 남겨진 카드를 들었다. 이제 거의 흰색이 되어가는 카드.

현생에서 준호는 아버지의 팔 안에서 빛이 되어가고 있을 것이었다. 아버지의 용서가 아들의 미련을 녹이고 있을 것이었다.

그 순간, 석현의 가슴이 철렁했다.

현생의 시간과 저승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다시 생각했다. 저승에서 몇 분은 현생에서 몇 시간이 될 수도, 몇 초가 될 수도 있었다.

준호가 저승으로 내려가고 있는 지금, 현생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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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이수진은 회사에서 돌아왔을 때, 거실에서 남편이 혼자 앉아 있는 것을 봤다. 밥상 앞에. 빈 의자 옆에.

"준석이?"

석현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준호가... 가버렸어."

이수진은 밥상 앞에 앉았다. 그 빈 의자를 봤다.

"그래. 가야지. 그게 맞지."

"미안해."

"뭐가?"

"너를 혼자 두고..."

이수진은 남편의 손을 잡았다.

"넌 혼자가 아니야. 나도 여기 있잖아. 우리 함께 그리워하자. 나 혼자만 슬퍼하는 것보다, 우리 함께 슬퍼하자."

석현은 이수진을 봤다. 그 눈에는 눈물이 있었다.

"고마워."

"뭐가?"

"준호를 그리워해 줘서."

이수진은 남편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앉았다. 빈 의자 옆에. 투명한 아이가 남겨간 자리에.

박옥희는 침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거실에 앉은 두 사람을 봤다. 그리고 빈 의자를 봤다.

"준호가 가버렸구나."

"네, 어머니."

박옥희는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함께 빈 의자를 봤다. 할머니, 엄마, 아버지. 셋이 함께 투명한 아이가 남겨간 자리를 바라봤다.

"잘 가렴, 준호."

박옥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잘 가렴, 우리 손자."

그 순간, 석현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미지의 번호가 떠 있었다. 저승 번호였다. 강석준이 아닌 다른 번호.

석현은 전화를 받았다.

"이석현 공무원입니까?"

낮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석현은 그 목소리를 알았다. 저승 재정과세청 부장 이명희.

"예, 부장님."

"규정 위반 건으로 내일 오후 2시에 징계 심사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장소는 저승 재정과세청 회의실입니다."

전화가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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