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저승공무원의 현생 육아일지 1화

눈을 떴을 때 세상이 흐릿했다.

석현은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손이 침구에 닿지 않았다. 다시 시도했다. 손가락이 베개를 통과했다. 투명했다. 자신의 손이 투명했다.

"뭐 하는 거야?"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침대 밑에 7살짜리 아이가 앉아 있었다. 투명했다. 흰 장판 위에 드리운 햇빛이 그 아이를 통과했다. 석현은 천 년을 저승에서 살면서 이 느낌을 잊은 적이 없었다. 유령. 명확했다.

상태 이상. 저승 공무원으로서 뇌는 즉시 분류를 시작했다.

"너 누구야?"

아이가 물었다.

"아빠 왜 이러세요?"

석현은 몸 전체를 내려다봤다. 손목에는 롤렉스가 있었다. 이준석의 것이었다. 침실의 벽에는 가족사진이 붙어 있었다. 아이, 여자, 그리고 한 남자가 함께 웃고 있었다. 그 남자의 얼굴과 자신의 시야가 일치했다.

빙의. 현생 육체 침입. 규정 위반. 1급 사고.

"일어나."

석현이 명령했다.

아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아빠가 날 못 봐?"

"보인다."

"진짜? 엄마, 할머니는 못 봐. 나 여기 있다고 해도 못 들어. 근데 아빠는 봐?"

아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손가락이 투명한 채로 움직였다. 침대 끝자락까지 나아와 석현의 셔츠 단추를 잡았다. 손가락이 직물과 만났다. 접촉이 있었다. 유령이 현생 물체를 조작했다.

"이름이 뭐야?"

"석현."

"아니, 아빠 이름."

"이준석."

아이는 웃음을 터뜨렸다. 투명한 입이 벌어졌다. 웃음소리는 들렸다. 현생의 음파가 진동했다. 현실이 아니었다. 그런데 손가락은 계속 단추를 잡고 있었다.

"내 이름은 준호야. 나 이제 여기 있는 거 알아도 돼?"

석현은 아이의 손을 내려다봤다. 셔츠에 남은 손자국이 없었다. 투명한 손이 투명하게 스쳐갔을 뿐. 하지만 감각은 분명했다.

천 년을 저승에서 근무하며 규정에 따라 처리해온 수백만의 유령들. 그들 중 누구도 현생 물체를 이렇게 오래 잡지 않았다. 누구도 이렇게 밝지 않았다.

석현의 심장이 요동쳤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천 년을 외워온 규정이 혀 끝에서 맴돌다가 사라졌다. 말을 잇지 못했다.

"미련 등록 대상인가."

석현이 간신히 중얼거렸다. 그것도 거짓이었다. 준호는 미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뭔가였다.

"뭐?"

"아무것도 아니다."

석현은 침대에서 내려왔다. 현생의 감각이 낯설었다. 무게가 있었다. 심장이 뛰었다. 1급 사고를 낸 지 한 시간도 안 되어 현생 육체의 신호를 받고 있었다. 저승 감시망이 곧 울릴 것이었다.

"아빠, 내일도 만날 수 있어?"

준호가 따라왔다. 투명한 발이 바닥을 밟지 않아도 옆에 있었다. 유령의 이동 방식이었다.

"현생 규정상 유령은 저승으로 송출되어야 한다."

"뭐라고?"

"미련을 정리한 후 환생해야 한다."

"나 환생 안 해. 아빠 곁에 있고 싶어. 아빠 혼자 슬퍼해. 밤에 울어."

석현은 거실로 나갔다. 창밖은 서울 강남의 아파트 숲이었다. 검은 도시. 회색 콘크리트. 현생은 저승보다 훨씬 복잡했다.

거실의 소파에 누군가 누워 있었다. 침실 벽에 붙어 있던 사진과 같은 여자. 눈은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에는 아이의 사진이 들려 있었다. 얼굴에 눈물이 있었다.

준호가 엄마 옆에 앉았다. 투명한 손이 엄마의 머리카락 위를 지나갔다. 닿지 않았다. 통과했다.

"엄마, 나 여기 있어. 괜찮아. 아빠가 날 봐. 아빠가 날 봤어."

준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석현의 귀에만.

엄마는 울음을 참았다. 입술이 떨렸다. 가슴이 오목하게 들어갔다.

준호가 돌아봤다. 투명한 눈이 석현을 찾았다.

"아빠, 내일도 만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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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 재정과세청의 감시실.

모니터 화면에 붉은 신호가 떠올랐다. 과장 강석준은 한 손에 커피잔을 들고 있다가 신호음에 고개를 들었다.

"석현?"

강석준이 중얼거렸다. 직원 중 한 명이 모니터 앞으로 다가왔다.

"현생 신호 감지. 감정 수치 상승 중입니다."

"감정?"

"네. 미련 신호와 교감 신호가 동시에 포착되었습니다."

강석준은 커피잔을 책상에 내려놨다. 천 년 동안 석현의 기록 속에는 이런 신호가 없었다. 석현은 기계처럼 규정을 따랐고, 유령과의 감정 교감 따위는 일어날 수 없는 공무원이었다.

"위치 추적."

"강남구 역삼동 아파트 구간입니다. 이준석 주거지로 추정됩니다."

강석준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준석은 현생 회계사였다. 3일 전 석현이 빙의된 신체. 신체 빙의는 긴급 상황에서만 허가되는 절차인데, 석현이 왜 그 신체에 남아 있는 것인가?

강석준은 부장실 방향을 바라봤다.

"부장님께 보고하겠습니다."

직원이 말했다. 강석준은 손을 들었다.

"기다려. 더 감시하자."

그 말은 거짓이었다. 강석준은 이미 확실했다. 석현이 규정을 어기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부장 이명희에게 보고하면, 석현은 끝이라는 것도.

---

현생으로 돌아온 석현은 저승의 신호를 받을 수 없었다. 저승 공무원이 현생에 빙의되면, 저승과의 신호 수신은 자동으로 차단된다. 그것이 규정이었다.

석현은 침실로 들어갔다. 이준석의 아내는 여전히 사진을 들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 7살 때의 얼굴.

"준호를 놔줘야 하나?"

석현이 중얼거렸다. 아내는 반응하지 않았다.

준호가 엄마 옆에 앉아 있었다. 투명한 손이 엄마의 얼굴 위를 맴돌았다. 닿을 수 없는 거리. 유령과 현생의 경계.

"미련을 정리해야 한다."

석현이 말했다.

"뭐?"

"너의 아버지가 자책하고 있다. 너는 그 자책을 해소해야 한다."

"어떻게?"

석현은 침대 끝에 앉았다. 현생의 침구는 무겁고 따뜻했다. 저승의 침대는 차갑고 투명했다.

"너는 아버지에게 전해야 한다. 너는 아버지를 용서한다는 것을."

"아빠가 들을 수 있어?"

"못 들었다."

석현은 아내를 바라봤다. 준호의 엄마. 이준석의 아내. 극심한 우울증 상태로 보였다.

"하지만 느낄 수는 있다."

석현이 말했다. 그 말이 누구를 위한 말인지는 자신도 몰랐다.

"내일 뭐 할 거야?"

준호가 물었다.

"학교에 가자."

"근데 나 죽었잖아. 학교 못 가."

"유령도 갈 수 있다."

석현이 대답했다. 그것은 규정이 아니었다. 규정 위반이었다.

"내일 아침에 함께 가자. 학교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르고, 너가 좋아하는 것을 사 먹자. 그리고 학교에서 너의 친구들을 보자."

"정말?"

준호의 투명한 얼굴이 밝아졌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정말이다."

석현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현생의 몸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저승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만 뒤로 물러났다.

---

다음 날 아침.

석현은 이준석의 딸 지영을 깨웠다. 11살 여자아이. 침대에서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아빠? 오늘 뭐 하는 거야? 일요일인데."

"학교에 간다."

"뭐? 갑자기?"

지영은 의아해했다. 아버지가 요즘 이상했다.

"아빠, 너 누구야?"

지영이 물었다. 진지한 눈빛이었다.

석현은 지영을 바라봤다. 11살 여자아이. 현생에서 태어난 아이. 그런데 그 눈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뭔가 다르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아버지다."

"아니야. 아빠 아니야. 우리 아빠 아니야."

지영이 침대에서 내려와 뒤로 물러났다. 거실의 불빛이 석현의 얼굴을 비췄다.

"뭐라고?"

"모르겠지만... 뭔가 이상해. 아빠 목소리도 다르고, 눈도 다르고... 표정도."

지영이 한 발씩 물러났다.

"기분 탓이다."

"아니야!"

지영이 외쳤다.

그 순간, 준호가 나타났다.

"언니! 나 여기 있어!"

준호가 지영에게 달려갔다. 투명한 손이 지영의 팔을 잡으려 했다. 통과했다.

지영은 소름이 돋았다. 찬바람이 팔을 스쳤다.

"뭐... 뭐야?"

"지영아, 진정해."

석현이 말했다. 규정을 어기는 말이었다.

"내 형이 여기 있다."

지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눈물이 나왔다. 입술이 떨렸다.

"준호? 형? 준호 형이?"

"응, 나 여기 있어. 언니, 나 여기 있어!"

준호가 자신의 투명한 손을 흔들었다.

"형, 미안해. 형 때문에 엄마가..."

지영의 목소리가 끊겼다.

"나 때문이 아니야. 나 때문이 아니야, 언니."

준호가 반복했다. 투명한 손이 공중에서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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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 재정과세청.

강석준의 모니터에 신호가 다시 떠올랐다. 붉은색에서 주황색으로 변했다. 감정 수치가 더 올라갔다. 새로운 신호가 나타났다.

"현생 인물과의 접촉 신호입니다."

직원이 보고했다.

"미련 신호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현재 2인 이상의 현생 인물이 유령과 상호작용 중입니다."

강석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이 상황은 이미 2급 규정 위반을 넘어 1급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강석준은 부장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이명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석준이 문을 열었을 때, 이명희는 이미 그 신호를 보고 있었다. 모니터 화면에 붉게 떠오른 석현의 신호. 감정 수치의 그래프. 현생 인물 접촉 기록.

"규정 위반이 확정되었습니다."

강석준이 말했다.

"그렇군."

이명희가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석현을 소환하겠습니다."

"아직이다."

"부장님?"

"저것을 더 보자. 미련 신호가 어디까지 퍼질 것인지. 그것이 석현에게 어떤 선택을 하도록 할 것인지."

이명희가 모니터를 바라봤다. 화면 속 석현은 현생에서 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투명한 준호는 자신의 언니를 안으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천 년을 규정으로만 살아온 공무원이 처음으로 규정을 벗어나려 한다."

이명희가 중얼거렸다.

"모든 규정 위반 기록을 저장하거라. 그리고 준비해라. 내가 현생에 내려갈 시간이 올 것이다."

강석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부장의 그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규정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태워버리려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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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의 강남 아파트.

침실에서 거실로 나온 이수진이 멈춰 섰다. 남편이 11살 딸과 무언가를 나누고 있었다. 지영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공허했다.

"뭐 하는 거야?"

이수진이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엄마."

지영이 돌아봤다.

"형이... 형이 여기 있어."

이수진의 얼굴이 굳었다. 남편은 침묵했다. 지영은 공중을 가리켰다.

"뭐라는 거야?"

"준호가 여기 있어. 죽었는데 여기 있어. 아빠가 봤대."

이수진의 무릎이 흔들렸다. 남편이 손을 뻗었다.

"당신 뭐 하는 거야? 아이한테 뭐라고..."

"사실이다."

석현이 말했다.

"준호는 여기 있다. 아직도."

이수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준호의 사진을 들고 있던 손이 떨어졌다. 사진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 순간, 거실의 벽에서 빛이 나타났다. 저승으로 가는 통로. 골든핑거의 신호. 석현이 저승에서 소환되고 있었다.

"아빠!"

준호가 외쳤다.

"가지 마! 아빠 가지 마!"

투명한 손이 석현의 팔을 잡으려 했다. 통과했다.

석현은 손을 내려다봤다. 준호의 손가락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손목을 스쳤다. 차가운 온도. 유령의 온기. 그것이 사라지고 있었다.

"미안하다."

석현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 미안하지 않았다. 미련했다. 아직도 여기 있고 싶었다.

석현이 벽으로 들어갔다. 투명한 손가락이 마지막으로 공중에 떨어졌다.

그리고 현생은 조용해졌다.

준호는 혼자 남겨졌다. 투명하고, 외로워 보였다. 엄마와 언니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준호는 거기 있었다. 아직도.

이수진은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사진을 집어 들었다. 7살 준호의 밝은 미소. 손가락이 사진 위에서 멈췄다. 그 순간 손목에 차가운 감촉이 스쳤다. 숨이 멎었다. 눈물이 흘렀다. 손가락 끝이 따뜻해졌다. 아이다. 준호다. 여기 있다.

기쁨과 공포가 뒤섞였다. 죽은 아이를 붙잡아야 한다는 욕망. 그리고 아이를 놓아줘야 한다는 죄책감. 모성적 본능이 깨어났다. 아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죽었지만, 아직도 여기 있다는 것을.

"준호?"

이수진이 공중을 향해 속삭였다.

"엄마 여기 있어. 엄마가 여기 있으니까..."

손가락이 공중에서 맴돌았다. 아무것도 만지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 차가운 것이 손등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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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 재정과세청의 심문실.

석현은 의자에 앉혀 있었다. 이명희가 책상 건너편에 앉아 있었다. 그 사이에는 규정 위반 기록이 쌓여 있었다.

"천 년 무결의 기록이 무너지는 순간이군."

이명희가 말했다.

"규정을 어겼습니다."

석현이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흔들리고 있었다. 손가락이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현생에 오래 있었던 대가. 영혼이 약해지고 있었다.

"그렇다. 그리고 이제 선택해야 한다. 규정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그 아이를 지킬 것인가."

이명희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둘 다 지킬 수는 없다."

석현의 손이 떨렸다. 손가락이 계속 투명해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저승 강제송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규정 위반의 대가는 존재 자체의 소멸. 영혼이 저승에 묶이지 않으면 흩어진다.

"제 선택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석현이 말했다.

"그렇다면 말해보게."

이명희가 기다렸다.

석현은 입을 열었다. 그 순간, 현생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준호의 울음소리. 엄마를 부르는 목소리. 언니를 부르는 목소리. 그 목소리가 저승까지 울려 퍼졌다.

"그 아이를 지키겠습니다."

석현이 말했다.

"규정을 어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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