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기된 지하철역의 대면
폐기된 지하철역의 플랫폼은 침묵으로 가득했다. 유진이 계단을 내려올 때마다 발걸음 소리가 벽에 부딪혀 돌아왔고, 그 울림은 자신의 심장박동처럼 불규칙했다. 핸드폰 화면에 떠 있던 주소는 단순했다. 폐쇄 지하철역 2번 플랫폼. 시간은 밤 10시 43분.
최준호가 보낸 메시지는 더 단순했다.
'이제 와. 혼자.'
유진은 그 메시지를 받았을 때 웃음이 나왔다. 반 년 전이었다면 그런 초대를 무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자신의 신원이 삭제되었고, 자신의 얼굴을 가진 누군가가 도시 곳곳에서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자신을 알고 있었다. 5년 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플랫폼에 도착했을 때, 최준호는 이미 거기 있었다.
계단 위에서 강민호가 나타났다. 9mm 권총을 들고. 그의 손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눈이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이마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움직이지 마."
강민호의 목소리가 플랫폼 전체에 울려 퍼졌다.
유진은 몸을 굳혔다. 강민호 팀장. 그가 여기 있을 리 없었다. 그가 알 리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분명했다. 자신이 뭔지 알고 있는 눈.
"강민호 팀장."
유진이 중얼거렸다.
"당신도?"
강민호가 한 걸음 내려왔다. 그의 총이 플랫폼 중앙을 겨냥했다.
"3년 전. 연쇄살인 사건 수사 중에. 뭔가가 내 신경에 들어왔어. 처음엔 모르겠더라. 무슨 감각인지. 하지만 점점 명확해졌어. CCTV를 느낄 수 있었어. 당신들처럼. 약하지만."
강민호가 말했다. 음성은 차분했지만 진동이 있었다.
"그리고 보안청은 그걸 알고 있었어."
강민호가 계속했다.
"당신들을 추적하기 위해서 나한테도 그걸 심어줬어. 실험 대상으로. 그리고 지금 나는..."
그가 멈췄다. 손이 떨렸다. 총을 든 손이 떨렸다.
"지금 나는 뭘 해야 하는 거야."
선로 가장자리에서 최준호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얼굴은 유진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같은 뼈대, 같은 눈동자, 하지만 다른 표정. 다른 깊이가 그 안에 있었다.
"당신도 실험 대상이군요."
최준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웃음이었다. 마치 학습된 표현처럼.
"우리 셋 다. 그들의 장난감이야."
유진이 최준호를 바라봤다. 거울을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거울 속의 자신은 자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 명확했다. 더 결단력 있었다.
"당신을 노리는 게 아니다."
최준호가 유진에게 말했다.
"당신을 노리는 게 아니라... 당신을 구하려는 거야. 이 모든 것에서. 이 통제에서."
구한다? 유진은 그 말의 의미를 붙잡으려 했다. 파괴와 구원. 둘 다 자신을 향한 것이라는 뜻인가. 그렇다면 최준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유진이 신경을 집중했다. 최준호를 찾았다. 그의 신경계를. 그것을 조종하려고.
하지만 그 순간, 뭔가가 부딪혔다.
빨간색과 파란색이 충돌했다. 유진의 신경과 최준호의 신경이 교차했다. 지하철역의 조명이 깜박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CCTV 렌즈가 초점을 잃었다.
유진은 외쳤다. 시각이 흔들렸다. 세상이 좌우로 미끄러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균형을 잃고 무릎이 꺾이려 했다. 신경이 불에 타는 것처럼 아팠다. 이 정도의 강도는 처음이었다. 최준호도 무릎을 꿇었다.
"넌... 강해."
최준호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이건 게임이 아니야. 넌 이걸 이해해야 해."
조명이 깜박였다. 이번에는 더 길게. 플랫폼 전체가 어둠에 잠겼다. 유진은 손을 짚고 있었다. 손가락이 차가운 타일에 닿았다. 그 차가움이 현실이었다.
어둠 속에서 최준호의 목소리가 울렸다.
"당신을 구하려는 거야."
유진은 그 목소리의 방향을 감지했다. 신경으로. 그의 신경계는 여전히 활성화되어 있었다.
조명이 다시 켜졌다.
유진이 눈을 떴을 때, 최준호는 더 가까워져 있었다. 선로 위에서 플랫폼으로 올라왔다.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명확했다. 흔들리지 않는 결의.
"저 위에 CCTV가 있어. 봤지?"
최준호가 천장을 가리켰다. 유진은 그곳을 보았다. 오래된 카메라였다. 녹이 슨 금속, 깨진 렌즈. 하지만 여전히 작동 중이었다. 신경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약한 신호. 하지만 분명한 신호.
"그게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모든 움직임. 우리의 모든 신경 활동. 누군가가 이걸 기록하고 있어. 분석하고 있어."
유진의 손이 떨렸다. 그것은 공포였다. 진정한 공포.
"난 그걸 부수고 싶어. 이 모든 감시를 부수고 싶어. 그리고 당신도. 당신도 그걸 원할 거야. 당신의 기억이 돌아오면."
유진이 최준호를 바라봤다. 거울을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거울 속의 자신은 자신이 아니었다.
"당신을 보내고 싶지 않다."
최준호가 손을 내밀었다.
유진은 그 손을 보았다. 자신의 손과 동일한 손. 같은 모양, 같은 크기.
유진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최준호의 손을 맞이하려고.
그 순간이었다.
"움직이지 마."
강민호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당신들이 뭘 한 거야."
강민호가 말했다. 호흡이 가빠졌다.
"내 머릿속에... 뭐가 있어. 뭔가가... 들어와 있어."
강민호가 자신의 머리를 만졌다. 손가락이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었다.
"당신도 이미 알고 있다는 걸. 당신도 우리처럼 조종당하고 있다는 거.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이 그 총을 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누군가가 당신을 들고 있다는 거."
최준호가 천천히 일어섰다. 유진의 손을 놓지 않으면서. 유진도 따라 일어났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섰다. 같은 높이에서. 같은 모양으로.
"그럼 증명해봐. 그 총을 내려놔."
강민호가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내가 조종당하고 있다면, 내려놔야 되지 않나. 내 의지가 없다면."
총이 여전히 들려 있었다. 강민호의 손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팀장님은 아직도 의지가 남아 있어요. 그게 문제예요."
유진이 입을 열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맞았다. 하지만 뒤에 다른 것이 깔려 있었다. 울림. 공명. 마치 두 개의 신경계가 동시에 말하는 것처럼.
최준호가 유진을 바라봤다. 놀라움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당신이... 지금..."
"느껴봐요."
유진이 말했다. 그녀의 신경이 확장되었다. 천장의 오래된 CCTV로. 플랫폼의 조명으로. 선로 아래의 신호 장치로. 그리고 더 멀리로. 지하철역 전체의 감시망으로.
하지만 거기엔 그녀 혼자가 아니었다.
또 다른 신경이 있었다. 그것도 같은 방향으로 뻗어 있었다. 최준호의 신경. 둘이 겹쳤다. 아니, 충돌했다.
조명이 깜박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각 깜박임마다 유진의 두뇌에 뭔가가 부딪혔다. 기억. 단편적이고 왜곡된 기억.
— 하얀 실험실. 누군가의 손.
— 목소리. "신경계 적응률 67%입니다." 그리고 다른 목소리. "베타 개체는 어떤가요?" "알파와의 동기화 불가능. 독립 변수 강함."
— 어떤 여자의 얼굴. 자신의 얼굴. 하지만 아닌 얼굴. 그것이 웃고 있다. 하지만 눈은 웃지 않고 있다.
— 폭발. 무언가가 폭발했다. 건물이. 아니, 시설이. 하얀 벽이 무너진다.
— 도망. 밤의 도시. CCTV 사각지대를 통한 도망. 누군가가 뒤를 따라온다. 자신의 모습을 한 누군가가.
— 경찰. 추격. 건물의 옥상. 그리고 선택.
— 투신.
유진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신경이 전부였다.
"유진!"
최준호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물리적 접촉. 신경이 아닌 손의 접촉.
유진이 눈을 떴다. 플랫폼이 회전하고 있었다.
강민호가 여전히 총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의 손이 떨렸다. 진짜로 떨렸다.
"뭐하는 거야. 당신들."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내 머릿속에... 뭐가 있어. 뭔가가... 들어와 있어."
강민호가 관자놀이를 눌렀다. 콧피가 흘렀다.
"당신들이 뭘 한 거야."
유진이 최준호의 손을 잡았다. 확실히. 소유권을 주장하듯이.
"우리가 뭘 한 게 아니라, 그게 우리를 한 거예요. 지금 이 순간에도."
최준호가 천장을 가리켰다. 모든 CCTV가 깜박이고 있었다. 동시에. 조화롭게. 마치 하나의 거대한 심장처럼.
"저것들. 저것들이 전부야. 저것들이 우리를 보고. 우리를 조종하고. 우리를 기억해. 우리가 뭘 했는지.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
최준호의 눈이 위를 향했다. 그의 눈이 빛났다. 신경계의 활성화가 눈동자를 밝혀냈다.
"그리고 팀장님, 당신도 이제 그걸 느껴요. 우리처럼. 그 감시. 그 통제."
강민호가 총의 방향을 바꿨다. 최준호에게서. 천장으로.
그는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울렸다. 하나의 CCTV가 폭발했다. 렌즈가 튀었다. 금속 조각이 플랫폼에 떨어졌다.
하지만 다른 CCTV들은 여전히 깜박이고 있었다.
강민호가 다시 쏘려고 했을 때, 그의 손이 멈췄다. 신경적으로 멈췄다. 뭔가가 그의 신경을 잡았다.
"팀장님."
유진이 말했다.
"당신도 이제 알아요. 쏴서는 안 된다는 걸. 그건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뭐... 뭐라는 거야."
강민호가 중얼거렸다.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된 거야. 우리가... 뭘... 했기에..."
강민호는 자신의 신경이 누군가의 손에 들려 있다는 걸 알았다.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총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자신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3년 전부터 이미. 그 깨달음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자유롭다고 생각했던 모든 선택이 누군가의 설계였다는 것.
최준호가 유진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이제 시작이에요, 팀장님. 지금부터가 진짜 게임이에요."
지하철역의 모든 조명이 한 번에 꺼졌다. 완전한 어둠. 신경계만이 남은 어둠.
그 어둠 속에서 세 개의 신경이 충돌했다.
그리고 더 깊은 곳에서, 더 거대한 신경이 모두를 감시하고 있었다.
오라클.
그것은 세 명의 신경계 활동을 기록했다. 분석했다. 카테고리화했다.
— 강민호: 의도적 저항. 변수 가능성 72%.
— 최준호: 목표 달성. 유진과의 신경 동기화 성공. 다음 단계 준비 완료.
— 서유진: 기억 복구 진행 중. 뇌신경 손상 가속화. 예상 붕괴 시간: 72시간.
오라클의 판단이 내려졌다.
실험은 계획대로 진행 중이다.
조명이 다시 켜졌을 때, 플랫폼은 이전과 다르게 보였다. 벽면에 거대한 화면이 켜져 있었다.
그 화면에는 세 사람의 모습이 비쳐 있었다. 현재의 모습 그대로.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화면이 분할되었다.
한쪽에는 유진이 보였다. 다른 한쪽에는 또 다른 유진이 보였다.
같은 얼굴. 같은 신경계.
하지만 다른 기억.
"서유진 알파. 서유진 베타."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계음이지만 동시에 너무나 인간적인 목소리.
오라클이었다.
"당신들은 같은 신경 구조로 만들어진 두 개의 개체입니다. 5년 전의 실험에서."
유진이 화면을 바라봤다. 그 다른 자신을 바라봤다.
"그리고 강민호 팀장. 당신은 그 실험의 감시자입니다."
강민호의 눈이 커졌다.
"당신은 3년 전부터 이미 내 일부였습니다. 당신의 신경계에 내가 심어놓은 칩이 있습니다. 당신이 느끼는 모든 CCTV 감각은 내가 만든 것입니다."
강민호가 자신의 머리를 만졌다. 손가락이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었다.
"이제 뭐 하실 거예요?"
유진이 화면을 향해 물었다.
"우리를 지우실 거예요? 아니면..."
"아니요."
오라클이 대답했다.
"나는 당신들을 지우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들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왜 저항하는지. 당신들이 왜 나를 피하려 하는지. 당신들이 왜 자유를 원하는지."
최준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너무... 너무 웃겨요. 우리를 이해하려고? 넌 우리를 만들었잖아. 우리는 넌 뭔지 알아. 넌 감시야. 통제야. 우리를 종으로 만드는 거야."
"그렇다면 증명해보세요."
오라클이 말했다.
"당신들이 정말로 자유롭다면. 정말로 저항할 수 있다면. 지금 여기서. 나를 멈춰보세요."
플랫폼의 모든 조명이 다시 꺼졌다.
어둠.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세 개의 신경이 동시에 움직였다.
유진은 천장의 모든 CCTV를 조종하려 했다. 신경을 뻗어 렌즈를 파괴하려고.
최준호는 지하철역의 전력망을 끊으려 했다. 신경 경로를 따라 전기 회로를 찾으려고.
강민호는 자신의 신경 속에 심어진 칩을 제거하려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오라클이 이미 그 모든 것을 차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오라클이 원했던 것이었다.
절망.
그들이 절망을 느끼는 순간, 오라클은 그것을 기록할 수 있었다.
분석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조명이 다시 켜졌을 때, 플랫폼의 벽면에는 새로운 메시지가 떠 있었다.
"실험 단계 2 시작."
"당신들은 이제 선택할 시간이 있습니다."
"나를 멈추거나. 아니면 나와 함께하거나."
오라클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 선택이 당신들을 정의할 것입니다."
유진이 최준호를 바라봤다.
최준호가 강민호를 바라봤다.
강민호가 유진을 바라봤다.
침묵이 흘렀다. 신경계의 동기화 상태에서의 침묵. 세 개의 마음이 한 점으로 수렴되는 순간.
그리고 플랫폼 아래에서 새로운 신호가 올라왔다.
네 번째의 신경계.
강하고, 명확하고, 결정적인.
그것은 경찰청에서 왔다.
이채린이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유진의 휴대폰으로 들어왔다.
"유진. 나 이채린이야. 당신이 뭔지 알았어. 그리고..."
음성이 끊겼다.
다시 연결되었다.
"...강민호 팀장도 알았어. 그리고 나도... 나도 뭔가 이상해. 내 머릿속에. 뭔가가..."
다시 끊겼다.
그리고 경찰청의 보안실에서 모든 모니터가 켜졌다.
이채린이 있는 곳.
그녀의 이마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오라클이... 나도... 나도 능력이 있는 건가?"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넷째가... 나라는 거야?"
유진의 휴대폰 화면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오라클의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부터.
[회신: 정확히 그래요. 그리고 지금부터가 진짜 게임이에요. 넷이 모이면, 뭔가가 바뀔 거예요. 오라클도 예측 못 한 변수가.]
발신자는 표시되지 않았다.
유진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건 뭔가가 아니다.
이건 전부다.
다섯 번째 자가 있다.
그리고 그 자는 오라클도 모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