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밤의 서명자

경찰청 특수범죄수사팀 회의실의 형광등 아래서 강민호는 도시 지도를 내려놓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에는 5년 전 연쇄살인사건의 사건 기록이 떠 있었다. 피해자 7명. 용의자 1명. 결론: 자살.

하지만 그 용의자가 살아있다면?

강민호는 지도로 돌아갔다. 세 개의 점을 펜으로 표시했다. 구도시 지구의 낡은 아파트. 중심 상업지구의 호텔 옥상. 산업단지 폐쇄 공장.

펜이 움직였다.

첫 번째 점을 중심으로 원을 그었다. 두 번째 점을 중심으로 같은 반지름의 원을 그었다. 세 번째 점을 중심으로 또 다른 원을 그었다.

동심원. 정확하게 겹쳐지는 동심원.

"5km 반경."

강민호의 목소리는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지난 5년간 발생한 모든 미해결 범죄의 장소를 종이에 옮겨 그렸다. 소매치기. 강도. 유괴. 그것들도 모두 같은 반지름 안에 있었다. 살인사건은 모두 CCTV 사각지대에서 발생했다. 피해자의 신원도 공통점이 없었다. 살인 방식도 달랐다. 하지만 한 가지만 같았다.

모든 것이 5km 반경 내에 있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젊은 여성이 들어섰다. 이채린. 강민호가 오늘 오후에 특채한 기술 전문가. 그녀의 노트북 화면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팀장님, 제가 뭔가 발견했습니다."

이채린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노트북을 강민호 앞에 놓았다. 화면에는 복잡한 네트워크 다이어그램이 떠 있었다.

"CCTV 네트워크 신호 분석을 했는데, 여기 보세요."

이채린의 손가락이 화면을 가리켰다. 두 개의 신호 파형이 겹쳐 있었다. 거의 동일하지만, 완벽하게 같지는 않았다.

"이건 중첩된 신호 패턴입니다. 마치 두 개의 다른 조종 신호가 동시에 작동하는 것처럼 보여요."

강민호가 화면을 자세히 봤다. 그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두 개의 신호?"

"네. 그리고 더 이상한 건..."

이채린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화면이 전환되었다. 이번에는 5년 전 사건 기록이 떠올랐다.

"5년 전 연쇄살인사건 CCTV 기록을 검색했는데, 용의자 신원 확인 과정의 영상이 공식 데이터베이스에서 누락되어 있습니다."

이채린이 마우스를 움직이며 계속했다.

"기술적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삭제된 흔적이 있어요. 삭제 패턴이 매우 정교합니다. 일반적인 해킹 방식과는 달라요. 마치 시스템 내부에서 직접 조작한 것처럼."

강민호의 호흡이 깊어졌다.

"누가?"

"보안청입니다. 내부 메모를 발견했는데, 암호화되어 있었어요."

이채린이 또 다른 문서를 띄웠다. 복호화 과정의 흔적들이 화면에 남아있었다. 그녀가 키를 입력하고, 알고리즘을 돌리고, 패턴을 분석하는 데 걸린 시간이 타임스탬프로 기록되어 있었다. 오후 2시 43분부터 밤 11시 28분까지. 거의 9시간을 그녀는 이 메모 하나를 풀기 위해 투자했다. 한 글자씩, 한 단어씩 드러나는 문장들.

"'이상 신경계 보유자 추적 중' 'CCTV 조종 능력 확인됨' '실험 대상 관리 필요'..."

이채린의 손가락이 화면을 가리켰다. 그 아래에는 더 있었다.

"'능력 재현 불가능. 개체 격리 권장. 상위 지시 대기 중.'"

회의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강민호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얼굴은 평온했지만, 눈은 다른 것을 말하고 있었다.

"감시망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건가?"

이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강민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화면을 확인했다. 보안실. 야간 보안 요원.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이채린을 봤다.

"감시망 기록을 모두 복사해.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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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15분. 야간 보안실은 정적이었다. 모니터 열두 개가 도시의 다양한 지점을 비추고 있었다. 서유진은 화면 앞에 앉아 있었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마우스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신경은 다른 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책상 서랍 안에서 꺼낸 종이 한 장. 인사팀 공지사항이었다.

"경찰청 특수범죄수사팀 협력 요청 - CCTV 감시망 관련 기술 자문 가능자 모집"

그리고 그 아래, 손으로 쓴 메모가 있었다. 강민호라는 이름. 그리고 전화번호.

유진의 심장이 한 박자 빨라졌다. 5년 전. 그 남자가 자신을 추적하던 경찰이었다. 당시 면접 신청서에는 없던 이름이었는데, 이제 와서 나타났다. 그것도 정확히 이 시점에.

그녀는 천천히 종이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하지만 이미 기억은 저장되었다. 강민호. 팀장. 면접 신청.

모니터 화면이 깜빡였다.

유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화면 중 하나―건물 로비 CCTV―가 3초간 검은색이었다. 그다음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3초는 기록되지 않았다. 적어도 공식 기록에는.

자신이 만들지 않은 사각지대.

다시 나타났다.

유진은 화면을 재생했다. 다시 봤다. 또 다시 봤다. 3초의 공백이 정확히 반복되었다. 누군가가 강민호를 지웠다. 아니, 누군가가 강민호의 존재 자체를 기록에서 제거했다.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지하 주차장의 신호를 추적했다. 신경계를 통해 감시망에 접속하고, 그 흔적을 읽으려 했다. 하지만 그곳은 깨끗했다. 너무 깨끗했다. 자신의 삭제 방식보다 더 정교하게 정보가 제거되어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 안에서, 희미한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유진의 능력으로는 그것을 명확히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감시하는 자가 감시당하는 느낌. 사냥꾼이 자신도 사냥당하고 있다는 걸 아는 순간의 그 감정.

휴대폰이 울렸다. 알 수 없는 번호.

유진은 받지 않았다. 대신 화면을 바꿨다. 도시 전체 감시망을 켰다. 5km 반경 내의 모든 CCTV를 한눈에 보기 위해.

그 안에서 사각지대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누군가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도시를 그려내고 있었다.

하지만 훨씬 더 정교하게.

---

밤 11시 43분. 유진은 보안실을 나왔다.

건물 로비의 CCTV를 지나가며 그녀는 자신의 신경을 뻗어냈다. 카메라의 시야를 살짝 틀었다. 자신의 얼굴이 카메라에 걸리지 않도록. 이 과정은 이제 호흡처럼 자동이었다. 생각 없이 몸이 움직였다. 하지만 오늘 밤은 달랐다.

카메라를 조종하는 순간, 또 다른 신경이 스쳐지나갔다.

유진은 몸을 굳혔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손을 누군가 다른 손이 잡은 듯한 느낌이었다. 자신의 신경과 겹쳐지는 다른 신경계. 순간적이었지만, 명확했다. 그 접촉의 순간, 그녀의 시각이 왜곡되었다. 로비의 천장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녀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것을 감췄다.

그녀는 로비를 빠져나왔다. 밖의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새벽이 아닌 밤 11시였지만, 도시는 여전히 어두웠다. 이 도시의 밤은 항상 같은 색이었다.

휴대폰을 켜면 또 다른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고 유진은 예상했다. 하지만 화면을 켰을 때 받은 것은 메시지가 아니라 전화 기록이었다.

강민호. 경찰청 특수범죄수사팀 팀장. 오후 3시 12분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저녁 8시 27분에 다시. 그리고 밤 11시 39분에 한 번 더.

유진은 통화 기록을 삭제했다. 그런 다음 휴대폰을 다시 켰다. 기록이 다시 나타났다.

삭제하지 않은 것처럼.

그녀의 손가락이 떨렸다. 휴대폰을 내려놓으려 했지만, 화면이 켜진 채였다. 그리고 메시지가 도착했다.

'당신의 능력을 알고 있습니다.'

발신자: 미확인.

유진은 골목길로 들어갔다. CCTV가 없는 곳. 아니, 자신이 제거한 곳. 그곳에서 그녀는 휴대폰의 배터리를 빼냈다.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강민호가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건 이미 알았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문제였다. 누군가가 자신과 정확히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

5년 전 기억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떠올라야 할 기억이 없었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왜 죽은 것으로 위장했는지, 그 모든 것이 흐릿했다. 마치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처럼.

그 시간들은 공백이었다. 그 공백 속에서 자신이 누구를 죽였는지, 왜 죽였는지, 그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7명의 피해자. 그 중 3명의 얼굴만 희미하게 기억난다. 나머지 4명은 누구인가. 왜 자신은 그들을 죽였는가. 그 기억이 자신의 것이 맞는가.

휴대폰을 다시 켰다. 배터리를 끼웠다. 화면이 깜빡였다.

'당신의 능력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죄도.'

또 다른 메시지가 와 있었다.

유진은 화면을 끄지 않은 채 골목을 빠져나왔다. 도시의 중심부로 향했다. 사람들이 많은 곳. 카메라가 많은 곳. 자신이 가장 잘 조종할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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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0시 17분, 도시 중앙역.

유진은 역의 지하 통로를 지나갔다. 카메라들이 그녀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녀의 신경이 모든 카메라의 시야를 조정했다. 자신의 이미지는 화면에서 사라졌다.

그 순간, 또 다른 신경이 자신의 신경과 충돌했다.

유진은 멈춰섰다. 지하 통로의 한가운데에서. 그리고 그녀는 느꼈다. 누군가가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카메라를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경쟁이었다.

카메라의 시야를 놓고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전쟁. 유진이 카메라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하면, 그 누군가가 그것을 빼앗으려 했다. 유진이 신호를 지우려 하면, 그 누군가가 신호를 복원했다. 그 과정에서 유진의 신경계가 격렬하게 울렸다.

지하 통로의 한가운데에서 두 개의 신경이 겹쳐졌다. 마치 자신의 손가락을 누군가 다른 손가락이 누르는 느낌. 신경계의 주파수가 겹쳐지면서 뇌가 두 개의 신호를 동시에 처리하려 했다. 그 과정은 고통이었다. 그녀의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눈앞의 지하 통로가 떨렸다. 벽이 물렁거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자신보다 빨랐다.

유진의 손이 통로의 벽에 닿았다. 차갑고 딱딱한 콘크리트. 현실의 감각이 필요했다. 두통이 심해졌다. 뇌 뒤쪽에서 시작된 통증이 눈까지 퍼져나갔다. 시야가 흔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기억의 조각들이 떠올랐다. 5년 전의 그 밤. 경찰청 건물의 복도. 자신은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그 장면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는 영상처럼. 그 복도 끝에 누군가가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첫 번째 피해자. 그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이 죽인 여자. 하지만 그 여자가 왜 죽어야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두 번째 피해자도, 세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그 얼굴들은 자신의 기억 속에 있지만, 그것이 자신이 한 일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 4명은 누구인가. 그들의 얼굴은 왜 기억나지 않는가.

지하 통로의 모든 카메라가 한 번에 꺼졌다.

완전한 어둠.

유진은 그 어둠 속에서 숨을 고르려 했다. 가슴이 격렬하게 뛰었다. 심장이 가슴팍을 뚫고 나올 듯했다. 손가락이 여전히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목소리와 같은 톤으로. 같은 음역대로. 같은 호흡 패턴으로.

"안녕, 유진."

그 목소리는 어디서 나왔을까. 통로의 어느 곳에서. 아니면 자신의 머리 안에서. 유진은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그 목소리만 있었다. 자신의 목소리.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목소리.

"누구야?"

유진이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도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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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0시 17분, 경찰청 특수범죄수사팀 사무실.

강민호와 이채린이 건물에 도착했을 때, 보안실의 모든 카메라가 꺼져 있었다. 그들은 복도를 달려갔다. 보안실의 문을 열었다.

빈 자리. 모니터 앞에 아무도 없었다.

이채린이 키보드를 눌렀다. 반응이 없었다. 그녀가 네트워크를 확인했다.

"팀장님... 감시망이 모두 다운되었어요. 지난 5년간 이런 적이 없어요."

강민호는 모니터를 봤다. 검은 화면 위에, 이미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나의 신호. 규칙적인 파형. 마치 심장박동 같은.

그리고 그 파형 위에, 텍스트가 떠올랐다.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나를 찾으세요. 아니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입니다.'

서명 아래에는 한 개의 이름이 있었다.

서유진 × 2

강민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5년 전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등재된 서유진. 그가 죽은 줄 알았던 그 여자가 살아있었다. 그런데 왜 같은 이름이 두 개인가. 지난 5년간 자신이 쌓아올린 모든 추론이 무너져 내렸다. 그가 놓친 것이 무엇인가. 서유진이 정말 한 명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두 명이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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