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14분.
보안실의 모니터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정확히는 보여줄 수 없었다. 유진의 신경계가 9번 구역의 신호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화면은 검은색으로 유지되었다. 그것이 정상이었다. 자신이 만든 사각지대는 항상 이렇게 조용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그 검은 화면 안에서 뭔가 울렁거렸다.
유진은 손가락을 모니터 가장자리에 대고 집중했다. 신경을 곤두세워 도시의 감시망으로 뻗어나갔다. 9번 구역의 CCTV 카메라들과 접속하는 순간, 낯선 신호가 그녀의 의식을 스쳤다.
누군가 이미 그곳에 있었다.
반사적으로 유진은 자신의 신호를 강화했다. 감시망을 더 단단히 장악하려고 신경을 압축했다. 그러나 상대방도 정확히 같은 강도로 밀어붙였다. 두 개의 의식이 도시의 신경망 위에서 부딪혔다.
통증이 눈 뒤쪽에서 폭발했다.
유진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머리를 움켜잡았다. 이건 평소의 두통이 아니었다. 마치 뇌 안에서 누군가 자신의 신호와 싸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상대가 정확히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같은 강도로, 같은 신경망을 조종하려고 했다.
모니터의 화면이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영상이 흔들렸다.
사각지대가 완전하지 않았다. 화면의 가장자리가 명멸했다. 그 사이사이로 9번 구역의 거리 풍경이 스쳤다. 밤거리의 일부가 노출되었다.
유진은 신호를 더욱 강하게 눌러 담으려 했다. 하지만 상대방도 놓지 않았다. 팔씨름을 하듯, 신경계의 영역 전쟁이 벌어졌다. 유진의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시야가 희뿌옇게 흔들렸다.
상대방이 물러섰다.
신호가 갑자기 사라졌다. 유진이 장악한 감시망이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화면은 여전히 완벽하지 않았다. 이미 노출된 영상이 남아 있었다.
유진은 모니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영상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 짧은 몇 초 동안 포착된 장면들이 천천히 움직였다. 거리, 가로등, 그리고—
사람.
9번 구역 중앙 교차로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어두운 옷을 입은 실루엣. 카메라 각도가 얼굴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지만, 몸의 선은 명확했다.
그리고 그 실루엣은 유진 자신과 정확히 같은 형태였다.
같은 키, 같은 어깨 너비, 같은 걸음걸이. 마치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유진의 손이 떨렸다. 마우스를 놓쳤다. 화면의 프레임을 더 확대해보려고 했지만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다.
"저것도... 나?"
중얼거렸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알 수 없는 번호였다.
유진은 5초 동안 화면을 봤다. 그 낯선 번호를 봤다. 화면을 끄지 않았다. 그냥 들었다.
침묵이 있었다.
"누구냐."
유진의 목소리는 평탄했다. 하지만 내부는 뜨거웠다.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상대방이 숨을 내쉬었다. 그 숨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전달되었다. 누군가는 분명히 거기 있었다.
"안녕, 유진."
여성의 목소리였다. 차분했다. 마치 오랜 친구에게 인사하는 것처럼.
그런데 그 목소리는 자신의 목소리였다.
정확히 말해, 자신의 목소리와 같은 음정, 같은 톤, 같은 발음이었다. 마치 녹음된 자신의 음성을 듣는 것 같았다. 하지만 녹음이 아니었다. 생생한 호흡음이 섞여 있었다.
유진은 말을 잃었다.
"우리는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아니다, 내가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상대방이 말을 이었다. 그 자신의 목소리로.
"당신이 뭘 했는지 알고 있어. 5년 전에. 그리고 지금도."
전화는 끝났다.
유진은 수화기를 귀에서 내렸다. 손에 힘이 없었다. 휴대폰이 떨어질 뻔했다.
보안실의 형광등이 깜빡였다. 모든 모니터가 검게 물들었다.
---
밤 11시 42분.
유진은 아파트의 불을 켜지 않은 채로 들어섰다. 어둠 속에서 움직였다.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는 자신만 비쳤다.
당연했다.
유진은 거울 속의 자신을 봤다. 같은 얼굴, 같은 눈, 같은 입. 5년 전 죽은 여인의 얼굴. 지금까지 유지해온 이 얼굴.
그리고 전화기에 남은 영상 속의 실루엣의 얼굴.
정확히 같았다.
유진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호흡이 빨라졌다. 거울 속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얼굴이 자신의 얼굴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마치 낯선 타인의 얼굴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욕실 바닥이 흔들렸다. 아니, 자신이 흔들리고 있었다.
유진은 욕실 바닥에 앉았다. 타일의 차가움이 엉덩이를 자극했다. 무릎을 안았다. 손가락이 떨렸다. 호흡을 조절할 수 없었다.
자신과 같은 신호를 가진 누군가가 있다. 자신과 같은 얼굴을 가진 누군가가 있다. 자신과 같은 목소리를 가진 누군가가 있다.
기억의 조각이 침입했다.
피. 어딘가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손가락. 누군가의 손가락이 경련하고 있었다. 비명. 아니, 자신의 비명인가. 아니다. 다른 누군가의 비명이었다.
유진은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기억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 감각은 남았다. 공포. 육체적 공포.
자신이 아닌데 자신인 누군가.
유진은 휴대폰을 들었다. 손이 떨렸다. 김소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긴급. 지금 가능한가.
응답이 빨랐다.
— 뭐가 터졌나.
— 만나자. 어디든.
---
밤 1시 23분.
폐업한 영화관 지하. 김소연이 이미 와 있었다.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연기가 어두운 공간을 떠돌았다.
"뭐라고 했어?"
유진이 물었다.
김소연은 담배를 입에서 빼고 유진을 봤다. "뭐가 뭐냐고."
"최근에 뭔가 느낀 거. 추적이라든지, 뭐든."
김소연의 얼굴이 굳었다. "왜 그걸 묻지?"
"있었냐고 물어봤어."
"있었다."
한 마디였다. 하지만 그 한 마디 안에는 공포가 들어 있었다.
"언제부터?"
"2주 전쯤. 보안청에서 이상한 프로필 요청이 들어왔어. 신원 위조 관련해서. 그런데 요청 주체를 추적할 수 없었어. 시스템이 차단했거든. 내 수준에서도 뚫 수 없는 암호화."
유진은 몸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누구를 찾고 있었어?"
"모르지. 정보가 너무 제한되어 있었어. 다만..." 김소연이 담배를 다시 물었다. 손가락이 담배를 집어 들 때 미묘한 떨림이 있었다. "그 프로필 요청에 붙어 있던 설명 문구가 있었어. '감시망 조종 능력자. 신원 불명. 위험도 최상'이라고."
유진은 말이 없었다.
"너랑 관련된 거냐?"
"...모르겠어."
"거짓말하지 마. 너 얼굴이 다 나와 있어. 뭐가 일어났어?"
유진은 바닥을 봤다. 콘크리트 바닥의 균열을 따라가며 생각했다. 김소연에게 얼마나 말해야 할까. 얼마나 노출시켜야 할까.
"또 다른 게 있다. 나 같은 능력을 가진 누군가. 도시에."
김소연의 담배가 손에서 떨어졌다. 담배는 바닥에 떨어져 불꽃을 흩뿌렸다.
"뭐라고?"
"나처럼 CCTV를 조종할 수 있는 놈이 있다. 그리고..."
유진이 휴대폰을 꺼냈다. 그 영상을 보여줬다. 9번 구역 교차로의 실루엣. 자신과 같은 형태의 몸.
"이 자식이 나한테 전화까지 했어. 내 목소리로."
김소연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졌다. 그 침묵 속에서 뭔가 변했다. 김소연의 눈 초점이 흔들렸다. 화면에서 유진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다시 화면으로. 담배를 피우는 손이 멈춰 있었다.
"이건 불가능해."
"알아."
"너 말고 또 다른 게 있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거야. 너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또 있다는 게."
유진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김소연이 화면을 더 자세히 봤다. "이 사람, 너 맞아. 정확히."
"알아."
"어떻게 이럴 수가..."
김소연이 유진의 눈을 마주쳤다. 그 순간 무언가가 바뀌었다. 신뢰가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김소연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다물어졌다. 침을 삼켰다. 담배연기를 천천히 내뱉으며 한 발 물러섰다.
"너 5년 전에 뭘 했어?"
"...뭐?"
"5년 전에. 그 연쇄살인사건 때. 뭘 했었냐고."
유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기억을 못 하는 건가? 아니면 말 안 하는 건가?"
"둘 다."
"그럼 내가 뭘 도와주라는 거야? 이미 너한테 연루되는 것만으로도 내 목숨이 걸려 있어. 그런데 너는 정체도 모르는 다른 누군가가 있고, 거다가 과거도 자세히 말 안 하고..."
유진이 일어섰다.
"미안. 내가 나가."
"어디 가?"
"모르겠어."
유진은 지하실을 나갔다. 계단을 올라갔다. 밤거리로 나왔다.
---
밤 2시 47분.
경찰청 특수범죄수사팀.
강민호는 이채린이 가져온 데이터를 봤다. 화면에는 복잡한 신호 파형이 표시되어 있었다.
"이게 뭐냐?"
"CCTV 조종 신호의 기록이에요. 최근 3주간의 패턴을 분석한 거예요."
이채린이 화면을 가리켰다. "보시다시피 두 개의 서로 다른 신호가 있어요. 처음엔 하나였는데, 2주 전부터 두 번째 신호가 나타났어요."
"두 개?"
"네. 그리고 더 이상한 게..."
이채린이 다른 화면을 켰다. "3일 전부터 두 신호가 충돌하고 있어요. 마치 싸우는 것처럼."
화면에 보이는 파형은 서로 얽혀 있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겹쳤고, 어떤 부분에서는 밀어붙였다.
"충돌하면 뭐가 되는데?"
"CCTV 신호가 불안정해져요. 사각지대가 불완전해지고 영상이 노출돼요."
강민호는 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몇 초가 걸렸다.
"그 말은..."
"두 명이 같은 방식으로 감시망을 조종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강민호는 의자에 기대었다. 이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했다.
"보안청에 보고했나?"
"아직요. 그런데..." 이채린이 주저했다. "보안청 내부 통신을 캐치했는데, 이것 관련해서 뭔가 논의하고 있는 것 같아요."
"뭐라고?"
이채린이 음성 파일을 재생했다.
— "흥미로운 변수가 생겼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상호작용입니다."
그 목소리는 침착했다. 마치 과학자가 실험 결과를 보고하는 것처럼.
— "두 개의 신호가 충돌 중입니다. 이는 당초 계획과 다릅니다."
— "계획이 있었다는 뜻인가?"
— "네. 하지만 변수가 개입했습니다. 우리가 만든 것 외에 또 다른 존재가 있다는 뜻입니다."
강민호와 이채린은 침묵 속에서 그 목소리를 들었다.
— "박정수 박사, 당신이 이 시스템의 설계자잖습니까. 이건 버그인가, 아니면 의도된 설계인가?"
음성 파일이 끝났다.
"박정수?"
강민호가 물었다.
"보안청 CCTV 시스템 개발자에요. 보안청 산하 기술 부서의 수석 연구원."
"저 음성 파일을 누가 녹음했어?"
"모르겠어요. 하지만 보안청 내부 회의인 건 확실해요. 암호화도 당사자들만 접근 가능한 수준이었거든요."
강민호는 창밖을 봤다. 밤의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모든 거리가 CCTV로 뒤덮여 있는 그 도시.
그 도시 어딘가에 두 명의 초능력자가 있다.
한 명은 5년 전 죽었어야 했던 여인.
다른 한 명은 누구인가.
"이채린."
"네?"
"박정수를 찾아. 그리고 그가 이 시스템을 왜 만들었는지, 그 설계 과정에서 뭘 의도했는지 파악해."
"알겠습니다."
이채린이 노트북 화면으로 돌아갔다. 강민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박정수라는 이름이 나왔을 때 이채린의 손가락이 미묘하게 경직됐다. 마우스를 움켜잡는 힘이 달라졌다. 화면을 보는 눈빛이 흔들렸다. 목 부분의 근육이 팽팽하게 조여졌다.
그 순간, 강민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상사였다.
"팀장님, 네 번째 사건이 터졌습니다."
"또?"
"중앙역 지하 상가. 여성이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몇 시에?"
"새벽 2시 14분쯤으로 추정 중입니다."
강민호는 일어섰다. "현장 가자."
---
새벽 3시 12분.
중앙역 지하 상가의 한 구석.
경찰의 테이프가 쳐져 있었다. 시신은 이미 수거되었지만, 피의 자국은 남아 있었다.
강민호는 현장을 둘러봤다. 가게 입구, 복도, 계단. 모든 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CCTV에는 뭐가 나왔나?"
수사관이 보고했다. "사건 발생 시간대의 영상이 모두 손상된 상태입니다. 마치 고의적으로 삭제된 것처럼."
"얼마나?"
"2시 10분부터 2시 25분까지. 15분간 전체 사각지대."
강민호는 그 시간 동안의 상황을 상상해봤다. 15분이면 충분했다. 충분히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시간.
그런데 이채린의 분석에 따르면, 그 시간대에 두 개의 신호가 충돌했다.
한 신호는 사각지대를 만들려고 했다.
다른 한 신호는 그것을 방해했다.
결과적으로 불완전한 사각지대가 생겼다. 그 불완전함 속에서 살인이 일어났다.
강민호는 현장의 포토를 들었다. 시신의 위치, 상처의 깊이, 혈흔의 패턴. 모든 것이 이전의 세 건과 동일했다.
우아한 살인. 정확한 살인.
하지만 이번엔 뭔가 달랐다. 이번엔 두 개의 신호가 있었다.
그 의미는 무엇인가.
강민호는 팀원들의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현장 수사관들. 법의학자. 기록 담당자. 누구인가.
그 순간, 강민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알 수 없는 번호였다.
그는 받았다.
"누구신가요?"
침묵.
"저는 경찰입니다. 이 번호는—"
"당신은 틀린 길을 가고 있습니다."
여성의 목소리였다. 차분했고, 계산적이었다.
"누구세요?"
"저를 찾으려고 하지 마세요. 대신 자신을 찾으세요."
"뭐라고요?"
"당신 팀 안에 있는 자신을."
전화가 끊겼다.
강민호는 수화기를 귀에서 내렸다. 그 말을 다시 생각했다.
'당신 팀 안에 있는 자신을.'
팀 안에 있는 자신. 팀 안에 있는 또 다른 강민호.
강민호는 현장 수사관들을 다시 봤다. 이번엔 다르게. 각자의 움직임을 추적했다. 누가 너무 침착한가. 누가 시선을 피하는가. 누가 강민호를 관찰하고 있는가.
법의학자가 피 샘플을 채취하고 있었다. 기록 담당자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수사관들이 주변을 조사하고 있었다.
그 중 누구인가.
강민호는 시선을 고정했다. 기록 담당자 박정수. 아니, 그건 아니었다. 박정수는 보안청에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법의학자인가. 아니면 수사관 중 한 명인가.
강민호의 눈이 한 수사관에게 멈췄다. 새로 온 수사관.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 수사관이 현장의 혈흔을 촬영하고 있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너무 침착하게.
마치 이미 이 장면을 알고 있는 것처럼.
---
새벽 4시 33분.
유진은 보안실에 앉아 있었다. 모니터 앞에서.
자신의 신원 기록을 찾고 있었다.
보안청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서, 자신의 파일을 검색했다.
'서유진' - 야간 보안 요원 - 입사일 3년 전 - 신원 확인 완료.
하지만 그 파일 옆에는 작은 아이콘이 있었다.
[삭제된 파일 복구 불가]
유진은 그 아이콘을 클릭했다.
화면이 깜빡이며 메시지를 새겨냈다.
[접근 권한 부족. 보안청 최고 권한자만 접근 가능]
유진은 손을 내렸다.
누군가는 자신의 기록을 지웠다. 보안청 최고 권한자. 그 사람이 누구인지 유진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자신의 신원을 지울 만큼 높은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자신의 또 다른 버전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또 다른 알 수 없는 번호.
이번엔 유진이 먼저 받았다.
"뭐냐."
"당신이 찾는 답은 여기에 없어. 대신 내가 가지고 있어."
자신의 목소리였다.
"누구냐고 물었어."
"당신과 같은 존재. 그런데 더 완벽한."
"뭐가 완벽하다고."
"기억. 나는 모든 걸 기억하고 있어. 당신은 그렇지 않지."
유진은 침을 삼켰다. 목이 마른 느낌이었다.
"5년 전을 기억해? 그 건물에서. 당신이 뭘 했는지."
"...모르겠어."
"거짓말. 당신의 손에 묻은 피를 기억해야 해. 그 따뜻함을. 그 사람의 목소리를."
유진은 말을 잃었다.
"내일 밤 11시에 만나자. 그곳에서 모든 걸 알려줄 테니까."
통화가 끝났다.
그 순간, 보안실의 모든 모니터가 켜졌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하나의 이미지였다.
폐쇄된 건물. 오래된 구조. 그리고 그 건물의 문 앞에 서 있는 한 사람.
자신과 정확히 같은 모습의 사람.
그 사람이 손을 들었다.
화면이 깜빡이며 글자를 새겨냈다.
[내일 밤 11시. 여기서 만나자. 혼자.]
유진은 모니터를 봤다.
그 건물의 주소는 자신도 알고 있었다.
5년 전에 그곳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기억의 파편이 다시 침입했다. 이번엔 더 구체적이었다.
피. 콘크리트 바닥에 흘러내리는 피. 손가락. 누군가의 손가락이 경련하고 있었다. 비명. 자신의 비명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비명이었다. 어둠. 그 건물의 지하실 같은 어둠 속에서. 차가운 공기. 금속 냄새. 그리고 따뜻함. 자신의 손에 묻은 따뜻한 것.
그리고 얼굴. 그 얼굴이 보였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얼굴. 어두운 조명 속에서 희미하게 드러나는 그 얼굴. 왼쪽 관자놀이에 흉터가 있었다. 가늘고 긴 흉터. 마치 칼에 베인 자국처럼.
유진은 손을 펼쳤다. 손가락이 떨렸다.
기억은 다시 사라졌다.
하지만 이번엔 감각만 남지 않았다. 장면이 남았다. 그 건물의 구체적인 모습. 지하실의 벽. 바닥의 타일 패턴. 그리고 그 얼굴. 왼쪽 관자놀이의 흉터.
유진은 알았다.
자신이 그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