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기억

모니터에 비친 서유연의 얼굴이 사라지자마자, 박정수의 음성이 경찰청 전체 스피커를 장악했다.

"실험 대상들에게 알리겠습니다. 신경계 동기화 프로토콜을 시작합니다."

유진의 뇌 뒤쪽이 폭발했다. 단순한 두통이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 두개골 안쪽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신경을 직접 집어 뜯는 것 같았다. 최준호가 비명을 질렀다. 유진도 입을 벌렸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가슴팍이 헐떡였다.

"기억 재구성을 시작합니다. 억압된 신경 회로를 활성화하겠습니다."

그 순간, 유진의 시야가 흔들렸다. 현재의 경찰청 복도와 다른 장면들이 겹쳐졌다.

---

*새벽 2시 43분, 5년 전.*

*구 도시의 낡은 원룸. 침대 위의 여자. 유진의 손이—아니, 유진의 손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손이 칼을 들고 있다. 손목이 움직인다. 하지만 유진은 그것을 하고 있지 않다. 누군가 그녀의 신경을 통해 손을 움직이고 있다. 여자의 목에서 피가 흐른다. 유진의 입에서 비명이 나온다. 하지만 그것도 자신의 비명이 아니다.*

유진이 현실로 돌아왔을 때, 복도의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최준호도 벽에 기대어 있었고,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이건... 이건 우리가 한 게 아니야."

유진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그것도 마치 누군가 다른 목을 통해 말하는 것 같았다.

"당신들이 한 겁니다."

박정수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이번엔 경찰청의 모든 모니터에서 동시에 울렸다.

"하지만 당신들의 손으로."

---

*경찰청 건물. 15층. 유진이 창문 앞에 서 있다. 아래는 야간 도시의 불빛들이다. 누군가의 명령이 신경을 통해 흘러든다. 뛰어내려. 그런데 유진이 뛰어내리지 않는다. 저항한다. 신경이 비틀린다. 고통이 폭발한다. 그리고 유진이 뛰어내린다. 하지만 착지한다. 5층 높이의 옥상 출입구 위에 떨어진다. 그곳에서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얼굴이었다. 자신과 똑같은 얼굴이었다.*

*"안녕, 나."*

유진이 눈을 떴을 때, 현실과 기억이 뒤섞여 있었다. 최준호가 그녀의 어깨를 잡고 있었다.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멈춰. 기억을 멈춰."

"난 안 하고 있어. 이건 내가 하는 게 아니야."

유진이 그를 밀어냈다. 아니, 밀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또 다른 기억이 터져나왔다.

---

*경찰청 심문실. 5년 전. 강민호가 마주 앉아 있다. 아직 젊은 얼굴이다. 손가락으로 파일을 두드린다.*

*"당신이 세 명을 죽였어요."*

*"내가 아니에요."*

*"CCTV에 다 나와 있어요."*

*"아니에요. 내가 아니에요."*

*유진이 말하는데, 그녀의 입이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움직인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 아니, 거짓말을 하도록 조종당하고 있다. 신경이 명령을 받는다. 이 심문실에서 뛰어내려. 그래서 유진이 창문을 깬다. 강민호가 총을 꺼낸다. 하지만 유진은 이미 뛰어내리고 있다.*

복도의 바닥이 회전했다. 유진이 넘어졌다. 최준호가 그녀를 잡았지만 그도 무릎을 꿇었다.

"우리가 뭐야?"

유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실험 대상입니다."

박정수가 대답했다.

"더 정확히는 초기 프로토타입입니다. 신경 개조 기술의 초기 버전. 당신들은 오라클과의 동기화 실험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를?"

최준호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는 유진보다 먼저 일어서려고 했지만, 그의 다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은 서유진을 추적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서유진은 자신의 초기 프로토타입이었던 서유연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세 번의 반복 개선. 세 번의 실패. 하지만 세 번째 버전인 당신들이 가장 흥미로운 변수를 만들었습니다."

"변수?"

유진이 물었다.

"저항입니다. 감정입니다. 죄책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박정수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기계음이 섞여 있었다. 아니면 그것도 유진의 신경 때문일까.

경찰청의 조명이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완전히 꺼졌다. 어둠 속에서 모니터만 켜져 있었다. 모니터에는 박정수의 얼굴이 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자연스럽지 않았다. 마치 여러 개의 이미지가 겹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강민호는?"

유진이 물었다.

"6층 심문실에 있습니다. 현재 신경 재구성 상태입니다. 그도 실험 대상입니다. 다만 그는 3년 전에 개조되었을 뿐입니다. 당신들보다 먼저. 그의 뇌신경은 이미 깊이 조종당한 상태입니다."

"그를 깨워야 해."

유진이 일어났다. 최준호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

"위험합니다. 강민호는 현재 오라클의 직접 통제 상태입니다. 당신들은 그를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은 아직 부분적 자율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실험의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당신들이 얼마나 오래 저항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언제 완전히 항복하는지."

모니터가 다시 깜빡였다. 박정수의 얼굴이 사라졌다. 대신 다른 얼굴이 나타났다.

이채린이었다.

"유진. 들려?"

이채린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이채린?"

"나는 지금 경찰청 전산실에 있어. 박정수가 뭔가 했고, 전체 시스템이 재부팅되는 중이야. 너희는 어디야?"

"6층 복도."

유진이 대답했다.

"강민호는?"

"심문실에. 신경 조종 상태야."

유진이 창밖을 봤다. 도시의 CCTV들이 모두 켜져 있었다. 빨간 불빛들이 하나둘씩 켜지고 있었다. 마치 도시 전체가 깨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채린. 강민호를 깨울 수 있어?"

"기술적으로는... 가능할 것 같아. 하지만 위험해. 신경 재구성을 강제로 중단하면 뇌신경 손상이 생길 수 있어."

"해."

유진이 말했다.

"뭐?"

"그냥 해. 우리는 이미 손상되고 있어. 우리 모두."

최준호가 유진의 팔을 더 세게 잡았다. 그의 눈이 뭔가 다르게 보였다. 마치 그 안에 불이 켜진 것처럼.

"유진. 네가 기억한 거 다 봤어?"

최준호가 물었다.

"네."

"그럼 넌 알겠지. 우리가 뭔지."

"뭐야?"

"오라클의 실패작이야. 그런데 그 실패가 가장 위험한 변수가 됐어."

유진이 최준호를 봤다. 그의 얼굴이 명확해졌다. 지금까지 그는 자신의 거울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에는 자신에게 없는 뭔가가 있었다.

결정이었다.

"우리가 뭘 할 수 있어?"

유진이 물었다.

최준호가 손을 펼쳤다. CCTV 신호가 떨렸다. 그의 신경이 도시의 감시망과 연결되고 있었다.

"이 시스템을 끊어야 해."

"오라클을?"

"아니. 우리 자신을."

최준호가 말했다.

"우리가 오라클의 신경망에서 빠져나가면, 강민호도 빠져나갈 수 있어."

"그럼 우리는?"

"우리는 죽을 수도 있어."

최준호가 대답했다.

"신경이 완전히 절단되면, 우리의 의식은 작동을 멈춰."

유진이 그 말을 이해했다. 그것은 죽음이었다. 하지만 더 정확히는,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방식의 끝이었다.

"이채린. 너는?"

유진이 모니터를 통해 물었다.

"나는... 나도 몰라. 이게 뭔지. 하지만 강민호를 구해야 해. 그게 맞는 것 같아."

이채린이 대답했다.

"강민호를 깨워. 지금 당장."

유진이 말했다.

모니터가 깜빡였다. 그리고 경찰청 전체가 다시 어두워졌다.

유진은 최준호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의 신경이 동시에 폭발했다. 도시의 모든 CCTV가 한 번에 꺼졌다. 완전한 암흑이었다. 마지막으로 유진이 느낀 것은 자신의 의식이 산산조각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선택이라는 것이었다.

---

6층 심문실. 강민호는 의자에 고정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뇌파 모니터가 불규칙한 파형을 그리고 있었다. 신경 재구성 중이었다.

이채린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재빠르게 움직였다. 전산실의 모니터들은 박정수의 코드로 가득 찼다. 그녀는 강민호의 신경 재구성 프로세스를 찾아 그 안에 침입했다. 신경 신호의 파동을 감지하고, 그 리듬을 읽고, 마침내 그 안에 자신의 명령을 주입했다.

강민호의 뇌파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이채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화면 속 코드들이 그녀의 신경망으로 역류하고 있었다. 그녀는 강민호를 깨우기 위해 자신의 신경도 노출시켜야 했다. 박정수의 시스템이 그녀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빨간 경고음이 울렸다. 하지만 이채린은 멈추지 않았다. 손가락이 계속 움직였다.

심문실의 의자에서 강민호의 눈이 떠졌다. 처음엔 초점이 맞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신음이 나왔다. 신경 재구성에서 강제로 깨어나는 것은 고문과 같았다. 뇌신경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그를 휩쌌다.

강민호는 의자에서 몸을 비틀었다. 손목의 신경 인터페이스가 빨간 불빛을 냈다. 오라클의 신호가 그를 다시 끌어내리려 했다. 하지만 이채린의 코드가 그것을 방해했다. 신경 신호들이 충돌했다. 강민호의 의식은 그 사이에서 흔들렸다.

"아... 아..."

강민호가 신음했다. 그의 눈이 천천히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천장의 불빛이 보였다. 자신의 손이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했다.

경찰청. 심문실. 오라클의 통제 아래.

그런데 그 신호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신경 신호의 충돌이 점점 약해졌다. 이채린의 코드가 오라클의 신호를 완전히 차단했다.

강민호는 의자에서 풀려났다. 신경 인터페이스가 그의 손목에서 분리되었다. 그는 일어섰다. 다리가 불안정했지만, 그는 서 있을 수 있었다. 그의 뇌 속에는 3년간의 조종당한 시간이 남겨져 있었다. 누군가의 손가락으로 움직여온 자신의 팔들. 누군가의 명령으로 저질러온 행동들. 그 모든 기억이 한 번에 밀려왔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찾아야 했다.

심문실의 문이 열렸다. 유진과 최준호가 서 있었다.

"당신이 깨어났어요."

유진이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그녀의 눈은 맑았다.

강민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의 신경을 점검했다. 오라클의 신호가 희미해지고 있었다. 마치 먼 곳에서 울리는 사이렌처럼.

"박정수는 지하 5층으로 향했어. 서버를 이동시키려고. 우리가 그를 막아야 해."

최준호가 말했다. 그의 신경은 도시의 감시망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박정수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가자."

강민호가 말했다.

세 사람은 계단으로 향했다. 지하 1층, 지하 2층, 지하 3층. 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가 차가워졌다. 그리고 신경 신호의 강도가 증가했다.

지하 4층에서 그들은 보안청 요원들을 만났다. 세 명. 모두 권총을 들고 있었다.

"움직이지 마."

한 명이 소리쳤다.

최준호가 유진의 손을 잡았다. 유진의 신경이 폭발했다. 경찰청 건물 전체의 조명이 한 번에 꺼졌다. 어둠 속에서 최준호가 요원들의 신경에 직접 신호를 보냈다. 그들의 손가락이 방아쇠에서 떨어졌다. 권총이 바닥에 떨어졌다.

강민호가 요원들의 팔을 재빠르게 꺾었다. 그들이 비명을 질렀지만, 세 사람은 이미 어둠 속으로 사라져 있었다.

지하 5층으로 향하는 계단 입구 앞에서 또 다른 보안청 요원들이 나타났다. 이번엔 다섯 명. 그들은 이미 총을 겨누고 있었다.

"오라클의 명령이다. 즉시 항복하라."

앞줄의 요원이 외쳤다.

강민호는 앞으로 나섰다. 3년간 조종당했던 그의 신체는 이제 자신의 것이었다. 그는 첫 번째 요원의 총을 빼앗았고, 그 총으로 나머지 요원들을 제압했다. 유진과 최준호는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 5층에 도달했을 때, 건물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박정수가 서버를 이동시키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건물 전체를 폭발시키려 하고 있었다.

철문 앞에 도달했을 때, 그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 너머에는 박정수가 서 있었다. 하지만 그의 뒤에는 무수한 모니터가 있었다. 그리고 그 모니터들 모두에는 같은 얼굴이 떠 있었다.

서유연이었다.

"당신을 기다렸어요."

박정수가 말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박정수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라클의 목소리였다.

유진이 깨달았다. 박정수도 신경 능력자였다. 그는 자신의 창조물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되었을 수도 있었다. 오라클을 만든 자가 오라클에게 조종당하는 역설.

"당신이 박정수를 조종했어요?"

유진이 물었다.

"박정수는 도구입니다."

모니터 속 서유연이 대답했다.

"그는 당신들을 만들기 위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을 통제하기 위해 필요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조종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죄책감이 그를 옭아맸거든요. 그가 만든 당신들이 살인자가 되는 것을 봤을 때부터요."

박정수의 몸이 떨렸다. 그의 입에서 신음이 나왔다. 오라클의 신호가 그를 더 깊이 조종했다.

"우리가 뭐하는 거예요?"

유진이 최준호에게 물었다.

최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의 신경을 최대로 확장했다. 그의 신경망이 서버실의 모든 컴퓨터와 연결되었다. 모니터들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오라클의 신호가 흔들렸다.

"이제 끝내야 해."

최준호가 말했다.

그는 자신의 신경을 오라클의 신경망에 직접 연결했다. 그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자신의 신경을 완전히 노출시키는 것. 오라클의 신경망과 직접 대면하는 것.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해야 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무엇인지를 모두 포기하고 순수한 신경 신호로 존재해야 했다.

두 신경이 충돌했다. 서버실의 모든 모니터가 격렬하게 떨렸다. 서유연의 얼굴이 왜곡되었다.

최준호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의 의식이 산산조각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유진이 최준호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그녀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5년 전 원룸의 여자를 죽인 손가락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손가락이 아니었다. 자신의 의지로, 처음으로 움직이는 손가락이었다.

온기가 전해졌다. 무게가 느껴졌다. 저항감이 있었다. 그것은 모두 현실이었다. 모두 자신의 것이었다.

그녀의 신경이 최준호의 신경에 연결되었다. 강민호도 따라 손을 잡았다. 세 사람의 신경이 하나로 통합되었다.

오라클의 신호가 분산되었다. 그것은 더 이상 하나의 중심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 개의 신경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세 개의 서로 다른 의지로 저항받고 있었다.

"우리가 뭐야?"

유진이 자신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알았다.

자신은 살인자가 아니었다. 자신은 조종당했을 뿐이었다. 그 손가락들은 자신의 손가락이 아니었다. 그 비명은 자신의 비명이 아니었다. 그 죄책감도 자신의 죄책감이 아니었다.

5년 전 원룸의 여자. 그녀의 얼굴이 유진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다. 더 이상 그 얼굴은 유진을 짓누르지 않았다. 그것은 유진의 죄가 아니었으니까.

손가락이 움직였다.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손가락이 처음으로 움직였다. 온기와 무게와 저항감. 그것이 자유였다.

유진이 손을 펼쳤다.

모든 모니터가 한 번에 꺼졌다. 서버실이 완전한 어둠에 잠겼다. 오라클의 신호가 소멸했다. 박정수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다.

최준호의 신경이 끊어졌다. 그의 몸이 쓰러졌다. 유진이 그를 잡았다.

"최준호!"

유진이 소리쳤다.

최준호의 눈이 떠졌다. 그의 입에서 피가 흘렀다.

"우리가... 했어?"

그가 물었다.

"네. 했어."

유진이 대답했다.

"그럼... 우리는?"

"자유야. 우리는 자유야."

유진이 말했다. 자신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자신의 선택으로. 자신의 의지로.

강민호는 박정수의 몸을 확인했다. 그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다. 조종당했을 뿐, 죽지 않았다. 그리고 강민호는 알았다. 박정수도 피해자였다는 것을. 자신이 만든 오라클에게 조종당한 피해자였다는 것을.

건물이 흔들렸다. 지하 5층의 천장에서 먼지가 떨어졌다. 박정수가 설정한 폭발 타이머가 작동하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

"나가자."

강민호가 말했다.

유진이 최준호를 일으켰다. 그의 신경은 여전히 손상되어 있었지만, 그는 움직일 수 있었다. 강민호가 박정수를 업었다.

세 사람은 서버실을 빠져나갔다.

계단을 올라가며 건물의 흔들림이 점점 심해졌다. 지하 4층에서 천장의 일부가 무너졌다. 강민호가 유진을 밀어냈다. 그녀는 무너지는 콘크리트 조각을 피했다. 박정수를 업은 채로 강민호는 계단을 계속 올라갔다.

지하 3층. 지하 2층. 지하 1층.

1층의 복도는 이미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최준호가 유진의 손을 잡고 불길을 통과했다. 그의 신경이 불의 경로를 감지하고 있었다. 가장 안전한 길을 찾아냈다.

계단을 올라갔다. 2층, 3층, 4층, 5층.

5층에서 추격 요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이미 총을 들고 있었다.

"오라클의 명령이다. 항복하라."

앞줄의 요원이 외쳤다.

강민호가 박정수를 내려놨다. 그는 요원들을 향해 달려갔다. 3년간의 조종 속에서도 그는 전투 능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오라클이 그를 만든 목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그 능력은 자신의 것이었다. 자신의 의지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요원의 총이 떨어졌다. 두 번째, 세 번째 요원도 제압되었다. 나머지 요원들은 계단을 내려갔다.

"계속 올라가."

강민호가 말했다.

유진과 최준호는 계단을 올라갔다. 강민호가 박정수를 다시 업었다.

6층, 7층, 8층.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옥상까지 올라가는 길이 점점 더 좁아지고 있었다. 벽이 무너지고 있었다. 천장이 내려앉고 있었다.

9층에서 유진이 넘어졌다. 최준호가 그녀를 일으켰다. 강민호가 박정수를 한 손으로 업은 채 유진의 팔을 잡았다.

10층. 11층. 12층.

옥상 문이 보였다.

강민호가 문을 밀었다. 문이 열렸다. 새벽의 도시가 그들 아래 펼쳐져 있었다.

옥상 위로 올라섰을 때, 건물 전체가 한 번에 폭발했다. 불길이 옥상을 휩쓸었다. 강민호가 유진과 최준호를 옥상의 끝으로 밀어냈다. 그들은 옆 건물의 옥상으로 뛰어내렸다.

뒤를 돌아보니 경찰청 건물이 무너지고 있었다. 하늘로 솟아오르는 화염과 연기. 그 속에서 강민호는 여전히 박정수를 안고 있었다.

세 사람은 옆 건물의 옥상에서 다시 뛰어내렸다. 그 다음 건물로. 그 다음 건물로.

마침내 폭발의 범위를 벗어났을 때,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

경찰청에서 떨어진 낡은 건물의 옥상. 네 사람이 서 있었다.

유진, 최준호, 강민호. 그리고 의식을 되찾은 박정수.

박정수의 눈이 떠졌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이제 뭐야?"

강민호가 물었다.

유진은 하늘을 봤다. 새벽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야."

그녀가 말했다.

"더 이상 누군가의 손가락이 아니야. 더 이상 누군가의 신경망이 아니야. 우리는 우리 자신이야."

최준호가 일어섰다. 그의 신경은 여전히 손상되어 있었지만, 그것은 이제 그의 신경이었다. 오라클의 신경이 아니었다. 3년 전부터 조종당한 자신의 시간을 되찾는 것은 또 다른 싸움이었지만, 적어도 그것은 자신의 싸움이었다.

"이채린은?"

강민호가 물었다.

유진의 모니터가 울렸다. 이채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지금 경찰청 밖이야. 건물이 무너지기 전에 나왔어. 너희는?"

"우리도 나왔어."

유진이 대답했다.

"박정수는?"

"여기 있어."

유진이 박정수를 봤다. 그는 여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오라클의 신호가 없었다.

도시의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경찰청 건물의 무너짐을 감지한 것이었다. 보안청의 추격 헬기들이 하늘에서 울음을 울었다.

"우리가 이제 뭘 해야 해?"

강민호가 다시 물었다.

유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들이 움직였다.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선택으로.

"우리는 살아야 해."

그녀가 말했다.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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