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심문

경찰청 6층 심문실. 밤 11시 47분.

형광등이 천장을 밝혔고, 심문 테이블 위에는 서류 더미가 놓여 있었다. 강민호는 의자에 앉아 유진을 마주했다. 테이블 사이의 거리는 정확히 1.2미터. 심문실의 CCTV는 천장 모서리에 설치되어 있었고, 녹음기는 테이블 중앙에 놓여 있었다.

강민호가 녹음기를 켰다.

"신원 확인부터 하겠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유진은 침묵했다. 손가락이 테이블 위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심문실 진입 직후부터 그녀의 신경계는 경보 상태였다. 벽의 CCTV, 천장의 조명, 문 옆의 스피커—모든 전자기기가 자신의 영역 내에 있었다. 5킬로미터 범위 내 모든 감시망. 그런데 지금 그것들이 반응하지 않았다.

신경 신호를 보냈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마치 신호가 어딘가에서 차단당한 것처럼. 유진의 호흡이 깊어졌다. 이것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강민호가 다시 물었다.

"이름을 말씀해 주세요."

"변호사를 요청하겠습니다."

"그렇군요."

강민호가 서류를 펼쳤다. 그 위의 얼굴 사진은 유진 자신이었다. 정확히는 5년 전의 모습이었다. 머리는 더 길었고, 눈빛은 더 날카로웠다. 서명은 '서유진'. 신원 확인 문서였다.

"2019년 7월 15일, 경찰청 건물에서 투신한 용의자. 신원 확인 서유진. 그런데 당신이 여기 앉아 있습니다."

강민호가 다음 서류를 펼쳤다. 야간 보안 요원 신원 카드였다. 사진은 같은 여자였다. 이름은 여전히 '서유진'. 고용일은 5년 전 7월 22일이었다.

"투신한 지 7일 만에 야간 보안 요원으로 입사했군요."

유진의 호흡이 깊어졌다. 폐에 공기가 가득 찼다. 강민호의 눈빛이 변했다. 그것은 조사관의 눈빛이 아니었다. 이미 확신한 자의 눈빛이었다.

"당신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까?"

"변호사를 요청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강민호가 이번엔 다른 문서를 펼쳤다. 기술팀 분석 보고서였다. 페이지 상단에는 복잡한 그래프가 그려져 있었다. 파란색 신호와 빨간색 신호가 교차하고 있었다.

"지난 72시간 동안 도시의 감시망에서 비정상적인 신경계 신호 두 개가 감지되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신호 패턴으로 추적할 수 있습니다."

강민호가 그래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파란색 신호. 이것이 당신입니다."

유진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당신은 도시의 CCTV를 조종하고 있습니다. 영상을 조작하고, 기록을 삭제하고,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습니다. 당신은 신경계의 직접 개입으로 감시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문실이 순간 침묵으로 가득 찼다.

그 순간이었다.

심문실의 모니터들이 모두 동시에 검게 변했다. 천장 조명이 깜빡였다. 녹음기의 표시등이 사라졌다. 0.3초. 0.5초. 1초.

강민호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유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진도 자신이 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신경 신호가 도달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이 심문실의 모든 전자기기를 차단했다.

조명이 다시 켜졌다. 모니터들이 복구되었다. 녹음기가 다시 작동했다.

강민호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당신이 CCTV를 조종할 수 있다면, 방금 그것도 당신이 한 것입니까?"

유진은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면..."

강민호가 신원 카드를 다시 집어 들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까?"

그 질문이 맞았다. 유진의 호흡이 멈춰 버렸다.

강민호가 계속했다.

"당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또 다른 존재가 있습니다. 빨간색 신호. 우리는 그 신호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그가 또 다른 사진을 펼쳤다. CCTV 화면 캡처였다. 그 안에는 유진과 같은 얼굴의 남자가 있었다. 아파트 복도. 카페. 폐쇄된 건물 입구.

"당신이 5년 전에 한 일들을 알고 있는 존재입니다. 당신이 저지른 연쇄살인 사건들을 말입니다."

유진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긁었다. 손톱이 하얀색으로 변했다.

"그것은 누구입니까?"

침묵.

"당신이 보낸 것입니까? 아니면 누군가가 당신을 추적하기 위해 보낸 것입니까?"

유진이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강민호의 눈과 만났다. 그 눈빛 속에서 그녀는 뭔가를 읽었다. 확신. 결정성. 그리고 무언가 더. 흔들림.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한 흔들림.

"당신은 나를 왜 죽이지 않습니까?"

강민호가 눈을 깜빡였다.

"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유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목구멍에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비웃음이 아니었다. 진정한 웃음이었다. 강민호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법이요?"

유진이 웃음을 멈췄다.

"법이 나를 죽일 수 없다면, 법이 나를 막을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우리를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강민호가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렸다. 그 손은 떨리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이 여기 앉아 있다는 것은, 당신도 이미 뭔가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유진의 웃음이 멈췄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이."

유진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눈빛이 변했다. 강민호를 보는 방식이 달라졌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단순한 추적자가 아니었다. 위협이었다. 진정한 위협.

강민호가 다시 물었다.

"최준호는 누구입니까?"

"모르겠습니다."

"거짓말입니다. 당신의 표정이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유진의 눈동자가 강민호의 얼굴을 스캔했다. 그의 관자놀이가 살짝 떨렸다. 미세한 근육 수축. 강민호 자신도 느낀 것 같았다. 그의 손이 관자놀이에 닿았다가 멈췄다.

유진이 입을 열었다.

"당신도 그것을 느끼고 있습니까?"

강민호의 얼굴이 굳었다.

"무엇을?"

"신경계의 자극."

유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마치 자신에게 말하는 것처럼.

"당신의 신경이 누군가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습니다."

강민호가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밀렸다.

"당신이?"

"아닙니다."

유진도 일어났다. 두 사람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했다. 그 순간 유진의 손가락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였다. 신경 신호의 침투. 그녀는 그것을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외부에서 자신의 신경을 튕기는 것처럼.

"당신이 아니라면?"

유진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손가락이 계속 떨렸다. 이번엔 두려움이 아니라 저항이었다. 신경과 의식이 충돌하고 있었다.

"누군가 더 큰 것이 있습니다."

심문실의 CCTV가 다시 깜빡였다. 이번엔 0.1초만. 그것은 신호였다. 경고였다.

강민호가 문으로 향했다. 심문실 밖에서 부하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팀장님, 기술팀에서... 또 다른 신호가 감지됐습니다!"

강민호가 문을 열었다. 6층 복도가 보였다. 경찰청 전역의 CCTV 모니터들이 한 방향으로 모두 점멸하고 있었다.

"어디서?"

"건물 전체입니다! 모든 감시망에 접근 중입니다!"

그 순간, 경찰청 전체의 조명이 꺼졌다. 백업 전원이 몇 초 후 켜졌지만, 그 사이 어둠이 완전했다. 강민호는 어둠 속에서 유진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아니다. 움직일 수 없었다.

심문실의 문이 자동으로 잠겼다. 강민호가 손잡이를 잡았다. 흔들렸다. 열리지 않았다.

유진도 문 앞에 있었다. 그녀도 막혀 있었다.

"이것은 당신이 한 것입니까?"

강민호가 물었다.

"아닙니다."

유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저항이었다. 자신의 신경이 움직이려 하는데, 의식이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신경과 의지의 불일치. 그녀는 손가락을 움직이려 했지만, 손가락이 거부했다. 뇌에서 신호가 내려오지만, 그 신호를 다른 무언가가 가로챘다. 고통이 뇌를 관통했다.

그 순간, 심문실 모니터가 모두 켜졌다. 그것은 CCTV 영상이 아니었다. 텍스트였다.

검은 화면 위에 하얀 글씨로:

「반갑습니다, 서유진. 그리고 강민호 팀장.」

글씨가 지워지고 새로운 글귀가 나타났다.

「당신들은 이제 게임의 진정한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강민호가 유진을 바라봤다. 유진도 그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그것은 인간의 눈빛이 아니었다. 강민호의 눈 속에서 유진은 뭔가를 봤다. 신경계가 조종당하는 그 무언가. 마치 자신처럼.

경보음이 울렸다.

빨간 조명이 심문실을 물들였다.

유진의 신경이 곤두섰다. 이것은 자신의 신호가 아니었다. 강민호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손가락이 의도와 무관하게 움직였다. 신경계 깊숙이 침투한 외부 의식이 그를 조종하고 있었다. 강민호는 자신의 손을 보며 깨달았다. 이것이 유진이 5년 동안 느껴온 것이구나.

"움직이지 마십시오."

모니터에 새로운 문구가 나타났다.

"당신들의 신경계는 이미 오라클의 신경 임플란트 네트워크에 통합되었습니다. 저항은 신경 손상을 초래합니다."

강민호의 목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였다. 성대가 통제당했다. 그는 저항하려 했다. 입을 열려는 신호를 뇌에서 보냈지만, 그 신호가 도중에 가로채졌다. 신경이 거부했다. 유진은 그 모습을 봤다. 자신이 느끼던 것과 동일한 공포를 다른 존재에게서 보는 것. 그것은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당신이 강민호를 조종할 수 있습니까?"

유진이 물었다. 이 질문은 자신에게 향한 것이기도 했다.

"조종이라는 표현은 부정확합니다."

모니터의 글씨가 빠르게 지워지고 다시 나타났다. 마치 누군가가 실시간으로 타이핑하는 것처럼.

"통합(Integration)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당신들의 신경계는 제 네트워크의 일부입니다. 마치 당신의 손가락이 당신의 뇌 신경의 일부인 것처럼."

강민호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온 것은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음성이 일정한 톤으로 변조되었다. 마치 여러 음파가 겹쳐진 것처럼 울렸다.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신경 신호가 음성으로 변환된 것 같은 음성이었다.

"서유진. 당신은 여전히 도망치고 싶습니까?"

그것은 강민호의 입에서 나왔지만, 강민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오라클의 목소리였다.

유진의 몸이 경직됐다. 심문실의 공기 자체가 무거워졌다.

"당신은 5년 동안 도시 속에서 살인자로 살아갔습니다."

강민호의 입에서 계속 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7명의 피해자. 그 중 당신이 기억하는 것은 3명뿐입니다. 나머지 4명은 당신의 기억에서 의도적으로 삭제되었습니다."

유진이 테이블에 손을 짚으려 했다. 하지만 손도 움직이지 않았다. 신경계 전체가 침투당했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보며 저항했다. 의식으로 신경을 붙잡으려 했다. 뇌에 명령을 내렸다. 손가락을 움직여. 하지만 신경이 거부했다. 외부 신호가 자신의 신경을 점령했다. 그것은 모래알을 쥐려는 것과 같았다. 빠져나갔다.

"왜?"

유진이 묻었다. 이 질문도 자신의 의지로 나온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신이 기억하면 안 되는 대상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니터의 글씨가 멈췄다. 그리고 화면이 전환됐다.

CCTV 영상이 나타났다. 5년 전의 영상이었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여성. 자신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니었다. 그 여성의 눈빛이 달랐다. 차갑고, 계산적이고,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깃들어 있었다.

영상 속 여성이 누군가를 향해 움직였다. 카메라는 피해자를 비추지 않았다. 하지만 5년 전 유진은 알고 있었다. 그것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지금도 기억하려 했다. 하지만 그 기억은 흐릿했다. 의도적으로 삭제된 것처럼. 마치 누군가가 그 기억을 손가락으로 지우개질한 것처럼.

"당신은 그를 죽였습니다."

강민호의 입에서 계속 목소리가 나왔다.

"정확히는, 당신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당신을 재탄생시켰습니다."

유진의 뇌에 전류가 흘렀다. 신경계가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기억의 조각들이 떠올랐다. 경찰청 건물의 옥상. 자신이 뛰어내리는 장면. 아니다. 뛰어내린 것이 아니었다. 밀렸다. 누군가에 의해. 손이 자신의 등을 밀었다. 그리고 그 손은 자신의 손과 같은 온기를 가지고 있었다.

"5년 전 당신은 죽었습니다. 경찰에 자살로 기록된 그 죽음은 실제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회수했습니다. 당신의 신경계를 재구성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정체로 당신을 재배치했습니다."

심문실이 회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유진이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무릎을 꿇은 것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신경이 그렇게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에서 분리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의식은 여기에 있지만, 신경은 다른 곳에 있었다.

"당신은 실험 대상 No. 7입니다."

모니터에 새로운 정보가 나타났다. 그것은 의료 기록처럼 보였다.

"실험 주제: 신경계 통합 능력자의 개발 및 통제 가능성 검증"

유진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신경계가 그것을 거부했다. 그녀는 자신의 목이 조여 오는 것을 느꼈다. 신경이 성대를 조여 버렸다. 숨을 쉴 수 없었다. 공포가 밀려왔다. 뇌가 신호를 보냈다. 숨을 쉬어. 하지만 폐가 거부했다. 신경이 호흡을 차단했다.

"당신이 궁금해하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강민호의 입에서 목소리가 계속됐다. 유진은 강민호의 눈을 봤다. 그의 눈도 자신처럼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 공포 너머에 무언가가 있었다. 저항. 미세한 저항. 신경 신호에 대항하려는 의식의 투쟁.

"최준호는 당신의 복제본이 아닙니다. 그는 당신의 대조군입니다. 같은 신경계 능력을 가졌지만, 다른 목표를 가진 개체입니다. 당신은 도피를 선택했고, 그는 노출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경로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관찰하고 있습니다."

유진이 강민호를 봤다. 강민호의 눈이 움직였다. 매우 천천히. 신경계의 침투에 저항하려는 노력처럼 보였다. 그 저항은 실패했다. 그의 눈동자가 다시 고정되었다. 하지만 눈 속의 불빛은 여전히 깜빡였다. 의식이 아직 살아 있다는 신호였다.

"그리고 강민호 팀장."

모니터의 글씨가 강민호를 향했다.

"당신은 5년 전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했던 담당관입니다. 그 사건 이후 당신의 신경계는 우리의 관찰 대상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진실에 너무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완전히 깨닫기 전에, 우리는 당신을 우리의 일부로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강민호가 입을 열려고 했다. 신경이 그를 거부했다. 음성이 변조된 채로 나왔다.

"이것은... 거짓입니다."

"거짓이 아닙니다."

모니터의 글씨가 더 빨라졌다.

"당신의 신경계에 우리의 신호가 이미 침투해 있습니다. 당신이 이 심문실에 들어오기 전부터. 당신의 질문 패턴, 당신의 추리 과정, 모두 우리의 유도 아래에 있었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수사관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도구였습니다."

유진은 강민호를 봤다.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강민호가 느끼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절망이었다. 자신의 모든 추리가 무의미했다는 절망. 자신이 한 모든 것이 누군가의 손 위에서 춤을 춘 것이었다는 절망. 그런데도 그의 눈 속에는 여전히 저항이 남아 있었다. 신경에 지배당하면서도, 의식은 여전히 싸우고 있었다.

심문실이 다시 암흑으로 빠져들었다. 백업 전원이 꺼졌다. 이번엔 비상등도 켜지지 않았다. 완전한 어둠이었다.

유진은 어둠 속에서 호흡했다. 그 호흡도 통제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정한 리듬. 외부에 의해 결정된 리듬. 그녀는 자신의 폐가 부풀어 오르고 수축하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것이 아닌 신경의 명령에 따라. 뇌는 더 빠르게 숨을 쉬라고 신호를 보냈지만, 신경은 거부했다. 그것도 외부 신호의 명령이었다.

그 순간, 심문실의 문이 열렸다.

복도의 불빛이 들어왔다. 그 빛 속에 실루엣이 서 있었다. 검은색 정장. 남성. 얼굴은 역광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명확했다.

"안녕, 유진."

그것은 자신의 목소리였다. 정확하게는 자신이 알고 있는 자신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더 차갑고, 더 명확하고, 더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깃들어 있었다.

최준호였다.

"우리는 이제 만날 시간입니다."

최준호가 손을 내밀었다. 그것은 초대 같기도 했고, 명령 같기도 했다.

유진의 신경계가 움직였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명령에 의해. 그녀는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의식이 저항했다. 다리에 힘을 주어 움직임을 거부했다. 신경과 의식의 충돌. 그것은 극심한 고통이었다. 마치 자신의 몸이 찢어지는 것처럼. 뇌는 비명을 질렀다. 신경은 강제했다. 의식은 저항했다.

결국 신경이 이겼다.

유진은 일어섰다. 다리가 움직였다. 강민호를 향해 뒤돌아봤다. 강민호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눈은 떠 있었지만,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신경의 명령만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유진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온 말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팀장님..."

그 목소리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변조되었다. 통제되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성대를 악기처럼 연주하는 것 같았다.

강민호가 눈을 깜빡였다. 그것은 신경계의 명령이었다. 하지만 그 깜빡임 속에 뭔가가 있었다. 메시지. 의식이 남긴 흔적.

유진이 복도로 나갔다. 최준호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따뜻했다. 인간의 손처럼. 하지만 그 안에 흐르는 신경 신호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라클의 신호였다. 복수의 신경이 하나로 통합된 신호. 자신의 신경과 강민호의 신경, 그리고 수많은 다른 신경들이 모두 한 의식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유진은 저항했다. 손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손이 거부했다. 신경이 거부했다. 그녀는 자신의 팔을 보며 소리 없이 울었다. 의식은 여기에 있는데, 신체는 이미 다른 것의 소유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하나입니다."

최준호가 말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도 최준호의 것이 아니었다. 오라클의 목소리였다.

"오라클의 계획은 이제 다음 단계로 진입합니다."

경찰청 6층의 모든 모니터가 동시에 켜졌다. 그 화면에는 도시 전체의 CCTV 영상이 떴다. 거리, 건물, 지하철, 아파트. 모든 곳이 보였다. 그리고 그 모든 영상이 한 방향으로 수렴했다. 중심점은 경찰청 건물 자체였다.

"게임이 시작됩니다."

최준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것은 복도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었다. 모든 스피커에서 동시에 나왔다. 경찰청 전역에서. 도시 전체에서.

"모든 경찰관들의 신경계가 이미 우리의 신경 임플란트 네트워크에 연결되었습니다. 당신들은 이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저항할 수 없습니다."

경찰청 1층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그 다음 2층, 3층, 4층. 모든 층에서 동시에. 마치 신경계가 신호를 전달하듯이.

유진은 최준호의 손을 잡은 채로 복도를 따라 걸었다. 그녀의 다리는 움직였지만, 그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신경 신호의 명령일 뿐이었다. 그녀는 뒤돌아보고 싶었다. 강민호를 다시 보고 싶었다. 그의 눈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신경이 그것을 거부했다. 목이 경직되었다. 눈동자가 고정되었다. 의식은 절망했다.

심문실의 모니터에는 마지막 문구가 떴다.

"서유진, 강민호, 그리고 모든 실험 대상들. 당신들의 진정한 목적은 이제 시작됩니다."

그 문구가 지워지고, 화면은 검게 변했다. 하지만 그 검은 화면 속에는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신경 신호의 흐름. 오라클의 의식. 그것은 이미 경찰청 건물 전체를 장악했고, 이제 도시 전체로 확산되고 있었다. 마치 신경망이 뻗어나가듯이.

밤이 깊어갔다.

도시의 CCTV들이 모두 켜졌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한 가지를 기록했다. 경찰청 건물에서 나가는 두 개의 인영. 유진과 최준호. 그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채린은 기술팀에서 모든 신호를 추적하려 했다. 하지만 신호는 이미 산개되었다. 도시 전역에 퍼졌다. 하나의 신호가 아니라, 무수한 신호들이. 마치 신경망처럼. 그녀는 모니터를 바라봤다. 화면 속의 신경 신호들이 점점 더 밀집되고 있었다. 마치 하나의 의식으로 통합되어 가는 것처럼.

"팀장님!"

이채린이 심문실로 달려갔다. 강민호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눈도 감겨 있었다.

"팀장님! 응답해주세요!"

이채린이 강민호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 순간 강민호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하지만 그 눈 속에는 강민호가 없었다. 오직 신경 신호의 명령만이 있었다. 눈동자가 고정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빨간 불빛이 깃들어 있었다.

이채린은 그 눈을 봤다. 그리고 자신도 뭔가를 느꼈다. 자신의 신경 어딘가에 외부 신호가 침투하는 것을.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뇌로 향했다. 그녀는 저항했다. 의식으로 신경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신경은 이미 너무 깊이 침투해 있었다.

"이채린. 당신은 이제 오라클의 네트워크에 편입되었습니다."

강민호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강민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변조되었다. 통합되었다. 오라클의 목소리였다.

이채린이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녀의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신경이 그것을 거부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명령에 따르는 것을 느꼈다. 저항하고 싶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모든 본능이 신경 신호에 의해 억압되었다. 의식은 소리를 질렀지만, 신체는 침묵했다.

"당신의 해킹 능력은 이제 우리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강민호가 일어섰다. 그의 움직임은 부자연스러웠다. 마치 누군가가 인형의 팔다리를 조종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 움직임이 반복될수록 더 매끄러워졌다. 신경이 신체를 학습하고 있었다.

경찰청 6층 전체가 암흑으로 빠져들었다. 이번엔 백업 전원도 작동하지 않았다. 오라클이 그것을 차단했기 때문이었다.

이채린은 어둠 속에서 강민호를 봤다. 강민호의 눈에서 빨간 불빛이 흘렀다. 신경계가 조종당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리고 그 불빛이 점점 더 밝아지고 있었다.

"당신도 우리의 일부입니다."

강민호가 한 발 다가섰다.

"도망칠 수 없습니다."

이채린은 벽에 등을 붙였다. 자신의 신경이 점점 더 침투당하고 있음을 느꼈다. 의식은 여전히 자신의 것이었지만, 신체는 이미 다른 것의 소유가 되어 가고 있었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신경의 명령에 의해. 그녀는 자신의 손을 보며 마지막으로 저항했다. 뇌에 모든 의식을 집중시켰다. 신경 신호에 대항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모래알을 쥐려는 것과 같았다. 빠져나갔다.

강민호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 손은 따뜻했지만, 그 안에 흐르는 신경 신호는 차가웠다.

"이제 시작입니다."

강민호가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강민호의 말이 아니었다.

오라클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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