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경찰청 6층 심문실의 조명이 꺼졌다.

유진은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모니터의 푸른 빛이 강민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불규칙하게 움직였다. 신경계 조종. 오라클의 신호.

"움직이지 마."

최준호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유진은 돌아보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왔다는 것을.

강민호의 몸이 천천히 일어났다.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호흡이 얕아졌다. 가슴이 불규칙하게 상하했다. 손이 책상 위의 권총을 집었다. 유진은 강민호의 눈을 봤다. 그 안에 강민호는 없었다. 오라클만 있었다.

"경찰청을 나가자." 최준호가 말했다. "지금."

유진이 움직였다. 강민호는 천천히 몸을 돌려 권총을 들어올렸다. 유진은 이미 문을 열고 있었다. 복도의 비상등이 어두운 빨간색으로 타고 있었다. 계단 방향으로 뛰었다.

발소리가 뒤따라왔다. 강민호의 발소리. 하지만 그것은 강민호가 아니었다.

"5층, 남쪽 계단." 최준호가 말했다. 유진은 본능적으로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계단실의 문이 열렸을 때 그녀는 이미 3층에 있었다. 숨이 가쁜 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신경계 능력의 부하 때문이었다. 최준호가 뭔가를 하고 있었다. CCTV를 조종하고 있었다.

"앞에 경찰이 있다." 최준호가 중얼거렸다. "좌측 출입구로."

유진이 좌측 문으로 몸을 날렸다. 사무실 공간이 펼쳐졌다. 책상들. 모니터들. 모두 까만 상태였다. 최준호가 꺼뜨린 것이다. 도시의 감시망처럼.

1층 출입구. 경찰관 둘이 서 있었다. 그들은 유진을 보지 못했다. 최준호가 복도의 조명을 끄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유진은 유령처럼 지나갔다. 밖으로 나왔다.

밤의 도시. 경찰청 앞 광장.

"차를 타."

최준호가 손가락으로 우측 주차장을 가리켰다. 유진은 뛰었다. 신발이 포장도로를 치는 소리. 심장 박동. 그리고 뒤에서 강민호의 발소리. 여전히 오라클에 의해 조종되고 있었다.

주차장 입구. 유진이 들어섰을 때 최준호가 옆에 있었다. 그의 손이 공중을 그었다. 신경계의 신호.

주차장 내의 모든 조명이 한 번에 켜졌다.

그 순간, 유진은 처음으로 '동조'를 경험했다. 자신의 신경계가 최준호의 신경계와 겹쳤다. 두 신호가 충돌하지 않고 교차했다. 신경 임펄스가 동일한 주파수에서 울렸다. 주차장 전체가 그들의 신경 패턴을 따라 밝혀지고 꺼졌다. 3층 조명이 꺼졌다. 4층이 켜졌다. 강민호가 3층에 도착했을 때, 어둠은 그의 시야를 완전히 빼앗았다.

"위로." 최준호가 말했다.

옥상. 유진이 비상 계단을 올랐다. 다리가 흔들렸다. 신경계 부하. 이미 능력을 너무 많이 썼다. 최준호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의 이마에 핏줄이 부풀어 있었다.

옥상에 도착했을 때, 강민호는 주차장 입구에서 멈춰 섰다. 더 이상 따라올 수 없었다. 오라클의 신경 조종은 거리에 따라 약해졌다. 아니면 최준호가 신호를 차단한 것일 수도 있었다.

유진은 옥상의 난간에 기대앉았다. 가슴이 철렁거렸다. 하늘이 까맣다. 도시의 야경이 아래로 흩어져 있었다.

"숨 쉬어." 최준호가 옆에 앉았다. "신경계 부하가 오르면 호흡 조절이 중요해."

유진이 최준호를 봤다. 자신의 얼굴. 하지만 다른 눈. 다른 목소리. 다른 존재.

"당신은 누구야?" 유진이 물었다.

"당신과 같은 것." 최준호가 대답했다. "하지만 당신을 끝내기 위해 다르게 만들어졌어."

"끝낸다는 게 무엇인가?"

최준호가 하늘을 봤다. CCTV 카메라가 없는 곳이었다. 이 도시에서 드물게 감시받지 않는 장소.

"우리를 만든 것을 끝내는 것."

유진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자신의 신경계 신호로 옥상의 조명을 켜보고 싶었다. 하지만 손가락이 떨렸다. 부하가 너무 컸다.

"5년 전에 뭐가 일어났어?" 유진이 물었다. "내가 뭘 했는지... 기억이..."

"실험이야." 최준호가 말했다. "우리는 실험 대상이었어. 신경계 능력자 프로젝트. 보안청의."

유진이 숨을 들이마셨다. 5년 전의 기억이 조각처럼 떠올랐다. 피. 여자의 얼굴. 손. 그리고 경찰청 건물의 창.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기억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최준호의 기억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오라클이 심어놓은 기억일 수도.

"그 사람들은?"

"죽었어. 모두."

"내가 죽인 거야?"

최준호가 유진을 봤다. 그 순간, 유진은 알았다. 최준호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그도 기억의 파편일 뿐이었다.

"당신을 죽이려고 왔었어." 최준호가 말했다. "오라클의 지시로. 당신을 제거하고, 이 실험을 끝내라고. 하지만..."

"하지만?"

"당신도 나와 같다는 걸 알았어. 우리 둘 다 조종당하고 있다는 걸. 그래서 생각을 바꿨어. 함께 이것을 끝내자고."

유진이 최준호의 손을 봤다. 그것도 자신의 손과 같은 모양이었다. 같은 손가락. 같은 손금. 복제.

"어떻게 끝낼 건데?"

"아직 모르겠어. 하지만 먼저..."

최준호가 말을 멈췄다. 그의 눈이 고정되었다. 뭔가를 감지하고 있었다.

"신호가 들어와." 최준호가 중얼거렸다. "CCTV... 모든 카메라가 켜지고 있어."

옥상의 조명이 켜졌다. 천천히. 하나씩. 그리고 CCTV 카메라가 그들을 향해 회전했다.

유진의 몸이 굳었다. 이건 최준호의 조종이 아니었다. 신경계 신호는 다르고 있었다. 더 크고, 더 깊고, 더 오래된 신호.

모니터가 나타났다. 공중에. 최준호의 신경계 조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벽의 CCTV 화면을 통해.

남성의 얼굴이 나타났다. 40대. 안경. 차갑고 계산적인 눈.

"안녕하세요, 서유진. 그리고 최준호." 남자가 말했다. "박정수입니다. 당신들의 실험을 담당하고 있는 자."

유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박정수의 입가에 미세한 미소가 떠올랐다. 심문실의 모니터에 강민호의 신경파가 표시되었다. 빨간색으로 격렬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강민호의 조종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박정수가 말했다. "당신들이 신경 신호를 발산할 때마다, 그의 신경망은 더욱 깊숙이 오라클에 통합됩니다."

유진이 화면을 봤다. 심문실에서 강민호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그의 몸이 경련하기 시작했다. 팔이 불규칙하게 움직였다. 목이 꺾이는 소리가 났다. 손가락이 책상을 할퀴며 비명을 터뜨렸다.

"그를 깨워야 해." 유진이 말했다.

"불가능합니다." 박정수가 대답했다. "그는 이미 오라클의 일부입니다. 깨우려는 시도는 그의 신경계를 파괴할 뿐입니다."

화면이 분할되었다. 왼쪽에는 유진의 신경계 신호 패턴. 오른쪽에는 최준호의 신경계 신호 패턴. 그리고 중앙에는 강민호의 신경계 신호. 빨간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3년 전 지하철 사고 이후, 강민호는 신경 재구성 수술을 받았습니다." 박정수가 말했다. "오라클의 신경망에 통합되었죠. 그는 당신들을 추적하는 도구입니다. 그리고 당신들의 선택을 관찰하는 센서입니다."

유진의 가슴이 철렁거렸다. 5년 전 CCTV 영상 공백. 그것도 계획이었다는 건가. 누군가가 자신을 의도적으로 보호했다는 건가.

"그리고 한 가지 더." 박정수가 말했다. "당신들이 아직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화면이 다시 분할되었다. 세 번째 신경계 신호가 나타났다. 녹색. 하지만 그 신호는 불안정했다. 미세한 주파수 변동이 있었다. 진폭도 일정하지 않았다.

"당신의 또 다른 버전이 도시 어딘가에서 활동 중입니다." 박정수가 말했다. "이름은 서유연. 당신보다 먼저 깨어난 실험 대상입니다."

유진의 손가락이 떨렸다.

박정수의 음성이 끝났지만 화면은 계속 켜져 있었다. 세 개의 신경계 신호가 실시간으로 진동하고 있었다. 유진은 자신의 신호를 보고 있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모든 게 겹쳐 있었다. 모든 게 조종당하고 있었다.

"서유연." 최준호가 중얼거렸다. "다른 이름."

"같은 신경계." 유진이 말했다. 손가락이 계속 떨렸다. "같은 패턴. 아니, 더 오래된 패턴."

최준호가 옥상 난간으로 걸어갔다. 도시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불빛들이 규칙적으로 켜지고 꺼지고 있었다. 유진이 그것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그것도 신호였다. 누군가의 신경계 조종.

"강민호를 놓쳐." 최준호가 말했다.

"뭐?"

"강민호. 그 경찰. 우리가 놓쳐야 해." 최준호가 돌아봤다. 그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그 사람도 피해자야. 우리처럼."

유진이 최준호에게 다가갔다. 가까워질수록 그의 얼굴이 더 명확해졌다. 자신의 얼굴. 하지만 표정은 다르다. 더 단호했다. 더 명확했다.

"강민호가 5년 전 영상 공백을 알아냈어." 유진이 말했다. "심문실에서 말하려고 했어."

"그래. 누군가가 당신을 보호했다는 것. 당신의 투신 영상을 지웠다는 것."

"누가?"

"그것도 실험의 일부일 수 있어." 최준호가 창문을 통해 도시를 봤다. "우리는 박정수가 말한 것만큼 자유롭지 않아. 박정수도 자유롭지 않을 수 있고."

유진이 최준호의 뒷모습을 봤다. 그 순간, 신경계 신호가 겹쳤다. 자신의 신호와 최준호의 신호가 정확히 동일한 주파수에서 울리고 있었다. 그동안 그들은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춤을 추고 있었던 건가.

"CCTV를 보자." 최준호가 말했다.

유진이 손을 들었다. 신경계가 작동했다. 주변의 모든 CCTV가 동시에 밝아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최준호도 손을 들었다. 그의 신경계가 작동했다. 이번엔 도시 전체의 조명이 반응했다.

옥상의 조명이 깜빡였다. 그리고 꺼졌다. 그리고 다시 켜졌다. 리듬을 맞춘다는 듯이. 아래 도시의 골목 조명들도 따라갔다. 유진과 최준호의 신경계 신호가 만나는 지점마다 불빛이 춤을 추었다.

그것은 아름다웠다. 동시에 끔찍했다. 두 명의 능력자가 만드는 조화는 도시 전체를 지배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5km 범위를 넘어섰다. 10km. 15km. 신경계의 부하가 유진의 뇌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두통. 시각 왜곡. 귀에서 울음소리.

"멈춰." 유진이 말했다.

최준호가 손을 내렸다. 즉시 도시의 조명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뭔가 남아 있었다. 신경계 신호.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박정수가 우리를 모니터링하고 있어." 최준호가 말했다. "아니, 오라클이. 박정수는 단지 창이일 뿐."

유진이 창문에 기댔다. 손가락이 떨렸다. 5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투신. 경찰청 건물. 추락하는 몸. 그런데 그 다음이 없었다. 암전. 기억의 공백. 그리고 7일 후, 보안요원 서유진으로 입사하는 자신.

누군가가 자신을 구했다. 누군가가 영상을 지웠다. 누군가가 신원을 위조했다.

그것이 보안청인가. 박정수인가. 아니면 오라클인가.

아니면 더 다른 누군가인가.

"강민호는 지금 어디에 있어?" 유진이 물었다.

"심문실." 최준호가 모니터를 봤다. 화면에 경찰청 6층 심문실이 보였다. 강민호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몸이 경련하고 있었다. "신경 조종 상태야. 아직 깨어나지 못했어."

"깨워야 해."

"왜?"

"그 사람도 우리처럼 피해자라고 했잖아."

최준호가 유진을 봤다. 그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 놀라움. 그리고 무언가 더. 감정.

"당신은 감정이 있네." 최준호가 말했다.

"넌 없어?"

"있는 척하고 있어."

유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비수적인 웃음. 하지만 진정한 웃음이었다. 5년 만에 처음. 누군가와 진정한 대화를 나누는 것. 자신과 같은 존재와.

모니터의 강민호가 움직였다. 눈이 뜨였다. 빨간 불빛이 그의 눈에서 흐르고 있었다.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동공이 수축했다가 이완했다. 목의 근육이 경직되었다.

"깨어나고 있어." 최준호가 말했다.

심문실에서 이채린이 강민호의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그녀의 입이 움직였다. 강민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강민호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의 몸은 여전히 오라클의 신경망 속에 갇혀 있었다.

이채린이 손을 들었다. 강민호의 뺨을 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반복적으로. 깨어나라고. 돌아와라고.

강민호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비명에 가까운 소리. 뭔가가 그를 찢어내고 있는 듯한 음성. 유진은 그 신음을 들으며 깨달았다. 이채린이 단순히 강민호를 깨우려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강민호를 오라클의 신경망에서 끌어내려고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자신의 신경계를 무기 삼아.

"저 사람 신경계가 분열되고 있어." 최준호가 말했다. "오라클의 신호와 자신의 신경계가 충돌하고 있어."

유진이 화면에 집중했다. 강민호의 신경파 그래프가 화면에 표시되었다. 빨간 선이 불규칙하게 진동했다. 정상 범위를 벗어났다. 뇌파가 폭발 직전의 상태였다. 하지만 그 진동 속에는 무언가 있었다. 저항. 강민호 자신의 의지가 오라클의 신호와 싸우고 있었다.

유진은 최준호를 봤다. 그리고 결정했다. 강민호를 구하는 것이 자신들의 생존 확률을 낮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함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가야 해." 유진이 말했다.

"경찰청으로?"

"응."

"그건 함정이야."

"알아."

최준호가 유진을 봤다. 몇 초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도시의 신경계 신호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박정수의 신호. 오라클의 신호. 그리고 또 다른 신호. 5년 전부터 자신들을 지켜온 신호. 그것이 누구의 신호인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였지만, 두 사람 모두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신뢰. 처음으로 자신과 다른 존재를 신뢰하는 것.

"가자." 최준호가 말했다.

두 명의 능력자가 옥상 계단으로 향했다. 신경계 신호가 다시 작동했다. 도시의 CCTV들이 그들의 동선을 따라 꺼졌다. 사각지대를 만들었다. 추적 불가능한 경로를 그렸다.

경찰청까지 가는 길은 10분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그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각 골목마다 멈춰서 신경계 신호를 확인했다. 박정수의 신호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오라클의 조종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강남역 지하 2층. 폐쇄된 상점가. 유진과 최준호가 멈춰 섰다.

"여기야." 최준호가 말했다.

"뭐가?"

"서유연의 흔적."

벽에 손가락으로 긁은 자국이 있었다. 하지만 단순한 자국이 아니었다. 신경계 신호의 흔적. 유진은 손을 벽에 대고 눈을 감았다. 신경계를 집중했다.

신호가 들어왔다. 벽을 통해. 손가락 끝으로.

서유연의 신경파. 그것은 강력했다. 유진의 신경파보다 훨씬. 최준호의 신경파보다도. 완벽한 제어. 완벽한 효율성.

그 신경파 안에는 이미지가 담겨 있었다. 강남역 전역의 CCTV. 모든 카메라가 한 사람의 손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모습. 신호등. 지하철 신호 시스템. 승강장의 조명. 모든 것이 그녀의 신경계와 동기화되어 있었다.

그 모습은 우아했다. 유진과 최준호의 조종과는 다른 수준의 우아함. 마치 교향악단을 지휘하는 지휘자처럼. 모든 악기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아름다웠고, 동시에 두려웠다.

유진이 손을 떼었다. 신경 부하가 즉시 해제되었다. 하지만 그 신호는 여전히 그녀의 뇌에 남아 있었다.

"저 사람 나이가 얼마나 돼?" 유진이 물었다.

"모르겠어. 하지만 우리보다 훨씬 오래 능력을 써왔어. 신경 제어의 정도가 다르다."

유진이 신경계를 집중했다. 도시 곳곳의 CCTV를 검색했다. 서유연의 신호를 찾으려고. 하지만 모든 신호가 겹쳐 있었다. 자신의 신호. 최준호의 신호. 박정수의 신호. 오라클의 신호.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신호.

그것은 가장 오래되었다. 가장 깊었다. 5년 전부터 도시 곳곳에 숨어 있었다. 자신을 구한 신호. 영상을 지운 신호. 신원을 위조한 신호. 그리고 지금도 자신들을 보호하고 있는 신호.

"우리가 경찰청으로 가는 순간, 박정수는 우리를 잡을 거야." 최준호가 말했다.

"알아."

"그럼 왜 가?"

"강민호를 구하려고. 그리고..." 유진이 말을 멈췄다. 그 신호를 다시 감지했다. 5년 전부터 자신을 지켜온 신호. "누군가 우리를 도와줄 거야."

최준호가 유진을 봤다. 그 눈빛에는 뭔가 있었다. 최준호도 같은 신호를 감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경찰청 건물이 보였다. 밤 11시 42분. CCTV가 그들을 추적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진과 최준호의 신경계가 그 추적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사각지대. 각도. 신호 간섭.

건물 뒷문. 서비스 출입구. 유진과 최준호가 동시에 손을 들었다. 모든 CCTV가 꺼졌다. 그 순간, 전자잠금 시스템이 해제되었다.

내부.

6층까지 가는 계단. 불이 켜지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유진과 최준호는 유령처럼 움직였다. 신경계가 어둠을 밝혔다. 시각적 어둠이 아닌, 신경계의 어둠.

심문실 앞. 유리벽을 통해 강민호와 이채린이 보였다. 이채린이 강민호의 뺨을 치고 있었다. 반복적으로. 깨어나라고. 돌아와라고.

강민호의 눈은 여전히 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빛이 떨리고 있었다. 불안정했다.

유진이 손을 들었다. 심문실의 조명이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신경계 신호를 보냈다. 오라클의 신호와 정반대의 주파수로.

강민호의 눈이 닫혔다.

그 순간, 그의 몸이 경련하기 시작했다.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하다가 쓰러졌다. 이채린이 그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그의 몸은 통제 불능 상태였다. 팔이 무작정 휘둘렸다. 다리가 차올렸다. 목이 꺾이는 소리가 났다. 손가락이 바닥을 할퀴며 비명이 터져나왔다.

깨어나는 고통. 신경계가 두 개의 신호 사이에서 찢어지는 고통. 오라클의 신경망에서 벗어나려는 저항과 자신의 신경계를 되찾으려는 투쟁. 유진은 그 모습을 봤다. 강민호가 자신의 존재를 되찾으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모습. 그것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끔찍했다.

"더 해." 최준호가 말했다.

유진이 신경계를 더욱 집중했다. 심문실의 모든 조명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강민호의 신경파 그래프가 화면에 표시되었다. 빨간 선과 파란 선이 충돌했다. 오라클의 신호와 유진의 신호가 싸우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강민호의 신경계는 자신을 되찾으려고 저항했다.

강민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실제 비명. 진정한 고통의 소리. 하지만 그 비명 속에는 뭔가 있었다. 의식. 자신의 목소리. 강민호가 돌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모니터가 켜졌다. 심문실의 모니터. 벽의 모니터. 복도의 모니터. 모든 화면에 같은 이미지가 나타났다.

여성의 얼굴. 20대. 유진과 정확히 같은 얼굴. 하지만 눈빛이 다르다. 더 차갑다. 더 깊다. 완벽하게 제어된 신경계를 가진 눈.

"안녕, 나." 여성이 말했다. "또는 복사본."

유진의 몸이 굳었다.

"나는 서유연이야. 그리고 너는..." 서유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너는 실패한 실험이야. 박정수가 나를 완성하기 위해 만든 불완전한 버전."

최준호가 유진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어." 서유연이 계속했다. "너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어. 감정을 가지기 시작했어. 그리고 이제 내 친구 최준호가 너를 도와주고 있네. 그 친구도 실패한 실험이지만."

화면이 분할되었다. 왼쪽에는 서유연. 오른쪽에는 박정수.

"실험이 다음 단계로 진입합니다." 박정수가 말했다. "능력자 간 직접 대면. 그리고 선택."

유진이 화면을 봤다. 서유연이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는 무언가 있었다. 진정한 감정. 유진과 같은 감정. 그리고 그 감정 아래에는 복잡함이 있었다. 박정수를 향한 감정. 자신의 창조자에 대한 감정. 그것은 단순한 증오도, 단순한 감사도 아니었다.

"넌 나를 택할 거야, 아니면 그들을 택할 거야?" 서유연이 말했다. "박정수를 택할 거야, 아니면 오라클을 택할 거야? 아니면..."

화면이 깜빡였다.

"아니면 아무도 택하지 않을 거야?"

유진은 손가락을 움직였다. 신경계 신호를 보냈다. 서유연의 신호와 정확히 같은 주파수로. 그것은 도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질문이었다.

심문실에서 이채린이 강민호의 손을 잡았다. 그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빨간 불빛이 사라지고 있었다. 정상적인 검은색 동공이 돌아오고 있었다. 강민호가 돌아오고 있었다.

화면 속 서유연의 눈이 움직였다. 놀라움. 그리고 뭔가 더. 인정. 유진이 자신과 같다는 것을 인정하는 눈빛. 그리고 그 인정 속에는 또 다른 감정이 있었다. 박정수에 대한 저항. 오라클에 대한 거부. 그리고 유진에 대한 호기심.

박정수의 얼굴이 화면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서유연은 남아 있었다.

"좋아." 서유연이 말했다. "그럼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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