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4시 47분, 경찰청 특수범죄수사팀 회의실.
강민호는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화면에는 지난 72시간 동안 도시 전역에서 감지된 CCTV 신호 이상이 표시되어 있었다. 빨간 점들이 도시 지도 위에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옆에 앉은 이채린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화면이 전환되었다. 네 건의 살인 현장. 각 장소마다 CCTV 사각지대가 정확히 표시되어 있었다.
"신호 패턴을 더 세밀하게 분석했습니다."
이채린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세 건은 거의 동일한 방식의 신호 간섭이고, 한 건은 완전히 다릅니다. 신호의 강도, 유지 시간, 복구 속도—모두 다른 사람입니다."
강민호가 고개를 들었다.
"다른 사람?"
"네. 두 명의 능력자가 도시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침묵이 회의실을 채웠다. 강민호는 지난 3일간의 모든 기록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더 있습니다."
이채린이 또 다른 파일을 열었다.
"야간 보안 요원들의 근무 기록과 신호 이상 발생 시간을 대조했습니다. 신호가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시간대는 항상 보안실 야간 근무 시간과 겹칩니다."
그녀의 손가락이 화면의 한 이름 위에서 멈췄다.
"이 사람. 서유진. 근무 시간과 신호 이상의 상관계수가 0.94입니다."
강민호의 눈이 좁혀졌다.
"신원 정보를 확인했습니까?"
"네. 여기가..."
이채린이 두 개의 파일을 나란히 띄웠다. 왼쪽은 5년 전 기록. 오른쪽은 현재. 둘 다 이름이 같았다. 서유진. 나이도 같았다. 신원번호도 같았다.
하지만 왼쪽에는 빨간 스탬프가 찍혀 있었다.
**사망. 투신. 2032년 3월 14일.**
"5년 전에 죽은 사람이 지금 야간 보안 요원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게요."
이채린의 목소리에 의문이 섞여 있었다.
"신원 위조거나, 아니면..."
"아니면 뭐냐?"
"아니면 5년 전 신원 확인 자체가 조작됐거나."
강민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실의 형광등이 그의 얼굴을 창백하게 비추었다.
"보안청에 연락하십시오. 야간 보안 요원 전원의 신원 확인을 요청합니다."
"팀장, 혹시..."
"이 사람이 5년 전 용의자라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추적한 연쇄살인범이 죽지 않았다는 뜻이다."
***
오전 6시 32분, 유진의 아파트.
유진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제 밤 최준호와의 신경계 충돌 이후 두통은 가시지 않았다. 관자놀이 양쪽에서 맥박이 튀어나올 듯 울렸다.
휴대폰이 울렸다.
"뭐야?"
유진이 받았다.
"너 지금 뭐 해?"
김소연의 목소리였다. 평소와 달리 긴장되어 있었다.
"자고 있었는데."
"자지 말고 들어. 어제 오전 10시에 보안청에서 이상한 요청을 받았어. 특정 신원 정보에 대한 조회."
유진의 몸이 경직되었다.
"누구?"
"너야. 서유진. 신원번호까지 정확히. 그런데 가장 이상한 게..."
김소연이 계속했다.
"그 요청이 온 게 어제 오전 10시야. 너한테 문제가 생기기 훨씬 전에."
유진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발이 바닥에 닿았을 때 시야가 흔들렸다.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두통이 심해졌다.
"누가 요청했어?"
"보안청 고위층이라고만 나와 있어. 공식 채널이 아니고."
"소연, 이건..."
"이건 너 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야. 너한테 도움을 주다가 나까지 연루되는 건 싫어. 이제부터는 거래 중단이야."
"소연—"
"끝. 연락하지 마."
전화가 끊겼다.
유진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앉아 있었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5년간 유지해 온 신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지진 전의 전조처럼.
***
오전 8시 14분, 경찰청 보안청 협력 담당관 사무실.
강민호는 보안청 파견 담당관 박정수와 마주 앉았다. 박정수는 30대 중반으로 보였다. 안경을 쓰고 있었고, 표정이 없었다.
"야간 보안 요원 서유진의 신원 정보 확인을 요청합니다."
강민호가 말했다.
박정수가 노트북을 켰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움직였다.
"서유진. 2년 8개월 근무. 근태 평가 우수. 특이사항 없음."
"그 사람의 신원 취득 과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까?"
박정수의 손가락이 멈췄다.
"왜 그런 정보가 필요합니까?"
"수사상 필요합니다."
박정수가 화면을 보았다. 눈동자가 조금 움직였다.
"보안청 신원 확인 기록에 따르면, 서유진은 2년 8개월 전에 신원 확인을 완료했고, 그 이전 기록은..."
그가 화면을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보안청 고위층의 특수 지시로 인해 접근 권한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강민호의 눈빛이 변했다.
"특수 지시?"
"네. 이건 저도 열람할 수 없습니다."
박정수가 안경을 조정했다. 그의 손가락이 마우스 위에서 멈췄다.
"강팀장님,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겁니다. 이런 지시는 감시망 시스템 자체에도 기록되지 않습니다. 의도적으로."
강민호는 그 말의 의미를 천천히 씹었다. 의도적. 누군가가 계획적으로 기록을 지웠다는 뜻이었다.
"5년 전에는 어떻습니까?"
박정수가 다시 화면을 보았다.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2032년 3월에 같은 이름의 신원이 사망 처리됐습니다. 투신."
"그 신원의 투신 영상이 있습니까?"
박정수가 화면을 터치했다. 파일 목록이 나타났다. 그의 손가락이 한 항목에서 멈췄다.
"투신 영상은 기록에 없습니다. 현장 CCTV가 모두 삭제된 상태로 남아있습니다."
"삭제 로그는?"
"없습니다."
박정수가 강민호를 바라봤다. 안경 뒤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강팀장님, 제 의견으로는 이건 단순한 신원 위조가 아닙니다. 이건 조직적인 조작입니다. 그리고 그 조직은 감시망 자체를 통제하고 있습니다."
강민호는 박정수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그 순간 그의 머리 속에서는 이미 그림이 완성되고 있었다. 5년 전 연쇄살인사건. 용의자 투신. 그리고 지금 같은 이름으로 살아있는 사람. CCTV 조종 능력. 신원 조작. 모든 것이 일직선으로 연결되었다.
"혹시 감시망 허점과 관련이 있을까요?"
박정수가 물었다.
강민호는 박정수를 바라봤다.
"당신은 왜 그런 질문을 합니까?"
"왜냐하면..."
박정수가 안경을 조정했다.
"감시망의 허점들이 구조적 결함이나 신호 간섭, 알고리즘 버그만은 아닐 수도 있거든요. 누군가가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했을 가능성 말입니다."
강민호의 얼굴이 굳었다.
***
오전 11시 47분, 경찰청 특수범죄수사팀 회의실.
이채린이 화이트보드에 두 개의 그래프를 그렸다. 하나는 파란색, 하나는 빨간색이었다.
"파란색은 야간 보안 요원의 근무 기록과 매칭되는 신호입니다. 빨간색은 그렇지 않은 신호입니다."
강민호가 보드를 보고 있었다.
"빨간색은 누구입니까?"
"모릅니다. 하지만 이 신호는 더 정교합니다. 더 효율적이고, 더 빠르고, 부작용이 적어 보입니다."
이채린이 다시 말했다.
"파란색 신호는 불안정합니다. 신호가 끊어졌다가 다시 연결되고, 간섭이 심합니다. 마치 기술 없이 무작정 밀어붙이는 것처럼."
그녀가 보드에 빨간 그래프 옆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하지만 이 신호는 다릅니다. 마치 음악처럼 흐릅니다. 이건 기술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사람은 기술자가 아니라 능력자입니다."
강민호의 얼굴에 확신이 드리워졌다.
"이채린."
"네?"
"파란색 신호의 주인이 서유진이라는 걸 확인했습니다. 야간 보안 요원."
이채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럼 빨간색은?"
"그게 문제입니다. 빨간색의 주인은 아직 모르겠습니다."
강민호가 이채린의 어깨에 손을 놨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찾아야 할 사람은 두 명입니다."
***
오후 3시 22분, 유진의 아파트 근처 카페.
유진은 테이블 구석에 앉아 있었다. 커피 잔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오후의 햇빛이 들어왔지만, 유진의 눈은 초점을 잃고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번호 없는 전화였다.
유진이 받았다.
"안녕, 유진."
그것은 자신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더 부드럽고, 더 자신감 있고, 더 차가웠다.
"누구야?"
"너는 이미 알고 있어."
"뭐 해?"
"너를 찾고 있어. 아니, 이미 찾았어."
전화기 너머 배경음이 들렸다. 카페의 소음. 그리고 그 소음 속에서 유진은 자신의 옆 테이블에 앉은 남자를 바라봤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는 남자.
유진의 심장이 멈췄다.
그 남자의 얼굴이 유진의 얼굴과 거의 같았다. 같은 눈, 같은 코, 같은 입. 하지만 그 얼굴에 떠 있는 표정은 유진의 것이 아니었다. 더 차갑고, 더 계산적이고, 더 위험했다.
"나를 봐."
남자가 전화로 말했다.
그의 눈이 유진의 눈과 마주쳤다. 그리고 그가 웃었다. 매우 천천히, 매우 의도적으로.
유진의 손가락이 저절로 떨렸다. 커피 잔이 테이블 위에서 흔들렸다.
"5년 전에 뭘 했는지 알아?"
전화 너머 목소리였다.
"그리고 너는 왜 살아있는 거야?"
남자가 천천히 일어섰다. 유진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른 손님들이 고개를 돌렸다.
"넌 뭐야?"
유진이 물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나? 난 너야. 정확히는 너의 다음 버전."
남자가 한 발 앞으로 나갔다. 유진이 뒤로 물러섰다. 테이블이 사이에 있었다.
"도망쳐. 강민호가 너를 찾고 있어."
목소리가 말했다.
"보안청도 너를 찾고 있고. 그리고 나도 찾고 있어."
유진이 문을 향해 돌아섰다. 카페의 문이 보였다. 밖의 거리가 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 남자의 손이 올라왔다.
유진의 신경계가 울렸다. 경고음처럼.
"아직 가면 안 돼."
남자가 말했다.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거든."
유진이 카페 밖으로 뛰어나갔다.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유진이 돌아봤을 때 남자는 거기 없었다. 거리는 한적했다. 오후의 햇빛만 내려쬐고 있었다.
전화는 여전히 울리고 있었다.
"도망쳐. 강민호가 너를 찾고 있어."
유진이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휴대폰은 계속 울렸다.
***
오후 5시 41분, 유진의 아파트.
유진은 열린 현관문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 내부를 뒤져놓았다. 신발장이 열려 있었고, 소파 쿠션이 흩어져 있었고, 책장의 책들이 떨어져 있었다.
침실로 들어갔다.
침대 위에 한 장의 종이가 놓여 있었다.
유진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사진이었다.
5년 전 자신이 저지른 살인 현장의 사진이었다. 피가 묻은 바닥. 부서진 가구. 그 위에 작은 메모가 붙어 있었다.
글씨는 자신의 필체와 같았다.
**"기억해. 넌 누구야?"**
유진의 손이 떨렸다. 사진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 순간 뇌 안에서 무언가가 깨지는 것 같은 느낌이 났다. 아니, 깨지는 것이 아니라 열리는 것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잠긴 상자가 열리는 것처럼.
두통이 폭발했다. 관자놀이에서 뭔가가 터질 듯 울렸다. 시야가 왜곡되었다. 흑백의 영상이 깜빡거렸다.
5년 전의 그 밤. 경찰청 건물의 옥상.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
**"미안해. 하지만 이게 프로토콜이야."**
그 목소리는 자신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다른 자신이었다.
그리고 손이 자신의 등을 밀었다.
세상이 회전했다. 하늘이 발 아래로 내려갔다. 지면이 머리 위로 올라왔다. 신경계가 비명을 질렀다.
유진이 침대에 앉았다. 호흡이 가빠졌다.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켰다. 목의 근육이 경직되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봤을 때,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거울 속의 여자가 자신인지, 아니면 카페에서 만난 남자가 자신인지 구분이 안 갔다.
침대 옆 창문을 통해 도시의 야경이 보였다. 수천 개의 CCTV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니터 뒤에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자신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아니, 자신을 사냥하는 누군가가.
휴대폰이 울렸다.
카톡이었다.
김소연이었다.
**"급히 봐야 할 게 있어. 30분 안에 연락해. 진심이야."**
유진은 답장을 하지 않았다. 대신 침대 위의 사진을 다시 들어 올렸다. 5년 전의 살인 현장. 자신이 한 짓이라고 확신하는데, 동시에 기억이 명확하지 않았다. 기억은 조각조각 떨어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끊어놓은 필름처럼.
남자의 목소리가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넌 왜 살아있는 거야?"**
***
오후 6시 18분, 한강 다리 아래.
유진은 김소연을 만났다. 어두운 장소였다. 보안청의 CCTV가 닿지 않는 구간. 유진이 능력으로 만들어낸 사각지대였다.
"뭐야?" 유진이 물었다.
김소연의 얼굴이 창백했다. 그녀는 유진을 자세히 살펴봤다. 유진의 눈이 초점을 잃고 있었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유진, 넌 괜찮아?"
"뭐 있어?"
"보안청에서 '이상 신경계 보유자' 프로필 요청을 받았어. 2년 전부터."
"뭔가 더 있어?"
"이번엔 다르다고 했어. 두 명의 프로필을 요청했고, 그 중 한 명이 '야간 보안 요원'이라고 했어. 유진, 넌..."
유진이 김소연의 말을 끊었다.
"내가 누구야?"
"뭐?"
"내가 누구인지 물어봤어."
김소연이 한 발 물러섰다. 그녀의 숨이 가빠졌다.
"유진, 뭔가 이상한데."
"내 신원이 5년 전이랑 같다는 거 알아? 죽었다고 했던 날짜랑 지금 입사 날짜가 같아. 그리고 내 기억이 없어. 5년 전에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나."
유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런데 지금 또 다른 누군가가 나를 쫓고 있어. 그 사람도 나처럼 생겼고, 나처럼 능력이 있어. 그리고 그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왜 살아있냐고 물어."
한강 다리의 난간이 보였다. 5년 전에 자신이 뛰어내렸던 그 자리.
"그 사진을 봤어. 내가 한 살인의 사진을. 그리고 나는 그걸 한 거 맞는 것 같아. 하지만 기억이 없어. 마치 누군가 내 기억을 지워놨던 것처럼. 아니면 내가 원래 없던 건지."
유진이 난간에 손을 얹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내가 찾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 나야. 내가 날 찾고 있어."
김소연이 유진의 팔을 잡았다. 그녀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유진, 진정해. 너 지금 뭔가 잘못됐어."
"뭐가 잘못된 거야?"
"넌 뭔가 위험한 상태에 있어. 정신이 나간 것 같아. 나한테서 떨어져."
유진이 난간을 바라봤다. 5년 전의 감각이 떠올랐다. 떨어지는 느낌. 바람이 얼굴을 지나가는 느낌. 그리고 검은 천이 자신을 덮는 느낌.
"유진, 제발..."
김소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유진은 자신의 손을 내려 봤다.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켰다. 손등에 맺힌 땀이 반짝였다.
"소연, 나한테 거울을 줄 수 있어?"
"뭐?"
"거울. 내 얼굴을 봐야 해."
김소연이 가방에서 작은 거울을 꺼냈다. 유진이 그것을 들었다.
거울 속의 얼굴은 자신의 것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아닌 것 같았다. 눈이 다르게 보였다. 호흡이 빨라졌다. 목에서 무언가 올라오려는 느낌이 났다.
"유진, 제발..."
김소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뒤로 물러섰다.
"너 지금 위험한 상태야. 넌 뭔가 정신이 나간 것 같아."
유진이 거울을 내려놨다. 손가락이 떨렸다.
"나가."
"뭐?"
"나가. 넌 이 일에 연루되면 안 돼."
"유진—"
"나가!"
유진의 목소리가 울렸다. 신경계가 울렸다. 한강 다리 아래의 CCTV들이 한 순간 깜빡였다.
김소연이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얼굴에는 공포가 떠 있었다. 숨이 가빠졌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너 정말 위험한 것 같아."
그녀가 중얼거리며 도망쳤다.
***
오후 7시 34분, 보안실.
유진은 야간 근무에 들어갔다. 평소처럼 모니터를 켰다. 화면이 떠올랐다. 도시 곳곳의 CCTV 영상.
그런데 모니터 한 구석에 문자가 나타났다.
**"안녕, 파트너."**
유진의 몸이 굳었다.
**"너 지금 강민호에게 잡힐 거야. 그 전에 만나자. 밤 11시. 구도시 지역 3번 구간의 폐쇄된 빌딩."**
유진이 화면을 터치했다. 하지만 메시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거기서 너는 알게 될 거야. 넌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뭔지."**
메시지가 사라졌다. 모니터는 다시 평범한 CCTV 영상으로 돌아왔다.
유진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시계를 봤다. 오후 7시 37분. 아직 시간이 있었다.
그녀는 모니터를 통해 도시를 감시했다. 수천 개의 카메라. 모두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
오후 9시 47분, 강민호의 사무실.
강민호는 문서를 읽고 있었다. 보안청에서 보내온 공식 회신이었다.
**"서유진은 보안청 직무 요원으로 분류됩니다. 추가 정보는 기밀입니다. 현재 경찰청 내 보안청 파견 요원과 협력하여 사건을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강민호가 휴대폰을 들었다. 이채린에게 전화했다.
"지금 서유진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어?"
통화 너머 이채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간 보안 요원 카드의 신호 위치라면 가능합니다. 지금 보안실에 있네요."
"그 다음엔?"
"신호 추적 중인데, 그 지역으로의 경로를 미리 준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강민호가 귀를 기울였다.
"어느 지역?"
"구도시 지역입니다. 3번 구간의 폐쇄된 빌딩으로 향하고 있어요."
강민호의 눈이 좁혀졌다.
"폐쇄된 빌딩?"
"네. 그리고 더 이상한 게 있어요."
"뭐?"
"빨간색 신호도 같은 위치로 향하고 있습니다. 두 신호가 수렴하고 있어요."
강민호가 일어섰다.
"팀을 소집해. 그리고 이채린."
"네?"
"서유진을 체포할 때 조심해. 그 여자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할 수 있어."
통화가 끊겼다.
강민호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5년 전 사건 기록이 있었다. 서유진 용의자 파일. 투신 당시의 사진. 죽은 여자의 얼굴.
그리고 현재의 보안실 CCTV 영상.
같은 얼굴이었다.
강민호가 중얼거렸다.
"넌 누구야?"
***
밤 10시 56분, 유진의 아파트.
유진은 현관 문을 열었다. 밖은 어두웠다. 도시의 야경이 멀리 보였다.
휴대폰이 울렸다.
번호 없는 전화였다.
"밤 11시에 만나자."
자신의 목소리였다.
"넌 뭐야?" 유진이 물었다.
"너와 같은 거. 그 이상의."
"그리고?"
"그리고 너는 알게 될 거야. 오라클이 우리를 왜 만들었는지. 그리고 넌 왜 죽어야 했는지."
전화가 끊겼다.
유진이 밖으로 나왔다. 거리는 한적했다. 밤 11시 정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유진의 뇌에서 뭔가가 깨졌다.
아니, 깨진 것이 아니라 열렸다.
두통이 극심해졌다. 시야가 왜곡되었다. 신경계가 비명을 질렀다.
기억이 쏟아져 나왔다.
5년 전의 그 밤. 경찰청 건물의 옥상.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
**"미안해. 하지만 이게 프로토콜이야."**
그 목소리는 자신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다른 자신이었다.
그리고 손이 자신의 등을 밀었다.
세상이 회전했다. 하늘이 발 아래로 내려갔다. 지면이 머리 위로 올라왔다.
신경계가 울렸다. 모든 감각이 폭발했다. 손가락 끝에서 시작된 저림이 팔 전체로 번졌다. 목에서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을 수 없었다.
유진의 두 손이 떨렸다.
"난... 난 죽었어?"
***
구도시 지역의 폐쇄된 빌딩 앞에 도착했을 때, 유진은 그곳이 어디인지 알았다.
5년 전 자신의 마지막 범행 현장이었다.
그리고 건물 입구에는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안녕, 유진."
남자가 웃었다. 호흡음이 들렸다. 유진의 호흡과 정확히 같은 리듬이었지만, 음색은 달랐다. 더 낮고, 더 의도적이었다.
"우리가 만날 시간이야."
유진이 한 발 앞으로 나갔다.
"넌 뭐야?"
"나? 난 너야. 정확히는 너의 다음 버전."
남자의 손이 올라왔다. 유진의 신경계가 울렸다. 손가락 끝에서 저림이 시작되었다.
그 순간 도시 전체의 CCTV가 깜빡였다.
그리고 강민호가 이끈 경찰 팀이 골목을 돌아 나타났다.
"서유진! 움직이지 말아!"
강민호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유진과 남자 모두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그들의 뇌 안에서 뭔가가 울렸다.
정확히는 도시 전체의 뇌 안에서.
오라클의 신호였다.
**"실험을 계속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